코로나 시대, 사회 속 사람 간의 대화, 그리고 감정
코로나 시대, 함께 모여 먹고 마시며 교류하기를 좋아하는 사회성 동물인 인류는 한 순간에 그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직접 대화가 단절된 사회에서 새롭게 적응해야만 했다. 공동지식 공유와 대화의 기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한 지는 오래지만 (심지어 함께 먹는 행위도), 그 이동과정과 근원이 확실할 때와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타자에 의해 조성된 상황일 때의 인류가 느끼는 감정은 엄연히 다를 것이다. 하나,둘 씩 단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적응과정 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급작스럽게 접어든 이 끝을 알 수도 없는 새로운 형국에 대한 불안감은 곧 특정집단을 향한 원망과 기피, 심지어 혐오감으로 까지 번져갔다. 특정한 근원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미스테리 같으나 그로 인한 존재감은 매일의 일상 속에 가시처럼, 혹은 생명과 생업의 위협이 될 정도로 실재하는 그것에 대해 꼭 원망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인류는 원래 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거나 문제에 맞닥뜨릴 때,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인과관계는 작고 가시적일 정도로 구체적인 것을 선호한다. 그것이 분명하지 않거나,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거대한 구조 상의 문제라고 생각될 때에는 커다란 무기력과 불안감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학자들은,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무언가를 비난하는 것이 불안을 일시적으로 나마 완화하는 역할(palliative role)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대개 그 비난대상은 종종 여성,외국인,성소수자, 등등의 사회 구조 상에서 다수가 아닌 소수의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사회는 암묵적 동의 하에 어떠한 집단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그 집단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서로 인정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문제의 실체와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알고자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니, 개개인을 하나의 대상으로 싸잡아 묶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정인종에 대한 기피와 혐오감은 인류역사 상 항상 존재해왔지만, 코로나시대 미디어와 일부 정치인들은 이미 존재해왔던 그 감정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게 하거나 확신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렇게 국가 간, 정부 간의 전략과 음모는 개개인의 감정으로 사회 전체에 바이러스처럼 퍼지게 되었다.
예술의 독백에서 대화로의 이동, 사회적 실천으로의 예술(Art as Social Practice)
그렇다면 과연 예술은 이러한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민감한 감정 및 이슈에 있어서 어떻게 참여하고 어떠한 역할을 맡아 하고 있을까? 예술과 사회적맥락의 연결성은 꽤 오래 전부터 논하기 시작한 주제이고, 단순한 맥락 상의 연결을 넘어서 실천하기까지 이르렀다. 그 차이점을 살짝 짚어보자면, 전자의 경우는 예술이 사회적맥락과 단순 컨텍스트로서 연결 되었다면, 후자는 기획과정부터 결과물까지 더욱 심도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그에 상응하는 실천이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지칭하는 대표적 용어는 사회적실천(Social Practice)라고 할 수 있으며, 서구 학계에는 이를 둘러싼 여러 용어와 그 담론이 이미 다양하게 형성되어있다.
사회적 실천 또는 사회적 참여 실천은 인간 상호 작용과 사회적 담론을 통한 참여에 중점을 둔 예술 매체이다. 사회적 실천은 관계 미학,새로운 장르의 공공 예술,사회적 참여 예술,대화 예술,참여 예술을 포함하여 많은 이름으로 불린다. 2005년까지 "사회적 실천"이라는 용어는 인간관계 및 더 큰 사회와의 관계를 "실천"으로 간주하는 사회학 이론에서 사용 되었다. "예술과 사회적 실천"이라는 용어는 2005년 캘리포니아 콜리지 오브 아트 (California College of the Arts)에서 사회적 실천 학부(Social Practice MFA)이 개설 되면서 본격적으로 예술계 용어로 인식되기 시작되었다. 사실 한국의 생태계를 보자면, 사회적 실천에 해당되는 작가와 작업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용어 자체는 아직까지는 다소 생소한 편이다.
사회 실천 작업은 미학, 윤리, 협업, 방법론, 적대감, 미디어 전략, 또는 사회 행동주의를 통해 관객, 사회 시스템 및 예술가 또는 작품 간의 상호 작용에 중점을 둔다. 사회 참여 예술은 특정 운동이나 스타일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 방향이나 질서를 깨고 새로운 흐름을 제시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순수예술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수천 개의 사회 실천 프로젝트는 대중, 방법론, 미학 및 환경의 조합에 대해 매우 다른 접근 방식을 취했지만 이러한 프로젝트는 모두 인간 상호 작용 및 개발의 미학을 공유한다. 그러한 작업의 최종 산물은 정형적 작품이 아니라 건설적인 사회 변화를 위한 과정이다.
사회적 이슈를 직접적이든, 우회적으로든 다루는 작업은 관람객과 해당 이슈에 대한 기존의 생각과 사회에 전반적으로 자리 잡은 흐름을 깨거나 전환시키는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혹은 해당이슈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던 관람객에게는 이를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그렇다면 무엇이 “사회적"인 것이고, 그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A. 콩트, H. 스펜서 등의 사회학자에 의해 발전한 사회유기체설에 따르면, 사회는 곧 거대한 유기체, 즉 생명체와도 같아서 그에 속한 개인들은 생명체를 이루는 세포와 같다고 해석한다. (또는, 사회를 세포로 보고 개인들을 세포 성분으로 보는 수도 있다.) 각각의 세포는 서로 분업하고, 또 서로의 역할에 따라 협력하며, 전체 사회가 원활이 유지되는 요소가 된다. 여러 개체가 모여 있는 곳에서 서로 간의 분업과 협동이 생기고, 그 결과로 개체의 집합이 거대한 유기 생명체처럼 동작한다는 가설이다.
이수민, 고경빈 2인으로 이루어진 “comfort ball(컴포트볼)”은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콜렉티브로, 그들의 작업은 유학시절부터 거주해온 유럽(네덜란드) 사회 안에서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느껴온 아시안 여성으로서의 위치와 소외감으로 부터 시작했다. 그들은 드러내기 다소 불편한 감정을 마주하고 그것을 “음식"이라는 누구나 접근하기 편하며, 나누기 좋은 소재를 통해 표현하였다. 음식은 항상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연결짓는 특성이 있으며, 식자재 농사 부터 그것을 조리하는 노동력, 환경문제, 그리고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까지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고있다. 그렇기에 음식은 흔히 사회 속 “뜨거운 감자"로 불리는 공론화하기 불편한 이슈도 표면적으로 드러내지않고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인 것이다. 이들은 한국,혹은 동양에서는 익숙하고 친근하지만, 서양인에게는 생소하고 심지어 기괴 스럽게 보일 수 까지있는 식자재와 레시피로 퍼포먼스와 워크샵을 진행하며 현장에서 (대부분이 서양인인) 관람객의 그것에 대한 반응을 통해 유럽사회에서 그들이 느껴온 이질감과 시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네덜란드 작가 도미니크 힘멜스바크 드 브라이스는 2010년 본인이 살던 도시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이사왔을 때 본인이 느끼는 지역 커뮤니티와의 거리감을 좁히고자 “one day of free help(하루의 공짜도움)”이라는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자전거 수리, 페인팅, 재봉틀작업, 요리, 등등의 기술을 나열하여 광고를 제작하고, 암스테르담 시내 곳곳에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내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하루의 공짜도움!" 이라는 전단지를 부착하였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 곳곳에서 연락을 받은 작가는 실제 연락을 한 사람들 집에 찾아가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고 교류하였다. 건강이상으로 걷기 힘들게 된 어느 70대 여성은 그에게 온 가구에 바퀴를 달아줄 것을 요청하였고, 60대 남성은 은퇴한 후 자신의 삶에 대한 자료를 아카이빙하는데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도움을 요청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년 이상의 독거인이었으며, 결국 이들이 갈망한 것은 실질적인 도움보다는 누군가와 교류하는 것이었다. 작가는 해당 프로젝트로 사회 단면적인 이슈에 접근해 그 내면에 있는 더욱 근본적인 이슈를 끌어낸 것이다. 인터뷰 중에 그는 당시 프로젝트가 예술가의 사회적 관중으로서의 위치를 벗어나 자신의 주변 커뮤니티와의 관계를 맺기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한 개인으로서 낯선 도시에서 느끼는 고독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고도 한다.
흔히 미술계에서는 공공예술을 하는 작가와 개인작업을 하는 작가가 알게 모르게 분류된다. “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에서 최고 감독상을 받은 후 소감에서 Martin Scorsese 감독이 한 말을 인용해 한 말이다. (그러나 그가 정확히 어디서 이런 말을 했는지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필자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이 문장에 “사회적”이라는 말을 더하고 싶다. 개인이 일상에서 느끼는 문제는 결국 그가 속한 사회적 구조와 정치적 결정, 집단적 감정,등의 복합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며, 그것을 반영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소재로 나누어 그것이 사회실천적 작업인가 아닌가를 논하는 것은 이미 그 출발점에서부터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개인적인 소재로 가장 사회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이에 대한 논점을 공론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다애 / 독립기획자, PUBLIC PUBLIC 퍼블릭아트 리서치 디렉터 daae06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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