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공공예술은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공적인 성격을 띠는 장소에 전시되어 동시대적인 화두를 던져 왔다. 공공장소에 설치된 전통적 개념의 공공미술은 주로 사회의 역사에 수반되는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고, 결국 작품이 놓이는 장소에 따라, 지역의 성격도 재규정되며 도시의 삶을 구성하는 대중의 일상에도 영향을 준다. 그래서 기관 주도의 공공예술 프로젝트의 경우 도시공간을 하나의 갤러리, 미술관으로 상정하고 시민이 공동으로 경험한 미적 체험이 공동체를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주요한 기능을 한다는 신념이 녹아있다.[1] 이에 도시의 공공 조형물은 장소 특정적(site-specific)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예로 2014년 카라 워커(Kara Walker)가 뉴욕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에 곧 철거될 오랜 설탕공장에 설치한 거대 조각을 보자. 흑인 여성이면서도 스핑크스를 닮은 이 거대한 설탕 조각은 현재도 진행 중인 제3세계의 아동 노동 착취를 폭로하는 상징이다. 이러한 사회, 역사적 이슈를 관객들은 시각적으로는 스케일 그 자체에서 압도 당하지만, 이 작품이 말하고 있는 역사와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점차 공감하면서 후각을 자극하는 단내가 하나의 경험으로 각인된다.[2]
이뿐만 아니라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서 국제 예술 무대에서는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로 완성되는 다양한 작품들이 선보여 왔다. 하지만 2019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물리적인 경험과 참여가 중요한 프로젝트 또한 전환의 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물리적 경험이 차단되고 공동체 내의 물리적인 접촉이 강제 당하면서, 잠재 되어있던 인류의 초월 경험이 수면 위로 떠올라 가속화된 것이 메타버스라고 볼 수 있다. 메타버스의 개념은 최초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이란 사이버 펑크 작가가 1992년 공상과학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글, 이어폰 등 시청각 출력 장치에 연결된 마치 실재하는 듯한 디지털 시뮬레이션 세계로 묘사된다. 기존의 사이버 스페이스 개념과 매우 닮아있다. [3] 일반적으로 미술사의 전개에 있어, 테크놀로지는 주로 전통적인 장르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흐름으로 전환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해 왔다. 인터넷이 등장하던 시기부터 사이버 스페이스에 대한 열망은 다양하게 전개되어왔고, 현실 세계의 신체적이고도 물리적인 경험을 뛰어넘고자 하는 열망은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예술의 창작에 있어서도 다양한 신기술이 동원되었으며,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전시장에서 증강 현실 작품을 구현하거나, VR 고글을 쓰고 시공간을 뛰어넘는 다른 경험을 하기도 하고, 프로젝션 매핑을 통해 미술관의 경험을 확장시키며 몰입을 통한 비물질적 경험도 대중을 만나왔다. 이제 더 이상 관객은 새로운 장치를 만나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 보였고 디지털 감수성이 풍요로워지고 있었다.
이렇게 기술과 예술에 대한 감수성이 무르익어가는 시기에 메타버스의 본격적인 등장은 공공 장소라는 개념이 오히려 가상의 공간으로 전환되는 듯 보였다. 이 초현실적인 공간이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활동들, 비즈니스, 레크리에이션, 미팅 장소, 공연, 축제, 정치적 장소 등이 공간을 일상화시키기도 했다. 이에 자본주의 맥락에서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메타버스의 주체는 엔터테인먼트, 게임, IT업계의 플랫폼 장치를 가진 기업들이었다. 게임 플랫폼인 “포트나이트(Fortnite)”에서는 아리아나 그란데가 콘서트를 열기도 하고, 블랙핑크는 “제페토(Geppetto)”에서 팬미팅을 열기도 했다. 또한, 닌텐도사의 “모여라 동물의 숲”에서는 2020년 바이든 대통령의 선거운동 캠페인이 진행되었다. 이 현상은 게임 플랫폼이 제공하는 강력한 몰입과 스토리텔링의 능력을 일시적으로 차용한 것이며, 비대면 상황에서 대중과 소통하는 가상의 차원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구성된 가상의 공간은 이 시대의 대중이 개입하고 참여하며 커뮤니티를 창조해나갈 하나의 장소를 제공하게 되었다. 시각 예술은 무엇보다 작품을 직접 ‘경험’하는 예술로 여겨져왔고, 이 경험이 메타버스의 초월적인 경험으로 어떻게 전환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는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문제다. 하지만, 올해 초 곳곳에서 디지털 아트페어가 열렸고, 다양한 디지털 아트가 거래되는 것을 보면 이미 도착한 미래와 같다. 역설적이게도, 생존의 불안이 느껴진 시기에 미술 시장은 젊은 컬렉터 집단을 성장시키면서 시각예술을 향유하는 문화가 오히려 다양하게 발전해나가고 있다, 갤러리들은 온라인 뷰잉룸을 만들어 작가를 홍보하기도 하며,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통해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하며 전 세계의 고객을 만났다. 또한 몇몇 갤러리는 메타버스에 갤러리를 오픈해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현실의 예술계 시스템은 가상공간으로 빨려 들어가 새로운 지정학을 만들어냈다. 창작자와 관객의 간극은 줄어들고 있으며 다양한 층위에서 생태계를 구축해나가며 존재적 위치를 공고히 해나가고 있다.
스웨덴의 한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Out of the Sky, Into the Earth>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는 리투아니아 아티스트 Nomeda and Gedimina Urbonas와 스웨덴 비스 보그(Visborg), 발틱 아트센터, 섬 고트랜드(Gotland) 지역과의 협력 프로젝트다. 현지의 주민과 학생들이 <The Swamp Observatory>라는 앱을 구동시키면 북부에 만들어질 늪지대와 연못이 가져올 생태계를 가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기후 위기에 사라지는 습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알려지지 않은 생태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명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인간과 다른 생명체에 대한 공존의 모델을 학습할 수 있게 해준다.
메타버스는 지금 현실 세계를 자기만의 문법으로 직조하여 그 세계를 구성해나가고 있으며, 현실을 닮아가기도 하고 다시 그 가상의 경험을 현실에 비추며 성장해나간다. 이에 공공 프로젝트의 특성상 여러 주체가 함께 연합하여 어젠다를 구성해나가는 면에 있어서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의 공간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볼 수도 있다. VR/AR과 같은 도구들은 공간에 비물질적인 예술을 구현하여 사고의 스펙트럼을 확장할 수도 있고, 가상의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 해보며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사회 문제를 체험해 볼 수도 있다. 메타버스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공공예술은 장소 특정적 예술이 매체 특정적 예술로 변모해나가는 것도 포착할 수 있다. [4] 신체를 벗어난 비물질적인 경험이 사회구성원의 의식에 영향을 주는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다. 하지만, 공공의 이슈를 가상이라는 공간 자체의 감수성과 시나리오에 담아내고, 다가올 미래의 위기를 미리 체험해 보는 도구로 활용한다면 공공을 위한 예술이 또 다른 의식 확장의 가능성을 열어낼 장치를 얻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렇게 가상이지만 집단의식의 장소를 창조해 내는 것이 기술이 공동체에 자신의 역량을 되돌려줄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강은미 / PUBLIC PUBLIC 콘텐츠 디렉터 virginiakang@gmail.com
[1] 서울 기록원, 『서울은 미술관 』 공공 프로젝트 2016-2019https://archives.seoul.go.kr/contents/seoulmuseum
[2] 전영, Missions in Public Art - 공공미술의 미션: 국제 미술 행사에 선보이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1), 퍼블릭 아트, 2019년 5월 호
[3] 이광석, 〈메타버스는 오늘 인류에게 어떤 초월 욕망을 선사하는가〉, 퍼블릭 아트, 2021년 6월 호, pp. 43-48.
[4] The Art newspaper, What is the metaverse and why does it matter to the art world? Experts weigh in and predict its future impact, 28 January 2022,https://www.theartnewspaper.com/2022/01/28/what-is-the-metaverse-and-why-does-it-matter-to-the-art-world-experts-weigh-in-and-predict-its-future-impact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