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재택 교육, 오전 10시 경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만 들어도 짜증과 분노가 가득했다.
엄마는 함께 사는 동생에 대해 일거수일투족 불만을 토로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인사하는 것부터 친구들을 만나는 것까지. 1시간 내내 동생에 대한 불만을 들으니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이해는 된다. 3년간 함께 붙어 살면서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흔적이라도 보고 싶은데 이야기를 도통해주지 않으니. 어쩌면 동생은 속앓이를 하고 있을 순 있어도, 정말로 제대로 된 노력은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어머니의 불만은 동생의 미래에서 출발했지만, 어느새 동생의 사소한 언행까지 번졌다. 이것은 사랑인가, 집착인가. 확실한 건 제3자인 나조차도 숨이 막혔다.
(물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어무니는 당사자에게 말할 땐 차분하고 다정하게 말한다. 나에게 전화할 땐 폭발하듯이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쏟아붓느라 그러셨다.)
나는 대화할 때 "비유 권법"을 50% 정도 사용한다. 바로 어머니에게 권법을 사용했다.
"엄마, 독서가 참 좋잖아. 엄마 왜 독서 안 해? 집에서 쉬니까 시간 많잖아. 왜 운동 안 해? 달리기 무릎에도 좋다고 의사들이 밝혔어. 엄마 TV 하루 1시간만 보자. 눈에 안 좋아. 엄마 왜 식후 과일 먹어? 과당이 살 찌기 좋대."
이런 식으로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에 간섭하는 아들 연기를 잠깐 선보였다. 그러자 엄마가 반대의 입장을 조금은 느낀 것 같았다. 엄마는 한숨 고르더니,
"난 중학교 때부터 언니 집에서 생활했잖아. 부모님도 일찍 세상을 떠나셨고. 그래서 주변에 나에게 조언해줄 사람이 없었어. 그래서 내 아들들만큼은 그러지 않길 바랬지. 그래서 어릴 때부터 내 모든 걸 희생하면서 너희 뒷바라지를 했어. 내 말 들으니까 거봐, 너 잘 됐잖아. 근데 동생은 왜 말을 안 듣냐는 말이야."
"엄마, 독서도 운동도 내 말 들으면 다 좋잖아. 근데 왜 안 해? 좋은 거 모르지 않잖아? 그래도 안 하는 이유는 내 생각에 사람은 직접 경험해봐야 하는 것 같애. 시행착오는 자기가 겪는 것이지, 대신 겪은 사람들이 아무리 말해줘도 안 들어와 머리에."
그렇다. 직접 박치기해야 깨닫는다. 아파봐야 운동하고 건강관리한다. 아무리 말해줘도 안 들리고 오히려 부담된다. 그 사람이 원하지 않을 때 건넨 조언은 잔소리다.
조언하는 사람들의 집착이 심해지면 관계가 소원해진다. 그리고 내 사랑과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당사자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내 말이 맞잖아. 진작 들었으면 끝날 일을."
"너 그럴 줄 알았다. 내 말 들으라니까. 앞으론 그냥 시키면 좀 해. 토달지 말고."
점차 그 사람의 입김은 세진다. 숨막힌다. 그런 사람들은 당장 멈춰야 한다. 자기 삶에 그렇게 철저히 조언하고 챙기는 게 낫다. 그냥 좀 둬라. 시행착오는 자신의 몫이다. 우리가 언제까지 조언해줄 수도 없고, 우리의 조언이 다 맞는 것도 아니고.
사실 내가 그랬다. 그것도 사랑하는 연인에게. 부끄럽다. 그 사람의 시행착오를 지켜보는 일을 견디지 못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다. 어쨌든 엄마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고, 난 엄마와 함께 탈출하려고 한다 이 못난 모습으로부터.
사랑은 지켜보는 것부터 시작이니까. 박치기 실컷 하도록 믿어주고 응원해줘야지.
박치기 해봐야 하는 사람이 있다라는 말은 틀렸다. 다 박치기부터 배운다. 그래야 박치기를 안해도 되는 것들을 배우니까. 어쩌면 우리가 좀 박치기해봤다는 핑계로 타인의 박치기 권법을 막은 건 아닐까.
각자 알아서 박치기 하는 세상을 위해. "박치기 권리 보장 위원회" 설립하실 분?
추신: 구독자님, 박치기 좀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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