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5월이 시작되었습니다. 2026년이 벌써 30% 지점을 통과했네요.
5월은 ‘가정의 달’이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사람들을 한 번쯤 돌아보게 되는 달이에요. 챙겨야 할 관계들이 많아지고, 괜히 마음이 복잡해지는 달이기도 합니다.
오늘 뉴스레터에는 저의 고백을 담았습니다. 5월 초에 꼭 소개하고 싶었던 단어를 붙들고 가족, 특히 부모님에 대해 쓴 글을 고스란히 적었습니다. 구독자님도 읽으면서 가족을 향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 뉴스레터는 에디터의 휴가로 쉬어갑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깊은 이야기들을 채워 다다음 주에 다시 인사드릴게요. 따뜻하고 평온한 가정의 달 보내시길 바랍니다!

✏️ 이렇게 사용해요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치사랑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눈에 밟히는 문장입니다. 살과 뼈가 삭도록 사랑을 내려주어도 위로는 사랑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뜻처럼 느껴져 어딘가 쓸쓸합니다. 정말 치사랑은 없는 걸까요?
저는 한 아이를 둔 엄마이자, 한 엄마의 딸이기도 합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특별한 종교도 없이 깊은 시골에 혼자 사시던 외할머니의 장례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치러졌습니다. 하얀 상복에 지푸라기로 엮은 모자와 허리띠를 두르고 지팡이를 짚은 어른들이 계시던 낯선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마치 역사책에 나올 법했죠. 그때 엄마가 저를 부르더니, 이런 장면은 어디서도 볼 수 없다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본인의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딸에게 교육을 운운하며 사진을 찍으라고 하는 엄마가 이상하게도, 부끄럽게도 느껴졌습니다. 결국 사진을 찍지 않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엄마가 되고 보니, 그때 엄마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됩니다. 육아를 하다 보면 행복과 고됨을 하루에 몇 번씩 롤러코스터처럼 오가느라, 친구는 물론이고 부모를 잊고 사는 날이 허다합니다. 아이에게 온통 신경을 쏟다 보면 다른 일은 어떻게 되든 상관 없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살면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덜 슬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습니다. 그 생각을 한 자신이 괴물처럼 무섭기도 했는데, 솔직히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했습니다. 너무 크게 무너지지 않고, 눈앞의 아이를 보며 살아낼 수 있겠다는 작은 기대가 비겁하게도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정말로,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이를 보면 마음이 몽글해지고, '경이로움'이나 '사랑'이라는 단어가 서슴없이 나옵니다. 뽀뽀하고 싶고, 만지고 싶고, 옆에 있고 싶습니다. 부모님은 다릅니다. '사랑해'라는 말은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 되어버린 것 같고, 챙기고 위하는 마음이 우러나올 때도 있지만 도리로 하기도 합니다. 자연스러운 마음보다 해야만 하는 '일’로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관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설렘, 떨림이 감정이고, 사랑은 감정을 담는 표현 방식이라는 뜻이겠죠. 내리사랑이라는 그릇 안에 경이로움, 보호하고 싶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차오르는 충만함 같은 감정들이 담겨 있다면 치사랑이라는 그릇 안에는 아마 안쓰러움, 미안함, 애틋함 같은 단어들이 담겨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감정들도 충분히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치사랑이 없다고 하기엔 너무 슬프니까, 사랑의 범위를 조금 넓혀보기로 합니다. 내리사랑처럼 도파민이 터지지는 않지만, 묵직한 연민이나 안정감 또한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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