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EX
- Intro
- 근면함과 성실함의 차이, 그리고 가오
- 어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 나를 중심에 두며 일하기
- 오늘 들어온 중고서적 0580권
- <리서치 하는데요> 첫 번째 모임이었는데요
- Outro
구독자님, 별일 없으셨어요? 2023년 11월은 어떠셨는지요. 10월의 축복 같은 날씨를 지나 무얼 하기에는 애매하고 몸은 움츠러드는 날씨에 하얀 눈이 내린 풍경과 질퍽해진 도로를 떠올리며 11월도 그래도 괜찮다며 저처럼 자조 섞인 날들을 보내시진 않았는지요. 행동은 사람과 환경의 함수라는 말처럼, 날이 추워지고 해가 짧아지니 가볍게 했던 걸음들도 한결 무거워졌지만 그래도 11월을 잘 보내주고 12월을 함께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최근 계동에서 일을 할 때가 많은데 런던베이글 안국점을 지나던 오전 8시 30분 사진 한 장으로 뉴스레터를 시작합니다. 사진을 찍기 전에도 이 앞을 지나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베이글, 브랜드, 좋은 경험이 무엇일까여? 저는 베이글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거리를 걸을 때마다 평소 하지 않았던 생각을 떠올릴 수 있어 계동이 좋아졌습니다.
#1. 근면함과 성실함의 차이, 그리고 가오
근면함과 성실함의 차이에 대하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영화 ‘베테랑’(2015년)에서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내뱉은 대사입니다. 여기서 가오는 일본어로 얼굴이란 뜻입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얼굴을 걸고 하는가? 이름을 걸고 하는가? 내가 건 얼굴과 이름값에 맞는 수준을 달성하는가?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았습니다.
근면함과 성실함은 비슷하게 쓰입니다. 2가지를 합친 '근면성실'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2가지를 일에 대입해 보면 차이가 있습니다. 근면하게 한 결과와 성실하게 한 결과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 산출물일까요? 청소를 하는 것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 근면함은 대충 열심히 오래 청소하는 것입니다.
- 성실함은 내가 맡은 부분을 책임지고 깨끗이 청소하는 것입니다.
둘 다 청소를 같은 시간 하더라도 성실함에는 완결의 태도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자기가 맡은 구역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팀원들이 성실하게 일하도록 이끌 수 있을까요? 청소를 할 때에는 해야 하는 구역을 나눠서 이름을 써두고, 사진까지 붙여두면 책임감이 더 생깁니다. 각자의 재능이나 성향을 고려해서 먼지 쓸기, 창문 닦기, 물기 제거하기, 왁스 칠하기 등 세부적인 행동지침을 매칭하는 것입니다.
#2. 어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1️⃣ 헤드라이너 김창완
몇 달 전, 밴드 ‘산울림(현 김창완밴드)’의 김창완에 대한 이야기로 커뮤니티와 SNS가 들썩였습니다. 그를 ‘롤 모델 삼고 싶다’는 내용의 글이 여러 건 올라온 건데요. ‘2023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70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무대 장악력과 열정을 보여준 점이 Z세대 인상에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매일 아침 라디오 방송 진행을 위해 20Km의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한다는 사실도 함께 주목받았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꾸준히 운동을 하며 체력을 유지하는 그의 모습에 존경을 표하는 반응이 많았어요.
2️⃣ 직업인으로서 김창완
김창완은 가수, 연기자, 라디오 DJ, 화가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연예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천재라고 평가받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Z세대가 김창완을 롤 모델로 꼽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본업을 잘하기 때문만이 아니에요. 오랜 시간 이어온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 또한 그를 롤 모델 삼고 싶은 이유가 되는 겁니다.
3️⃣ 어른으로서의 김창완
과거에는 보통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준 어른을 롤 모델로 삼곤 했잖아요. (윗세대들의 롤 모델은 대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위인인 경우가 많았죠.) 그런데 요즘 10~20대는 성과 외에도 라이프 스타일, 마인드 등을 따라 하고 싶은 인물을 롤 모델로 꼽습니다.
#3. 나를 중심에 두며 일하기
1️⃣ 일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
'좋아하는 일은 좋아하는 일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라고 생각하는데, 효율도 자꾸 강조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에요. 일을 잘하면 효율적이 됩니다.
2️⃣ 결과로서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
요리를 못하는 사람은 음식을 만드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맛도 없어요. 요리 잘하는 사람은 빨리 하는데도 맛있잖아요. 얼마나 효율적이에요. 잘하면 효율이 높아집니다.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어요. 결과로서의 효율을 높이려면 다른 질문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3️⃣ 나의 입지와 일의 괴로움
관계가 힘들 때 조직에서 내 입지가 단단해지면 덜 괴로울 수 있어요. 저 사람이 나를 덜 괴롭히고 덜 귀찮게 하는 게 목표잖아요. 그러려면 내가 강해져야 해요. 팀의 선배나 동료들이 '이 사람 잘하는데? 이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은데?' 하면서 내 편이 되어야 해요. 3쿠션으로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법이죠.
4️⃣ 좋아하는 일을 찾는 여정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면 수많은 선택과 결정과 좋고 싫은 것들이 모여서 자기 인생을 만드는 건데, 버튼 하나만 누르면 답이 딱 나올 수 있을까요? 계속 시간과 품을 들여서 묻고, 해보고, 깨져봐야 조금씩 알아챌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에요. 그대로 따라 하면 되는 답이 어딘가에 있는데 찾지 못하는 게 아니에요.
5️⃣ 실행을 통해서 좋아하는 일을 찾기
그러니 해봐야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내가 좋아하는 일이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게 아니에요. 일을 붙들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봐야 그게 좋은지, 재미있는지 알 수 있어요.
#4. 오늘 들어온 중고서적 0580권
1️⃣ 학습된 편의성
사용자도 사용자가 겪는 문제를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관습, 학습, 망각으로 인해 처음에 불편했던 것이 이제는 불편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운전을 처음 할 때에는 어느 것부터 조작해야 할지 몰랐지만 익숙해진 이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운전을 하며 음료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2️⃣ 인지된 시간
사용자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하면서 살아간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죠.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방어기제로 인해 의도적으로 망각하기도 하니까요. 미국 월마트, 프랑스 까르푸 등 대형 쇼핑센터에 방문하는 고객들의 평균 쇼핑 시간은 30분 정도인데 고객들에게 매장 안에서 소비한 시간을 물으면 종종 그 시간을 2배로 늘려서 대답합니다. 실제 리테일 환경에서 시간은 3가지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첫 번째는 실제 쇼핑한 시간, 두 번째는 사용자에게 인지된 시간, 세 번째는 이 2가지를 결합한 시간입니다.
3️⃣ 체류시간과 구매여부
전자제품 매장에서 구매하지 않는 사용자는 5분 6초, 구매자들은 9분 29초 동안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장난감 매장에서는 비구매자가 10분, 구매자는 17분 동안 머물렀습니다. 여기서 체류시간을 따질 때 원하는 제품을 찾지 못해 헤매거나 배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그 비율을 따져야 하는데 이를 '혼란 지수'라고 합니다. 실제로 10분 머무는 사람이 원하는 제품을 살펴보지 못하고 계속 헤맸다고 한다면 인지된 시간은 30분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4️⃣ 대기시간과 이탈
한편, 원하는 제품을 찾은 이후에 계산대까지 이동하는 시간과 계산대에서 머무르는 대기시간, 주차장에서 차를 찾아 정산하고 나가는데 까지 걸리는 '대기 시간' 또한 인지된 체류시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컨대 주말에 양재 코스트코에서 원하는 물건을 바로 찾더라도 계산까지 걸리는 시간은 훨씬 길고 주차장에서 빠져나오는 것까지 고려하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5️⃣ 사용자를 알고 나면 하드웨어도 달라집니다.
선반의 높이와 테이블의 종류에 대한 일화입니다. 애완동물 간식을 구매하는 주요 소비자는 노인과 어린이인데 선반의 높이가 너무 높았기 때문에 매출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 식당에서 2인용 테이블은 항상 남아도는데 4인용 테이블은 부족한 적이 있었습니다. 살펴보니 1, 2인이 오더라도 널찍한 테이블에서 잡지, 신문을 읽을 수 있는 넓은 테이블을 선호했기 때문이죠. 전체 좌석 중 10%를 1인 고객을 위해 스탠딩 테이블로 레이아웃을 만들었는데 혼자 온 손님도 좌석이 비좁고 불편해서 이 테이블을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프라인에서도 사용자를 관찰하고 조사해야만 사용자를 이해할 수 있고 실질적인 사용자 경험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6️⃣ 오프라인에서의 사용자 경험
오늘 퇴근하는 길에 종로 알라딘 중고서점을 지났습니다. '오늘 들어온 중고서적 0580권'이라고 적혀있었죠. 어제와 달라진 숫자로 오늘도 활발하게 영업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지금 들어가면 580권 가까운 책들을 살펴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중고서점이지만 새로운 책들이 계속 수급되고 있다고 생각했죠. 하루 한번, 점원이 바꿔야 하는 교체식 아날로그 간판이지만 알라딘이라는 상호명 옆에서 사이니지는 유용함을 사용자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5. <리서치 하는데요> 첫 번째 모임이었는데요
강의나 기고 제안을 받았을 때는 2가지 감정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내가 '밥값'을 할 만큼 깊이가 있는가? 기존에 기고했거나 전달했던 콘텐츠와 차별화된 양질의 메시지가 있는가? 주니어, 중니어까지만해도 저는 자기 합리화 성능이 좋은 편이라 자기 검열의 문을 쉽게 넘어섰는데 점점 출력이 떨어집니다. 자기 검열을 1번 더 하게 되고 본업에 더 집중하자는 마음이 고민을 깊게 만들죠. 이런 제안들 중 대부분은 제 고민을 오래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제가 거절하면 유사한 일을 하거나 경력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선택의 기회가 넘어갑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저는 트레바리 모임의 클럽장을 제안받았고 일단 한번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안해 주신 승호 님을 만난 일이나, 클럽에 참여한 파트너와 멤버들과 연결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경험을 했습니다. 밥값을 잘해야겠다고 다짐하며 토요일 자정을 맞이했어요.
1️⃣ 책을 다시 읽게 되는 새로운 경험
독후감을 읽으면서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에 눈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책은 장수연 PD가 쓴 『기획하는 일, 만드는 일』이었는데 2차례 정독했던 책임에도 18개의 독후감을 읽는 동안 질문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같은 것을 읽고 다른 생각을 했다면 똑같은 화면이나 경험을 하는 사용자 역시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겠구나.
2️⃣ 토론하는 경험이 주는 생각의 진폭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일이 아닌 주제, 돈이 걸리지 않은 주제, 일정이 좌우되지 않는 주제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금요일 저녁, 강남역 인근에서 갖게 되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너머서는 경험이었습니다. 같은 콘텐츠를 보고 다른 페이지에 밑줄을 치고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울림이 있더군요. 자기만의 파동이 겹쳐져서 기대했던 것 이상의 변화를 느낄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 봅니다.
3️⃣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과 나눌 수 있는 형이상학적 이야기
18명이 처음 모인 첫 번째 모임에서는 자기소개 시간을 1시간 동안 가졌는데요. 철학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계셨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지, 내가 하는 일의 정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어요. 학부 때 철학을 전공했다는 말과 함께 저 역시 관심을 더했습니다. 우리는 '콘텐츠'의 정의에 대해서, 'UX(사용자경험)'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과거에 말했던 '콘텐츠', 'UX'와 지금의 것 그리고 2가지 사이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윤리적 역할과 주어진 책임, 균형감각에 대한 생각을 나눴습니다.
4️⃣ 첫 번째 모임에서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
충분히 전달이 되지 못했을 거란 의심을 갖고 파트너, 멤버들에게 발제자의 의도를 보완해 볼게요. 저는 '비즈니스를 떠난 좋은 UX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좋은 UX를 제공하는 서비스, 제품이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라져 가는 것을 2023년 11월에도 어김없이 보고 있습니다. UX 리서처를 공격적으로 채용했던 유망한 기업들은 IPO, 신규 투자유치가 어려워지자 UX 리서치, 브랜딩 조직을 축소했고 직무전환 또는 권고사직 등의 방법으로 수익성 강화에 나섰고요. 광고가 없던 페이지엔 새로운 광고가 들어서고 더 좋은 지면에 더 큰 광고가 들어서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더 나은 UX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직무적 책임감, 리서치를 하는데 가져야 할 책무는 무엇일까요?
5️⃣ 그날 문득 든 생각, 연결과 닿음
뉴스레터를 처음 쓴 건 2013년 정도였어요. 당시 인트라넷으로 동기들에게 관심 있게 본 것을 전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안부는 궁금한데 점점 멀어지면서 볼 기회가 줄어드는 게 아쉬워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회사를 옮기고 사내메일에 접근할 수 없게 되자 블로그를 개설했고 뉴스레터 대신 블로그에 소식을 적다 블로그를 개편하면서 뉴스레터를 병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용하던 메일링 플랫폼을 변경해 메일리에 정착한 것이 34개월 전이었죠. 한 달에 한번 잊을만하면 찾아가는 이 뉴스레터를 보고 트레바리 모임에 참석하셨다는 분들이 제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로켓펀치를 통해 참여하고 있는 '취준컴퍼니'에서 멘토링을 하며 인연을 맺은 분들도 계셨고요. 연결이 되어 있었구나. 한두 번의 커피챗, 한 달에 한번 뉴스레터는 간헐적이고 단편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꾸준히 하니까 이게 두툼한 실로 닿아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더 좋은 트레바리, <리서치 하는데요> 경험을 만들기 위해 고심할게요. 멤버 정원을 더 늘리지 않고 17명으로 마감한 것은 그런 점에서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요즘 공간을 기반으로 한 사용자 경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전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사용자 경험을 옴니채널이라는 용어로 포괄하려고 했지만 글쎄요. 그냥 UX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바일 앱으로 주문하고 오프라인에서 픽업하는 것을 사용자가 온라인, 오프라인 또는 모바일, 공간 이렇게 구별해서 생각할까요? 그냥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경험으로 생각할 것 같습니다. 제가 11월에 가장 흥미롭게 읽은 글을 소개하며 12월의 안부를 미리 전합니다. 12월 크리스마스 즈음에 다시 인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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