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EX
- Intro
- #1.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자동차를 미워할 수 있을까?
- #2. 카카오가 해야할 일과 카카오톡이 해야할 일을 구분하지 못했다
- #3. 포용적 디자인의 시작과 UX 리서치
- #4. 별책부록은 영어로 Special Edition
- #5. 재능과 노력, 다정함에 대하여
- #6. 땅에 쓰는 시, 조경가 정영선이 아산병원에 담은 마음
- 『UX 교과서』 책나눔 이벤트 📚
- Outro - 커피챗
구독자님, 긴 연휴는 편안하게 보내고 계신지요? 저는 미뤄둔 화장실 청소를 하고 책상에 앉아 조금 늦은 편지를 씁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에는 제가 좋아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어떤 힘은 그 자체로 동력이 되지 않지만, 프로펠러가 멈추지 않도록 하는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대단치는 않더라도 녹이 스는 것을 막아주는 힘 같은 건데요. 이런 애씀은 언제나 유난한 것 주변에 존재합니다. 프로펠러를 돌리는 모터만 바라보면 놓치기 십상인데, 더 멀리 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존재입니다. 연휴를 마치고 나면 2025년도 약 2달 남짓만 기다려 줍니다. 더 눈에 띄는 것보다 눈에 띄지 않는 것, 주목받는 것보다 주목해야 하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면 어떨까요?
그러고는 항상 리비에르가 귀담아듣지 않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이보게, 로비노, 인생에 해결책이란 없어. 앞으로 나아가는 힘뿐. 그 힘을 만들어내면 해결책을 뒤따라온다네.” 그래서 로비노는 정비사들과의 협력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제한했다. 대단치는 않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이 힘은 프로펠러 축에 녹이 스는 것을 막아주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야간 비행』
#1.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자동차를 미워할 수 있을까?
어느 날 폰티악 자동차 회사로 고객이 보낸 한 통의 불만 편지가 도착했다. 고객이 두 번째 보내는 편지의 내용은 “주말마다 드라이브를 즐기며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것이 가족 행사인데, 꼭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면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는 의심스러운 내용이었다. 언뜻 정신 나간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 사실이니 꼭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자동차 회사 사장은 엔지니어를 보내 문제를 살펴보게 했다. 놀랍게도 고객의 불만은 사실이었다.
류쉐펑, 『복잡한 세상을 이기는 수학의 힘』
자동차가 바닐라 맛을 싫어할 수도 있을까?
1️⃣ 고객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엔지니어를 파견하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싶은 마음이 들지만 자동차 회사 사장은 엔지니어를 고객에게 보냈습니다. 고객의 불만을 '문제'로 인식한 것입니다. 정성을 담은 그리고 답답함을 토로하는 편지가 진심을 전했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싶은 문제를 "어쩌면 그럴 수도 있잖아"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접 경험하고 멀리서 떨어져 바라보는 것들은 대부분 깨끗하고 그럭저럭 잘 작동하기 마련입니다.
2️⃣ 자동차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킨걸까?
엔지니어는 고객이 겪은 문제가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문제가 벌어진 상황을 똑같이 재현했습니다. 주말에 고객의 집에서 출발해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습니다. 주차를 하고 내린 후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차에 탑승했죠. 출발하려고 했지만 시동이 켜지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다시 고객의 집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로 간 후 주차를 마치고 다른 맛의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습니다. 차에 탑승하고 시동을 켜자 이번에는 시동이 걸렸습니다. 바닐라 맛에 자동차가 알레르기 반응이라도 일으킨 걸까요? 이 현상을 조금 더 들여다봐야겠습니다.
3️⃣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원인이 아니라면 무엇을 의심해봐야 할까?
엔지니어의 조사결과, 근본적인 원인(Root Cause)은 시간이었습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가장 인기가 있는 맛이라 가게 입구 별도 진열대에 놓여있었고 구매시간이 아주 짧았습니다. 다른 맛은 더 안쪽에 들어가야 구매할 수 있었고 대기시간도 길었습니다. 원인은 '시간'이었는데 연료 계통의 '베이퍼 록(Vaper Lock)' 현상으로 엔진이 뜨거운 상태에서는 연료가 증기로 변해 연료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탓에 시동이 걸리지 않았던 거죠. 과열된 엔진이 식는 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 사례는 『복잡한 세상을 이기는 수학의 힘』에 언급되어 있지만 실제 사례인지에 대해서는 진위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겉보기에 논리적이지 않은 상황도 상황을 재현해 보면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객이 겪은 현상을 단순한 불만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대신 진지하게 또 선입견 없이 바라보는 자세는 리서치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마음가짐이라고 믿습니다. 류쉐펑은 이 상황을 '조건부 독립'이라는 수학적 사고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현상이고, 이 현상이 만든 진짜 원인이 '시동이 켜지지 않는 문제' 앞에 놓여있다는 것이죠. 그것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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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카카오가 해야할 일과 카카오톡이 해야할 일을 구분하지 못했다
이번 카카오톡 업데이트는 불편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변화를 거부하는 사용자 심리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단순히 수익 증대만으로는 사용자 경험 악화를 정당화하기 어렵습니다. UX 리서처로 일을 하며 갖고 있던 것들이 부정당하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 몇 가지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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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위기에서 잘 하면 혁신이고 광폭행보이지만 어설프면 우왕좌왕입니다
카카오가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기업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카카오의 성공방정식은 카카오톡 기반의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를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비즈니스 영역에 침투한 후 네트워크 효과로 경쟁우위를 확보하여 IPO를 진행하는 전략이었죠. 그 과정에서 골목상권, 대기업 지위의 플랫폼 기업이 해야 할 일인가? 문어발식 경영과 내수 비즈니스에만 국한된 모습 등이 비판의 대상이었죠. 비판받을 수 있지만 카카오는 그런 전략을 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업데이트가 불편한 이유는 카카오가 할 일을 이래도 저래도 잘 안 되니 '톡'으로 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카카오 공동체는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내수 서비스에서 확장하지 못했고, IPO를 했던 기업의 주가는 공모가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트워크 효과로 재미를 누렸지만, 거꾸로 그 효과를 누리기 전 비즈니스를 영위했던 이익집단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택시기사들과 첨예한 갈등을 겪었고 상장에 실패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주가조작 문제로 창업자는 법의 심판대 위에 놓여있고 카카오 경영진 중 핵심 포지션(CPO, CTO 등)은 이미 혁신을 보여준 것 같은 기업에서 모셔왔습니다. 변화를 필요로 했던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카카오스토리와 틱톡 숏폼, 인스타그램 등에서 보여줬던 기능을 조합해서 업데이트하는 것이 혁신일까요?
둘째, 이번 업데이트는 '메신저로서의 균형감각'을 잃었습니다
카카오의 기업 정체성을 가장 잘 담고 있으면서 가장 큰 경쟁력이 된 것이 '톡'입니다. '톡'은 메신저입니다. 메신저 제품에서 중요한 것은 나와 연결된 친구로서의 '메신저'와 그와 주고받는 정보값 '메시지'의 균형을 잡는 것입니다. 이번 업데이트는 그 균형을 놓쳤습니다. 카카오톡에서 연결된 모든 사람이 동일한 관계성을 갖는 '친구'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했죠. 이 부분을 카카오톡도 알고 있기 때문에 '친구에게만 게시물 공개'라는 기능을 별도로 두고 있습니다. 동질성을 가진 친구들로만 카카오톡 친구가 구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공급자도, 사용자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논리로 보면 이번 업데이트는 그럴듯합니다. 숏폼을 탑재했고, 광고는 늘었습니다. 이미 이런 광고구좌를 판매했으니 수익 관점에서 나쁠 것도 없습니다. 광고는 곧 돈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광고를 보지 않는 사용자들도 여전히 어쩔 수 없이 메신저를 사용할 테니 쉽게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욕을 하더라도 쓰는 사용자들 대부분은 사실 카카오톡 입장에서 돈이 되는 고객이 아니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UI/UX가 변경될 때 변화를 스트레스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사용자는 기본적으로 거부감을 갖습니다. 이탈이 강하지 않다면 그 거부감은 심각한 신호로 인식되기보다 소음으로 생각하고 귀를 닫아버립니다. 카카오톡이 원래부터 좋은 UI/UX를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픈채팅방에는 대화창 모양을 꼭 닮은 광고가 있었고, 광고는 점점 늘어났으며 '실험실' 기능은 언제 나타났다 언제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요? 기업은 업의 본질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카카오톡은 '메신저'이지 '숏폼 기반의 소셜미디어서비스'가 아닙니다. 본질을 놓친 기업은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잘 되는 것을 따라 하려고 하는 것은 혁신이 아닙니다. 기존에는 작은 기능 하나라도 '설정' - '실험실' 메뉴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던 기업이 많은 사용자가 거부하고 불편해하는 기능을 일방적으로 도입한 것은 기존의 서비스 성격과 비추어봐도 어색합니다.
숏폼 기능만 하더라도 소셜 미디어는 만 14세 연령제한을 걸어두고 있는데, 카카오톡은 채팅서비스이기 때문에 이 규제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개편한 세 번째 탭은 '오픈 채팅'에서 '지금' 탭으로 바뀌었고 누르면 곧바로 숏폼 콘텐츠가 나옵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지금까지 숏폼 중독을 우려해 틱톡, 유튜브 숏츠 등을 다 제한해 두었는데 허망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셋째, 정무적 감각이 보이지 않습니다
10대, 20대는 인스타그램 DM으로 소통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카카오톡은 여전히 온 국민의 90% 이상이 쓰고 있는 국민 서비스입니다. 이용자가 줄었다고 해도 4,500만 명 수준입니다. 2022년 10월,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이 '먹통'을 겪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국민 메신저'가 감당해야 하는 무게는 상당한 것이었죠. 유난하고 과할 정도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때 라인은 "긴급한 연락이 필요할 때, 끊기지 않는 "글로벌 메신저 라인"을 이용하세요"라는 문구로 네이버 홈화면, 검색창에 광고를 실었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장애가 복구되고 난 후 여전히 사람들은 카카오톡을 썼습니다. 카카오톡이 가진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사용자는 쉽게 이탈할 수 없었습니다.
'무슨 플랫폼에서 정무적 감각을 이야기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드실 수 있습니다. 이런 의문을 해소하려면 한국의 빅테크 기업 내에서 대관 담당자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는지 혹은 대표이사나 경영진이 어떤 이력을 가졌는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대한민국 유통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쿠팡의 강한승 전 대표만 하더라도 청와대 법무비서관 출신이자 김앤장 변호사 이력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내수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플랫폼은 국민 정서와 여론, 관계기관의 규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더 조심스러워야 하고 그 변화는 동일한 가속도를 유지하며 다채로워야 합니다. "어차피 무료로 쓰는 건데 뭐 어때?"처럼 보이는 행보는 국민 플랫폼의 지위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국민 플랫폼에는 메커니즘으로서 정무적 감각이 요구됩니다.
넷째, 사용성과 유용성을 모두 악화시켰습니다

이번 업데이트에는 '안읽은 대화 미리보기'라는 그러니까 '읽어도 1은 그대로'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안읽으면 못 봐야 하는 건데 이상합니다. 읽으면 1이 사라져야 하는데, 그대로 남아있다는 말입니다. 모순입니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상대가 읽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1의 부재'였습니다.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내가 메시지를 읽지 않았음을 알리고 싶어 읽지 않고 '1의 존재'로 이를 증명했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 기능입니다. 1이 있어도 읽었을 수 있으니 보낸 사람은 헷갈리기 마련입니다. 메신저의 본질은 메시지의 전달입니다. 메시지가 혼탁해졌으니 1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기능이 론칭되는 것에 대해 내부에서 많은 반대가 있었다고 지인에게 들었습니다.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모두 반대했음에도 리더십의 결정으로 어쩔 수가 없이 기능을 개발해야 했던 것에 대해 조직에 속해 일하는 한 사람의 UX 리서처로서 속상함을 함께 느낍니다. 오히려 이번 일을 통해 리더십의 의사결정을 더 적극적으로 반대할 만한 추진력이 생겼으면 하는 어설픈 바람도 있습니다.
불편해도 어쩔 수 없이 카카오톡을 쓰는 사람들은 많을 겁니다. 하지만 숏폼을 사용하지 않고 핵심 기능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사용자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드레일 지표에 당장 손상이 가는 정도는 미미할 수 있겠지만 누적된 불만과 실망은 폭포가 아닌 계단식으로 서비스 이탈로 이어질 겁니다. 카카오가 해야 하는 숙제를 카카오톡을 빌어 시도한 것은 거꾸로 카카오가 할 일들의 뒷다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일에서 배움을 얻고 카카오가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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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포용적 디자인의 시작
응급실에 갈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응급실에 한 번이라도 환자나 가족으로 방문한다면 그 경험은 그야말로 혼란과 아우성입니다. 드라마에서 익숙한 장면처럼 "우린 언제 봐주냐?", "언제 치료해 주냐?"라며 간호사와 의사를 붙잡고 이야기하는 모습은 환자와 가족 입장에서 (1)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2)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정보비대칭성'에 기인합니다. 서울보라매병원 등에서는 TV 화면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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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 놓인 디스플레이가 환자와 그 가족의 마음을 보살피는 비결
- 환자 별로 담당 의료진(주치의, 간호사) 정보를 제공합니다.
- 현재 어느 단계에 이르렀고 앞으로 남은 과정을 제공합니다.
- 의사초친
- 혈액검사
- 영상검사
- 타과진료
- 입/퇴원 요청여부
- 실시간 응급실의 혼잡도를 제공합니다. (현재 몇 명의 환자가 응급실에서 진료를 보는 중인가?)
- 중증 환자의 평균 체류시간을 제공합니다.
- 중증 환자의 평균 진료시간을 제공합니다.
- CT, MRI 등 주요 검사의 평균 대기시간을 제공합니다.
포용적 디자인은 가장 아프고 도움이 필요한 사용자의 경험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불편함을 디자인 솔루션으로 해소하는 것입니다. 디자인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과거 서비스 디자인으로 불렀던 많은 과업들은 사용자 경험에 대한 조사 즉 'UX 리서치'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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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별책부록은 영어로 Special Edition
[별책부록]은 트레바리 북클럽 <리서치 하는데요> 매 시즌 한 번씩 클럽장이 호스트가 되어 진행하는 번외 모임입니다. 영어로는 Special Edition 정도가 적당할 것 같은데, 이번 시즌의 멤버들을 주축으로 이전 시즌의 멤버들 그리고 SNS에서 연결된 분들과 오프라인에서 사용자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트레바리는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생각을 나누는 자리인데, 제 경험과 시행착오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모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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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UX란 무엇일까? 라는 거창한 주제를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까?라는 고민 대신, [별책부록]에서는 모두가 자연스럽고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이 더 또렷했습니다. 돌아보니 지난 [별책부록] 모임들은 '자연스럽고 편안한', '머리도 귀도 몽글몽글 즐거운 시간', '잔잔하고도 단단한'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잘 지내다 언제 밥 한번 먹어요."라는 그 말이 의미 없이 휘발되는 것이 아니라 계절을 거듭하며 반복되고, 다시 만날 때 담백하게 안녕을 건네는 자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리서치 하는데요>를 거듭하며 맺은 인연들에는 그렇게 스며든 마음, '잘 지냈으면 좋겠다', '바빴던 일들이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는 응원이 몽글몽글 존재합니다.
긴 연휴를 시작하기 전, 신촌의 좋은 공간인 에피소드 신촌 캠퍼스에 모여 우리는 여느 [별책부록] 모임 때와 같이 피제리아 더키 화덕피자를 먹었습니다. 먼저 도착한 분들이 준비를 도와주었고, 사진으로 우리를 담아주었습니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이용하는 사용자들의 패턴, 룸메이트 사이에서 가장 큰 갈등 요소와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 그들이 스스로 찾은 방법은 무엇인지, 셰어하우스에서 가장 큰 UX 리스크는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발견하는 과정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따금 찾아왔던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 사이에서의 고민'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와중에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이런 공간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청춘을 보냈다면, 어떤 에피소드를 만들었을까? 하는 기분 좋은 꿈도 꾸었다는 말씀도 덧붙였지요.
함께 에피소드 신촌 캠퍼스를 돌아보면서 공간을 사용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마주했습니다. 그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이번 [별책부록]에서 가장 전달하고 싶었던 공간에서의 UX, 화면 너머 3차원에서의 사용자였습니다. 연휴를 앞둔 10월 2일 목요일 저녁, 이 공간을 거닐며 에피소드 신촌 캠퍼스를 함께 만드는 동안 서로의 애씀을 보듬었던 동료들의 얼굴이 스쳤습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소식,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다 하지 못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상대가 있고, 나눌 이야기의 소재가 몽글몽글 피어오른다는 건 지금 날씨만큼이나 기분 좋은 일입니다. 좋은 계절은 어김이 없이 돌아올 겁니다. 윤정 님이 신청곡으로 고른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눈을 감고 함께 들었던 순간을 기억하며, 또 잘 지내다 만나요.
모임을 함께 한 분들의 신청곡을 모아 만든 플레이리스트
#5. 재능과 노력, 다정함에 대하여
연휴에는 미뤄둔 것들을 하나씩 해보고 있습니다. 조금씩 달리고 있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안 쓰는 물건들도 정리하는 중입니다. 그러다 문득 나의 '재능'은 무엇일지, '노력'으로 더 발달시킬 수 있던 기질과 타고나지 못한 재능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낯선 사람에 대한 친절함도 재능이 될 수 있을까? 다정함도 그럼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무질서하게 나래를 펼치던 중 생각이 차분해지는 문장들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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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재능은 좋아하는 것 때문에 두려움을 감내하는 힘이다
둘째, 먹는 정성이 곧 만드는 정성이다
셋째, 사랑의 감정에 깃든 다정함도 능력이다
넷째, 관심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관대함이다.
#6. 땅에 쓰는 시, 조경가 정영선이 아산병원에 담은 마음
83세의 나이에도 호미와 삽을 든 현역의 조경가, 서울대 환경대학원 1호 졸업생이자 대한민국 1호 조경기술사로 한국인 최초로 제프리 젤리코상(세계조경가협회에서 세계 조경가에게 수여하는 상)을 수상했습니다. 땅에 시를 쓰는 조경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녀의 롱블랙 인터뷰에서 일하는 사람의 경건한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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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경춘선 숲길을 조성할 때
다들 조경을 꽃 심고 가로수 심는 거라고 생각해요. 조경은 한 폭이라도 더, 자연에게 자리를 내주려는 노력이에요.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애국가에 ‘삼천리 화려강산’이라고 나오잖아. 그 화려강산을 만드는 것이 조경이죠. 국토를 난개발로 두들겨 부수는 걸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하는 사람이에요 나는.
둘째, 선유도공원을 조성할 때
한번은 아주 젊은 여자가 선유도공원에 와서 한참을 울고 있대. 내가 왜 우냐고 물으니 ‘죽으려고 왔는데 공원이 나를 위로해 줬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야. 내가 ‘너무 고맙다’고 같이 울었어.
공원이라는 게, 행복한 사람이 와서 행복하게 노는 장소이기도 해. 하지만 정말 외롭고 고통스러운 사람이 어디 하소연도 못 할 때도 찾지. 살다 보면 울고 싶은 순간이 너무나 많잖아요. 공원이 그 슬픔을 잘 새겨줄 수 있어야 해요.
셋째, 아산병원을 조성할 때
병원이 행복한 곳은 아니잖아. 어찌 보면 한 맺히게 고단한 사람들의 집합소 아니야. 병원에 있는 환자들, 매일 우는 환자 가족들, 의사, 간호사들… 사람한테 위로가 되는 공간이 돼야겠다 싶었지.
환자도, 가족도 가슴이 뻥 뚫리게 숨 쉴 수 있는 곳, 창 너머로나마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곳, 때로 가족들이 와서 펑펑 울 수 있는 곳. 병원의 정원이라면 응당 그런 위로의 정원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UX 교과서』 책나눔 이벤트 📚
길벗출판사와 함께 앤서니 콘타의 『UX 교과서』 책 나눔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디자인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는데 동의하신다면 이 책에는 '사용자를 머물게 하는 힘'에 대한 유용한 정보들이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함께 읽고 싶은 뉴스레터 구독자분들은 인스타그램 @redbusbagman을 팔로우하신 후 DM으로 간단한 신청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10월 13일(월) 총 5분을 선정해 DM으로 안내드리겠습니다.
컨설팅펌 BCG 직원 중 약 90%는 AI를 활용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절반은 매일 쓰고 있을 만큼 업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이죠. 흥미로운 건 AI를 사용하는 능력이 "핵심 역량 중 하나"이고 이 능력을 평가에 활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AI를 활용하는 능력을 단순한 스킬로 보는 대신 평가 체계에 연결하는 흐름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지난 별책부록 모임에서도 AI를 프로덕트 디자인, UX 리서치에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만큼 업계에서 AI는 보완재를 넘어 필수재가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AI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에 대한 질문의 답을 저는 경험을 개선하기 위한 좋은 설계의 과정에서 찾고 있습니다. AI를 쓰기 위해 AI를 쓰는 대신, 내가 위임할 수 있는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 범위와 쓰임 안에서만 활용하는 주체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자칫 도구의 함정에 빠져 그 출처를 다시 확인하고, 오류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생산성이 떨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류쉐펑의 책에서 발견한 그 단서로 9월에 본 것을 마칩니다. 구독자님, 남은 연휴도 평화롭기를 바라며 쌀쌀해진 날씨에 따뜻한 차를 한잔 드시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트레바리 모임을 함께 했던 멤버분께서 저와 커피챗을 하고 싶은데, '커피챗' 서비스가 종료된 바람에 신청할 수 없어 아쉽다는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리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일주일에 1번 정도는 제 도움이 필요한 분과 커피챗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혹시 레드버스백맨과 UX 리서치 프로젝트, 취업과 이직 고민, 포트폴리오 리뷰의 주제로 커피챗을 원하신다면 아래 링크로 신청해 주세요! 손 내밀면 닿는 거리에 머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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