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팀 오브라이언
기억을 지탱하는 건, 흔히, 시작도 끝도 없는 작고 기이한 파편들이다.
마흔세 살, 전쟁은 반평생 전의 일이 되었으나 기억하는 일은 아직도 그것을 현재로 만든다. 그리고 기억하는 일은 가끔씩 이야기로 이어져 그것을 영원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야기는 지난날을 미래와 이어주려고 존재한다. 이야기는 당신이 있었던 자리에서 당신이 있는 자리로 어떻게 다다랐는지 기억나지 않는 이슥한 시간을 위해 존재한다. 이야기는 기억이 지워진, 이야기 말고는 기억할 게 없는 영원의 시간을 위해 존재한다.
전쟁은 지옥이다. 하지만 그 말은 전쟁을 절반도 설명 못 하는데, 왜냐하면 전쟁은 미궁이자 공포이자 모험이자 용기이자 발견이자 신성함이자 연민이자 절망이자 갈망이자 사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진실들은 모순된다. 사실 전쟁은 아름답기도 하다. 공포에 질려서도 엄청나게 웅장한 전투를 입을 떡 벌리고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조명탄, 백린탄, 자줏빛 오렌지색으로 이글거리는 네이팜탄, 붉은 섬광의 로켓탄에 감탄하게 된다. 놀랍다. 눈을 가득 메운다. 당신을 휘어잡는다. 당신이 그것을 혐오해도, 그렇다, 당신의 눈은 그러지 못한다. 숲속의 치명적인 불씨처럼, 현미경에 놓인 암세포처럼 어떤 전투나 폭격이나 포격도 도덕에는 절대 무관심한—강력하고 무자비한—심미적인 순수함이 있고, 진실한 전쟁 이야기라면 비록 진실이 추하더라도 그 순수함에 관해 말할 것이다.
전쟁은 아마 죽음의 다른 이름일 것이고, 진실을 말하는 군인이라면 누구라도 이렇게 말하겠지만, 죽음이 가까워지는 만큼 삶이 가까워진다. 화력 전이 끝나면 항상 살아 있다는 엄청난 기쁨이 든다. 나무들이 살아있다. 풀, 흙—모든 게 살아 있다. 당신 주변의 사물들이 온전히 살아 있고, 그것들 사이에서 당신이 살아 있고, 그 살아 있음이 당신을 전율하게 만든다. 당신은 당신의 살아 있는 자아를 강렬하게, 사무치게 깨닫는다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만큼 당신이 살아 있는 때도 없다. 당신은 가치 있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다. 이제 막, 마치 처음인 양 당신은 당신 자신과 세상 속에서 으뜸인 것, 잃어버릴지 모를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다. 비록 아침에는 저 강을 건너 산에 들어가 끔찍한 짓들을 해야 하고 어쩌면 그사이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강물에 비친 고운 색깔을 꼼꼼히 살펴보는 자신을 깨닫게 되고, 해가 지는 모습에 경이감과 경외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다 세상이 따를 수 있었고 언제나 따라야 했지만 이제는 따르지 않는 방식에 대한 열렬하고 아픈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어떤 것은 일어난 일이되 완전한 거짓일 수 있다. 또 어떤 것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되 진실보다 더 진실할 수 있다.
진실한 전쟁 이야기는 결코 전쟁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햇살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강을 건너 산으로 행군해 들어가서 겁나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걸 알 때 새벽 빛이 강물에 번져나가는 특별한 방식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사랑과 기억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슬픔에 관한 것이다.
나는 내 작업을 치유로 여기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노먼 보커의 편지를 받고 내 머릿속에 불현듯 든 생각은, 어쩌면 마비 또는 그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귀결됐을지 모를 기억의 소용돌이를 지나도록 글 쓰는 행위가 나를 인도해주었다는 것이다. 당신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경험을 객관화한다. 그것을 당신 자신에게서 분리한다. 당신은 어떤 진실들을 못 박아둔다. 그 밖의 것들은 지어낸다.
이야기가 하는 일은, 내 생각에, 무언가를 거기 있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내가 결코 쳐다보지 않았던 것들을 쳐다볼 수 있다. 나는 비탄과 사랑과 연민과 하느님에게 표정을 부여할 수 있다. 나는 용감할 수 있다. 나는 나를 다시 느끼게 만들 수 있다.
이야기에 관해 알아둘 점은 말하는 동안 꿈을 꾼다는 것, 그러면서 다른 이들이 함께 꿈꿔주길 바란다는 것이고, 이러다 보면 기억과 상상과 언어가 결합해 머릿속에서 영혼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착각이 든다.
"음, 지금 당장은," 그녀가 말했다. "죽지 않았어. 하지만 죽는다면 뭐랄까······ 모르겠어, 아무도 읽지 않는 책 속에 갇힌 느낌일 것 같아."
"책?” 내가 말했다.
"낡은 책. 도서관 책장 위에 놓여 있어서 안전하긴 하지만 긴긴 시간 빌린 사람이 없는 책 말이야.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거지. 누군가 집어 읽어주기만 바라면서."
린다는 나를 보며 웃었다.
"어쨌든 그것도 아주 나쁘진 않아,"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죽으면 그냥 네 자신이 되어야만 한다는 얘기야."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