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방울새』 도나 타트
"음, 네덜란드는 현미경을 발명했어." 엄마가 말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보석을 세공하고 렌즈를 연마하는 사람들이었지. 최대한 섬세하게 그리려고 했어, 아주 작은 것들도 의미가 있으니까. 정물화에 그려진 파리나 곤충, 시든 꽃잎, 사과의 검은 점을 볼 때마다 화가가 보내는 비밀 메시지를 보고 있는 거야.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게 되어 있고, 모든 것이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메시지 말이야. 삶 속의 죽음. 그래서 정물화를 죽은 자연nature morte이라고 부르는 거야. 처음에는 아름다운 것들에, 활짝 핀 꽃에 정신이 팔려서 부패가 시작되는 작은 반점이 보이지 않을 거야. 하지만 더 자세히 보면 바로 거기 있지."
웰티는 그런 말을 자주 했어. '세상이 내게 찾아오진 않아, 그러니 내가 찾아가야지'
피 묻은 외투, 달아나는 소년의 발소리. 암흑. 재앙. 육체에 갇힌 인간에게 자비는 없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잠깐 살면서 약간의 소란을 피운 다음 죽어서 땅 속에서 쓰레기처럼 썩는다. 시간은 모든 인간을 아주 빠르게 파괴한다. 하지만 죽음을 모르는 물건을 망가뜨리거나 잃는 것—시간보다 더 강력한 연결 고리를 끊는 것—은 독특한 형이상학적인 단절, 놀랄 만큼 새로운 절망이었다. (…) 아빠의 행운의 색은 검정색, 행운의 숫자는 9였다. '세상에는 어떤 패턴이 있고 우리는 그 일부야.' 하지만 패턴이라는 것을 아주 깊이 파고들면(아빠는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빛이었던 것, 혹은 우리가 빛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무너뜨릴 만큼 암울한 공허함에 닿을 뿐이다.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영혼의 폐소공포증이었다.
"선한 행동이 항상 선을 낳는 건 아니고, 악한 행동이 항상 악에서 나오는 건 아니야. (…) 어쩌면 가끔은— 틀린 길이 바른 길 아닐까? 우리가 잘못된 길을 택해도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반대로 생각하면, 가끔은 모든 걸 잘못해도 결국 괜찮아질 수 있는 게 아닐까? (…) 선과 악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야.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는 존재할 수 없어.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면서 내가 아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해."
"우상숭배! 물건에 너무 신경을 쓰면 망가질 수도 있어. 하지만— 어떤 물건을 좋아하면 그 물건은 생명을 갖게 돼, 안 그러니? 물건들—아름다운 물건들—이 우리로 하여금 더욱 큰 아름다움을 알게 해주는 거 아닐까?"
"어떤 그림이 정말로 마음을 움직여서 우리가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면 '아, 난 이 그림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좋아'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건 사람이 어떤 예술 작품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가 아니야. 그걸 좋아하게 만드는 건 좁은 통로에서 들려오는 비밀스러운 속삭임이지. 쉿, 그래, 너. 얘야. 그래, 너. (…) 아주 사사롭게 마음을 건드리는 거야. 너의 꿈, 웰티의 꿈, 페르메이르의 꿈. 네가 보는 그림은 내가 보는 그림과 달라."
나는 여행 가방과 배낭을 들고 비행기에서 내리려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다른 승객들의 표정 없는 얼굴을 보면서 아름다움은 현실의 결을 바꾼다는 호비 아저씨의 말을 생각했다. 그리고 순전한 아름다움을 좇는 것은 함정이며 씁쓸함과 슬픔으로 빠지는 지름길이고, 아름다움은 더욱 의미 있는 것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더욱 진부한 지혜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했다.
하지만 의미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 나는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 나는 어째서 내가 사랑하거나 관심을 갖는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빤히 보면서도 어쨌든 나만은 그 매력 속에서 거짓을 위해 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크나큰 슬픔, 내가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한 슬픔은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이 세상의 위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위엄을 지키는 것,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위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자신을 처음으로 흘깃 보고, 그 속에서 스스로를 꽃피우고 꽃피우는 것.
우리에게 혼잣말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이든 중요하다. 우리가 절망 속에서 스스로에게 노래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무엇이든 중요하다. 하지만 그림은 또한 우리가 시간을 초월하여 대화를 나눌 수 있음을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 삶은—그것이 무엇이든—짧다고 말이다. 운명은 잔인하지만 제멋대로는 아니라고. 자연(즉, 죽음)이 항상 이기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굽실거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항상 기쁘지만은 않다고 할지라도, 어쨌든 삶에 몰두하는 것, 눈과 마음을 열고서 세상을, 이 개똥밭을 똑바로 헤쳐나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그리고 우리가 죽어갈 때, 우리가 유기체에서 생겨나 굴욕적이게도 다시 유기체로 돌아갈 때, 죽음이 건드릴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영광이고 특권이다. 지금까지 이 그림에 재앙과 망각이 뒤따랐다면—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이 불멸인 한 (그것은 불멸이다) 나는 그러한 불멸성에서 밝게 빛나는, 변치 않는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하며, 계속 존재하고 있다.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고, 돌보고, 불 속에서 구해내고, 사라졌을 때는 찾으려 애쓰고, 보존하고, 구하려고 노력하면서 그 아름다운 것들을 문자 그대로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고 시간의 폐허 속에서 다음 세대를 향해, 또 그다음 세대를 향해 큰 소리로 멋지게 노래를 불러온 사람들의 역사에 나 자신의 사랑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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