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인터넷을 통해 핸드폰 케이스를 새로 구입했다. 남편이 보더니 케이스의 외부 액정 부분이 나뉘어져 있어서 Z플립3나 Z플립2처럼 보인다면서 못마땅해한다. 남편에게 물었다 "누가 그렇게 본다는 건데?" 남편이 말한다 "남들이 그렇게 보지. 남들이! 세상 살면서 남들 눈이 제일 무섭지. 그것도 몰라?!"
그렇다. 남편 말이 맞다. 세상 살면서 남들 눈을 제일 무서워했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닌 것 같다. 'TV프로그램 김창옥쇼'의 출연자들의 사연을 들으면 '애비없는 자식 소리 안 듣게 하려고...'라며 눈물을 흘린다.
평생 자식을 키우며 남들 눈이 무서워했다는 얘기다. 남들 눈이 자식 키우는 기준이었으니 힘이 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남들이 이렇게 얘기하면 이렇고, 저렇게 얘기하면 저렇고, 남들 얘기에 이렇게 저렇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창옥쇼의 출연자만의 얘기도 아닐 것이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TV에서 프로그램을 편성해서 방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양자역학에서 원자도 관찰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움직임이 다르다고 하니, 우리의 뼛속까지 아니 원자 속까지 남들 눈을 의식하고 있다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렇게 저렇게 휘둘리면서 살 수 만은 없지 않은가? 남들 눈을 의식하는 나를 부정할 순 없지만 나의 주인으로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은 내가 또 있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영화에 뚱뚱한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언제나 열등감에 휩싸여 자신감 없이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 어떤 사고로 자신의 눈에만 본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로 보이는 후유증이 생긴다. 누군가 문을 열면 그 사이로 먼저 들어가며 고마워하고, 모든 상황이 본인이 예뻐서 그러는 거라고 착각하며 행복해 한다. 그런 긍정적인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찾는다는 줄거리다.
남들이 보는 눈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는 지가 나의 행복에는 더 지대한 영향일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모두가 바라 마지 않는 행복이라는 것이 남들 눈에만 달려있지 않다는 기쁜 소식이다. 나를 어떻게 봐야 할까? 물론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로봇이 아니고 서야... 그러니 나의 단점은 인간미 쯤으로 덮어두고 나를 예뻐 해주자.
남들이 어떻게 보는 지보다 내가 어떻게 보는 지가 중요하다. 내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선택과 행동의 기준이 된다면, 평생 남들 눈을 의식하며 살았지만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억울함만 남는 일은 없지 않을까?
글쓴이_김경애
중고등학생 사춘기 자녀를 둔, 두 아이의 엄마로 아이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나만의 세계를 넓혀나가고 있다. 요양원과 주야간보호센터에서 시니어 강사로 활동하며 브런치 작가로 글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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