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에세이

칼 라르손(Carl Larsson)-한 땀 한 땀 짓는 행복

행복은 비교급이 아니다

2024.05.13 | 조회 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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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이상하고 낯선 병이 찾아왔다

세상에는 자신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오늘같이 충만하고 행복한 하루가 계속될 거라고 믿다가 예고도 없이 찾아온 불행에 몸서리를 치기도 하고, 희망의 빛이 한 줄기도 비치지 않는 어둠의 터널을 끝없이 걷다가 생의 끈을 놓으려는 찰나 태양보다 눈부신 섬광이 번쩍이기도 하는 게 인생이다.

뻔히 알면서, 잠깐 잊었다. 인생이란 원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물론 세상에 그런 삶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애초에 항상 꽃길만 걷는 삶은 아니었다. 생각 없이 달리다 속도에 못 이겨 고꾸라지기도 하고 누군가 아무 생각 없이 던져놓은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홀로 걷는 길이 고단하고 지쳐서 주저앉아 울기도 한 나날이었다. 하지만 건강만은 자신했다. 매달 꼬박꼬박 빠짐없이 내는 의료보험료는 이 사회를 건강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기부라고 생각했고 실손 보험료를 청구할 일도 없었다.

이 정도면 튼튼하고 건강하다는 자만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상하고 낯선 병이 찾아왔다. 배가 아파 찾아간 병원의 의사는 십이지장궤양이라는 진단명을 들려주고는 혈소판 수치가 정상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같은 병원의 암센터 혈액종양내과 진료를 강권했다. ‘혈액종양내과암센터니 하는 평생 멀리하고 싶은 단어들이 귓가를 때리는 동안 내 머리는 텅 비어갔다. 적극적인 치료가 요구되는 수치와 더 이상의 추적이 필요치 않은 수치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매달 나를 병원으로 밀어 넣는 나의 위태로운 혈소판은 예고 없이 생기는 시퍼런 멍 같은 불안의 흔적들을 내 삶 위에 얹어놓았다.

 

행복의 조건

사람들은 행복에도 조건이 있다고 믿는다. 행복해지려면 금수저 부모가 있어야 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도 필요하고, 남들보다 예쁘고 건강해야 하며, SNS에 기세등등하게 과시하고도 남을 만큼 근사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헛된 믿음에 사로잡혀 거짓과 불안의 늪에서 허우적댄다. 하지만 행복은 비교급이 아니다. 나의 삶을 타인의 삶과 견주어 누구의 순위가 더 높은지, 누구의 불행이 더 작은지 끝없이 비교한 끝에 간신히 찾아내는 행복은 가짜다.

불우한 유년기를 딛고 행복을 형상화한 칼 라르손의 그림은 핏기 없는 얼굴로 항암 치료차 암센터를 찾은 20대 청년을 보며 내 처지를 위안했던 그 날의 나를 부끄럽게 했다. 북유럽을 대표하는 스웨덴의 사실주의 화가 칼 라르손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 힘든 빈민가에서 태어나 가정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궁핍하고 힘든 삶을 견뎠다. 그림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난 파리에서도 명성을 얻지 못해 돈이 궁했던 탓에 스웨덴에서 생활비를 벌어 다시 프랑스에서 그림을 그리는 가난하고 고된 예술가의 삶을 근근이 견뎌야만 했다.

 

라르손이 그린 행복

행복이 비교급이라면 그는 불행했어야 한다. 술주정뱅이가 되어 가정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프랑스에서 좀처럼 인정받지 못했던 청년 시절의 그와는 달리 파리 살롱전에 입상하며 승승장구하던 동료 화가들, 궁색하고 고된 삶이 이끈 우울증의 늪은 그를 할퀴고 상처 냈어야 마땅하다. 북유럽을 대표하는 또 다른 유명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는 가족의 잇따른 죽음과 불안한 가정환경으로 고통받는 유년기를 보낸 탓에 어른이 돼서도 불안과 환각에 시달리며 삶과 죽음, 고독과 불안을 작품의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라르손은 달랐다. 그는 결핍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행복한 집과 가족에 대한 소망을 키웠다. 프랑스에서 동료 화가 카린 베르구(Karin Bergoo)를 만나 스웨덴으로 돌아온 라르손은 장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집 릴라 하트나스(Lilla Hyttnäs, 작은 용광로)’에서 여덟 자녀를 낳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릴라 하트나스(Lilla Hyttnäs). 칼 라르손, 1899, 칼 라르손이 그린 릴라 하트나스 전경
릴라 하트나스(Lilla Hyttnäs). 칼 라르손, 1899, 칼 라르손이 그린 릴라 하트나스 전경
아늑한 구석(Cosy Corner), 칼 라르손, 1894, 칼 라르손이 그린 릴라 하트나스 거실
아늑한 구석(Cosy Corner), 칼 라르손, 1894, 칼 라르손이 그린 릴라 하트나스 거실
바느질하는 여자(Sewing Girl), 칼 라르손, 1911
바느질하는 여자(Sewing Girl), 칼 라르손, 1911

칼 라르손은 아내와 함께 직접 집을 개조하고 증축하며 현대적인 스칸디나비아식 인테리어의 뿌리가 된 릴라 하트나스를 가꿨다.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수공예 운동의 중심에 섰던 예술가답게 집안의 가구와 마당의 울타리도 직접 만들고 아내와 딸이 수놓은 식탁보와 커튼으로 집을 꾸몄던 라르손. 그의 작품에 담긴 것은 모든 게 갖춰진 완성형이 아닌, 한 땀 한 땀 사랑과 노력으로 지어 나간 진행형 행복이었다. 가족을 향한 끝없는 사랑을 동력 삼아 라르손이 그려낸 물기를 머금은 듯 촉촉하고 따뜻한 수채화 작품들은 어제의 절망에도 무릎 꿇지 않고 오늘의 고난에도 스러지지 않을 용기를 준다.

 

* 글쓴이-김현정

예술을 사랑하는 번역가. 꿈은 내 글을 쓰는 김작가. 남의 글을 제대로 전달하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내 이야기를 풀어내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무수히 많은 말을 잘 꿰어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글을 써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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