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하는 소녀. 칼 라르손 (Carl Larsson)
Sewing Girl
칼 라르손 (Carl Larsson, 1853~1919)'는 스웨덴 출신의 화가이다. 자신과 아내 카린, 그리고 8명의 자녀의 생활 모습과 전원생활을 아름답고 장식적으로 화폭에 담아 이케아에 정신적 모토이자 영감을 주었다. 그의 작품은 따뜻하고 가정적인 행복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주로 그렸다.
라르손의 그림은 일반적으로 따뜻한 색감과 부드러운 조명을 사용하여, 온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 가정의 중요성, 그리고 아름다운 순간을 담아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칼 라르손(Carl Larsson)의 "Sewing Girl"은 그의 작품 중 하나로, 20세기 초 스웨덴의 가정적인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05년에 그려졌으며, 그의 아내인 카린 라르손이 모델이 되어 작업실에서 바느질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Sewing Girl"은 라르손의 작품 특징인 따뜻한 색감과 부드러운 조명을 사용하여, 가정적인 분위기와 여성의 일과 예술적인 창조력을 바느질하고 있는 카린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림 속의 모습은 작업실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주인공을 비추고, 주변은 따뜻한 색감으로 가득 차 있다.
카린은 작업실에서 바느질하며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햇살을 머금고 있는 그녀의 손에는 바늘과 실이 들려 있다. 초록색의 창틀, 식물들 사이의 한가운데 위치한 초록색의 책상이 뒤로 보이는 붉은색 가구와 대조를 이루며 바느질하는 카린에게 더욱 이목을 집중시키는 듯하다.
나의 바느질의 역사
드르륵 드륵드륵 드르르륵
와다다닥 다그닥 다그닥
엄마의 재봉틀 소리는 신나게 달리는 경주마들이 들려주는 오케스트라 연주 같았다. 재봉틀의 노루발과 한참을 함께 달리다 보면 어느샌가 그 곁에 하얀색 장갑들이 하얀 눈처럼 소복하게 쌓여갔다. 그러면 난 하나씩 집어 들고 되짚어져 바느질된 장갑들을 엄지, 검지, 중지, 약지·애지 순서대로 손가락들을 원래의 모습을 찾아주었다. 나는 엄마의 조수가 되어주었고 엄마와 나는 제법 호흡이 척척 맞았다. 그렇게 우리 집엔 말발굽 소리만큼 힘차게 달리는 재봉틀이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엄마의 재봉틀은 그 뒤에도 여러 가지 일들을 해냈다. 곰 인형이 만들어지는 날에는 나는 엄마 곁을 지키고 있다가 곰에게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는 눈을 달아주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엄마 말로는 제법 손끝이 야무지다고 했다.
학교 다녀와선 재봉틀이 있는 테이블은 나의 책상이 되어주기도 했다. 발판 위에 두 발을 올려놓고 까닥까닥하며 숙제해나갈 때면 나도 마치 엄마처럼 재봉틀을 돌리며 바느질을 하고 있는듯했다.
지금은 보기 힘든 풍경이 하나가 떠오른다. 어릴 적에 덮고 자던 솜이불이다. 솜이불을 감싸주는 하얀 이불보를 빨고 나면 다시 입혀주는 바느질을 한다. 바느질하기 위해서 이불보를 깔고 이불을 쫘아악 펴주면 방 하나가 꽉 채워졌다. 엄마를 따라 이불에 옷을 입혀주는 과정을 지켜보다 대바늘에 하얀 명주실을 꿰어서 엄마가 본 바느질 하기 전에 시침질을 도와드렸다. 큰 바늘이 오며 가며 하얗고 뽀얀 이불보를 통과할 때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때부터 난 바느질을 좋아했었나 보다.
이강 작가의 고운 꽃무늬 비단에 하얀 이불보가 덮어진 솜이불이 정겨운 이유는 어릴 적 엄마와 함께 바느질하던 추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콩과 팥은 먹는 건 줄만 알았는데 베갯속에도 들어갔다. 콩이 들어간 베개를 하얀 베개보를 김밥을 말듯 말아서 여며주며 바느질을 해주면 '사각사각' 베개를 벨 때마다 눈 밟는 소리가 났다. 때론 내 등 뒤에 업혀서 나의 아기인형이 되어주기도 했다. 포대기에 싸서 업어주고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자장가를 불러주며 내가 가지고 싶었던 유모차를 타고 있던 아기인형을 대신해주었다. 구멍 난 양말,올나간 스타킹. 작아서 버려지는 메리야스는 나의 주된 단골손님들이다. 그들이 내게 모여드는 날엔 난 엄마에게 배운 대로 바늘귀에 실을 꿰어 마법을 부리곤 했다.
구멍 난 양말과 옷가지들을 가위로 오리고 바느질로 이어붙여 인형 옷으로 변신을 했다. 구멍 난 스타킹은 긴 머리 가발로 만들어 인형의 패션아이템이 되어주기도 했다. 아빠 제복에 단추와 완장 달기도 어느새 엄마에게 하사받아 내가 곧잘 달아들이기도 했다.
학교에 다닐 때 입었던 교복 단추며 터진 밑단 공그르기도 직접 해주고, 구멍 난 양말은 절대 그냥 버리는 일 없이 잘 꿰매 몇 번은 더 터질 때까지 신었었다. 학교 수업 시간인 가사시간에 배운 프랑스자수도 동양자수도 재미있게 배웠었다. 칭찬을 들었던 과목은 가사시간과 미술 시간이었다.
바느질이 나의 놀잇감이 되어주었다는 것을 지금 글을 쓰며 어린 시절 엄마와의 추억부터 떠올리다 보니 생각이 났다.
작은 바늘귀에 실을 꿰어 넣는 것도 꿰어낸 실 끝을 매듭짓는 법도 생각 보니 엄마에게 배운 기술이었다. 훗날 재봉틀의 노루발과 함께 신나게 달리며 옷을 만들게 된 것도 엄마가 최초의 스승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0대 때 나는 다양한 옷감들이 쌓여있고 즐비한 원단 시장과 부자재 가게가 나의 보물섬 같은 곳이었다. 눈감고도 다닐 수 있는 만큼 지도가 있어도 복잡한 그곳을 여기저기 숲속을 뛰어다니는 다람쥐처럼 구석구석 잘 찾아다녔다. 칼 라르손<바느질하는 소녀> 작품 속 카린의 모습처럼 머리엔 늘 실밥들이 꽃을 단 마냥 달려있었고, 수많은 원단 속에서 그림 속 카린의 모습처럼 바느질이 일상이었다. 버스 안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만 있을 수 있으면 바느질을 했다. 매주 쏟아져 나오는 과 숙제가 넘쳐나서였다.
우리 엄마
우리 엄마도 나처럼 맏딸로 태어났다. 외할머니 말씀으론 엄마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의 오른팔, 왼팔이 되어주며 집 안살림을 도왔다고 했다. 엄마의 국민학교 시절, 옛날엔 지금의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 불렀다. 나도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엄마는 학교에서 산으로 가을 소풍을 가면 도토리나 밤을 주워올 만큼 할머니한테 도움이 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는 동생들이 넷이 있었다. 엄마는 할머니를 도와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우며 할머니의 살림 밑천이 되어주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외할머니 돌아가시던 순간에도 엄마의 눈을 한참이나 바라보시다 눈을 감으셨다. 말을 하지 못하셨지만, 눈빛으로 엄마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기억되는 우리 엄마의 모습은 늘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다. 가족들에게 희생을 많이 하고 사신 분이었다.
우리 엄마의 적극적인 성격은 어릴 때부터 이미 형성되어있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일 처리 속도는 빛의 속도로 손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야.'
영화의 대사처럼 엄마의 손이 지나가는 손에선 바람을 가르며 소리가 나는 듯했다.
'슈슈슉.샤샤샥’
칼 라르손은 어린 시절 가난하여 힘겨운 삶을 살았다. 그는 그의 어머니, 동생과 함께 고생이 많았다 한다. 그런 그에게 천부적인 그림에의 재능이 있었다는 것을 눈여겨본 교사가 스웨덴 로얄 예술 아카데미에 칼 라르손을 추천했다. 실력을 인정받아 로얄 아카데미에 합격한 그는 그림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같은 예술가인 카린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화가로서의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된다.
자녀가 8명이나 되는 다복한 가정을 꾸렸던 칼 라르손은 동화적인 느낌으로 그의 아이들이 모델로 자주 등장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딛고 훌륭한 화가로 성장하고 다복한 가정을 꾸려가던 그의 삶과 그림들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만들어내며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칼 라르손의 작품 속에는 그의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행복한 일상과 더불어 아내와 함께 아름답게 꾸며 놓은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가구와 벽, 생활용품들도 묘사되어 있다. 라르손 부부가 몸소 실천하며 전달하고자 했던 전원적이며 가족을 향한 따뜻한 철학은 그의 그림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치 우리 엄마의 삶이 가족에게 따뜻하게 전해지고 나에게 바느질을 통해 전해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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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이지현
현재 <빅마인드 아트>로 아이들 미술교육을 하고 있으며, 심리미술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관, 기업등에 명화, 현대미술, 심리미술로 소통하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림책심리를 통해 마음을 다독여주고 위로가 될수 있는 수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세상에 아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라며, 상처받고 힘든 성인이거나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발걸음을 걷고 있는 중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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