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보낸 시간.
초록색의 소파위에 검정 드레스차림의 여인이 누워있는 듯, 앉아 있는 듯 늘어져있다.
왠지 익숙한 이 풍경. 나 같다. 신발만 안 신었지 똑같다. 소파위에 앉을 때 자주 취하는 자세다. 앉은 건지 누운 건지 늘어져있는 자세. 편안해서 좋다..
둘째아이 출산 후에는 몸이 많이 망가졌다. 8월의 여름생 아이인데, 그 여름에도 보일러를 틀고 있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큰아이 어린이집 준비물 사러 나갔다오는 것도 힘들어서, 숨을 헐떡이며 힘들게 걸음을 떼었던 기억이다.
나를 일으켜 세우다.
설거지 한번 하고도 한 시간 이상을 누워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누워만 있다 인생 다 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집앞 주민편익시설에 수강신청을 했다. 근력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근력수업을 신청했다.
첫 시간에 강사님은 스쿼트 100개를 시켰다. 불가능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그래도 바들바들떨며 100개를 했다. 운동 후에도 계속 바들바들 떨어야 했지만. 강사님은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자기 몸도 못 가누는 사람이 어떻게 무게를 들겠냐며, 필라테스로 코어힘부터 기르고 오라고 반을 바꾸어주었다.
동작 하나 하나 힘이 들었고, 몸살이 나면 병원에 가서 약을 먹었다. 그렇게 1년을 필라테스 수업을 듣고 나니, 드디어 헬스 강사님이 헬스반에 들어와도 좋다고 허락했다. 헬스반에서 반년을 수업을 들은 후에는, 3주간의 유럽여행까지 다녀왔다.
책 속에서 나를 찾기.
그림 속의 검은 드레스 여인은 한 손에 노란표지의 책을 들고 있다. 늘어져있지만 책은 읽겠다는 일념. 나 역시도 읽지도 않으면서 침대에도 책을 가지고 들어가니까. 지금 읽는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 제목만 보고 서정적인 내용일 꺼라 예상한 나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열여섯살 남자주인공의 의식의 흐름과 거리낌 없는 생각대로의 사건이 전개된다. 이렇게도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다소 충격적이다. 비속어가 난무하는 청소년의 표현들. 이 도서는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을 피격한 범인이 읽고 있던 책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다.
한편으로 나는 통쾌하기도 했다. 생각은 얼마든지 자유인데도, 나는 그 생각마저도 검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내 속에 부모님의 목소리가 있는 것처럼. 비교하고 판단하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불평하고 걱정한다.
부모님이 나에게 그렇게 매일 혼내고 걱정하는 것이 싫었는데도, 나는 왜 내안에 부모님의 목소리를 끌어안고 있을까? 30년동안 끊임없이 들어왔던 목소리가 내안에 저절로 녹음 된 것 같다. 이 녹음기는 자동적으로 계속 재생된다. 그리고 지배당한다.
이 부모님의 목소리 녹음기는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내 안에서 검열하고 자동 재생되며 지배하는 목소리를 끌 수 있는 것이,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할 것이다. 그 녹음기를 끌 수 있는 선택권이 나에게 있음을 먼저 알아야한다.
그 목소리를 계속 들으며 휘둘릴지도, 그 목소리를 끄고 내 목소리를 들을 지도, 내가 선택 할 수 있는 것이다. 단, 선택하지 않으면 녹음기는 계속 재생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도 여전히 나를 혼내고 판단하고 걱정하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끄자.
비교하고 판단하고 나에게 불평하는 목소리를 끄고, 내 목소리를 듣자. 마음으로 나를 느끼고 상대를 느끼고 세상을 느끼자.
*글쓴이 - 김경애
아이와 열심히 성장하는 주부로 집밖의 일을 탐색하고 있다. 그림 감상과 글쓰기 전시 나들이로 깨어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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