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에세이

스페인화가_라몬 카사스

의식의 지배를 벗어난 나의 육체

2024.03.21 | 조회 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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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라몬 카사스_무도회가 끝난 후 1866 ~ 1932
라몬 카사스_무도회가 끝난 후 1866 ~ 1932


장례식 후의 지친 몸

검정색은 예의를 갖추거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장소에 갈 때 입는 의상이거나 파티 드레스로 인기 있는 컬러이다.

장례식 역시 상()을 치루는 과정에 예를 갖추어야 하므로 보통 상복은 검정색이다.

오늘 생각지도 못한 부고를 들었다. 갑작스러운 외삼촌의 죽음.

나이 60에 미혼이다 보니 장례를 준비할 가족은 형제들이였다. 막내 남동생을 갑자기 하느님 옆자리에 보낸다는 걸 인정하기 힘든 누이들. 요양병원에 누워 계신 외할머니는 3대 독자 아들의 죽음을 알지 못 하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빈소가 차려지기 시작하고 첫 문상객을 맞으며 오랜 시간 장례식장에서 보내다 보니 몸이 지쳤다.

널찍한 그린패브릭 소파에 몸을 널브러뜨린 라몬 카사스의 <무도회가 끝난 후>라는 그림의 여성이 한 없이 부럽다. 무도회라면 장례식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모임 이였을 텐데 지친 모습을 보니 썩 편한 자리가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다.

나도 편치 않은 자리 후엔 급격히 신체리듬이 다운이여서 맥을 못 추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장례식장의 문상객으로 잠시 다녀오는 경우가 아니고 가족으로 그 자리를 오랜 시간 지켜야 하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눈은 힘을 잃어 피곤함이 역력하고 허리는 의자 등받이에서 점점 멀어져만 간다. 앉아 있기보다 어정쩡한 누임에 가깝다.

의식의 지배를 벗어난 나의 육체

뇌의 명령을 어기며 몸이 움직이는 대로 이었던 적이 잠시 아니 꽤나 길게 있었다.

20153월 따뜻한 봄이 올 무렵 나에겐 한없이 추운 겨울의 연속 이던 시간이다. 지금도 이 시간을 몸이 기억 하는 것인지 아프기도 하고 많이 늘어지는 나를 발견한다.

암이 자라고 있는 위의 상부와 위의 중간을 넘어 절반 이상을 잘라내고 다른 기관으로의 전이 직전인 림프들도 잘라내었다. 식도와 소장을 잇고 남아있는 일부 위를 소장과 잇는 우회술을 받았다. 이때는 빠른 회복이 된다하고 여러 좋은 얘기들을 해서 많은 비용을 주고 다빈치 로봇 수술을 했다. 나의 몸은 아직 무리였는데 일주일 만에 대학병원의 침상은 비워 줘야만 했다.

대학병원에서 요양병원을 추천 해 주었지만 어른들은 요양병원이라 하니 의식 없는 노령의 환자들만 있는 곳인 줄 알고 가기를 반대 하셨다. 시아버님이 알고 있는 병원에 입원을 했다. 식사의 문제가 있어 다시 요양병원을 알아보게 되었다. 내가 가게 된 곳은 수원의 외곽에 있는 요양병원이었다.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과 저학년이어서 손을 많이 필요로 했지만 신랑이 아이들을 챙겨 주어서 몸을 회복하는 데만 신경 쓰기로 하고 입원을 했다. 1달여의 시간. 난 다시금 이유식을 시작하는 아이가 되었다.

병원에서 미음의 유동식을 적응하고 여기 와서는 묽은 죽을 먹었다. 양은 숟가락으로 5~6 숟가락. 대신 삼시세끼가 아닌 삼시육끼가 기본 이였으나 그렇게 까지 식사를 챙겨 주는 병원은 없다. 식당 직원 분들이 배려해서 퇴근 하시며 한 끼를 더 주고 가셨다.

위를 잘라내어 그랬는지 적게 먹었지만 배고픔은 전혀 느끼지 못 했다. 몸에 필요로 하는 영양소의 양을 먹는 양이 따라가 주질 못했다. 축적 되어 있던 것 들이 꺼내 쓰이게 되며 은행 잔고가 바닥나듯 내 몸의 영양은행 잔고는 밑을 보였다. 정상치 아래를 도는 항목들이 그래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 부터였을까 내 몸은 의식의 명령을 거스르기 시작했다.

낮 이였지만 깨어 활동할 시간임에도 부쩍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 졌다. 계절은 여름을 향해 가고 있지만 추위를 타게 되어 두껍게 입은 겨울 옷 들을 벗어 낼 수 없었다. 노상 소파에 누워 맥없이 쳐져서 일어나란 뇌의 명령을 거슬렀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등하교 하는 아이들을 껌뻑 거리는 눈으로 인사 해 주었다. 맥없던 시간이었다. 의식의 명령을 거스르던 때로 기억 한다.

신나는 놀이터 무도회장

90년대 후반 학번이다. 20C의 클럽을 다녔다. 이때는 클럽 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나이트클럽을 무도회장이라 불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던 21C의 클럽을 가본 적은 없어서 그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었나는 모르겠다.

내가 다니던 무도회장은 무대 높은 곳에 디제이가 자리하고(가수이거나 직업 D.J) 천장엔 레이져와 싸이키조명이 현란했다. 어두운 장소에 담당 웨이터의 명함을 끼워 둔 촛불모양 라이트를 켜 두는 테이블. 무대 양 옆으로 자리한 많은 테이블에 부킹이 오갔다. 테크노 댄스와 토끼 춤, 레게풍 댄스곡이 인기이던 그 시절 친구들과 다니던 일명 무도회장 나이트클럽의 기억이다.

고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모범생다운 다소 심심한 학교생활을 하고 대학이란 곳을 갔는데 이 곳은 신세계였다. 시간표도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해서 짜고 땡땡이라는 것을 쳐도 집에 연락을 하지 않았다. 1학년 때는 이제까지 책상에 앉아서 보낸 내 시간을 보상 받고 싶었던 것 이였을까? 아빠의 통금 시간은 대학 가서도 있었지만 막차를 놓치지 전까지 원 없이 놀았다.

막차를 꽁무니 에서 놓치는 날이면 택시를 잡아서 같이 타고 버스가 서는 다음 정류장까지 가주는 연하의 남친도 있었다. 특히나 음주가무를 즐겼었다. 술자리에 빠지지 않고 불려 다니던 과거의 나. 좋게 말하면 사회성이 좋아 주변에 사람이 많았던 것인데 나쁘게 말하면 남는 거 없이 시간만 보내던 시절이다.

그때 나와 술잔을 기울이던 남자 동기들, 선배들은 뭐 하며 살고 있을까 근황이 궁금해진다.

 

*글쓴이 -김혜정

두 아이를 힘차게 키워내는 한국의 엄마입니다. 요리하길 좋아해서 다양한 먹거리를 만들어 나누고 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또 다른 쓰임을 찾기를 원합니다.

 #살롱드까뮤 #공저모임 #미술에세이 #그림에세이 #글쓰기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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