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이드와의 만남
글을 쓰는 시점보다 한참 전에 파일을 열던 날. 어떤 그림이 올라왔을까? 기대하며 파일을 연 순간. 띠로리 그림이 아니었다. 조각상이다. 파일을 열어 보기 전 오갔던 까뮤의 단톡방 대화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로댕을 먼저 혼내 주고 카미유 갑시다. 로댕이 조각가임은 중학교 미술 시간에 배워 알고 있었다. 그의 유명한 작품 <생각하는 사람>도 미술 교과서에 나와 있어서 턱을 괴고 있는 남자가 청동상이라는 기본 지식이 있는 정도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외에 처음 마주한 작품이다. 조각상을 전체와 부분부분 앞, 뒤, 옆, 위로 보여 주고 있었다. 처음 들여다봤을 땐 매끄러운 여성의 몸매와 근육이 들어왔다.
다음 다시 보았을 땐 ‘이 작품의 제목은 뭐지?’ 내가 찾을 수고로움도 없이 까뮤의 선생님 중 한 분 첫 글에 <다나이드>라고 작품 제목이 쓰여 있었다.
<다나이드>를 찾으니 얽힌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스 신화가 모티브가 된 지옥의 형벌을 받은 다나이드를 표현한 작품. 밑 빠진 물통에 물을 부어 채워야 하는 형벌. 노동의 형벌. 노력이나 시간을 들여도 보람이 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을 일컬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말한다. 이 작품의 형벌에 지쳐 고꾸라진 여인과 조각가로 명성을 쌓기 위해 로댕의 제자로 연인으로 애쓴 시간이 결국엔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되고 버림받아 절망했을 카미유가 중복된다.
남아선호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지만, 여성이었기에 그만큼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던 카미유 클로델. 그녀를 보니 성장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가 크던 시대는 남자가 유독 대우 받던 시대다. 우리 집은 종갓집이었다. 막냇동생은 장손이라며 할머니가 편애했다. 어린 마음에 서운했던 적이 여러 번 있다.
다들 막둥이가 아들이면 흔하게 있던 일들이다. 우리 할머니는 일을 시키면 손녀에게 시켰다. 그때 난 중학생이고 사촌들은 젖먹이부터 초등학생까지 연령의 스펙트럼이 넓었다. 시키는 일은 거의 내 차지였다. 대소사가 많았던 그때는 너무 싫었던 기억이 난다. 아빠 형제들이 8남매다 보니 행사에 장만하는 음식의 양이 많았다.
바깥 음식을 싫어하던 아빠와 할머니-지금 생각해 보니 비용적인 면에서도 만만치 않아 수고로움과 맞바꾼 것이다.-이 때문에 할머니나 아빠 생신이거나 제사에는 많은 음식을 해야 했다. 시험 기간과 겹칠 때가 제일 싫었다. 할머니가 시키니 엄마를 도와야 했고 계집애 공부 많이 해서 뭐에 쓰냐는 할머니의 사고가 너무 못마땅했었다.
고등학교 원서 쓰려 상담할 때도 할머니는 계집애 대학 보내 뭐하냐며 일찍 졸업해서 취직하라고 했다. 그때 오기가 생겨 더 일반고에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또한 중3 담임 선생님의 회유가 엄마 아빠의 맘을 움직였지만 말이다. 동생에게는 맛있는 것도 남겨 놓았다가 주는 게 다반사였다. 사소하지만 차별받던 나에게 아들이란 존재가 크게 다가왔던 거 같다.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 꼭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어른들의 사고에는 아들에 대한 존재감만으로도 든든한 게 있다고 생각해서였고 아들 손자에게는 많은 것들이 돌아올 거라는 조금의 속물적인 마음도 있었다. <다나이드>의 신체 곡선을 보니 순간적으로 입체 초음파 사진이 생각이 났다. 흑백의 바탕에 살짝 누런 기가 도는 아이의 이목구비를 확인하고 성별을 확인하며 내어주던 손바닥만 한 사진. 하나는 아들이길 바랐었는데 내 노력으로 할 수 없는 영역이라 아쉬웠으나 앞으로는 딸들이라 좋을 거란 확신을 가져본다.
노력은 배반하지 않아
무엇을 오랫동안 꾸준히 멈추지 않고 하는 것 중 하나. 운동이다. 처음의 운동은 다이어트를 위한 수단이었다. 열량 소모를 위해 연이어 두세 시간씩 운동하던 시절도 있었다.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뛰고 에어로빅을 뛰고 수영하고도 짱짱하던 체력의 소유자였다. 이때는 퉁퉁한 몸이었지만 건강하고 지치지 않는 체력이 자랑이었다.지금은 날씬하지만, 체력을 유지 하기 위해 생존을 위한 운동을 하는 중이다.
까뮤 선생님이 “글쓰기 100개만 하시면 책 쓸 수 있어요” 라고한다. 꾸준히 노력하라는 얘기다.하지만 운동만큼 할애를 못 하는 현실이다. 여전히 써야 할 글은 제시간에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쓰기 위해 노력했다.
조금 늦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결승점에 도달하겠지. 다들 똑같은 속도로 갈 수는 없고 개개인의 색이 다르다고 다독인다. 오늘도 글쓰기를 했다며 내심 뿌듯해하고 다른 선생님들의 글을 읽으며 감탄한다.
비록 오늘의 나는 조금 부족 할 지라도 노력한다면 장밋빛 인생은 언제고 찾아올 거라고 믿고있다. 현재의 나는 힘듦의 연속이나 뚫린 독에도 물을 채울 수 있다. 물을 붓기만 하는 것이 아닌 물이 가득 한 곳에 독을 넣어 채우는 방법을 찾을 수 있으니, 다나이드의 형벌이 아니길 기도 한다.
*글쓴이 - 김혜정
두 아이를 힘차게 키워내는 한국의 엄마입니다. 요리하길 좋아해서 다양한 먹거리를 만들어 나누고 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또 다른 쓰임을 찾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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