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포기
책장과 책장이 맞닿아 날개가 되어 훨훨 날아가는 그림을 보니 나도 꿈을 꾸며 훨훨 날기를 소망하던 때가 있었지 싶었다. ‘꿈’이란 한 음절의 단어. 희망 가득한 단어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무너져 버린 가슴 아픈 현실의 단어로 남아있다.
전공을 살려서 공부했다면 대학원에 갔어야 했다. 공부하고 연구직을 선택했거나 공무원 준비를 해야 했다. 모든 일에 열심히 달려드는 나이지만 영어는 아무리 해도 늘지도 않았고 어려운 과목이었다. 공부 과목에 걸림돌이었던 영어. 원서를 보는 것이 다른 친구들 몇 배여서 이 길은 나의 길이 아니라 여겼다. 또한 맘 편히 공부만 하게 학비를 대어 줄 형편도 아니었기에 과감히 두 손을 들었다.
그러면서 난 조리사를 위해 다른 길을 찾겠다며 혼자 요리 학원에 다니며 자격증을 준비했었다. 영어 공부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혼자 준비하면서도 어렵지 않았다.
진학 자체를 전문대 조리과에 갔어야 했는데 그땐 왜 전문대로 눈을 돌릴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다.
나의 꿈 조리사
조리사 자격증만 취득하면 쉽게 일자리가 얻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개인 업장에 취업하기도 쉽지 않았다. 경력이 없는 것이 첫 번째, 여자인 것이 두 번째였다.
오늘날에는 성차별이라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체력이 필수인 조리 직종에서 여자 조리사는 드물었다.
경력이 문제라면 ‘어디든 들어가서 경력을 만들자’가 목표였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분식집.
그곳에서 6개월 일을 하고 주방 경력을 만들어 이직했다.
분당과 송파에서 이름이 있던 개인이 운영하던 패밀리레스토랑에서 1년가량을 일하고 오리온그룹 베니건스에 합격했다.
공채 시험 합격을 하고 근무지 선택권이 주어졌다. 압구정과 올림픽 공원점 두 곳 중 한 곳을 고르라고 했다. 두 지점장이 나를 채용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올림픽 공원점으로 가고 싶다 하고 신입사원 연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난 출근도 해 보지 못하고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전화로 전해야 했다. 그러고는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우리 집은 동업으로 찜질방 여탕에서 매점을 운영했었다. 엄마와 동생이 일을 했었는데 동생이 동업하던 집 딸과 다툼이 있었다. 동생과 일을 못 하겠다고 해서 내가 입사를 포기하고 찜질방에 끌려가야 했다. 가족이 아니면 안 된다는 동업자 아주머니. 여탕이라 아빠가 할 수 없는 상황. 못하겠다고 난 서울로 가겠다고 했지만 내 의사는 반영 안 된 아빠의 강요였다. 그때 아빠에 대한 원망은 극에 달해 있었다. 급여 액수가 적지 않았지만, 돈을 받고도 난 불성실한 직원이었다.
날개를 달고 싶어요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더 정확히는 동업자 아주머니에게 찍히기 위해 몸부림을 쳐댔다. 하지만 결혼이 그곳에서 탈출하게 해 주었고 그 무렵 찜질방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서 사업도 접게 되었다.
조리라는 일은 남들 앞에서 말하는 직업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난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것이 어색하다. 뒤에서 지원하는 일이 맘 편하고 쉽다. 주연이 아닌 조연이 나에게 더 어울리는 삶이었다.
한때 요리선생님으로 앞에 서는 일을 준비한 적이 있다. 암이 발목을 잡아 또 포기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부지런하다고 말한다. 그건 단편적인 면만 보아서 그런 것이다. “모든 일을 다 잘하며 부지런한가?”라고, 묻는다면 난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난 실행력이 느리다. 어렵다고 느끼면 더더욱 손대길 꺼린다.
서로가 성장하고 응원 해 주는 모임 ‘살롱 드 까뮤’에서 선생님들에게 긍정의 힘을 받을 때면 가능하겠다는 힘이 실리고, 선생님들을 부러워하고, 현실의 나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는 다시 껍질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가 싶다.
날개를 달고 훨훨 날기 위해 부족한 점을 채워가며 준비해야 한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맘처럼 쉽지 않다. 이게 나의 게으른 면이다.
포기하고 꿈을 접으며 책갈피가 되어 책 안에 갇혀 버리는 날갯짓이 되지 않길. 오리는 날 수 없다. 포기하기보다 연습에 연습을 더해 어떻게든 날아올라 멋진 날개를 펴며 꿈을 꾸고 싶다.
*글쓴이_김혜정
두 아이를 힘차게 키워내는 한국의 엄마입니다. 요리하길 좋아해서 다양한 먹거리를 만들어 나누고 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또 다른 쓰임을 찾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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