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비가 왔던 모양이다. 길가는 한산하며, 새벽안개가 채 거치지 않은 새벽녘 남매는 다정히 길을 나선다. 여성의 볼이 상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날씨는 제법 볼이 발그레해질 정도의 바람도 불고 있는 것 같다. 나뭇가지에 잎사귀는 다 떨어져 있는 것을 보니 가을비가 밤새 제법 내린 날씨다. 누나는 동생이 늘 안쓰럽다. 지금도 먼 길 가야 하는 동생을 살뜰히 챙겨주며 다정한 눈빛으로 한번 안아주고 따뜻한 말로 온도를 데워주고 있으리라. 장갑도 끼지 못한 맨손이 누나는 그저 애처롭다. 언제 다시 비가 올지도 모르는 흐린 날씨지만 동생에겐 살뜰히 우산도 챙겨주었다.
“밥 잘 챙겨 먹고, 날씨가 제법 쌀쌀하니 옷 따뜻하게 입었지? 이따 비가 올지도 모르니 우산 잘 챙기고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고 알겠지? ”
“걱정하지 마! 누나. 잘하고 올게. 누나도 어서 들어가 쉬어. 날씨가 춥다. 감기에 걸려. 비가 오기 전에 어서 들어가요. 내 걱정은 그만하고. 힘낼게”
흐린 날씨가 많은 영국이 배경이라고는 하지만 검은 모자에 검은 코트 그리고 검은색 모자는 단지 흐른 날씨에 입고 나왔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단정함 속에는 다 알 수 없는 사연이 있으리라. 담담한 듯 그렇지만 힘든 일들이 그들의 마음을 가만두고 있지는 않은 상황일지도 모를 일이다. 남자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여성의 표정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자면 남자는 누나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 같다. 서로서로 마음 깊이 챙기는 오누이 사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나는 더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
‘걱정 말하며, 괜찮다며, 너는 너의 길을 가도 된다고 누나는 괜찮다고 언제나 누나가 곁에 있으니 힘내라고’
유독 사이가 좋은 남매가 있다. 부모의 부재가 많을수록 형제들을 가까워진다. 서로 싸우기보단 서로 의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바빴던 남매는 늘 서로가 서로에게 울타리이자, 안전 기지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어릴 적 나는 내 동생과 늦은 시간까지 둘만 있는 경우가 많았다. 둘이 먼저 잠들어야 하는 순간에는 두 손을 ‘꼭’ 잡고 자야 잠이 들었다. 그러면 무서움이 그나마 덜한 느낌이 들면서 안전해지는 것 같았다. 자매가 아닌 남매인데도 손을 잡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보다 나이가 3살 어린 동생은 어디 맡겨질 곳이 없어 나와 학교를 같이 등교하는 날도 많았다. 일학년 교실은 일 층이었고, 일 층 옆엔 화단이 있었다. 나는 수업을 하고 내 동생은 화단 쪽에서 놀고 있다가 쉬는 시간엔 나랑 만나 놀기도 하다가 수업이 다 끝나면 함께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소풍을 갈 때도 다른 아이들은 엄마 손 붙잡고 소풍 올 때 난 남동생 손을 잡고 관광버스에 올랐었다. 내 동생은 항상 나와 함께 했었다. 여자들 사이에서 놀다 보니 늘 나를 누나보다는 언니라고 불렀다. 나보다 더 이쁘게 생겼던 내 동생을 나는 종종 여동생이라 생각하고 내 원피스를 입히고 머리띠를 해주며 동네를 돌아다니면 동네 아주머니들께서 “아이고, 동생 이쁘게 생겼네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생의 정체성의 혼란을 줄 뻔했는데, 내 동생은 누구보다 천하의 개구쟁이로 남자다운 남자로 잘 커 주었다. 내가 대학생 때는 내 동생은 고1이었다. 아르바이트하고 돌아오면 내 동생 용돈도 주고 에버랜드 소풍 간다고 하면 혹시나 간식도 못 챙겨 먹을까 봐 항상 두 손에 용돈도 쥐여줬다. 동생 군대 갔을 때는 고기 먹고 싶다고 하면 고기 사주러 면회도 부모님 대신 항상 내가 갔었고, 휴가 나오면 휴가 나왔을 때는 입고 친구들 만나라고 항상 입을 옷도 세팅해 주었었다. 술값이 모자란다고 연락이 오면 가서 술값도 내주고, 내 동생이 장가가기 전까지 옷이며 속옷까지도 내가 돈 벌어 사 입혔었다. 그렇게 나는 내 동생에게 제2의 엄마가 되어갔다.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나도 누군가에게 보호를 받고 싶었던 마음이 내 동생에게 그대로 다 투영이 되어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동생에겐 없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던 것 같다. 어디 가서 기죽지 말기를. 누구에게나 사랑받기를, 그리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힘을 얻기를, 항상 두 손 맞잡고 동생에게 의지가 되는 든든한 누나가 되어주고 싶었다. 우리는 남매지만 지금도 통화를 끊을 말미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남기곤 한다. 오늘은 오늘만 있기에 잘못해서 마음에 남기고 싶지 않아서이다. 지금은 그 남동생은 장가를 가서 아이가 셋인 아빠가 되었다. 어쩌면 이제 내 동생은 부모도 되었으니 나보다 어른이다. 어른들이 왜 그런 말들을 하지 않는가.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댄다고 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내 눈엔 애처로워 보이니 나에겐 내 동생이 남동생이 아니라 자식인가 보다.
그림 속 여인의 모습처럼 난 내 동생에게 따뜻한 온기만을 전해주는 누나가 되고 싶었다. 차가운 바람은 막아주고 든든한 바위 같은 누나가 되어주고 싶었다. 이제는 각자 가정이 생겼으니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켜야 하기에 단지 따뜻한 눈빛과 차가워진 손을 데워주고 비를 맞지 말라고 우산을 챙겨주며 마음을 전했으리라.
이 그림을 보고 남녀의 연애가 아닌 남동생과 내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난 늘 그랬던 것 같다. 가족이 우선이었고, 지금도 가족과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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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초상화화가협회 (Royal Society of Portrait Painters)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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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이지현
현재 <빅마인드 아트>로 아이들 미술교육을 하고 있으며, 심리미술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관, 기업등에 명화, 현대미술, 심리미술로 소통하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림책심리를 통해 마음을 다독여주고 위로가 될수 있는 수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세상에 아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라며, 상처받고 힘든 성인이거나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발걸음을 걷고 있는 중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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