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쓰인 건축법?

모두에게 명령하는 생명보호에 대한 능동적 태도

2026.09.08 | 조회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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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갑자기 건축법이 나옵니다.

“새 집을 지을 때에는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서, 사람이 떨어져 피를 흘리는 일이 없게 하여야 한다” — 신명기 22장 8절, 새번역

갑자기 왜 이렇게 지어야 한다는 규정이 나올까요? 당시 지붕은 사람들이 올라가 일하고, 쉬는 생활공간이었습니다. 당시 전형적인 집은 4방형 주택으로 ‘ㄷ’모양으로 방이 있고 중앙에 열린 마당이 있는 형태였습니다. 벽과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나무와 막대기, 잔가지를 교차시키고 짚, 갈대, 진흙으로 덮어서 지붕을 덮었습니다. 창문이 오늘날처럼 통창으로 만들기 쉽지 않으니 1층은 대체로 어두웠을 겁니다. 지붕은 어두운 방에서 벗어나 햇볕도 쐬고, 빨래도 말리고, 쉬기도 하고 기도도 하는 공간이었죠.

 

이런 평평한 지붕에서 난간이 없으면 떨어지기 쉽습니다. 난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규정은 당연해 보입니다. 이런 난간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규정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에도 건축과 관련된 내용이 있습니다. 부실 건축을 할 때 건축자에게 책임을 묻는 법입니다.

“건축자가 집을 튼튼하게 짓지 않아 집이 무너지고 주인이 죽으면 건축자를 처형한다.”
If a builder build a house for a man and do not make its construction firm, and the house which he has built collapse and cause the death of the owner of the house, that builder shall be put to death.”

 

너에게 주는 명령

그런데 신명기 22:8은 건축가에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 구절의 주어는 “너”입니다. ‘너’가, ‘너의 집’을 지을 때, ‘너의 지붕’에 ‘네가 만들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자기 집을 각자 지었던 걸까요? 그렇지는 않겠죠. 전문가들이 대가를 받고 지어주었을 것입니다. 건축가에게 명령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신명기는 건축가가 아니라 ‘너’라고 말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게 명령합니다.

 

난간 규정은 집 주인과 가족을 위해 마련한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너희가 떨어지지 않도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떨어지는 사람”이라고만 이야기합니다. 떨어지는 사람은 집주인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와 친척,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누가 떨어지든 사고에 대한 책임은 ‘너’가 지는 겁니다.

 

떨어지는 것은 자기 잘못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낯선 구조도 아니고, 우리 집 너네 집 할 것 없이 모두의 집이 비슷비슷합니다. 한 두번 겪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규정은 사고의 초점을 떨어진 사람이 아니라 집주인에게 묻도록 만듭니다. 이스라엘 사람 모두는 누군가가 ‘피흘리게 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책임을 갖게 됩니다. 몰랐다는 말, 부주의했다는 태도, 무관심은 다른 사람의 ‘피 흘림’ 앞에서 핑계일 뿐입니다. 이 명령은 주석의 설명처럼, 하나님의 뜻이니까요.

안전장치는 단순히 인간적인 조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다.
“Safety measures are more than humane: they are the will of God.” -NICOT-

 

당연해야 할, 당연하지 않은 얘기

당연한 얘기 같으신가요?

 

2016년 5월, 구의역에서 열아홉 살 정비 노동자가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졌습니다. 그보다 3년 전인 2013년, 성수역에서도 같은 서울메트로 소속 정비 노동자가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졌습니다. 그때도 회사는 개인의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시 구의역 사고 후,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유가족을 찾아가 "아들 책임 있다, 합의하자"고 말했습니다. 2인 1조로 다녀야 한다는 규정을 어긴 당사자가 문제였다고 책임을 돌린 겁니다.

 

나중에 서울시 진상규명위원회가 밝힌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부실한 인력설계·배치로 2인 1조 작업은 애초에 구조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정시운행을 우선하는 업무환경은 1인 작업을 하도록 방치했습니다.

 

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 쉬워보이지만 지켜지지 않는 세상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이 명령이 ‘너’라는 백성 전체에게 주어진 말씀이라는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신명기는 건축자에게만 해당되는 법규를 얘기하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선제적, 능동적, 주체적 행동을 요구합니다. 생명을 지키는 일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코로나를 복기하며

코로나가 중국에서 다시 유행한다는 뉴스가 들려옵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예배를 중단하는 것을 두고 논쟁이 뜨거웠던 것이 기억납니다. 논쟁은 정리가 되었을까요? 그 때 예배 중단을 거부하던 외침은 박해를 뚫고 종교의 자유를 수호하는 이미지로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만약 그때와 같이 예배 문을 닫아야하는 조치가 시행되어야 할 상황이 닥치면, 더 큰 반발과 저항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누가 부정하겠습니까?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신앙에 예배만 있지는 않다는 것이죠. 예배만큼 이웃과 생명도 함께 말해야합니다. 예배만이 아니라 생명 역시도 성스럽습니다. 함께 만나 예배를 드려서 누군가의 생명이 위험해지는 경우, 성경은 예배와 생명 사이에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예배만 하나님 뜻이고 그외 것은 부차적일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이스라엘 주변 종교를 비판적으로 본 이유는 생명을 의례 속에서 부차적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종교 의례를 거룩하게 포장했을지 모르나, 그 현장에서 가난한 자는 소외되고, 자녀를 죽이는 일까지 벌어졌으니까요. 다른 이의 피흘림을 각오하는 예배가 과연 성스러운 결단이 될 수 있을지 저는 의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난간을 만들고 있을까요? 난간은 사고가 나기 전에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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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원 드림

상식과 신앙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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