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에 오줌을 싸버렸다⌟

주간 춘프카 / 글벗들

2021.10.29 | 조회 6.5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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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프 ROUGH

당신과 나의 이야기

김현철 - 동네

안녕하세요. <주간 춘프카> 발행인 춘프카입니다. 이번주 레터는 가까운 글벗을 소개하는 시간입니다.

지난번 '웃는 얼굴' 작가님에 이어 '식이타임'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작가님의 글을 전합니다.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며, 아이들에게 자상한 초등교사. '오늘 하루를 그리고 순간을 기록합니다.'라는 그의 소개 문장이 인상 깊은데요.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라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촬영 : 식이타임
촬영 : 식이타임

⌜바지에 오줌을 싸버렸다⌟

글 : 식이타임

 

나름 말 잘 듣는 학생이었다. 아마 그랬을 거다. 혼나는 걸 싫어했기도 했고 무엇보다 시크한 듯 따뜻했던 담임선생님이 좋았다. 그랬던 내가 큰 시련을 겪은 건 국어 교과서를 두고 온 날이었다. 하필 나를 제외하고도 교과서를 안 가져온 친구들이 많았고 화가 나신 선생님은 교과서 없는 사람은 교실 뒤로 나가라고 하셨다.

이럴수가 나가자마자 오줌이 마려웠다. 안 그래도 혼나고 있는데 화장실 간다고 하면 더 화내시겠지? 주먹을 꽉 쥐며 참았다. 남은 수업시간은 30분. 나는 반에서 키가 네 번째로 작았고 방광도 네 번째로 작았을 게 분명하다. 인생 최대의 팽창 범위를 기록한 방광은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말 그대로 지려버렸다. 하필이면 그날은 오줌까지 노랬다.

노란 물이 교실바닥을 적셔가자 옆에 서 있던 녀석이 선생님에게 일러바쳤다.

"선생님!!! 00이 오줌 쌌어요."

선생님은 급하게 자신의 체육복 바지를 빌려주셨고 나는 자전거 페달에 부끄러운 마음을 힘껏 실어 집으로 향했다. "이 시간에 왜 왔냐."라고 질문하는 엄마한테는 놀다가 바지가 젖어버렸다고 대충 둘러댔다.

"어떻게 다시 들어가지..."

교실 문 앞을 서성였다. 바지에 오줌 싼 놈이라고 놀림당할까 봐 걱정됐다. 유치원 시절 화장실 가가 무서워서 이불에 싼 적은 있지만 4학년 씩이나 된 이상 창피함을 면할 수 없었다.

조심스레 뒷문을 여는 순간 교실은 조용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평온한 분위기였다. 그 누구도 나를 놀리지 않았으며 교실 바닥도 깨끗했다. 궁금한 마음이 들어 집에 가는 길 친구에게 물어봤다.

"뭐라고 했길래 아무도 날 안 놀렸어?"

"선생님이 싼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어. 화장실에 안 보내준 선생님 잘못이니 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시간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됐고 화장실은 미리미리 잘 간다. 살다 보니 바지에 오줌을 싼 것보다 더 숨고 싶은 일들을 만나기도 했다. 조금 슬픈 사실은 이젠 내가 싼 오줌 대신 쌌다고 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네가 싼 똥 네가 치우고 내가 싼 똥 내가 치워야 하는 게 책임감 있는 어른의 모습이었다. 

어디라도 숨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날이 생각난다. 시간이 흐르니 창피했던 기억도 추억으로 남았다. 지금은 바지에 오줌을 싸 봤던 경험에게 감사. 놀림받지 않게 지켜준 선생님에게 감사. 내가 싼 거 내가 치우려고 애쓰는 나에게도 감사하다.

종종, 창피한 일을 마주하는 우리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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