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Mind CEO 데미스 하사비스가 유튜브 채널 해리 스테빙스의 20VC와 진행하여 2026년 4월 7일 공개된 인터뷰 내용을 리뷰해봤습니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자 알파폴드로 50년 난제를 풀어낸 연구자가, AI 개발자가 아닌 한 명의 시민·아들·철학자로서 고민하는 문제들은 무엇이었을까요? 신약 개발, 안전 거버넌스, 노동 대체, 에너지, 유럽의 구조적 딜레마, 그리고 AGI 이후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까지... 세상을 바꾸고 있는 천재 과학자이자 구글 딥마인드 수장의 생각을 들어보겠습니다.
왜 신약 개발이었는가?
"우리는 신약 개발 과정의 나머지 부분을 풀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건 대부분 화학의 영역이죠. 화합물을 설계하고, 독성이 없는지 검증하고, 약물이 안전하기 위해 필요한 온갖 특성들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6년 알파고의 대성공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은 데미스 하사비스가 다음에 도전한 과제는 단백질의 접힘구조를 예측하는 알파폴드였습니다. 단백질 구조 예측은 50년 묵은 생물학의 거대 난제였고, 알파폴드는 2024년 노벨 화학상을 가져다준 결정적 성과가 되었죠. 하사비스가 자주 쓰는 표현으로, 신약 개발은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needle in a haystack)"의 거대한 패턴 인식 문제이고, AI는 본질적으로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입니다.
딥마인드는 알파폴드로 단백질 구조 예측이라는 한 축을 해결한 뒤, 신약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자회사, 이소모픽 랩스Isomorphic Labs를 설립하고 하사비스를 CEO로 임명했습니다. 이 회사의 목표는 단백질 구조 이후의 단계들 — 즉 화학 설계, 독성 평가, 약물 특성 최적화 — 를 AI 플랫폼으로 일반화하는 것입니다.
이소모픽이 풀려는 문제는 "단백질에 어떤 약물 분자를 끼워 넣을 것인가"입니다. 화합물 설계, 독성 검증, 약물 특성 최적화 — 신약 개발 전 과정 중 가장 길고 비싼 단계들이죠. 하사비스의 야심은 명확합니다. 일반적인 바이오텍이 평생에 걸쳐 한두 개의 약을 만든다면, 이소모픽은 "연간 수십 개의 약을 만들어내는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구축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구 주도적인 그룹입니다. AI로 많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고, 동시에 이는 엄청나게 가치 있는 기업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우리는 기초 연구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는 선순환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 데미스 하사비스, 2024.08
2024년 한 인터뷰에서 하사비스는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순환은 딥마인드의 AI 역량으로 신약개발을 가속화하고, 이 신약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둔 다음, 다시 이 수익으로 딥마인드의 AI 역량을 가속화하는 선순환입니다. 이소모픽이 설립된 것이 2021년이니 이미 5년전에 하사비스와 구글 경영진은 구글이 제약회사가 되는 비전을 가지고 차근차근 준비중이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딥마인드의 로드맵
"사실 저는 18살 때 이 계획을 세웠어요. 놀라운 것은 그 계획이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체스 선수이기 때문에 항상 몇 년 앞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웁니다. 아마도 4살 때부터 체스를 둬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 같네요. 다만, 과거의 저에게 한마디 할 수 있다면 저는 아마 제 자신에게 잘 될 테니 조금만 더 즐기라고 말했을 거예요. 당시에는 이게 어떻게 잘 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하사비스의 인터뷰를 보다보면, 그가 마치 체스의 다음 수를 예측하듯 굉장히 정확한 로드맵을 머리에 담은 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가 제시하는 로드맵이 실제와 거의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는 점이죠. 늘 원대한 로드맵을 제시하지만 타임라인은 자주 어기는 모 전기차 회사의 CEO와는 다른 특징입니다.
그가 신약개발과 관련해 이야기하는 로드맵은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5–10년): 신경퇴행성질환, 심혈관, 면역, 암 등 주요 치료영역에 공통 적용 가능한 범용 약물 설계 플랫폼을 완성한다.
2단계 (+10년): 임상시험 자체를 재설계한다. AI가 인간 대사 과정의 일부를 시뮬레이션하고, 환자를 유전체 특성에 따라 맞춤형으로 매칭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이 패턴의 성공사례가 충분히 쌓이게 되면 어느 시점에서는 규제기관이 모델 예측을 신뢰하게 될 것이고, 그럼 동물실험 같은 일부 단계를 면제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되면 경쟁사들과는 차별화된 속도로 신약을 출시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고 이것은 하사비스가 그리는 선순환을 더욱 가속화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 기회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신약 개발만큼이나 하사비스가 진지하게 다룬 주제는 AI 안전이었습니다. 그는 안전 문제를 두 갈래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악용의 문제입니다. AI는 본질적으로 사용자의 능력을 증폭시켜주는 기술이라, 과학과 의료에 엄청난 선을 가져올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악의적 행위자의 손에서는 보안사고 등 심각한 해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둘째는 기술적 정렬의 문제입니다. 시스템이 점점 더 자율적으로 행동하게 될 때, 우리가 원하는 가드레일 안에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하사비스는 이게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1–2년 후"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지만, 그 시점은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호스트인 스테빙스가 스티븐 호킹의 유명한 경고를 인용했습니다.
"우리는 이걸 반드시 제대로 해내야 합니다. 다시 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사비스는 이에 동의하며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 조치의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 국제 표준의 필연성: 시스템이 국경을 초월하는 이상, 국가 안에서의 규제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프런티어 연구소들이 공통으로 합의 가능한 최소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 기준은 국제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지정학적 단절 상태에서 사실상 불가능한 것도 사실입니다.
- 기만 능력에 대한 벤치마크: 시스템이 자신을 속일 수 있게 되는 순간, 다른 모든 안전장치가 무력화됩니다. 그래서 합의 가능한 최소 기준의 첫 항목은 기만 능력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속성"에 대한 평가여야 한다는 겁니다.
- 인간이 읽을 수 없는 토큰에 대한 경계: AI가 인간이 해독할 수 없는 기계어로 토큰을 출력하도록 설계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해석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면, 새로운 공격 벡터가 열리니까요.
- AI 안전 연구소(AISI) 네트워크: 영국의 AI 안전 연구소Artificial Intelligence Safety Institute, 같은 독립 평가 기관을 각국이 보유하고 서로 연결돼야 한다는 구상입니다. 정부가 최종 책임을 지더라도, 실제 기술적 평가와 감사는 이런 전문가 집단이 수행해야 한다는 거죠.
- 모델 인증 제도: 특정 안전 기준을 통과한 모델에 인증을 부여해서 기업과 소비자가 안전하게 그 위에 빌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겁니다. 자동차에 안전 등급이 있듯, AI 모델에도 안전 인증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조치들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 같은 국제 조정 기구의 필요성을 제시했습니다. 각국의 AI 안전 연구소들이 여기에 자료를 제출하고, 학계와 시민사회가 벤치마크 정의 과정에 참여하는 구조입니다. 즉 위의 다섯 가지는 개별 항목이지만, 그것들이 작동하기 위한 거버넌스의 정점에는 IAEA 모델이 있어야 한다는 그림입니다.
산업혁명의 10배의 변화가 10배의 속도로
"저는 AGI의 도래를 때로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 산업혁명의 10배 규모가, 그것도 10배의 속도로 펼쳐지는 것이라고요."
하사비스는 "산업혁명"이라는 무려 100년에 걸쳐 펼쳐졌던 규모의 변화가 우리 세대에서는 약 10년 안에 압축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하였습니다.
현대 의학, 아동 사망률의 급감, 평균 수명의 연장 — 이 모든 것이 산업혁명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동시에 그 전환은 극심한 혼란과 불평등을 수반했죠. 말그대로 산업"혁명" 이었습니다. 여기서 하사비스는 산업혁명의 교훈을 반영하여 이번 혁명에서는 예측되는 문제들을 미리 대비하여 부작용이 최소화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산업혁명 시대를 돌이켜보면 많은 사람들이 큰 부를 거머쥐기도 했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소외받고 착취당한 취약계층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더 큰 변화가 더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만큼 취약계층의 피해는 어쩌면 더 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하사비스의 해법은 3가지였습니다.
- 연금 펀드의 AI 기업 편입: 일반 시민이 연금을 통해 주요 AI 기업의 지분을 간접 보유하게 하는 것. 연금 체계가 강한 국가일수록 자연스럽게 적용될 수 있는 모델입니다. AI 기업의 수익이 연금 기금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주고 그 수익이 연금가입자에게 되돌아가는 구조를 말합니다.
- 국부펀드의 확장: 노르웨이 국부펀드 같은 구조를 다른 국가들도 도입해, 국가 단위로 AI 시대의 자본 수익을 흡수하자는 제안입니다.
- 인프라 투자: 단순한 현금 이전이 아니라, AI 기업의 생산성 이득을 세금 등의 형태로 이전받아 전력망, 데이터센터, 교통, 교육, 헬스케어 등에 투자하는 방식입니다.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광통신 인프라가 전국적으로 깔리자 이를 기반으로 전자정부, 모바일금융 등 새로운 서비스들이 출시되어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여주었듯이 AI 관련 인프라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하사비스는 실리콘밸리의 단골 메뉴인 UBI(기본소득)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샘 알트먼이나 일론 머스크 같은 인사들이 UBI를 중심 해법으로 꺼내드는 것과 대조적이죠. 그의 관점은 현금 이전보다 지분 기반 분배와 공공 인프라 투자에 가깝습니다. 이는 그가 거주하는 유럽적 사회 모델의 영향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AI가 AI의 전력 문제를 푼다
호스트가 물었습니다. 요즘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가 이슈가 되고 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과거 친환경 에너지에 집중했던 국가들이 다시 원자력 발전이나 천연가스 발전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생각이 어떠냐고.
하사비스는 중장기적으로 AI는 자신이 소비하는 에너지를 훨씬 넘어서는 에너지 이득을 만들어낼 것이므로 전력부족과 관련된 문제는 한시적일 것이라는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국가 전력망에서만도 아마 30~40% 정도의 효율 향상은 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먼저 하사비스는 기존 전력망 최적화해서 큰 절감을 이뤄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말이 빈말이 아닌 것이 딥마인드는 이미 구글 데이터센터 냉각 시스템을 AI로 최적화해서 40% 에너지 절감을 기록한 전례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기후·기상 모델링에 AI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화석 연료를 계속 사용함으로 인해 이상 기후는 더 많이 발생하겠지만, 예측 정확도가 높아진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겠죠. 같은 맥락에서 엔비디아 역시 기상 시뮬레이터를 만들어 공개한 바 있습니다.
하사비스는 또한 AI를 활용해 꿈의 기술인 핵융합의 시대를 여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이미 딥마인드는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즈와 협력하고 있고, 핵융합 플라즈마 제어는 본질적으로 강화학습이 풀기 좋은 문제입니다.
"(핵융합 기술을 얻게 된다면) 사실상 무한한 로켓 연료를 얻는 셈이 됩니다. 그냥 바닷물을 증류하고 촉매 반응을 일으키기만 하면 되니까요."
핵융합이 상용화되면 바닷물에서 무한한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고, 그러면 우주 진출까지 경제적 제약이 풀립니다. 마지막은 신소재 — 새로운 초전도체, 배터리, 태양광 물질. 재료과학은 AI가 가장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영역 중 하나죠.
에너지 문제가 풀리면, 지금까지 비용 때문에 미뤄두었던 문명 단위의 프로젝트들이 동시에 가능해진다. 이게 하사비스의 관점입니다.
런던을 선택한 이유
하사비스는 실리콘밸리로의 이전 제안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런던에 남았습니다. 그가 영국에 남은 이유는 크게 2가지입니다. 먼저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임페리얼 칼리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와 같은 전통의 명문 교육 기관에서 매년 우수한 인재들이 배출되고 있으며, 앨런 튜링, 찰스 다윈, 아이작 뉴턴, 스티븐 호킹으로 이어지는 영국의 과학적 유산이 있습니다. 긴 호흡으로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문화가 정립되어 있어 이론 연구를 이어가는 데에 좋은 공간이라는 것이죠.
또한 그는 실리콘밸리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도 주장합니다. 실리콘밸리의 장점인 네트워크와 가십과 최신 트렌드는 긴 호흡으로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는 노이즈로 작용할 수도 있지요. 역전파 알고리즘으로 202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제프리 힌튼 교수가 AI 시대를 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긴 호흡의 연구자였기 때문입니다. 오큘러스 창업자 파머 러키가 앤두릴을 캘리포니아 밸리에서 400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시킨 것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왜 OpenAI나 Anthropic 같은 스타트업이 나오지 못했을 까요? 하사비스의 진단은 이렇습니다. 유럽에는 우수한 인재와 연구 문화가 있지만 스타트업에서 글로벌 플레이어로 가기 위해 필요한 수십억 달러 단위의 성장 라운드가 부재하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미국만큼 거대한 자본 시장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영국의 연금 펀드들이 성장 단계 테크 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영국에서 "맨션 하우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논의되고 있는 바로 그 의제입니다. 그리고 본인이 이소모픽 랩스를 영국 기반의 수조 달러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한 것은, 단순한 야심이 아니라 유럽 생태계에 대한 구조적 도전입니다.
이 진단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한국에는 훌륭한 엔지니어, 세계적 수준의 대학, 밀도 높은 창업 생태계가 있지만 자본 시장이 작고 IPO 등 성공적으로 엑싯한 스타트업 사례들이 부족합니다. 지금보다 자본시장이 건전해지고 퇴직연금 등 더 많은 자금이 들어오면 이를 개선할 수 있을 것입니다.
AGI 이후 인류의 숙제
인터뷰 후반, 호스트는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져야할 거라고 생각하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철학적인 질문이 남습니다. 의미란 무엇인가, 목적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가 그리는 문제의 층위는 이렇습니다. 1층은 기술적 문제 — AGI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가. 2층은 경제적 문제 — 생산성 이득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3층은 철학적 문제 — 의미, 목적, 의식,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의 주장은 1층과 2층이 풀린다 해도 3층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중요해집니다. 노동이 더 이상 생계의 수단이 아닐 때, 지적 활동이 더 이상 인간의 전유물이 아닐 때, 우리는 자신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
"저는 우리가 이 문제를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을 줄, 위대한 새로운 철학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AI 시대를 이끄는 세계적인 천재인 하사비스가 우리에게 더 많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엔지니어가 아니라 더 많은 철학자라는 이야기는 잠시 시야를 모니터에서 거두고 잠시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직업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만약 나의 직업이 AI에 의해, 또는 로봇에 의해 대체되는 시대, 나는 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결국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의미"와 "희망"이 필요한데, 이것을 줄 수 있는 것은 기술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사유와 언어, 그리고 공동체의 문제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고 관계맺을 것인가.. 따라서 이것은 철학과 인문학의 영역입니다.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호스트의 마지막 질문은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세요?" 였습니다.
"저의 유산은 과학을 진보시키고, 세상에 엄청난 혜택을 가져다주는 기술 — 이를테면 끔찍한 질병을 치유하는 것 같은 — 을 만들어낸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었으면 합니다."
노벨상 수상자, AGI 선구자, 런던 테크의 자존심, 딥마인드 CEO — 이 모든 타이틀을 제쳐두고 그가 고른 한 줄은 "과학을 진보시키고 끔찍한 질병을 치유하는 데 기여한 사람" 이었습니다.
이 인터뷰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일관성입니다. 18살에 세웠다는 그 계획. 2010년 딥마인드 창업 당시 세웠던 AGI 20년 타임라인이 16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고, AI를 과학적 도구로 써서 인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창업 미션이 알파폴드와 이소모픽 랩스로 이어졌습니다. 1단계 AGI 개발과 2단계 과학 응용을 분리했던 초기 구상이 그대로 실행되고 있습니다.
제가 하사비스의 인터뷰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일관성때문입니다. 정말 본인이 체스를 어릴 때부터 두어서 그런지 미리 여러 수를 내다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어떨 때는 그가 그리는 타임라인이 지나치게 진보적인 것 같고, 어떨 때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가 예측한 타임라인에 맞게 세상이 움직여왔습니다.
마무리하며
이번 인터뷰에서는 데미스 하사비스가 그리는 AI 이후의 세계, 즉 기술의 다음 단계가 아닌 다음 세상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신약 개발은 알파폴드에서 멈추지 않고, 이소모픽 랩스를 통해 "연간 수십 개의 약을 만드는 시스템"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충분한 검증 데이터가 쌓이면 임상시험 단계 일부가 면제되고, 신약 개발의 규제 자체가 다시 쓰일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 AI 안전에 대해서는 국제 표준, 기만 능력 벤치마크, 토큰 가독성, AI 안전 연구소 네트워크, 모델 인증 제도라는 다섯 가지 구체적 조치를 제시했고, 이를 묶는 상위 구조로 IAEA식 국제 기구의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 AGI는 산업혁명의 10배 규모가 10배의 속도로 일어나는 변화이며,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연금 펀드의 AI 기업 편입, 국부펀드 확장, 인프라 재분배라는 세 가지 분배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UBI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었습니다.
- 데이터센터 전력 문제는 한시적이며, AI가 그리드 최적화·기상 모델링·핵융합·신소재로 자신이 소비한 것보다 훨씬 큰 에너지 이득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 유럽이 성공적인 글로벌 스타트업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자본 시장의 규모 문제이며, 영국의 "맨션 하우스 개혁"처럼 연금 펀드 규제 완화가 핵심 해법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단입니다.
- AGI 이후의 가장 어려운 문제는 기술도 경제도 아닌 철학이며, 인간다움을 다시 정의해줄 새로운 철학자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이 외에도 AGI 정의, 스케일링 법칙의 현재, LLM 이후의 아키텍처, Genie 같은 인터랙티브 월드 모델, 일론 머스크와의 첫 만남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인터뷰 본편에서 다뤄지고 있으니 시간이 되신다면 본편도 한번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결국 하사비스의 인터뷰가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은 이것입니다: "5년 뒤 AGI가 도래했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하사비스의 전망이 적중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5년뒤 AGI 시대가 열린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봐야할 것입니다. 그럼 이 시대에서 내가 집중할 "의미"는 무엇인지, 애초에 "나"는 누구인지 고민을 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먼저 고민해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고 거기서 새로운 공동체가 탄생하겠죠.
기술의 정점이 오면 다시 중요해지는 것은 철학이다. 이번 인터뷰를 한줄로 요약하면 이렇게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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