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30호: 청어람에 미친 은빈이 😆

청어람의 2청년회장, 은빈님을 만났습니다

2025.08.20 | 조회 8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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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람AR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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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사회 사이 -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

다소 강렬한 제목에 구독자님 놀라셨나요? 이번 틈의 제목은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 낭독모임에서 은빈님이 남겨주셨던 말씀으로 정해보았습니다. 은빈님은 교회 일정을 땡땡이 치시고 청어람 모임에 참여했다며, 교회에 미친 혜인이가 있다면, 청어람에 미친 은빈이가 있다고 웃으며 말씀해주셨어요. 결국 교회를 살리는 것은 혜인이일테니까, 청어람을 살리는 것도 은빈이의 몫일까요? 여러분에게 자랑스러운 청어람의 2청년회장을 소개합니다. 

 

유미(유): 안녕하세요, 은빈님!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은빈(은): 안녕하세요, 대학교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유은빈이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숭실대 박래전열사기념사업회 재학생 모임 ‘틔움’과, 기독교에 대해 질문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을 위한 선교단체(?) ‘기독학생연대’(이하 ‘기학연’)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활동하고 있습니다. 2년 전쯤 청어람에서 기획위원회로 참가하기도 했는데요, 올해 들어 새로운 기획위원회를 구성하셔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모태신앙이고, 교회에서는 고등부 교사를 하고 있어요. 스스로 복음주의자라고 자칭하고 다니고 있는데, 다른 ‘복음주의자’ 분들이 저를 인정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이 인터뷰를 읽으시는 몇몇 분들에게는 ‘청어람에 출현하는 군인’으로 알려져 있을것 같네요. 이제는 민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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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물 반 컵을 바라보며 ‘반이나 남았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반 밖에 안 남았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지요? “아직 방학이죠?”라고 인사를 할지 “이제 곧 개강이네요?”하고 물을지 조금 고민이 되네요. 이번 방학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은: 사실 제게 이번 방학은 매우 길었어요. 올해 2월 27일에 전역을 하고, 복학을 하는 대신 휴학을 해서 사실상 방학과 다름 없는 긴 시간을 보냈거든요. 아르바이트도 안 하고 여기저기 슬렁슬렁 놀러다니면서 반 년 정도를 보냈습니다. 이렇게 쓰다보니 살짝 현타가 오네요… 아무것도 안 하면서 부모님 속도 꽤 썩혔고요. 최근 몇 주 동안은 휴학 이래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행사가 연이어서 있었거든요.

먼저 기학연 창립 5주년 기념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주에는 고등부 여름 수련회가 있었고요. 이번 수련회는 군 입대 이후 2년 만에 가는 수련회라서 더 인상 깊었던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휴가를 교회 수련회랑 맞춰서 쓰시고 그러시는데, 저는 그런 신앙심은 없어서 한 번도 참가하지 못했거든요. 수련회 마지막 날에 전에 없었던 목이 쉴 정도의 열정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저 자신이 놀라울 정도였어요. 다같이 손을 잡고 기도할 때는 ‘나 같은 것도 교사라고 해주는구나…’하는 생각에 눈물도 찔끔 흘렸습니다.

그 다음 주에는 형태도 성격도 전혀 다른, 옥바라지선교센터가 진행한 <기독청년 반빈곤 연대활동>에 참가했습니다. 사실 별 생각이 없었던 와중에 다른 분이 강권하셔서 참가했는데 정말 잘 한 선택이었어요.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 했어요. 여러 빈곤의 현장들, 연대의 현장들을 가보면서, 참 많은 걸 배우고, 느꼈습니다. 저희가 ‘정릉골’이라는 재개발 대상 지역에서 마을 잔치를 열었는데, 잔치 중에 어느 주민 분께서 소리를 지르면서 욕을 하시더라고요. 너희가 뭘 아느냐고. 어차피 여기 다 놀러온 거 아니냐고. 목소리는 사나우셨지만, 한편으로는 그분의 절망스러운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잔치 중 진행된 공연의 마지막 순서로는 재개발 대책위에 소속된 주민 한 분께서 나오셔서 오카리나 연주를 하셨습니다. 수줍게 나오셔서 오늘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오늘이 정말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라 보이는 두 장면이었지만, 모두 연대의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게 만든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공연 중에 옥바라지선교센터 목사님들과 대책위 분들이 소리지르셨던 주민분께 찾아가서 오해를 풀었다고 합니다.) 1박2일의 기간 동안, 어느 분이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이 계시다면 여기에 계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 십년 동안 터를 잡고 살고 있던 곳에서 쫓겨나는 분들의 현실에서 절망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이곳에 모여서 연대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예수님도 함께 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흥미롭게도, 여름 수련회 마지막 집회와, 기독청년 반빈곤 연대활동 마무리 예배 때 같은 감정,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전문 용어로 ‘은혜 받았다’고 하죠? 열정적인 찬양과 기도 속에서 느꼈던 그 강렬한 감정이, 차분한 찬양을 부르며 나눈 성찬례 속에서 똑같이 찾아왔던 것 같아요.

 

유: 말씀해주신대로 다른 장소에서 받으신 은혜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은 그 두 장소를 ‘다르다’고 말하잖아요. 실제로 다르기도 하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공간의 경험만을 하고, 또 한 공간의 경험만을 ‘진짜’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은빈님은 두 공간 모두를 긍정하는 것 같은데요. 수련회에 함께 참여한 사람들에게 정릉골을, 정릉골 현장에 함께 있던 연대인들에게 수련회를 각각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은: 와, 진짜 어려운 일이네요. 이걸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저라면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지 않는 예배의 장소는 없다고 말을 할 것 같아요. 각자가 선 자리가 다르고, 경험이 다른데, 그분을 향한 예배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예배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은혜의 형태도 모두 다르겠죠. 그리고 하나님은 다양한 예배자들 각자의 필요에 따라 은혜를 부어주신다고 믿습니다.

고등부 수련회에 간 친구들, 선생님들에게는 정릉골 현장 예배에 대해 이렇게 말해줄 것 같아요.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간절히 필요한 사람들, 은혜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든 분들이 거기에 있다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 같아요

반면 정릉골 현장에 있던 연대인들은 거의 다 수련회를 겪어보셨을 것 같고, 그 장단점도 알고 계실 것 같아서 많은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아요. 개인적인 수련회의 기능을 덧붙이자면, 학생들이 잠시나마 학업 스트레스를 잊고 약간의 해방을 경험하는 은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유: 입대 이후 첫 복학인가요? 오랜만에 복학을 앞두신 소감도 궁금해요. 학교로 돌아가 기대되는 일이 있으신가요?

은: 최근에 철학과에서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저도 학과 학회에서 학회장을 맡고 있기에 참여했습니다. 첫번째 시간이 학생들이 써온 글쓰기 계획서를 교수님이 보시고 피드백을 해주시는 시간이었어요. 당연히(?) 고학번부터 발표를 하게 되어서 첫 번째로 교수님의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운이 좋게도(?) 제가 써온 주제가 교수님의 전공 분야였기에 20분간 섬세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 강의실에서 교수님 얼굴을 보고, 목소리까지 들으니, ‘아, 내가 진짜 복학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뭐가 기대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친한 친구들도 다 군대 가거나, 졸업을 앞두고 있고, 캠퍼스 로망이라 할 것도 이제는 없으니까요. 제가 이상한 사람이긴하지만, 강의가 기대된다고 할 만큼 이상하지도 않고요. 다만 공부를 좀 열심히 해서 성적 장학금을 받고 싶다는 욕망은 있어요.

 

유: 복학 후 성적장학금! 대단한 포부인걸요, 응원하겠습니다. 은빈님은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은빈님의 SNS를 보면 방학 중에도 꾸준히 공부모임을 이어 가시더라고요. 방학을 맞아 게임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날로 날로 늘어나는 저로서는 ‘진정 철학도는 다르군!’하고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득 은빈님에게 철학이라는 학문은 어떤 의미일지가 궁금해져요. 은빈님이 생각하는 철학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은: 철학은 때때로 재미있는 것 같아요. 항상 재밌지는 않고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재밌는 것 같아요. 철학의 기본은 질문을 던지는 거잖아요. 기존의 전제에 의문을 제시하고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재밌다고 생각해요. 제가 순응적인 사람이라, 질문이나 비판적인 생각을 잘 못하는데, 제가 못하는 걸 잘 해내고 있어서 더 재밌고, 동경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근데 요즘은 잘 모르겠네요. 학문으로 철학을 하는 건 어려운 것 같아요. 제가 그걸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유: 제가 가지고 있는 은빈님의 첫인상은 아무래도 군복을 입고 청어람으로 휴가를 나오는 사람이예요. 제가 상상할 수 있는 ‘휴가를 보내는 즐거운 방법’에는 ‘청어람 방문’은 아무래도 없는 것 같은데 ‘은빈님에게 청어람은 어떤 곳인가’ 궁금하네요.

은: 이 질문을 받고 제가 왜 청어람에 갔었는지 곰곰히 생각해 봤어요. 이제보니 제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긴 했네. 아무래도 대화를 하고 싶어서 간 것 같아요. 부대에 친한 사람이 없었다는 건 아니고요, 군대라는 곳이 원래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곳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관심있는 사회문제라든가 그런 얘기를 터놓고 할 사람이 없었어요. 기독교 얘기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이런 대화들에 대한 갈급함이 있어서 항상 청어람을 찾았던 것 같아요.

청어람은 굉장히 열려 있으면서도, 안전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있었던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 낭독 모임에서도 굉장히 깊은 이야기들을 나눠주신 분들이 계셨는데, 사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분들도 청어람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나눠주실 수 있었겠죠. 깊고도 넓은, 다양한 분들의 진솔한 고민들을 듣고, 또 나눌 수 있는 것이 청어람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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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중학교 3학년 때, 인터넷에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글을 읽고, 분해서 기독교 변증에 관심이 생기셨다는 글을 읽었어요. 분한 마음은 아마도 사랑이었겠죠? 그날의 분한 마음은 뒤로 하고 오늘날의 은빈님은 어떤지 궁금해요. 기독교를 향한 사랑은 여전한가요? 중학교 3학년 은빈님의 마음과 오늘날 은빈님의 마음이 어떻게 같은지, 어떻게 다른지가 궁금해요.

은: 사실 그때도 기독교를 사랑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약간의 애정은 있었던 것 같긴 하지만요. 그때 분했던 것도 기독교가 비난 받아서(그 글의 내용이 지금도 기억나는데, 비판이라고 하기는 아쉬운 글이었던 것 같아요)라기 보단 ‘기독교를 믿는 내'가 비난 받는다고 느껴서였다고 생각해요. 굳이 따지자면, 저를 사랑했던 거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이후 저는 기독교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고, 결국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이번에 있었던 철학과 글쓰기 워크숍에서 무엇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들었어요.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한다고 조언해주셨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계속 생각나는 것, 밥 먹다가도, 걸어가다가도 불쑥불쑥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저는 기독교를 좋아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말씀하신 조건에 맞는 게 기독교밖에 없더라고요. 맙소사.

 

유: 맙소사군요! 지금 다니시는 교회에서 은빈님의 생각이나 마음을 나누고 이런저런 일을 도모할 사람들이 있는 편인지 궁금해요. 외롭거나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시는지, 은빈님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동세대 사람들을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만나곤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은: 저는 지금 동네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요, 그냥저냥 보수적인 한국교회예요. 감사한 점은 제가 퀴어 퍼레이드나, 기독청년 반빈곤 연대활동에 참여하고 나서 사진들을 SNS에 올려서 제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많이 알고 계신데 별 말씀 안 하시는 점입니다. 물론 제가 교회에서는 워낙 조용히 다녀서 그런 것 같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그렇지만, 저는 교회에서는 진짜 존재감 없이 다니거든요. 왔다 가기만하는 수준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생각이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분들은 계시죠. 저하고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다만 제가 어떤 일을 도모하는 타입은 아니라 뭔가를 도모할 것 같지는 않네요. 저번 청어람 모임에서 읽었던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의 혜인이처럼 목사님 설교 시간에 따질 수도 없고요. 교회는 아니지만 청어람 같은 곳에서 저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계신 동년배 분들을 참 많이 뵐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기학연에서도요. 기학연 같은 경우 22년부터 계속 참여해 왔었습니다. 저와 같은 결의 문제의식과 고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입장을 가진 분들과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동체를 제공해 줬던 것 같아요.

 

유: 청어람이나 기학연 같은 모임이 은빈님에게 교회와는 다른 신앙의 장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은빈님이 앞으로 청어람이나 기학연에서 하고 싶은 활동들이 있나요? 어떤 공동체 안에서 하고 싶은 활동이 아니더라도, 은빈님 스스로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신앙 실험이나 모임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은: 사실 저는 20살 때 교회 바깥에서 신앙생활을 더 많이 했어요. 다니는 교회에서는 주일에만 딱 가서 고등부 예배만 드리고 나왔거든요. 성경 공부, 예배, 교제, 기도 등등 다 외부 단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과장 조금 보태서 그때 저에게는 청어람이 교회였고, 기학연이 청년부였어요(지금은 달라졌냐고 물어보신다면, 크게 변한 건 없는 것 같네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이 단체들은 저에게 느슨하면서도 안전한 공동체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다른 분들에게 그런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가끔씩 모여서 안부를 나누고, 놀기도 하고, 신앙과 삶에 대해 진솔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에 기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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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청년들이 왜 교회를 떠날까?”에 대한 질문을 들을 때마다 “교회가 교회같지 않아서 떠난 것 뿐”이라고 답하는 편인데요. 은빈님 생각이 궁금합니다. 청년들에게 교회가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덧붙여 그럼에도 은빈님이 교회에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은: 간사님 말씀이 본질적으로 맞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으로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저희 교회 같은 경우에는 청년들에게 과도한 사역 부담을 주는 경우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옛날에 담임 목사님이였나,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1인1사역을 하는 교회가 되자고. 그런데 그게 쉽나요. 교회 고등부에서 교사하면서 같이 사역하시는 선생님들 보면 정말 존경스러운 경우가 많아요. 본인 일과 가정을 챙기시면서 고등부 친구들을 위해 헌신을 하시거든요. 그런데 누구나 그런 헌신과 봉사가 가능한 것은 아니니까요. 한편으로는 ‘그냥’ 안 다니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을 것 같아요. 고등부에도 보면 신앙이 없는데 부모님 강요로 그냥 다니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이런 친구들은 성인이 되면 정말로 교회에 나올 이유가 없죠. 비신자 비율도 점점 더 높아지고 있고요. 교회를 다닐, 기독교를 믿을, 예수님을 따를 이유가 없는(또는 찾지 못한)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네요.

저같은 경우에는, 글쎄요. 예전에는 ‘그래도 이 교회에 나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이 한 명 정도 있으면 좋겠지?’라는 생각에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고등부 (보조)교사라는 직책도 없었으면 진작에 가나안 성도가 돼서 세속성자 주일모임에 나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여담이지만 최근에 처음으로 참석했는데, 또 가고 싶네요). 저는 일종의 수행으로 교회를 다니는 것 같아요. 저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한 수행 같아요. 좀 더 은혜롭게 말하자면 공동체로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하는 수행이라고 할까요? 잘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요

 

유: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 교회를 다닌다는 말씀이 흥미롭네요. 제게 은빈님은 넉살이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이 있어요. 어떤 사람에게 관심이 있고, 흥미가 있으면 찾아가길 주저하지 않고, 연락하고 대화 나누는 것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거든요. 또래가 아닌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세대가 다르면 어울리기를 꺼려하는 풍조와는 또 다른 모습이어서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느끼기에도 은빈님은 넉살이 좋은 사람인가요? 넉살 좋게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은: 넉살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좋아보이고 싶은 것 같아요. 넉살이 좋아보인다니 성공했네요! 저는 사실 스스로 타인을 대하는 데에 부족함이 많아요. 특히 친하지 않은 분들 앞에서는 뚝딱이는 경우가 많고요. 내성적이라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을 어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약속 같은 것도 제가 잡는 건 거의 없고, 어떤 행사나 자리에 갈 때 항상 두려움과 떨림으로, 부디 아는 사람이 거기 계시기를 간절히 기도 하곤 해요. 기독교 판이 좁아서 그런지 아는 분이 그래도 한 명 씩은 계시 더라고요. 정말 아는 분이 한 명도 없는 행사를 한 번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행사 끝나고 뒤에서 쭈뼛거리다가 그냥 나왔어요.

저는 대화를 할 때 주로 많이 들으려고 해요. 제가 조리있게 말을 잘 못할 뿐더러, 아는 것도 없거든요. 그래서 항상 많이 듣고 많이 배우려는 자세를 갖추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요? 제가 넉살이 좋아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제가 만난 분들이 넉살 좋게 저를 반겨주셔서일 것 같아요.

 

유: 인터뷰의 마지막 순서는 유은빈의 신앙 소스리스트*를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은빈님의 신앙여정에 영향을 준 세가지의 소스리스트를 들려주세요. 소스는 책이 될 수도 있고,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은빈님이 만난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무엇이든 좋습니다.

(*소스 리스트는 2021년 1월에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재미공작소의 오프라인 문학 행사의 이름입니다. 소스 리스트에서 호스트 작가는 자신의 첫 시집 혹은 첫 소설집 탄생에 영향을 준 영감의 원천 열두 가지를 '소스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소개를 해요.)

은: 제가 오래 살지 않아서 뚜렷한 신앙의 소스 리스트가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앞으로도 제 신앙은 계속 바뀔테고, 그럼 소스 리스트도 바뀔테니까요. 일단 지금은 이런 것 같습니다.

1. 저희 어머니가 아직 결혼하시기 전에, 어머니의 친구 분이 어머니에게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중에 “마법사의 조카”와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선물로 주셨다고 해요. 어머니께서는 그걸 저한테 읽어주셨고요. 그걸 시작으로 “나니아 연대기” 전권에 푹 빠져서, 엄청나게 많이 읽었어요.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믿거나 말거나,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어린 제가 책의 목차를 싹 외웠다고 합니다. 이렇듯 “나니아 연대기”는 제 어린 시절을 지배한 책이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니 그 책이 제 문학적 취향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물론이고, 신학적 입장에까지 영향을 미쳤더라고요. 중고등학생 때 루이스의 다른 대표작들도 읽었습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나 “순전한 기독교” 같은 책들을요. 그 이후부터 루이스를 계속 읽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계속 읽고 있어요. 최근에는 중세 문학과 세계관에 대해 다룬 “폐기된 이미지”를 다 읽었습니다.

책에 있던 어머니의 메모
책에 있던 어머니의 메모

저는 루이스가 기독교를 다루는 방식도 좋지만, 그의 감성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그의 글을 읽는다는 건 유쾌하고 친절한 안내자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그를 좋아하는 것은 제가 철학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기독교를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거든요. 물론 도무지 용납하지 못할 부분도 있긴 합니다. 여성에 대한 관점 같은 것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루이스가 좋습니다. 그는 단점 때문에 - 그 단점이 좀 많이 크기는 하지만 - 안 읽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인물이에요. 제 신앙에 끊임없이 상상력을 더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2. 뻔한 답같지만 이런 저런 기독교 단체들이 제 신앙 여정에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제 신앙 여정을 이끌기도 했고요. 그 중에서 기독학생연대가 제일 제 신앙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기독학생의 숲'이라고 무려 1년 동안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굉장히 다양한 성격과 생각을 가진 분들이 모이시는데요, 여기서 함께 대화하면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배움을 통해 제가 교회 수련회에도, 기독 빈활에도 참여할 수 있고, 각각의 장소에서 은혜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신앙이 포용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준 단체입니다. 하나님 은혜의 폭이 한 없이 넓음을, 신앙의 길은 다 다르나 함께 걸어갈 수 있음을 가르쳐줬어요. 기학연을 비롯해서 많은 단체들이 저를 환대해주셨기 때문에, 이런 저런 만남의 장소들을 마련해 주셨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아요.

 

3. 

오늘의 신학공부 채널에 올라왔던 영상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제가 복음주의자라 그런지, 성경에서 증거 본문을 찾는데에 주목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준 영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갇혀있지 않고 살아있다는 말의 의미를 이 영상을 본 이후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상 덕분에 성경을 문자적으로 붙드는 것과 아예 무시하는 두 입장 사이에서 균형 잡을 수 있게 만들어줬습니다. 해석학의 중요성 또한 느꼈고요. 지금 가지고 있는 제 신앙의 베이스를 만들어 준 영상입니다.


지난 29호, 신간의 고백에 남겨주신 소감이에요!

  • 정말 구미당기는 책들이 많네요 ㅋㅋ → 다음에도 맛있는 책을 데려오겠습니다.
  • 마커스 보그, 마커스 에스콰이어, 마커스 코스모폴리탄... → 마커스는 프라다를 입는다...?

 

28호 서소영 님 인터뷰에 또 하나의 댓글이 달렸어요.

  • 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제 마음도 차오릅니다. 언젠가 미자립교회에서 함께하셨던 오랜 시간들에 대해서도 나눠주실 날을 기대합니다. 인터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 스카님 감사합니다.

 

다음 31호는 열일하는 틈 모니터요원 박현철과 이풍관의 큐레이션 책 소개가 함께합니다. 기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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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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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브가의 프로필 이미지

    리브가

    0
    4 months 전

    은빈님이 전역을 한지 오래 되셨다니! 시간 참 빠르네요. 인터뷰 잘 보았습니다. 복학도 화이팅!

    ㄴ 답글
  • 이해민의 프로필 이미지

    이해민

    0
    4 months 전

    은빈님을 처음 알았을 때부터 범상치 않다고 생각해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했었는데, 얼떨결에 제가 몸을 담고 있던 여러 활동으로 초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초대 가운데 각자 배운 것을 듣고 나누면서 연대를 계속 이어갔던 것 같네요 ㅎ... 5주년 행사에서 활동가로서 선언을 낭독하는 모습은 굉장히 인상깊었습니다 - 그 존재만으로도 교회의 미래는 밝기에 저 또한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계속 같이 걸어가고 싶네요 :) 인터뷰 따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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