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미입니다! 대통령 선거로 시끌시끌했던 한 달이었습니다. 사무실에 앉아 뱅글뱅글 거리를 도는 선거 유세 차량의 소리 듣다보면, ‘그래서 저이들은 어떤 세상을 바라는 걸까?’하는 상념에 빠지곤 했어요. 이렇게 운을 떼고 놓고 보니 여러분이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여러분이 바라는 세상에 한 뼘 더 가까워지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갈피책방의 책방지기, 은혜님을 만나보았어요. 은혜님을 처음 알게된 것은 <나중이 없는 민주주의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세상> 대화모임이었어요. ‘엉망진창인 이 세상을 어떻게 사랑하면 좋을까’ 그런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이었는데 은혜님이 갈피책방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대화모임에 함께한 다른 분이 갈피책방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나라 책방인가요?”라고 말씀해주실 정도로 멋지고 근사한 책방이었어요. 저도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동네에도 갈피책방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갈피책방을 제가 사는 동네로 옮겨 놓으면 갈피책방의 단골 손님들이 무진장 슬퍼하실 것이 분명하니까, 대신 청어람 매거진에 모셨어요. 은혜님과 갈피책방의 이야기 들을 준비가 되셨나요?
유미(유):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은혜(은): 안녕하세요. 저는 갈비 아니고, 갈치 아니고, 갈피책방의 지기인 은혜 라고 합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공간을 우당탕탕 꾸려가고 있어요. 책방’지기’라는 단어를 자랑스럽고 뿌듯해하고요. 책만큼 사람을 좋아합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그것이 펼쳐지는 장에 함께 있는 것을 행복해합니다.
유: 은혜님이 운영하시는 갈피책방도 소개해주세요. 갈피책방은 어떤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공간인가요?
은: 갈피책방은 이제 햇수로 4살이 된 10평 남짓한 공간이에요. 책과 커피, 직접 만들어 구운 디저트를 팔고 있고요. 책방에서 독서 모임, 작가 초청 북토크뿐 아니라 마을 활동가들 혹은 인근 도서관과 연계한 여러 모임들을 꾸준히 쌓아온 다부진 공간이기도 해요. 생각보다 작지만, 예상보다 아늑한 곳입니다.
갈피책방을 이렇게 소개할 수 있게 된 건, 그간 책방에 자신을 묻혀주신 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갈피책방이 어떤 공간인지를 소개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늘 저의 자랑스럽고도 애잔한 이웃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는 것 같아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책방에 오시는 나이 지긋한 선생님. 물건을 구매해야 하는데 마트는 너무 멀고 배달이 어려우니 인터넷으로 주문 좀 해달라며 봉다리에 때마다 먹을 것을 담아 건네며 부탁해 오는 선생님. 초등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혼자 하교하는 길에 책방에 들러 아주 뿌듯한 얼굴로 “사장님! 저 오늘 엄마 없이 혼자 집 가요!” 하던 어린이.(이 어린이는 벌써 4학년이 되었어요) 책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관찰한 장면들을 손수 써서 글을 선물해준 중학생. 면접 결과가 나오는 날 너무 떨려 책방에 왔는데 최종합격 전화를 받고는 같이 신나서 방방 뛰던 분. 갈피책방의 갈피스러움을 자랑스러워 하며, 책방에게 친구들을 소개해 주시는 분…. 책방에 어떤 분들이 오갔는지 더 많이, 더 길게 소개하고 싶은데, 지면에 한계가 있어 아쉬워요.
적고 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온기’가 얼마나 따뜻하고 소중한 것인지 아는 분들이 책방을 사랑해 주신 것 같아요. 물론 온기를 주고받는 과정, 관계가 두꺼워지는 과정에서 늘 아름답고 따뜻한 장면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래도 그간 책방이 사랑 받은만큼 저도 같이 사랑받은 것 같아 마음이 가득해지네요.
유: 갈피책방의 ‘갈피’라는 이름을 책갈피의 갈피에서 따오셨다는 글을 읽었어요. 기억하고 싶은 문장에 책갈피를 끼워두는 것처럼 책방도 그런 공간이 되길 바라셨다고요. 은혜님에게 갈피를 꽂아두고픈 공간이란 어떤 공간일까요? 처음 은혜님이 꿈꾸고 갈피를 잡으셨던 공간과 지금의 갈피책방은 얼마나 닮아 있나요?
은: 질문을 받고 며칠을 곰곰 생각해 봤어요. 너무 좋은 질문이라 멋지게 잘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막상 폼 나는 대답을 하자니 이 질문에 대해 정리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사실 갈피책방이라는 공간을 치밀한 계획하에 꾸린 것이 아니었거든요. 불과 며칠 사이, 아주 갑작스럽게 계약을 했던 거였어요. 책방 이름도 ‘비긴 어게인’ 프로그램에서 악동뮤지션 수현님이 <잔나비,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를 부르시는 걸 보고, 덜컥 꽂혀서 지었던 것이고요. 그래서 ‘갈피책방이 이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하는 그림이 제 안에 선명하진 않았고, 굉장히 추상적이고 막연했던 것 같아요. 갈피책방이 갈피스러워진 건, 책방을 스쳐간 분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좋음을 얹어주시고 그 좋음을 쌓아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오신 분들에 따라 좀 다르게 경험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누군가에겐 가볍게 커피만 마시고 가도 좋은 공간, 분주한 하루 속에서 잠시 멈춰가는 공간, 또 누군가에겐 다시 움직이고 싶어지는 에너지를 얻는 공간, 또 누군가에겐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머물다 가도 괜찮은 공간이면 좋겠어요.
유: 책방에 유독 어린이 손님들이 많은 것 같아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온 것이 아니라 태권도복을 입고 주산숙제를 하러 스스로 책방을 찾는 어린이 손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갈피책방이 어린이 손님에게 인기가 많은 비결이 있을까요?
은: 유미님에게 이 질문을 받고, 제가 한 주 동안 책방에 오는 어린이들에게 “너는 사장님이 좋아? 좋다면 왜 좋아?”하고 물어봤거든요? 각각 답이 좀 다르긴 했는데요. 대체로 친절하고 웃겨서 좋다고 하더라고요. 푸하하하하. 저는 어린이들의 언어가 참 좋아요. 어른이 건넨 작은 호의에도 마음을 열고 의존하고, 좋다는 말을 성큼 건네요.
책방 어린이들은 제가 반응해 주는 어른이라 저를 좋아해 주는 것 같아요. 어떤 어린이는 엄마랑 산책하다가 솔방울을 주웠다면서 “짜잔님~~(=사장님)”하고 들어와요. 단풍잎 같은 손으로 그걸 저한테 건네면 어떻게 녹아내리지 않겠어요. 받은 솔방울을 실에 매달아서 창문에 <ㅁㅎ가 건네준 솔방울>이라고 메모를 적어 같이 붙여 뒀어요. 솔방울을 건네준 어린이는 책방에 올 때마다 자기가 건네준 것이 창문에 잘 붙어있는지 확인해요. 그럼 그 어린이에게 책방이 특별해지는 거죠. 책방 곳곳에 어린이들이 건네준 편지, 글, 그림, 강아지풀, 솔방울이 가득 붙어있어요.
저는 어렸을 때, 교회 앞 문방구 사장님이랑 친했었는데요. 생각해 보면 그 사장님이 저한테 뭐 많은 걸 해주신 게 아니었어요. “은혜 왔니?”하고 제 이름을 기억해서 불러주시고, “친구들은 어디 가고 왜 혼자 왔어”하고 스몰 토크 나눠주신 것이 다였거든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나 여기 사장님이랑 친하다!” 이런 든든하고 뽐내고픈 마음도 들었고요. 책방을 스쳐 가는 어린이들에게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태권도복 입은 무리가 새로운 친구를 둘이나 데리고 와서는 비타민 하나 먹고 싶다고 해서 주고 왔어요.
(여담인데요. 저는 태권도복 입고 주산 숙제 하러 오는 어린이 무리에게 초코라떼를 내어주고는, “얘들아. 갈피책방 사장님이 초코라떼 주셨다고 꼭 집에 가서 말씀드려야 해. 그리고 음료 마실 일 있으면 빽다방 가지 말고 갈피책방 가자고 해야 해! 알겠지?”라고 교육하는 능청스러운 어른이기도 합니다.)
유: “친절하고 웃긴 사람”을 싫어하거나 미워하기 어렵죠. “반응해주는 어른”, “이름을 불러주는 어른”, “능청스러운 어른” 은혜님이 불리고 있고, 불리고 싶은 이름들을 들으니까 은혜님과 갈피책방이 왜 어린이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이해가 돼요. 저는 자녀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닌데, 그것과는 무관하게 제게 어린이-돌봄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동료시민이기도 하니까요. 갈피책방이 어린이 손님을 환대하는 방식을 보며 감탄했던 이유는 어린이-돌봄의 책임이 양육자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통념과 달라서 였기 때문인 것같아요. 생각과 실천은 또 다른 어려움을 품기 마련인데, 저는 생각만 하고 있고, 갈피는 실천을 하고 있으니까 더 멋져보였어요.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한 마을까지는 모르겠고, 저 책방은 그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책방을 운영하시면서 ‘돌봄’에 대한 고민이 더 생기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방을 소개해주시면서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지만, 갈피책방에는 어린이 손님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들, 그 중에서도 노년층의 손님도 적지 않은 것 같아요. 그 분들이 책방의 일이 아닌 다른 일을 부탁하실 때도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부탁에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으로, 응하시는지 궁금해요.
은: (질문이 촘촘해서 정말 너무 좋았어요. 대답 너머에 있는 책방의 풍경을 너무 잘 헤아려 주셔서 다시 한번 놀라고 신이 났고요) <<< 이 말 꼭 넣어주세요 ♥ (유미: 넣었습니다!!)
유미님이 건네주신 질문과 비슷한 질문들을 종종 받는데요. 제 안에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마음이 함께 있어요. 그리고 전 이 두 마음을 늘 동시에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제 안에서도 아직 매끄럽게 통합되지 않은 이 마음을 잘 말할 수 있을까 덜컥 망설여지지만, 알아채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들어 주시리라 믿고 최대한 정리해서 꺼내볼게요!
제 마음을 이야기하기 전에, 책방의 위치적 특징을 잠깐 먼저 설명해 드려보고 싶은데요. 갈피책방은 LH 단지 안에 있는 상가에 있어요. LH 입주 특성상 1인 생활자, 신혼부부, 소가족, 노인, 장애인, 어린이, 청년 등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한 인간의 특징을 이 범주로만 설명할 수 없지만, 길에서 다양한 형태의, 다양한 연령층과, 다양한 몸을 가진 사람들을 쉽게 그리고 자주 마주쳐요. 책방에 와서 제게 무언가를 부탁하시는 분들 역시 주로 이동하는 것에 장애가 있는, 노년층의, 혼자 사는 분들이고요. 부탁의 내용은 대체로 휴대폰 조작에 관련한 것이거나, 필요한 물건을 주문해달라는 것이에요. 거주하는 곳에서는 선생님들의 걸음으로 대리점도, 은행도, 마트도 멀거든요. '배달이 되는 마트'는 더 멀어요. 심지어 3만 원 이상 주문을 해야 하는데, 혼자 사는 분들이 필요 때마다 3만 원 이상씩 주문하기엔 무리이죠.
이런 배경 안에서 부탁에 응하는 제 마음을 이야기해 보고 싶은데요. 책방에서 다양한 이야기와 사람이 담기길 바라지만, 책방은 영업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잖아요. 돈을 벌어야 책방도 유지되니까요. 책방과 관련한 업무를 처리하고 응대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모자랄 때가 있는데, 책방 외의 개인적인 부탁을 해오시면, 심지어 하루에 여러 명이 오시면 난감하고 마음이 지치는 것이 사실이에요. 심지어 '책방 가면 사장이 친절해서 도와준다' 소문이 나기도 해요. 어떤 어린이는 제게 '사장님은 돈보다 가치 있는 일을 더 좋아하시잖아요'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그 말로 충분하지 않아서 이상하게 힘이 빠지고 멈칫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닌데. 나 돈 엄청 많이 벌어서 더 넓은 곳으로 책방 이사 가고 싶은데.', '나 친절을 좋아하지만은 않는데. 싸우기도 잘 싸우고. 거절도 잘하는데' 싶고요.
그런데도 가능한 부탁에 응하는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이유는 제 할머니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제가 책방을 하기 전에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프리랜서 일을 오래 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잃게 됐어요. 그 시기에 치매 진단을 받은 할머니가 저희 집에 함께 살게 되었고, 직장이 없는 제가 자연스레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죠. 그때 정말 많은 생각을 했고 값진 것들을 배웠어요.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뭘까, 병들고 아파도 불안하지 않은 사회가 될 순 없을까, 할머니가 안전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어떠함만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 나는 어디에/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 할머니를 위해 '하고' 있는 것 만큼이나 '받고' 있는 것은 없나?…. 할머니의 휠체어를 끌면서 울퉁불퉁한 도로가 사람의 마음을 울퉁불퉁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신호등의 신호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것도, 주차장의 주차선이 휠체어를 올리고 내리기엔 너무 좁다는 것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알게 됐어요. 그리고 이것을 할머니와 함께 몸으로 배워가는 과정에서, 할머니를 존중하는 태도로 건네 주시는 말과 대가 없이 거저 받은 도움들이 사람을 얼마나 감동시키는지도 경험했어요.
신호가 없는 곳에서 휠체어를 끌면, 차 방향으로 손을 뻗으며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도로를 같이 건너주시던 이름 모를 분들. 파마하러 미용실에 가면 할머니가 안전하게 의자에 앉을 수 있게 좌석을 미리 치워 넓혀주시고, 샴푸 의자에 편하게 앉을 수 있게 같이 부축해 주시던 사장님. 치매에는 치료약이 없지만 바뀌는 약에 따라 할머니의 증상을 자세하게 묻고 상담해 주시면서 약을 처방하고 진료를 봐주시던 의사 선생님. 할머니가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다고, 나이가 들면 어서 죽어야 쓴다고 우울해하면, 할머니가 가진 장점을 커다랗게 언급하며 존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 주셨던 주간보호센터 선생님. 외에도 크고 작게 받은 도움이 정말 많았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마주치면 그렇게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이야기가 길어졌는데요. 저는 책방에 오시는 선생님들과 저희 할머니의 얼굴이 자주 겹쳐 보여요. 선생님들이 제게 무언가를 부탁하지 않고도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와 시스템이 촘촘해지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제도와 시스템이 다 가닿을 수 없는 지점도 있잖아요. 그리고 그 지점에서 우리는 모두 서로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돌봄'이라는 말이 사실 되게 거창해 보이지만, 저는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저 역시 누군가의 크고 작은 돌봄을 받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책방에 와서 무언가를 부탁하시는 선생님들에게 제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 같지만, 선생님들이 제게 주시는 것도 있어요. 제가 선생님들의 모든 부탁에 응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 기준을 세워 거절을 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드리는 경우도 있고요. 그것까지 쓰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이만 생략하겠습니다. (건네주신 주제의 질문은 제가 아주 오래 전부터 고민해왔고, 잘 말하고 싶은 질문이라 대답이 길어졌습니다. 언젠가 책으로 엮어내는 것이 저의 작은 목표 입니다!)
유: 갈피책방의 일상에서 갈피를 꽂아두고픈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은 어느 때일까요?
은: 정말 잊지 못할 날이 많지만, 그중 하나를 힘겹게 꼽아보자면 저는 2022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를 소개하고 싶어요. 책방에 오시는 나이 지긋한 선생님들 가운데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명절이나 기념일을 유독 외로워하는 분들이 계세요. 연휴나 기념일이 다가올 즈음이면 “책방 문 열어요?”하고 물어오시는 분들이 꼭 있거든요. 그날도 마찬가지였어요. 한 선생님께서 “크리스마스이브에 책방 문 열어요?” 하고 물어보시길래, “고민 중이에요. 선생님은 이브에 뭐 하세요?” 되물었거든요. 그랬더니 “이브에 내가 뭘 하겠어요. 명절이나 연말이 오면 더 외로워.”하시는 거예요. 그땐 그냥 지나쳤지만, 그 말이 며칠 동안 제 마음에 둥둥 떠다녔어요. 사람들이 기다리는 날이 누군가에겐 오히려 더 쓸쓸한 날이 될 수도 있구나 싶기도 하고, 나도 선생님들 나이가 되면 쉼이 허전하고 외롭게 느껴지려나 싶기도 했고요. 다른 날도 아니고 크리스마스인데 선생님들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작은 모임을 열었어요.
막상 모임을 여니 사람들이 모이더라고요. 제 할머니도 오셨고, 단골 선생님들도 오셨고, 옆 김밥집 사장님 손녀도 왔어요. 제 친구들도 삼삼오오 모여서 준비를 도와주었고요. 같이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간식도 먹고, 선물 교환도 했어요. 옆 가게 사장님은 떡볶이랑 김밥도 만들어 주셨고, 어떤 친구는 선물이 부족할까 봐 여분으로 몇 개 더 챙겨와 주었어요. 또 누군가는 영화를 보다가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었고요. 선물 교환 순서엔 ㅅㅇ(김밥집 사장님 손녀)이가 아주 똘똘하게 사회도 봐주었어요. 그냥 같이 먹고, 웃고,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다들 너무 행복해하셔서 마음이 커다랗게 좋았고, 주는 것과 받는 것이 구분되지 않는 시간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음 해였던 2023년에도 모임을 열어서 시간을 보냈어요.
유: 갈피를 꽂아 두고픈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샘이 나는 것인지, 책방을 운영하시면서 책장을 휘리릭 넘겨 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으신지를 여쭙고 싶어요. 은혜님은 그 순간을 어떻게 지나오시나요. 노하우가 있으실까요?
은: 샘이 난다는 말, 너무 귀엽고 감사한 말씀이에요. 그 마음에 부응하듯 '책방에서 함께한 모든 순간이 눈부셨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데요. 사실은 책장을 휘리릭 넘기는 정도가 화르륵 태우고 싶을 때도 있어요. 타인에게로 뻗어 나가는 것과 나 자신을 보호하는 일 사이를 오가며 멀미를 느끼기도 하고요.
질문을 받고 '그런 시간을 어떻게 지났더라' 기억을 더듬어 보았는데요. '내가 왜 책장을 휘리릭 넘기고 싶은지' 살펴보는 것 같아요. 도망가고 싶은 마음인지, 버거움인지, 슬픔인지, 억울함인지, 짜증인지, 피곤인지, 질투인지, 걱정인지, 외로움인지 들여다보고, 우선은 그걸 그냥 그대로 인정하려고 애써요. 인정하는 과정에서 제 안에 있는 자원이 부족할 때면, 제 바깥에서 도움을 받기도 해요. 기도를 하거나, 제가 신뢰하는 친구들에게 마음을 꺼내놓기도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와 비슷한 결과 맥락의 고민을 가진 이들의 사유와 언어를 나눠 받기도 해요. 그래도 안 되면 그냥 침잠하는 것 같은 감정이 흘러가고 털어질 때까지 오래 머물러 있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종종 '아. 우울함에 머물 줄 아는 나, 진짜 멋지다'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어요.
이것저것 두서없이 말해보았는데요. 그 순간을 어떻게 지나는지에 대한 노하우는 저도 늘 궁금해요. 좋은 노하우 있으면 제게도 지혜를 노나주세요!
유: 책방 밖에서 흐르는 은혜님의 시간도 궁금해요. 은혜님은 주로 무엇을 하시면서 책방 밖의 시간을 보내시나요?
은: 책방 사장님은 보통 여유롭고 차분한 날들을 보낼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물론 책방지기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책방에 있는 동안에는 매일 어떤 ‘자극’과 ‘연결’ 속에 있는 느낌이에요. 늘 책방은 차분한데 저 혼자 바빠요. 그래서 책방 바깥에서 오롯이 하루를 쉴 수 있을 땐, 모든 스위치를 끄고 절전 모드에 들어가는 편이에요. 휴대폰도 거의 보지 않고요. 게으르고 무용한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잘 자고, 맛있는 걸 먹고, 요가를 하며 몸과 마음을 풀어내기도 하고, 푸릇한 걸 보며 산책도 해요.
물론 매번 집에만 있는 건 아니고요. 보고 싶은 전시나 영화가 생기면 보기도 하고, 제 관심사와 맞닿은 모임이 열리면 신청해서 참여도 해요. 친구들 만나서 쓸모없는 이야기 나누면서 아무말 대잔치 벌이기도 합니다. 아! 요즘은 ‘백패킹’에 관심이 생겼어요. 당근에 올라온 장비들을 열심히 기웃거리고 있는데요.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도전(?)해 보고 싶어요.
유: 은혜님에게 지금 중요한 신앙적 가치는 무엇일까요?
은: 이 질문을 며칠 동안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는데요. 문득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베뢰아 사람들이 떠올랐어요.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행 17:11, 개역개정)
베뢰아 사람들이 성경을 어떻게 상고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서술되지 않아요. 다만 ‘바울이 말한 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했다는 구절을 통해 상상해 보기로는, 권위자가 무언가를 말했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아멘!’한 것 같지는 않아요. 오히려 ‘바울이 말한 게 진짜일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과연 그럴까?’ 질문하면서 여러 각도에서 바울의 메세지를 살펴보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런 태도를 통과하지 않은 채 행해지는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때때로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가, 자주 생각해요.
제가 성경에서 발견하는 예수님은 ‘다수의 말, 권위자의 말은 무조건 믿고 순종해라’ 하시는 분이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이라 믿니?’ 질문하며 제가 어떤 상고의 과정을 거쳤는지, 제가 믿는 것이 어떤 과정을 경유했고, 무엇을 향하는지 궁금해하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제자들이 “예수님. 누구는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하고 예레미야나 예언자 중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할 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물으셨던 것처럼요.
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은혜님이 실천하고 있는 게 있으신가요?
은: 입체적인 상고와 좋은 질문은 제 안에 담긴 것만 들여다본다고 얻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제가 경험해 보지 못한 누군가의 삶에 귀 기울이고, 제가 모르는 세계를 존중하려 애쓸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책’은 그 태도를 연습하기에 정말 좋은 매개라고 느껴요. 이 책을 재료 삼아 여러 모임을 열고, 참여하는 것이 제가 실천하고 있는 기특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과정이 언제나 멋지고 유쾌하지만은 않아요. 때론 피곤하고 버겁고,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어요. 아주 가끔 모임 중에 충돌이 있기도 하고,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기기도 해요. 그래도 꾸준하게 모임을 열고, 더 좋은 질문을 만들어서 모임을 꾸려가는 것이 제가 힘써 용기 내는 일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저는 갈피책방이 이 상고의 과정을 연습하는데 안전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안전한 공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기도 하지만요. (질문 무한루프)
유: 마지막 질문입니다. 최근 읽은 책 중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으신가요?
은: 3권을 추천하고 싶었는데요. 3권 모두 최근에 읽은 책들은 아니에요.
①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 웅진지식하우스, 2018)
이 책은 일본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를 다룬 이야기예요.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주문을 받는 직원들은 모두 치매가 있는 분들이에요. 당연히 주문을 잘못 받거나, 옆 테이블과 음식이 바뀌거나, 잊어버리는 일들이 생기죠. 하지만 손님들은 그런 실수와 틀림을 교정하지 않고, 그대로 누리고 즐겨요. 음식이 잘못 나오면 잘못 나온 음식을 먹고요, 음식이 조금 늦게 나와도 기다려요.
이런 사회 실험 혹은 상상력이 담긴 공간들이 자주 등장하면 참 좋겠다 싶어요. 아! 이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에서도 동일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KBS에서 다큐로도 제작되었더라고요.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함께 살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youtu.be/fGM2Qzs29jc?si=laeYtl1pcXdY2yXf
② i에게 (김소연 · 아침달, 2018)
김소연 시인은 저의 첫 시인이에요. 2023년에 <i에게> 시집으로 책방에 김소연 시인을 모시고 북토크를 진행했던 적이 있는데요. 좋은 질문을 건네고 싶은 마음에 <i에게>를 읽고 또 읽었어요. 그러다 명료한 의미로 다 설명되지 않는, 그래서 더 자유롭게 느껴지는 시의 언어에 퐁당 빠지게 되었는데요. 당시 <i에게>를 읽으면서는 ‘나’, ‘너’, ‘우리’, ‘안’, ‘밖’을 오가며 제가 무서워했던 것, 슬퍼했던 것을 덤덤하게 떠올렸던 것 같고. 시를 읽는 동안 시인이 그 장면에 덤덤하게 같이 있어 주는 것만 같아 참 좋았어요.
<i에게>는 시집의 제목도 좋고, 마치 틀린 그림 찾기처럼 자세히 보아야 발견되는 표지도 인상적이에요. <i에게> 안에 묶인 모든 시가 참 좋지만, 저는 <다른 이야기>, <바깥>, <출구>, <i에게>, <쉐프렐라>, <우산>, <과수원>에 갈피를 끼워두었어요.
③ 연의 편지 (조현아 · 손봄북스, 2019)
연의 편지는 네이버 웹툰으로 연재되었던 책이에요. 주인공 소리는 따돌림당하는 친구를 도우려다가 함께 집단 괴롭힘을 당해요. 결국 전학을 가게 되고, 첫날 자신의 책상 밑에 붙어있는 편지를 발견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책은 그림체가 정말 예쁘고요. 읽고 나면 마음이 아주 따뜻해지는 책이에요. 책 커버에 욕심이 없는 편인데 이 책은 유일하게 양장본 특별판으로 소장하고 있어요.
저는 이 책의 178~195페이지와 마지막 장면을 가장 좋아합니다.
지난 호에 보내주신 답장을 소개드릴게요!
- [23호: 이 책 한번 잡솨봐 - 대선을 앞두고 읽으면 좋을 책들]에서 정창기님과 박현철님 두 분 모두가 <종교성과 세속주의 사이: 기독교 세계와 세속주의 이후의 공공신학>을 추천하시는 걸 보니 정말 꼭 읽어 봐야 할 책인 것 같군요. 아~ 근데 너무 두껍고 어려운 책일 것만 같은~~~ → 도전을 하셨을까요?! 혹시 읽어보셨다면 저희에게도 소감을 나누어주세요!
다음 호에는 6월에 어울리는 다채로운 책을 소개시켜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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