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16호: 청어람에 새침한 ‘시인’과 재미 추구 ‘활동가’의 등장이라…😇

청어람의 신입 간사들을 소개합니다!

2025.02.01 | 조회 1.15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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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람AR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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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사회 사이 -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

안녕하세요! 오수경입니다. 긴 연휴가 끝나니 2월이 냉큼 문을 두드리네요. 2월 잘 맞이하셨나요? ‘2월’은 어떤 것을 끝내기에도,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도 적당한 달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시작이 조금은 어설퍼도 괜찮고요. 우리에게는 ‘3월’이라는 또 한 번의 시작이 있으니까요! 오늘 소개해 드릴 분들은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에요. 바로… 2월부터 청어람에서 활약할 두 명의 신입 간사들입니다! 청어람 ‘스텝‘이 아닌 ’김유미‘ ’이풍관‘이라는, 새로운 시작점 앞에 선 사람들로서의 이야기를 먼저 소개해 드리고 싶어서 ‘틈’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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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경(수경)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김유미(유미) : 김유미입니다. 주일에는 기독교대한감리회 동녘교회에서 교육부 전도사로 일하며 어린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피구놀이가 근래에 낙이예요. 열심히 피구를 하다 보면 꼭 한 녀석씩 양말에 구멍이 나는데 구멍 난 양말을 보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요. 주중 저녁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원우님들과 먹는 야식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야식을 먹으며 그날그날 배운 것들을 되새김하는 일도 즐겁다고 적어봅니다. (교수님! 보고 계시죠!) 그리고 2월부터는 청어람에서 간사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쓰리잡의 사람이 되었군요! ‘무진장 바쁘겠구나!’ 싶지만.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놀 궁리를 멈추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풍관(풍관) : 안녕하세요. 저는 이풍관입니다. 네 살 아이를 키우는 아빠이고요. 개신교 목사입니다. 선교단체 캠퍼스 간사, 지역교회 교육목사로 일하다가 2023년 8월부터는 아내가 외국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한동안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지냈습니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은 육아가 저의 주된 역할이었습니다. ‘이새해’란 필명으로 시를 쓰고 있기도 해요. 제가 2월에 첫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는데요! 소규모 출판사로서 그간 좋은 시집들을 펴내온 '아침달'에서 첫 시집을 내게 되어 무척 영광입니다. 뜬금없는 홍보 송구하지만 궁금해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잠시 잠깐의 관심도 창작자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ㅎㅎㅎ

수경 : 오! 시집이라니…! 다음에는 ‘저자’ 인터뷰를 해야겠군요^^ 설날 연휴가 지났으니 이제 ‘빼박’ 2025년인데요. 2025년에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세 가지만 이야기 해주세요.  

유미 : 우선, 새로운 직장에서(청어람에서!) 일을 하게 되었으니 일을 통해 뿌듯함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재미나고 유익한 콘텐츠 기획을 해서 여러분의 박수를 받고 싶습니다. 박수 칠 준비를 해주세요. 두 번째는 살림 능력을 키우는 일입니다. 바쁜 일상을 보내며 집안살림을 챙기는 것에 늘 소홀하곤 했는데요. 올해는 작년보다 조금 더 집에서 밥도 잘 챙겨 먹고, 미루지 않고 하루치의 집안일을 꼬박꼬박 해내는 멋진 생활인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한 달에 한번 배우자와 잊지 않고 데이트를 하고 싶습니다. 명색이 신혼인데! 일상을 보내다 보면 데이트를 잊게 되곤 하더라고요. 한 달에 한 번은 잊지 않고 데이트하며 개봉한 영화를 챙겨보고, 전시도 보면서 정기적으로 코에 바람을 넣고 싶습니다. 잘 놀아야 잘 일할 수 있으니까요! 

풍관 : 먼저, 뮤지션 강아솔의 단독공연에 가고 싶습니다! 인생이 막막할 때마다 강아솔의 음악에 크고 작은 위로를 얻었거든요. 새 앨범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어요. 두 번째는 여름 바다에서 아이랑 튜브 타고 놀고 싶습니다. 제주도 금릉 해수욕장이면 좋을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는 사진 강의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만 배워 본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사람들이 거쳐 간 자리에 남아 있는 사물들을 잘 찍어 보고 싶어요!

수경 : 풍관 님은 신학을 전공했지만 시인이기도 하잖아요. 시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신앙의 언어와 시의 언어가 어떻게 같고 무엇이 다를까요? 

풍관 : 저는 신학이 재밌었어요. 사춘기 내내 예수님을 사랑하고 싶었지만 잘 안 됐거든요. 의심이 많아서요. 그런데 어떤 계기로 덜컥 그분을 좋아하게 되어버린 거예요. 여전한 의심과 싱싱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어요. 신학교에 입학했더니 의심과 질문을 장려하더라고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자유로웠고요. 당시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들이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셨던 현대신학의 언어들이 축복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신학 덕분에(혹은 신학 때문에) 저는 기독교를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어요. 하지만 신학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아득하게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었어요. 특히 저는 사회적 현상이나 제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제가 접했던 신학은 '삶'에 관한 이야기를 충분히 들려주진 않았어요. (그 시기에 청어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답니다!) 

그러다 우연히 허수경, 최승자, 김소연, 신해욱 시인들의 시집을 알게 됐고, 그분들의 시가 저 자신보다 제 마음을 더 잘 아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그때 완전히 반했고 이후로 계속 반해 있습니다. 처음 시의 언어를 접하던 시기에는, 제가 신앙의 언어에서 벗어나 시의 언어로 달아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신앙은 촘촘한 그물망을 동원해서 삶을 특정한 의미 안에 가두려는 언어처럼, 시는 쉽게 의미화될 수 없는 이미지와 리듬에 기대어 그 그물망을 빠져나가려는 언어처럼 느껴졌거든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 면이 있긴 하지만, 최근엔 어쩌면 둘 사이가 내 생각보다 가까운 것 아닐까? 싶기도 해요. 두 언어 모두 삶의 복잡성과 언어 자체의 한계를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닮아 보이거든요. 일상에 감추어진 진실에 귀를 기울인다는 측면에서도요.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오랜 역사와 다채로움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수록, 제가 제 경험의 틀 안에서 신앙의 언어를 단정 지었었단 생각도 해요.

수경 : 유미 님은 고등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신학을 전공하게 되었는데 공부만 하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하신 거로 알고 있는데 주로 어떤 활동을 하셨어요? 그게 신학과 어떻게 연결되었나요? 

유미 : “공부만 하지 않고 활동을 했다”라고 하기에는 모든 것이 공부였고, 또 모든 것이 활동이었어요. 저에게는 그 경계선이 참 흐릿해요. 신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고난함께’와 ‘옥바라지선교센터’에서 활동하며 예배상을 차리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배웠어요. 거리 한복판에 천을 깔고, 십자가를 세울 때, 쌩쌩 달리는 차 소리와 천막을 힐끔 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뒤로하고 타종을 할 때, 짧은 침묵 속에서 마음을 다잡는 방법도 배웠고요. 거리에서 배운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실에서의 배움과 크게 달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쫓겨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은 교실에서건 거리에서건 어디에서건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유미 님과 예배상
유미 님과 예배상

수경 : 그러고 보니, 풍관 님은 시 속에서, 유미 님은 거리에서 하느님을 계속 만나온 것이네요. 두 분이 만난 하느님은 어떤 분들인가요? 

풍관: 하나님은 저에게 ‘제 의심보다 큰 분’으로 다가오셨어요. 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아직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애’로 자랐거든요. 성경엔 노력해도 안 믿어지는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교회에서 배운 거룩한 삶과 제 자신의 초라한 신앙 사이에서 느끼는 괴리도 컸고요. 고등학생 때 우연히 금요기도회에 참석했는데요. 그 자리에서 저의 오랜 의심과 불만을, 실은 하나님께 버려진 것 같다는 거절감을 토로하듯 고백했어요. ‘이제 나는 당신 없는 거 다 안다. 기독교에 지쳤다. 졸업하면 교회 떠날 테니 붙잡지 마라.’ 거의 협박 수준으로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이상하게 산뜻한 거예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던 평화가 제 안에 찾아왔어요. 꽤 오래 지속됐고요. 그 시기에 저는 제가 어떤 모습이어도 하나님께는 괜찮다는 사실을 실감했어요. ‘아니,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고 있는 나조차 충분히 받아들일 만큼 품이 넓은 분이라고?’ 이렇게 놀라면서 말이죠. 그때 경험했던 ‘안전하다’는 감각이 제 신앙의 여정에서 중요했던 것 같아요. 이후로는 어떤 사람들이 ‘거기엔 하나님 없다’고 아무리 겁을 줘도, 저는 ‘아닐 텐데’ 생각할 수 있어요. 고전적인 기독교 전통 안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언어들 속에서도 언제나 낯설고 새롭게 나타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적인 활동을 기대할 수... 앗, 회심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ㅎㅎㅎ  

유미 : 질문을 듣고 초록색 천막과 빨간색 세상이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초록색 천막의 농성장에서 시간을 하루만 보내도 밖으로 나왔을 때 순간적으로 세상이 빨갛게 보여요. 잘 알지는 못하지만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 몸이 벌이는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농성장에 드나들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세상이죠. 그 이전에 내가 알고 지냈던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빨개진 세상을 보며 깨닫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하느님은 빨간 세상을 보여주신 분이에요. 

수경 : 2월부터 청어람에서 일하게 되셨는데요. 청어람이 두 분에게는 어떤 곳이면 좋겠어요?  

유미 : 판을 벌려주는 곳이면 좋겠어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누울 자리가 있어야 이불을 펴고 눕거든요. 또 좋은 아이디어는 쓸데없는 말들 사이에서 나온다고 믿는데요. 청어람의 동료들이 저의 쓰잘 떼기 없는 말들을 들어주시고, 감당해 주시고(견뎌라! 당신들이 고른 동료다!), 웃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소소하고 커다란 바람이 있습니다. 

풍관 : 저는 청어람에서 좋은 동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같이 일하는 간사님들뿐만 아니라, 모임을 통해 만나는 분들과도 동료가 되고 싶어요. 때로는 느슨하게. 또 긴밀하게요. 교회를 사랑하지만 교회 안에서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교회를 미워하지만 인생에서 기독교를 내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고, 나누는 ‘살롱’ 같은 곳이면 좋겠습니다.

수경 : 그렇다면 청어람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싶나요? 

유미 : 저는 요즘 ‘재미’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재미가 곧 지속가능성이 아닐까?’ 하는. 청어람의 빛나는 가치에서 저는 지속가능성을 담당하고 싶어요. 제가 청어람에서 하고 싶은 역할은 청어람의 기획 안에서 재미요소를 챙기는 일입니다. 청어람의 가치가 보다 오래오래 멀리멀리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풍관 : 제가 청어람 지원서에 적었던 내용이기도 한데요. 저는 뭉툭하고 안일한 신앙의 언어에 소진된 그리스도인들이 디딜 수 있고, 디디고 싶은 신앙의 언어들을 청어람 사람들과 함께 발견하고 싶어요. 좀 더 나아가 한국 기독교의 언어가 더 용감하고 섬세해지는 데 기여하고도 싶고요. 그러려면 일상에 발을 잘 딛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때론 구체적인 사안 앞에서 용기도 필요할 테고요. 겁 많은 저로선 솔직히 두렵기도 하지만, 청어람에서라면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풍관 님과 풍관 님네 어린이
풍관 님과 풍관 님네 어린이

수경 : 청어람이 두 분께 좋은 ‘판’이 되면 좋겠네요. 두 분 모두 다재다능한 것 같아요. 그중 이것만큼은 남다르게 잘한다고 생각한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풍관 : 앗 제가 다재다능한 캐릭터는 아닌데!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제가 평소엔 꽤 우유부단한 편인데요. 정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일 앞에선 재지 않고 직진하는 것을 잘합니다. 인생이 위태로워지는 줄도 모르고요. 물론 그 선택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를 감당하는 과정에서는 구시렁거리기도 하지만요. 

유미 : 제가 앞 구르기를 정말 잘하는데 이것은 선보일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보여드릴 수 있는 것들 중에서 찾아보자면, 저는 ‘제출’을 잘합니다! 마감에 쫓기며 울지언정 펑크를 내지 않고 약속을 지키는 것을 잘하고요. 이건 참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수경 : 유미 님이 앞 구르기를 하며 마감하는 풍경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필요하시다면, 자리를 만들어 드릴게요. 그런데 두 분은 스트레스받을 때는 어떻게 해결하나요?

유미 : 스트레스는 수용성이라고 생각해요. 보통은 씻고 자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결하곤 하는데요. 그래도 나아지지 않으면, 만화방에 가서 만화책을 쌓아두고 봅니다. 어려움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성장하는 만화 속 캐릭터들에게 위로를 받으면, 현실로 돌아올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수경 : 그중 추천하고픈 만화가 있다면…?

유미 : 지금 책장에서 가장 잘 보이는 만화는 쓰루타니 가오리 작가의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라는 만화책이에요. 할머니가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든 만화책을 통해서 서점의 아르바이트생인 고등학생과 친구가 되는 이야기인데요. 주인공 할머니가 여러모로 정말 멋진 사람이어서 ‘나도 이런 어른, 이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라는 소망을 갖게 하는 만화였어요. 밝고 따뜻한 만화여서 몸과 마음이 눅눅한 날 읽으면 금방 건조기에서 나온 수건 같아질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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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관 : 저는 카페에 가요. 카페를 좋아하는데요. 카페에서 수다 떠는 것도 좋지만, 혼자 앉아서 일기 쓰는 걸 조금 더 좋아해요. 일기처럼 목적 없는 글쓰기를 하다가 몸과 마음이 가뿐해지는 순간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쓰는 일기는 대체로 뻔한 다짐으로 마무리되지만, 그렇게 다짐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스트레스 해소에도 무척 도움이 됩니다. 사실 카페는 스트레스받지 않을 때도 갑니다. 매일 갑니다. 실명의 카페 중독자랄까요. ^^

수경 : 실명의 카페 중독자라니… ㅎㅎㅎ “다짐으로 돌아간다”는 게 참 인상적이네요. 최근에 했던 다짐 하나만 알려주세요.

풍관 : 제 배우자가 저를 보며 놀리듯 던지는 말이 ‘너 참 새침하다’인데요. 인정합니다. 그저 조심스러울 뿐이라고 변명하곤 했지만요.. 저는 먼저 다가서기보다는 지켜보거나 기다리는 게 익숙해요. 그 태도가 차가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 같네요. 얼마 전 제가 존경하는 정신실 작가님께서 저 같은 사람은 먼저 다가서고,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 영성 훈련일 수 있다고 조언해 주셨었거든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제가 먼저 다가서기로요. 쉽진 않지만 열 번만 해보려고 합니다. 새침하게(라도) 다가서기. 이것의 저의 새해 다짐입니다. 

수경 : 그 다짐을 청어람에서 잘 실천해 보세요! 그렇다면 두 분은 꾸준하게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유미 : 동네 골목을 지나갈 때 놀이터에 모인 어린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일, 함께 사는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보는 일, 쉬는 날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 일, 내가 흥얼거리던 유행가를 바로 알아차리고 따라 부르는 짝꿍을 바라보는 일… 같은 일상의 장면들을 좋아해요. 이 일상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부와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동네 골목의 어린이들의 웃음소리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권을, 함께 사는 고양이의 기지개에서 동물권을, 쉬는 날의 소중함에서 노동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서 다양한 사랑의 모습과 가족의 구성권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는 식이죠. 꾸준하게 좋아하게 좋아하는 일에 대해 말하다가 꾸준하게 활동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네요.

수경 : 아, 빼박 ‘활동가’시군요. ^^

풍관 : 음악 듣기예요. 저는 음악을 잘 모르고, 못 하지만 듣기는 참 좋아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노래를 찾아 듣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는데요. 저는 아직 아닌 것 같아요. 제 인생의 어떤 시기를 함께했던 곡들도 좋지만, 새로 찾은 뮤지션이 오늘 발표한 신곡도 좋아요. 어떤 노래가 제 하루와 딱 맞물린 채 오랜 기억 속에 저장되는 즐거움이 평생 지속되면 좋겠습니다. 최근엔 '단편선 순간들'의 신보 '음악만세'를 너무 좋게 듣고 있는데요. 갑자기 무려 15년 전 청어람에서 뮤지션 '단편선'의 강연을 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이후로도 단편선의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는데 이번 앨범이 너무 좋아요.

수경 : 우왓! 단편선 강연을 기억하시다니… 청어람 덕후세요? ^^ 두 분은 어릴 때 장래희망이 뭐였어요? 그리고 지금 장래희망은 뭔가요? 

유미 : 켄 로치같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서 영상을 전공할 수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는데요. 영화를 만드는 것과 영화를 보는 것의 차이에 대해 절감하며 ‘나는 좋은 관객이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지금의 장래희망은 좋은 관객이 되는 것을 포함해서 초록이(가명, 제가 일하고 있는 교회 최연소 교인)에게 부끄럽지 않은 목회자가 되는 것이에요. 초록이가 커서 교회를 다니든 다니지 않든 간에 기억 한구석에 있는 김유미라는 사람이 창피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풍관 : 어릴 땐 스포츠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축구, 야구, 농구 같은 구기종목들을 좋아했지만 선수를 꿈꿀 만큼 잘하진 못했거든요. 멋진 경기를 매일 보는 인생은 얼마나 즐거울까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사춘기 이후로는 장래희망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장래희망이 조금 생겼는데요. 삶의 표면을 잘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특히 제가 사용하는 물건과 집기들, 제 방과 옷가지 같은 것들이요. 제 손에 닿는 사물을 아끼고 살피는 사람이 되어가고 싶어요. 제 자신을 고스란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도 되고 싶어요. 저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멋지고 아름다운 말들로 포장하지 않고 솔직히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요. 좀 허술해 보여도 투명하고, 언제든 다가서고 싶은 사람? 저로선 꾸준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수경 :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인터뷰는 항상 ‘책’으로 끝나거든요. 최근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을 추천해 주세요. 

유미 : 저는 교회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 설교를 하는데요. 얼마 전에 <실패가족>이라는 그림책을 어린이들과 함께 읽었어요. 어린이들을 포함해서 교인들이 참 좋아했던 책이어서 여러분들에게도 소개드리고 싶네요. 그림책 속에는 실패를 번번이 일삼는 가족들이 나와요. 가족들 중 유일하게 상심이만 실패를 하지 않죠. 상심이는 실패하지 않는 비법을 알고 있거든요. 상심이의 비법을 알고 싶으신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요. 올해의 계획을 세우며 덜컥 겁부터 났거나 한숨으로 가득했던 분이라면 더더욱 추천입니다. 책장을 덮으면, 실패하지 않는 방법은 홀라당 까먹고 올해 얼마나 멋진 실패를 해볼까 마음먹게 될 거예요. 

풍관 : 저는 최근 퀴어 흑인 페미니스트 작가인 알렉시스 폴린 검스의 <떠오르는 숨>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이 책의 부제는 ‘해양 포유류의 흑인 페미니즘 수업’인데요. 부제 그대로 해양 포유류에게서 배우는 삶의 안내서예요. 숨쉬기, 듣기, 관계 맺기, 취약해지기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인간에게 시급한 지혜가 담겨 있어요. 많은 분들이 동의하시겠지만, 저 역시 성차별과 인종차별, 가부장제, 그리고 자본주의가 우리 모두의 생명력을 앗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문제의식만큼 중요한, 어쩌면 그보다 더 저에게 필요한 구체적인 감각과 상상력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의 문장을 빌려 말하자면 ‘단순히 어떤 대상이 무엇인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더 깊이’ 들어가게 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가가 작년에 쓴 시인 ‘오드리 로드’의 평전도 번역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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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는 ‘2025년을 시작하는 책’을 권해드렸는데요. 소중한 답장이 도착했어요. 

  • 소개해 주신 책 들 중에 유독 성경 책이 눈에 띄네요~ㅎ 저는 기본부터 다시! 올해를 시작하며 성경부터 읽겠습니다^^ 책 소개 감사해요! → 역시 ‘기본’의 소중함을 아시는 독자님! 응원합니다!
  • 보내주신 추천사들을 보고 새해 첫 책들을 몇 권 골라잡았습니다. 좋은 큐레이션에 늘 감사해요! 청어람에도 새해 복과 평화가 가득하길! → 무슨 책 골라잡으셨는지 궁금하네요. 덕담 덕분에 새해 복과 평화가 소복소복 쌓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틈’에서는 독자님의 소중한 답장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다음 호에는 새해에도 책을 고르느라 시간과 재산을 탕진… 아니, 투자하고 있는 신간 모니터 요원의 책 소개가 이어집니다.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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