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피시노마드 인생 2막

미국 비즈니스를 접고 한국에 학교를 세운 이유

한국의 탈북 청소년을 향한 새로운 가치와 사명

2024.10.30 | 조회 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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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시노마드 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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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라님의 셀피시노마드 인생 선언문
전 사라님의 셀피시노마드 인생 선언문

캘리포니아의 안락한 삶, 성공한 비즈니스, 모두가 부러워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그녀가 50이라는 나이에 전부를 뒤로하고 한국행을 선택했습니다.

단순한 신념으로 시작한 탈북 청소년 교육의 길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건강을 잃고 시련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녀는 편안한 삶을 버리고 이 힘든 길을 선택했을까요? 무엇이 그녀를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요?'

남북한 청소년들이 함께 공부하는 다음 학교의 전사라 교감 선생님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나는 왜 이 땅에 왔을까? 내 삶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녀의 놀라운 인생 여정 속에서,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특별한 사명과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 용기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다음 학교 학생들
다음 학교 학생들

 

인터뷰 핵심 요약


  • "못사는 분단국가"라는 미국인들의 시선에 마음 아파하던 그녀는, 조국의 젊은이들을 교육하겠다는 사명감으로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 30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문화적 충격과 탈북 청소년 교육의 어려움으로 기억 상실과 자율신경 장애라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 하지만 그 과정에서 탈북 청소년들의 특별한 가치와 무한한 성장 잠재력 발견하게 됩니다.
  • 남한과 북한 학생들이 서로를 이해하며 만들어가는 새로운 문화를 보면서, 한반도 다음 세대를 향한 더 큰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 많은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학교를 이어올 수 있었고, 이제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 구축과 새로운 리더십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자기소개와 현재 하시는 일은?


저는 현재 탈북 청소년 다음 학교의 교감으로 일하고 있는 전 사라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다가 2007년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남북한 청소년이 함께 공부하는 통합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Q1.미국은 어떻게 가시게 됐나요?

저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계 은행에서 일했어요. 그러다 14살에 미국으로 이민 간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됐죠. 지금은 믿기 힘드시겠지만, 그때는 어머니의 권유로 결혼을 결심했어요.

 남편과 함께
 남편과 함께

 

Q2.미국 생활은 어떠셨나요?

처음에는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남편과 사고방식이 달라 갈등이 많았어요.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신앙이 있었기에 잘 극복해낼 수 있었죠.

남편의 비즈니스도 성공적이어서 사람들이 '작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고 말해주곤 했어요. 저는 특히 캘리포니아 얼바인의 생활이 너무 좋았어요. 미국의 배려하는 문화, 질서, 그리고 좋은 이웃들 덕분에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죠.

 

Q3.그런데 왜 한국으로 오시게 됐나요?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었어요. 제가 작은 아들을 임신하고 만삭일때 교통사고가 났거든요.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기적처럼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어요. 그때 남편이 감사한 마음으로 '50세, 인생의 황금기에 하나님께 10년만 쓰임받고 싶다'는 기도를 했죠.

또 하나는 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분단된 가난한 나라'로만 보는 시선이 늘 마음 아팠어요. 특히 저희 부모님이 일사후퇴 때 평양에서 월남하신 분들이라, 어린 시절부터 전쟁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터라 더 그랬죠.

그래서 남편과 함께 '우리 한국사회의 분단과 앞으로 통일 한국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탈북 청소년 교육을 선택하게 됐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단순했죠.

 

Q4.한국에 오시기 전에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남편은 정말 철저히 준비했어요. 청소년 교육을 위해 교사 자격증도 따고 신학교도 다녔죠. 그리고 잘 되던 비즈니스도 모두 정리했고요.

하지만 솔직히 저는, 그때까지도 한국 행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오히려 더 큰 집으로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었죠. 어떤 특별한 사명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남편이 준비했으니,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정도의 단순한 생각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를 너무 몰랐던 거죠.

 

 

미국으로 다시 한국으로


Q1.한국에서의 새로운 시작은 어떠셨나요?

정말 힘들었어요. 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저희 부부 모두 한국의 가치관이나 문화가 너무 낯설었거든요. 특히 남편은 한국말도 거의 못해서 더 힘들었죠.

게다가 탈북 청소년들을 만나면서는 더 큰 어려움을 겪었어요.

 

Q2.탈북 청소년 학교를 시작하셨을때는 어떠셨나요?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라는 것 자체가 너무 열악했고,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죠.

주변의 시선도 힘들었어요. '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여기 왜 왔지? 뭔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거 아니야?' 처음에는 이런 의심의 눈초리를 많이 받았죠.

또 탈북 학생들을 이해하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저는 미국에서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인데, 이 아이들은 너무 달랐어요. 트라우마도 많고 거짓말도 심했죠. 제가 하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아 속상했어요.

그리고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끊임없이 재정적 투자를 해야 했어요. 제가 이루었던 삶이 하나하나 뒤로 빠져나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3.탈북 학교를 운영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매일매일이 북한 아이들과의 싸움이었어요. 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함께 가야 하는 게 정말 힘들었죠. 그러다 보면 '내가 과연 이 길을 선택한 게 맞나?'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어요.

또 하나는 사회의 편견과 싸워야 했어요. 사람들은 '탈북 학교는 당연히 열악해야 하고, 이 아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이등 시민(second class)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교사들을 훈련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고, 우리를 교육자가 아닌 사회복지사로만 보는 시선도 힘들었죠.

하지만 저희는 확신이 있었어요. 이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과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면, 이 사회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인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Q4.그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 하셨어요?

처음에는 남편도 저도 환경 적응과 스트레스로 많이 아팠어요. 저는 너무 힘들어서 한국에 온 것조차 잊어버리는 망각 증상이 나타났고, 자율신경이 망가져서 그 후유증이 4년이나 갔어요. 1년 반 동안 매주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며 이 상황을 이겨내려 노력했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학생들의 특별한 가치를 발견하게 됐어요. 북한에서 힘든 환경이었지만, 가족 간의 끈끈함과 질서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바람직한 청소년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게 된 거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이메일 아이디를 'LA에서 온 Sara, 2017년 1월까지만 견디자'라고 만들 정도로 10년만 버티자는 마음이었어요.

 

 

탈북 청소년 학교의 교육 가치


다음 학교 선언문
다음 학교 선언문

 

Q1.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가르치시나요?

기본적으로 대학 진학을 위한 정규 교과 과정은 똑같이 가르치지만, 저희만의 특별한 교육 철학이 있어요.

우리 아이들은 죽음을 넘어 탈북한 아이들이에요. 트라우마가 있지만, 오히려 그 어려웠던 시간들이 큰 자산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힘을 키워주는 데 특히 중점을 두죠.

저희는 복지사가 아닌 교육자로서 철저히 교육에 집중했어요. 특히 영어 교육에 힘을 많이 쏟았는데, 우리 아들들도 한국에 와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실제로 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것도 영어 수업이고, 덕분에 영어 실력이 무척 좋아요.

 

Q2.남북한 통합 학교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살면서 깊이 깨달은 것이 있어요. 뉴스에서는 인종 갈등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민족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어울려 살면서 더 풍성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걸 봤거든요.

그래서 생각했죠. '아, 북한 아이들과 남한 아이들이 만나면 어떨까?' 분명히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질 거고, 이 아이들이 진정한 의미의 통일 한국을 준비할 수 있겠다고요.

실제로 우리의 기대는 맞았어요.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선입견이 없고 스펀지처럼 흡수하더라고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어요.

 

Q3.통합 교육을 통해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저희는 교과 과정에서 자기 탐색과 연구,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데 큰 비중을 둡니다. 교사들에게도 아이들의 진로 교육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어요.

그 결과가 정말 놀랍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 아이들은 절대 흔들리지 않아요. 실제로 우리 학교 출신 중에 서울대에 진학한 친구도 있고,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미국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도 많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미국 대학들과 MOU를 맺는 일에 적극적이에요. 더 많은 아이들이 장학금을 받고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싶거든요.

다음학교 학생들
다음학교 학생들

 

Q4.학교 재정은 어떻게 운영하고 계세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월세를 내는 것보다 저희 재정으로 건물을 사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해서 시작을 했습니다. 그 후 정말 많은 분들의 후원으로 한 번도 문제없이 운영되고 있어요.

통일부, 교육청, 기관들에서 지원을 받고 많은 분들의 후원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매년 통일부에서 감사를 받는데 저희 학교는 항상 1등이에요.

그리고 지금은 학교가 지속 가능하도록 전략을 세우고 시스템을 만들고 있어요.

 

 

전사라님의 삶의 가치


Q1.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일을 계속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탈북 학생들이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왔지만, 오히려 그들이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어요. 특히 남북한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면서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를 보며 큰 희망을 보았죠.

이 아이들이 자신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들었던 시간들이 모두 보람으로 바뀌었어요. 그러면서 더 큰 비전을 꿈꾸게 되었죠.

이제는 통일 한국의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것, 그리고 이 일을 이어갈 새로운 리더십을 키우는 것이 저의 새로운 사명이 되었습니다.

 

Q2. 학생들에게 제일 많이 해 주시는 말씀이 뭐세요?

주로 어려운 아이들이 저를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말해요. '금의 어려운 시간을 절대 힘들다고만 생각하지 마. 이 경험이 너를 정말 풍성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야.'

그리고 꼭 덧붙이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나한테 얘기해.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우리 함께 잘 넘어가보자'라고요. 이런 어려움을 그냥 넘기면 나쁜 기억으로 남지만, 잘 이겨내면 오히려 남들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늘 강조합니다.

 

Q3. 계속 미국에 계셨다면 어떤 삶을 사셨을까요?

돈을 잘 벌었을 거예요. 그런데 마음은 많이 피폐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곳에는 끝없는 목마름이 있잖아요.

저는 늘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을 줘야 할까 고민했어요. 그게 바로 '아가는 기준법'이에요.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라. 그 길을 쫓아가면 너는 굉장한 형통함을 누릴 거야. 엄마가 살아봤잖아.' 이렇게 말해주곤 합니다.

 

Q4. 30-40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첫째로, 재정 계획을 잘 세워라. 재정 계획을 등한시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에요.

둘째로, 너무 남을 쫓아가려 하지 말아요. 네가 누구인지를 찾으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가 아주 심플해져요.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이런 자기 성찰이 꼭 필요합니다.

 

 

내 인생에 후회되는 것


대학 때 공부 안 한 걸 후회합니다. 미국 가 보니까 대학생들이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어떠한 경험도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나에게 자양분이 되고 자산이 된다고요. 결국 선택한 것에 책임도 자신이 지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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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에 갖고 가고 싶은 세가지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즐겁게 보는 힘, 나이 들면 그런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걸 잃어갈 수 있으니까요.

저는 교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두 아들의 엄마예요. 제가 은퇴한다고, 자녀가 컸다고 '너희가 알아서 해'라고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이 들어서도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요.

남편과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파트너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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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라 교감의 인생 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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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인생의 황금기를 50이라 정하고, 익숙하고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인생의 가치를 위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우리는 인구 감소와 통일 준비를 걱정하며 말하지만, 정작 지금 우리에게 와 있는 소중한 아이들을 제대로 보듬고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 세대로 키우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사라 교감 선생님은 지금까지 수많은 후원자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겸손히 말씀하십니다.

인생의 황금기를 단순히 재정적 성공이나 돈에 대한 걱정으로 채우는 대신, 이 땅에 내가 온 이유와 존재의 가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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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도 또 다른 특별한 이야기를 통해, 당신의 삶에 작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인사이트를 나누고자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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