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사에서 30년. '미생'에서 '완생'으로 나아가는 끝없는 혁신과 도전의 기록.
10년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전문성을 확장해 나가는 여정. 익숙함을 뒤로하고 미지의 영역에 뛰어들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대담한 도전. 위기와 기회, 때론 좌절과 맞서며 새 길을 개척한 한 샐러리맨의 이야기
그의 여정은 마치 바둑판 위에서 한 수 한 수 돌을 놓아가며 '미생'에서 '완생'으로 나아가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오늘날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30년 직장 커리어. 그 안에 숨겨진 성공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이 놀라운 경험이 그의 인생 2막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변화와 혁신, 그리고 위기와 기회.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의 커리어에서 만나봅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미생'이 어떻게 '완생'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도전과 성장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인터뷰 핵심 요약
- 어려운 역할을 자발적으로 맡아 진취적으로 나서는 태도가, 제 성장과 기회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이해관계자들과의 효과적인 소통과 설득을 통해 큰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끄는 협상 능력이 중요했습니다.
- 승진 누락과 같은 좌절이 인생의 보약이 되어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직장외에도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 구축에 힘쓰며, 폭 넓은 네트워크가 새로운 기회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 30년간의 직장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하여 인생 2막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자기 소개와 현재 하시는 일은?
화학공학과를 전공하고 (주)한화에서 32년간 근무한 후 퇴직했습니다.
현재는 경영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며 영업 마케팅, 사업 확장, 신사업 아이템 발굴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 태양광 사업의 확장을 위한 현지 회사 시니어 어드바이저(Senior Advisor)로 활동 중이며, 인도네시아의 친환경 쓰레기 매립 사업 비즈니스 및 투자 유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샐러리맨 30년 도전과 성취의 여정
Q1. 인천공장에서 플랜트 건설까지
파인 케미컬 분야를 하고 싶어서 한화에 입사했고, 그룹 경영관리실장을 설득하여 인천 공장으로 발령받았습니다. 2년간 공정 개발을 배운 후, 본사에서 해외 기술 도입과 사업성 분석을 담당했습니다.
기술 도입이 최종 결정되고 플랜트 건설이 필요해졌을 때, 선택권이 저에게 있었습니다. 제 보스도 제가 가주기를 바랐지만 말씀은 못하셨죠. 그냥 보고만 있기는 그래서, 엔지니어로써 설계부터 건설까지 한번 해 보고 싶어서 자원해서 다시 공장으로 내려갔습니다.
제 보스는 너무 고마워하며 100% 신뢰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플랜트 건설은 처음이라 맨땅에 헤딩하면서 3년 동안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가고 열심히 했습니다. 그 결과 제 시간에 퀄리티도 잘 나오고, 품질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에 바로 수출까지 하게 되어 사장님도 기뻐하셨고, 준공식 날 표창도 받았습니다.
Q2. 영업, 두번의 위기와 기회
플랜트 건설 후 생산팀장을 거치고 본사 영업팀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얼마 후 IMF 외환위기로 인해 25명이던 사업부가 4명으로 축소되는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부서를 이끌고 위기를 기회로 삼았습니다. 환율 상승을 활용해 수출을 강화하고, 공장 가동률을 120%까지 끌어올렸죠. 심지어 경쟁사 제품까지 구매해 판매하며 최소 인원으로 최대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그러다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노후화된 공장을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400억이라는 큰 투자가 필요했지만, IMF 직후라 회사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사장님의 승인을 받기 위해 저는 기획실장, 공장장 등 주요 이해관계자들을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식사도 하고 수시로 만나 플랜트 이전의 당위성을 설명했죠.
사업 타당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고객 확보가 필요했습니다. 대규모 수요처인 프랑스 R사를 타겟으로 바로 인접한 신규 부지를 확보했습니다. 구매 담당 이사를 접촉해서 파이프라인 직접 연결로 물류비를 절감해 경쟁력있는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프랑스R사를 새 고객으로 유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공장 이전 기간 동안의 고객 이탈 방지와 매출 손실도 큰 문제였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쟁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습니다. 우리가 생산하지 않는 동안 그들의 제품을 구매해 우리 고객에게 납품하게 함으로써 두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했던 것 입니다.
이런 노력 끝에 정확히 1년 만에 공장 이전을 완료하고, 계약 시작일에 맞춰 프랑스R사에 파이프라인으로 공급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R사와 두터운 비즈니스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Q3. 회사의 미래 먹거리 발굴
공장 이전 후, 곧바로 회사의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신사업 추진 팀으로 발령받았습니다. 고작 5명으로 구성된 작은 팀이었죠. 다시 한번 맨땅에 헤딩이 시작되었습니다. 신사업 팀은 승진에서 무덤과 같은 곳입니다.
CEO의 방향성과 회사의 미래를 고려하며, 우리는 회사의 비전을 '친환경, 에너지, 소재'로 잡았습니다. 그 중 하나로 '태양광'을 선택했죠. 당시 유럽과 일본이 앞서가고 중국이 뒤따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야 했습니다.
독일 태양광 엑스포에서 세계 1위 기업 큐셀의 거대한 부스를 보며 현실을 직면했습니다. 함께 간 대리가 "부장님, 저희는 언제 큐셀 같은 회사가 되요?"라고 물었을 때, 아이디어와 꿈은 있었지만, 현실은 막막했습니다.
방향성이 좋아 그룹 차원에서 태양광 사업을 키우기로 결정하면서 업무를 그룹으로 이전하였습니다. 10년에 걸쳐 두 차례 대규모 M&A를 통해 글로벌 탑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독일 큐셀인수였고 놀랍게도 그때 독일 엑스포에 함께 갔던 대리가 후에 한화 큐셀 공장장으로 발령 받았습니다. 현재는 미국 시장 점유율 수년간 1위를 하고있습니다. 미국 조지아에 3.3조 규모의 공장을 짓고 있고 12월 완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태양광 외에도 친환경 소화기 개발 등 다양한 신사업을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신사업의 특성상 빠른 성과를 내기는 어려웠지만, 회사에서는 이러한 노고를 인정하여 성과급을 크게 주었습니다.
승진 누락과 퇴직 통보
Q1. 기대했던 임원 승진, 충격적인 누락 그 순간의 심정은?
대표이사가 사인해서 올렸기에 100% 될 거라 믿었습니다. 성과도 좋았고요. 그런데 그룹의 다면 평가에서 우리 부서원들의 부정적 의견등으로 승진에서 제외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처음엔 부서원들에게 실망감을 느꼈지만, 곧 이 경험이 제게 보약이 되었습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 거죠. 일로만 몰아붙이던 방식에서 벗어나 공감과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고, 직원들의 가정사까지 신경 쓰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결국 이 경험으로 일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시각이 바뀌었고, 남은 직장 생활 동안 진심으로 직원들에게 잘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Q2. 퇴직 통보 받았을 때 심정은?
30년 근속 선물로 금 삼십 돈, 부부 동반 여행, 회장님과의 선상 파티와 만찬, 불꽃 축제 등,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입사 동기 36명 중 30년을 채운 사람이 저를 포함해 단 몇명뿐이었죠.
그러면서, 이제 직장 생활을 하는 건 덤이다.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어요. 선배중에 퇴직 통보를 받고 안 좋게 나가는 모습을 보고 저는 그러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아쉽기 보다 회사에 감사한 마음만 있었습니다.
Q3. 퇴직까지의 과정은?
우선, 관계된 거래처들을 찾아 다니며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퇴직을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마무리를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축하받으면서 마무리하고 싶었죠.
그래서 저희 부서 직원들하고 그동안 근무했던 후배 사원들을 모두 불러 식사 대접을 했어요. 놀랍게도 그들이 제 명함을 금장으로 만든 기념 선물을 했어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쁘게, 그리고 진정으로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 2막의 도전: 상무에서 대표이사로
Q1. 창업의 계기는?
퇴직 후 원래 하고 싶었던 신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러다 일단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집 주소로 사업자를 냈죠. 그런데 의외로 이전 거래처에서 연락이 왔어요. 사업 확장, 신사업 발굴, 영업 분야의 컨설팅 요청이었죠.
제가 회사에서 그런 일을 했고, 중소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영역이기도 했어요.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컨설팅 요청이 늘어났고, 그렇게 경영 컨설팅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2. 현재 사업은?
신사업 개발 팀에서 시작한 "태양광" 인연으로, 미국 태양광 회사의 시니어 어드바이저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친환경 쓰레기 매립 사업에 제 네트워크를 통해 국내 투자자 유치에 성공했어요. 현재 국내 특수 법인은 설립을 완료했고 인도네시아 법인 설립을 진행 중입니다.
경영 컨설팅 외에도, 제가 과거에 쌓은 경험과 네트워크를 통해 사업이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제가 찾아 나서기보다 사람들이 연락을 해 오면서 성장하고 있어 재미있게 일하고 있습니다.
나의 인생과 삶의 목적
Q1. 삶의 새로운 방향성과 일의 의미?
퇴직하기 전까지는 저 자신과 가족, 아이들 학업을 위해 살았어요. 이제는 아이들도 다 컸고 제가 케어할 필요도 없어졌어요. 저는 감사한 인생을 살았어요. 이제는 저를 위해 살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어요.
제가 일을 하는 목적도 사회 공헌을 하기 위해서예요. 일을 해야 지속적인 도움이 가능하니까요. 탈북민을 돕고 선교 사역, 베트남 매콩강 빈민 지역 집짓기 봉사, 비영리 사업등을 하기 위함이에요.
제 삶의 밸런스는 일, 가정, 사회공헌 세가지 축이고, 그 모든 중심에 신앙이 있습니다.
Q2.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1
회사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은 아닙니다. 물론 회사 일은 열심히 해야 하지만, 동시에 회사 이외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 같은 회사, 같은 부서 사람들과만 시간을 보내다 보면, 퇴직 후에는 모든 것이 단절될 수 있습니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거래처, 금융 등 다방면의 관심분야 사람들과 교류하기를 권합니다. 점심 시간이나 업무 외 시간을 활용해 인간관계를 넓혀 놓으세요. 이런 폭넓은 네트워크가 퇴직 후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Q3.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2
경제력의 격차를 단기간에 해결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조한 마음에 코인이나 영끌로 무리하게 부동산등 투자를 하기보다 전략적으로 준비하세요. 적은 금액으로도 좋은 투자 기회가 올 수 있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현명하게 접근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인생에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3가지
인생 여정에 꼭 갖고 가고 싶은 3가지
나의 인생 선언문
30년의 직장 생활이 미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완생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CS OH 대표의 인생 스토리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결국, 완생으로 나아가는 길은 주어진 상황을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행동하느냐의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용기, 좌절의 순간에도 자신을 돌아보는 겸손함과 개선의 노력,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범함
이러한 모습들이 진정한 완생의 요소가 아닐까요?
다음 주에도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실 분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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