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자신을 라이너 쿤체의 시 "뒤처진 새"에 비유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 떠오릅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라는 그 구절처럼 말입니다.
겉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일 하는 엄마였지만,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주변의 회의적인 시선과 제도의 한계를 꿋꿋이 뛰어넘었습니다.
어쩌다 그녀는 사회복지 공무원이 되어 그 한계를 넘나들게 되었을까요?
어떤 계기로 스스로 학교를 세우는 대담한 결단을 내리게 되었을까요?
'뒤처진 새'라 자처하는 그녀가 어떻게 가장 멀리, 가장 높이 날 수 있었는지, 그 비행의 궤적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그녀의 인생 1막과, 앞으로 펼쳐질 인생 2 막을 기대하며, 우리 모두의 날갯짓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인터뷰 핵심 요약
자기소개와 현재 하시는 일은?
저는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직렬에 입문했을 때는 사회복지 공무원이 없었어요. 1990년 시대의 요구에 따라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직렬로 새롭게 생겼거든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느덧 3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내년이면 제 공직 생활의 마지막 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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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날개: 제도 안에서 변화를 꿈꾸다
Q1.사회 복지 공무원이 된 계기는?
청소년 시절부터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 그리고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을 좋아하는 제 성향이 자연스럽게 대학에서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하게 되었어요
졸업 후, 처음에는 청소년 상담실에서 일했어요. 그런데 현장에서는 청소년 문제뿐만 아니라 가족 문제, 이혼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3년간 일하면서 상담이 지속적인 공부와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러던 중 사회복지 공무원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여 사회복지 공무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Q2.사회 복지 공무원으로서 어땠나요?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첫걸음을 뗐을 때는 의욕이 너무 앞섰어요. 그래서 '공무원이 사회사업가인 줄 아냐'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죠.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제가 상담을 할 때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분리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됐거든요.
내담자분들의 힘든 이야기를 들으면 그 감정이 온몸으로 전해져 와서 저도 모르게 함께 울곤 했어요. 그분들의 슬픔이 고스란히 제게 전해지는 느낌이었죠.
내담자분들은 제가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울어준 것에 대해 위로받았다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계속 감정적으로 소진되면서 점점 더 힘들어졌어요. '내가 사회복지사로서 자질이 있는 건가? ' 이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했던 것 같아요.
Q3.어떤 일에 중점을 두셨나요?
제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것이었어요. 특히 청소년들에게 초점을 맞췄죠.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경험의 폭이 제한적이에요. 그들이 보는 세상은 일반 아이들과는 많이 다르거든요.
지금은 문화 바우처도 있고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게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했죠.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열쇠라고 생각했거든요.
한 부모 가정의 엄마가 생일이었는데 돈이 없어 레스토랑에 갈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지역 레스토랑 사장님들을 만나 가족 패밀리 대회를 만들고, 무료 쿠폰을 만들어 가족들이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드렸죠.
또 공연 후원자를 찾아 청소년들이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어요. 이런 작은 경험들이 그들의 시야를 넓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랐어요.
Q4.기억에 남는 분은?
어떤 분이 오셨는데 법적으로 지원해 드릴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어요. 정말 어려운 처지에 계셨어요. 먹을 것조차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셨죠.
명절 즈음에 후원으로 쌀이 들어와서 그분께 드리려 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셨더라고요. 지금은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알 수 없지만, 그때는 새 주소를 알 수 있었어요. 사실 다른 동네로 가셨으니 지원해 드리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제가 직접 쌀을 들고 찾아갔어요.
그런데, 그분이 쌀을 받고 우시는 거예요.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라고 하시면서요. 그리고 하신 말씀이 잊히지 않아요. '이 쌀만큼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다'라고 하셨어요.
지금도 그분이 기억이 나요.
또 하나의 날개: 교육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다
Q1.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든 이유는?
기존 어린이 집에 만족하지 못해 '함께 크는 우리 아이'라는 책을 통해 서울의 공동육아 협동조합 어린이집을 알게 되었어요.
뜻이 맞는 5명의 부모와 함께 각자 500만 원씩 출자해 공동육아 협동조합 어린이집을 설립했죠.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아이들을 맡기는 것이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본성대로 자라길 바랐고, '내 아이만 잘 키우자'가 아닌 '더불어 함께 살자'는 가치를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어린이집을 만든 핵심 이유였어요.
Q2. 그런데, 대안학교는 또 어떻게 만드셨어요?
일하는 엄마로서, 퇴근 후 아이와의 대화가 "숙제했니? 내일 준비물은 뭐니?" 같은 일상적인 질문으로 한정되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아이와 12년간 이런 대화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죠.
저는 아이도, 제 자신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와 더 깊이 교감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라 믿었고, 그 가능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함께 했던 다른 부모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그렇다면 직접 학교를 만들자"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렇게 대안학교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Q3. 대안학교는 무엇을 배우나요?
일반 학교의 정규 커리큘럼과는 다른 접근을 합니다. 영어, 수학 등 기본 과목을 배우긴 하지만, 그 방식이 많이 달라요.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나에 대한 탐구'와 '세상에 대한 탐구'입니다. 아이들은 매일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고, 내일을 계획하며, 일주일 단위로도 자신을 성찰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는 "공동체와 함께하는 사람"을 키우는 것입니다. 입시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해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교육을 지향해요.
교육 과정은 교사들이 주도하지만, '떠먹여 주는' 방식이 아닌, 아이들 스스로 배움의 주체가 되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Q4. 자녀들과 남편분은 기꺼이 따랐나요?
중학교부터는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었어요. 일반 학교와 대안학교의 특징을 설명하고 스스로 결정하게 했죠. 아이들은 어리지만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선택했어요.
남편은 동의하지 않았어요. 특히 둘째 아이 때는 일반 학교를 보내고 싶어 했죠. 저는 남편의 의견도 존중했기에, 둘째에게 "아빠를 설득하는 건 네 몫"이라고 말했어요. 결국 네 번의 시도 끝에 아이가 아빠를 설득하는데 성공했습니다.
Q5. 대안학교 다닌 아이들의 소회와 성과는?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은 기숙 생활을 하며 실제 사회를 경험해요. 관계가 안 좋아도 풀어야 함께 잘 수 있으니까요.
고등학교 때는 축제 기획, 연극 제작 등 다양한 활동을 스스로 해내면서 창의력과 리더십을 키웁니다.
졸업 후에는 각자 원하는 길을 찾아가고 있어요. 많은 졸업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거나 유학을 가고, 또 원하는 직장에 취업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졸업생은 교육부에서 인턴을 하며 우리 학교의 영향력을 실감했대요. 현재의 대안학교와 혁신학교에 우리의 경험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종종 "이런 교육을 받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정말 행운이었다"고 말해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을 길렀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인생 2 막을 꿈꾸는 뒤처진 새
Q1.일하는 여성으로 삶은?
일과 가정, 일과 양육의 균형을 잡는 것이 늘 제 삶의 화두였어요. 일에 매몰되어 자신을 잃고 싶지 않았죠.
그래서 틈새 시간을 활용했어요. 출퇴근 길에 음악을 듣고, 짧은 여유가 생기면 시를 읽거나 뜨개질을 하고, 주변을 걸었죠.
직장 생활 중에도 운동, 바느질, 차 공부, 꽃, 글쓰기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겼어요. 특별한 결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 자체가 저를 행복하게 만들었거든요. 이런 '인풋'이 있어야 제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에요.
Q2.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저는 제시간과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살았어요. 자기 사랑이 삶의 기반이 되었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함께하는 삶"을 추구했어요. 이는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대안학교 설립으로 이어졌죠. 이런 공동체적 시도들이 제 가치관을 실현하는 방법이었어요.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싶었고, 남녀가 평등한 관계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결국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시간, 가족, 성장, 공동체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Q3.매일 하는 루틴 있으세요?
매일 감사노트, 칭찬 노트를 쓰고 좋은 시를 골라 적어요.
감사노트는 하루를 감사함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고, 칭찬 노트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에요. 우리 사회가 만만치 않아 자존감이 자꾸 떨어지잖아요. 다른 사람은 칭찬하면서 자신에게는 인색하기 쉽죠. 그래서 "동료를 칭찬한 나를 칭찬해" 이런 식으로 써요.
이런 습관들은 나 자신에게 상냥하고 다정해지는 연습이에요. 나에게 그럴 수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Q4.인생 2막의 꿈은?
저는 "Change Maker"가 되고 싶어요. 가슴에 품었던 씨앗에 작은 싹을 틔우려 해요. 느리고 조용한 성격이지만, 마음속엔 항상 그런 열망이 있었죠.
글쓰기에 관심이 있어 블로그 기자단이나 여행 작가를 생각하고 있어요.
또 "살림"을 정말 좋아해요. 요리하고 정리하는 일이 저를 행복하게 해요. 남편 퇴직 전까지 매일 도시락을 준비했는데, 그 시간이 저에겐 "명상하는 시간" 같았어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살림"과 관련된 창업도 고려 중이에요. 살림과 정리 정돈 노하우로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 나아가 라이프스타일 코칭까지 해보고 싶어요.
Q5.공무원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공무원은 직장이고, 그 안에 있는 동안 평생 가져갈 수 있는 자신만의 업을 만들어 나가라고 말하고 싶어요
"What do you want?" 수시로 자신에게 던져 보세요.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인생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오직 나의 고유한 것임을 기억하세요.
산다는 건, 미래의 나를 만나러 가는 여정이니까요.
내 인생에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2가지
경제관념을 키우는데 소홀했던 것이 가장 큰 후회로 남아요. 그리고 무언가를 시작할 때 남들보다 많이 느려요.
인생 여정에 꼭 갖고 가고 싶은 3가지
저는 "저답다"는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어떤 특정한 범주에 속하고 싶지 않아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갈망해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과 함께 계속 성장하고 싶어요.
나의 인생 선언문
책 제목과 같은 건데요. 결국 세상은 적자생존이 아니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말에 동감하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이라는 걸 꼭 강조해서 써 달라고 했지만, 저는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봅니다.
어쩌면 대한민국은 평범하지만,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지키며 살아온 비범한 사람들에 의해 발전하고 지탱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직장인, 아내, 엄마, 어린이집 이사장, 며느리로 1인 5역을 하지만, 언제나 다정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성찰하는 그녀.
본인의 말마따나 뒤처진 새 일지는 모르지만, 낙오된 새가 아니라 하늘 높이 훨훨 날아 가장 높이 오르는 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녀의 인생 2 막은 훨훨 자유롭게 날아 새싹이 만개할 것을 믿습니다.
다음 주에도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실 분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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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이십여년 동안 보아온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오랜 시간을 들이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습니다. 조용히 빛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뒤쳐진 새가 아니라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새로 멋지게 살아갈 모습이 기대됩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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