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님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어요?

시 읊는 어부

2022.02.04 | 조회 23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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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서걱

기억 붙잡記: 매일 툭 떨어지는 생각들

출근 1시간 10분 퇴근 1시간 30분이면 유튜브는 내가 다 꿰고 있다. 

어떤 밈이 나오든지, 코카인 댄스가 유행을 한다던지, 대선후보가 어떤 말실수를 했다던지, 연예인 누가 결혼을 한다던지... 출퇴근 시간 3시간이면 다 알게된다. 

그렇게 유튜브 세계 속을 헤엄치다가 가끔씩 가슴에 콱 박히는 동영상들이 있는데 정말 매일 매일 그 영상들을 보면서 아침 출근 길 기를 받아가는 이상한 버릇을 지니고 있다.

얼마 전엔 유튜브에서 시를 읊는 어부 아저씨를 봤다. 자기 전에도, 일어나서도,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그 아저씨가 머릿 속을 맴돈다. 

선장님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어요?

왜 또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십니까. 

제게도 꿈은 있었습니다. 

전 있잖아요. 국문학과를 가고 싶었어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걱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한 잔은 떠나간 너를 위하여

한 잔은 너와 나의 영원했던 사랑을 위하여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그리고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는 것 부터, 저에게도 꿈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항상 마음 속에 담아두기라도 했던 것 처럼 술술 읊는 시까지 

왠지 모르게 나까지 마음이 공허해지다가도 또 다시 보면 따스해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쓸쓸해지고. 

내가 공허해졌던 이유는

가슴 속에 꿈을 안고 있다는 것, 동경의 대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삶을 한층 더 낭만적이게 만들면서도 씁쓸하게 만들기도 한다.

닿을 수 없는 것에 자꾸만 닿고 싶게 만들기도 하고. 기대를 가득하게 품고 꿈이라는 문을 겨우 열었는데 그 문이 회전문이었을 때 오는 상실감이란... 또 동경의 대상이었던 것을 내가 품었을 때, 비로소 현실과 마주할 때 낭만과 현실의 부닥침에서 오는 묘한 실망까지.

꿈이라는 것은, 동경이라는 것은, 품고 있을 때, 약간의 상념과 희망이 묻어있을 때 가장 낭만적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실망을 할 것을 알면서도 꿈에 닿기 위해 오르고 또 오른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새로운 문을 열고, 운이 나쁘면 회전문을 열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삶을 산다. 그러면서 또 과거를 그리워하고. 그러면서 또 미래를 그리며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가고. 그러다가 또 실망을 하고. 그러다가 또 다시 아름다움을 찾아 활기를 띄고. 

나도 이제야 막 이런 과정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이젠 꿈이라는 것을 꾸면서도 실망할까봐 벌써부터 무섭다. 

그래서 아저씨가 품고 있는 꿈이 낭만적으로 보이면서도 현재의 내가 겹쳐져 한없이 쓸쓸해졌다. 

그럼에도 이 영상을 보고 따스해졌던 이유는

아저씨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꿈이 시라는 것 때문이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물을 마시며 몇 마디를 읊조리는 것이 이렇게 멋있어도 될 일인가. 활자로만 봐오던 것을 누군가의 살아있는 언어로 들었을 때의 충격 때문일까. 

인문학이라는 것이, 문학이라는 것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벅차오르게 하는 것이라면 돈보다도 훨씬 대단하고 중요한 것이 아닐까! 사람 마음을 사기 위해서 그렇게 온갖 힘들 다 쓰는 기술과 비즈니스보다도 이런 문장 한 줄, 단어 몇 개는 평생 내 뇌리에 박혀 살아가는 도중 문득 문득 튀어나오니까. 

알쏭달쏭 과학기술 세상 속 문돌이로서 약간의 희망을 갖게 된 것 같기도 하고. '그래, 잘 살아갈라면 숫자를 읽고 경제를 보고 자산을 증식하며 전략적으로 살아가야겠구나.' 하며 허우적거리던 도중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하며 회의감이 들던 때 이 영상을 봐서 괜히 더 따스해진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모두가 가장 비효율적이라고 느끼는 것이 가장 전략적인 것보다 더 세차게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때가 있으니까

난 어쩔 수 없는 문과인가봐 (ㅎㅎ) 생각해보면 세상의 모든 풍파는 모두 내가 겪고 있다고 생각했던 수험생 시절 때도 문학 공부를 하면서 혼자 치유받고, 인상깊은 구절을 시험지에서 보면 다이어리에 옮겨적고 그랬다. 

그 때는 음절과 어절 단위로 시를 분석하면서 봐서 그런지, 대부분의 작품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졌는데. 살아있는 언어로 들으니 가슴에 찰싹 달라붙는다. 

그래서

사그라드는 꿈이 있다면 부서지지 않게 호호 불어서 마음 속에 저장해놓자고! 이루기 위해 너무 애쓰지도 말고, 외면해버려 마음이 박탈당한 쓸쓸한 인간도 되지 말고, 우리도 낭만을 가진 충만한 어른이 되보자고! 이루면 어떠하고 못 이루면 어떠하리~ 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이미 살아있다는 것이라는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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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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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도규

    1
    about 2 years 전

    정말 인상깊은 글 잘 읽고갑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ㄴ 답글
  • heeseondw

    0
    6 months 전

    사람은 별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지만 나무가지에도 닿지 못하는 손을 가지고 있지요. 그치만 별은 보이니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별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요. 좋은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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