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의 근원

희망은 사실 위험한 존재야

2022.02.05 | 조회 4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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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서걱

기억 붙잡記: 매일 툭 떨어지는 생각들

요 몇 년 간 내 최대의 소원은 하루라도 마음 편하게 온전히 쉬고 싶다는 거였다. 

하루도 아무 걱정 없이 쉬어본 적이 없다. 하다못해 하루종일 집에서 잠만 잔 경우에도 00해야 하는데... 000도 해야 하는데.. 하며 마음 졸이며 겨우 잠에 들기를 반복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내가 최대한으로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은 총 몇 시간. 이 때부터 이 때까지는 뭘 하고 지하철에서는 뭘 하고 회사에선 이거 이거를 다 하고 회사가 끝나면 까페나 집에 와서 이걸 마저하고... 이렇게 머리 속에 시간표를 그려 놓고 살았다. 

정말이지 단 하루도 푹 쉬지 않았다.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할 때는 내가 마케팅 담당이니 인강을 모조리 듣고 섭렵하겠다며 아침과 주말마다 인강을 듣고 저녁에는 학회 비스무리한 활동을 했다. 또 다른 인턴을 할 때는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또 인강을 듣고, 실습할 자료를 잔뜩 가져와 파워포인트에는 도가 틀 정도로 장표를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판단하고 퇴근 후 곧장 독서실로 직행해서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 준비를 하고 출근 전 모텔을 대실해서 면접을 보고 출근을 하고... 

이후에도 비슷했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더 잘하기 위해서, 더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서 나를 채찍질했다. 한 단계 높은 성장을 (내 기준에서) 해 내면 기뻐할 틈도 없이 더 높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이 나를 지배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하면 난 정말 마음 놓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하면서 조금만 더 해볼까. 여기서 마음을 놓고 있으면 그냥 현실에 안주하는 꼴이 되는거야. 

하면 할수록 그 끝은 없었고 나는 이런 내가 평균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더 잘하고자 하는 강박은, 더 높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강박은 여러가지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하도록 만들었고 오히려 집중력을 악화시키고 항상 마음 속에 응어리를 지게 해서 가슴이 콱 막히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종국에는 앞으로 내 앞길을 끔찍하다고 생각하게 만들더라. 난 어딜 도달하든 만족을 못하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내 모든 에너지를 소진할 것이 눈에 빤히 보이니까. 다시 새로운 길에 도전하게 된다면 불안한 길을 걸으면서 잘해내야 한다는 강박은 더 심해질 것이니... 특히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고 누군가의 아래에 있다면 말이다. 

어쩌면 사회와 조직의 철저한 노예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성장해야 한다며, 더 높은 꿈을 꾸어야 한다며, 젊을 때 열심히 살아야 노후가 편하다며, 좋은 직장에 다녀야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며, 하는 말들이 무의식 중에 머리 속에 쌓였나보다. 

왜 그런 것일까. 나는 왜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뭐든지 잘 해내고 싶어하고 욕심을 키워왔던 것일까. 잘 살아내야겠다는 강박은 희망의 문턱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렇게 이끌려오다가 희망의 바로 아래엔 미래에 대한 불신이 희망보다 더 깊게 자리잡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내가 알아차리기 무섭게 잘 살아내야한다는 강박은 나를 불안과 절망의 수렁으로 빠트려버렸다. 

나도 이제는 안다. 잘 살아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은. 하지만 내 몸이 반사적으로 잘 살아내야겠다고 움직인다. 하지 못한 말이 입천장까지 꽉 쌓여서 콱 막힌 채로. 이런 강박 없이 물 흐르듯이 살아내면 오히려 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고 또 새로운 기회를 찾아낸다. 어느 정도의 범위 내에서 열심히 하고 또 쉬면서 얻은 새로운 에너지를 동력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더 좋은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미 속도 버튼이 고장난 내 발 밑의 트레드밀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관성적으로 열심히 살아내려고 한다. 

그러니, 우리 의식적으로라도 너무 열심히 살아내려고 하지 말자. 8시간은 수면하고 8시간은 몰입하고 8시간은 쉬는 삶을 지향하자. 열심히 살아가려는 목적이 무엇일까, 성장을 해야만 한다는 목적이 무엇일까, 우리는 열심히 살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내면으로부터 배웠는가, 아니면 학교로부터, 사회 선배로부터, 상급자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배웠는가. 어쩌면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강박은 이 사회와 조직체계를 더 공고히 하기 위해 밖으로부터 만들어진 강박이 아닐까. 그러니 우리 의식적으로, 너무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치는 자신을 보았을 때 멈춤 버튼을 눌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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