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체에 부치는 편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021.09.16 | 조회 587 |
2
|

만물박사 김민지

생활 전공자를 위한 내적 대화 콘텐츠

얼마전 스트레스에 대해 생각했어요. '안 받는 게 좋은데 안 받을 수는 없으니 덜 받는 게 최선이다'라는 처방은 어쩐지 저 스스로도 내릴 수 있겠더라고요.

코로나19 이후로 스트레스를 풀던 방법을 개선해야 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저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겠지만, 비대면 시대가 내향인에게는 또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다만 조금 더 조심스러운 게 많아졌을 뿐이죠. 그렇지만 그뿐이라고 말하고 말기엔 전전긍긍하거나 무기력하게 만드는 스트레스가 심하게 곪고 있어서 고민입니다.

이달 초에 화이자 백신을 맞았습니다. 들으셨겠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제 목소리에 "맞아봐야 안다"는 의사의 말과 "살짝 따끔해요"라는 간호사의 말이 이어졌고 이윽고 얼마간 왼팔에 통증을 안겨준 백신이 체화되는 동안 아마도 당신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편지를 쓰기에 앞서 포털사이트에 '항체'라고 정직하게 당신의 알려진 이름을 검색해보니 당신으로 추정되는 몽타주들이 많이 뜨더군요.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새총을 닮았달까. 고무줄을 제 손으로 걸어 드려야 할 것만 같은, 어딘가 살짝 허전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쯤 제 몸 어딘가를 부유하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부디 살아남아주십시오. 미래에 격렬한 싸움에 임하게 된다면 제가 싸움이 끝나고 당신의 목에 쇼미더머니 합격 목걸이처럼 고무줄을 걸어 드리지는 못하겠지만 탄력 있게 제 일상을 살아가며 그 은혜를 갚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편지를 시작할 때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게 유일한 처방이라고 말했는데, 백신이 저에게는 그 정도의 스트레스였던 것 같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2차 접종에도 별일 없이 지나가길, 이 시국을 살아가는 모두가 운 좋게 코로나19를 비껴갈 수 없겠지만 최소한 더 살아갈 여력이 동나기 전에 이 상황이 끝날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오기 전 생존에 대한 갈급보다는 권태로움이 컸던 것 같은데... 그때 느꼈던 삶의 권태로움이 이제는 그때와 다른 레이어를 겹겹이 안은 채 변이된 것 같아요.

추석이 다가오고 있어요. 시간은 속절없이 가네요. 클리셰라고 여겼던 시간의 개념을 가지고 어제 시 한 편을 써서 기고했습니다. 무엇을 위한 지연인가. 연착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네요.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기엔 자신만의 논밭을 새로 꾸리고 두렁 위를 거니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이제는 날씨가 궂어도 매일 부지런히 움직여보는 농부의 마음을 익혀서 자신에게도 감사할 줄 알아야겠어요. 각자의 선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방법이라고 믿어요.

아직은 푸른 9월의 가로수들
아직은 푸른 9월의 가로수들

추신, 만물박사 김민지. 2주 동안 백신으로 인한 팔 통증을 회복하고 돌아왔습니다. 회사일에 매달리며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던 날도 있었는데, 요즘은 평소에도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던 체력이 조금 더 저하되어서였는지 엉키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다들 잘 지내고 계시지요. 내일모레부터 시작되는 추석, 쉬지 못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은 음식 든든히 챙겨 먹으시면서 한숨 돌리시길요. 연휴 동안 '내게 남은 대책' 9월 편 레터를 띄울 예정입니다. 지난번 책들은 모두 읽어주실 분들 손으로 찾아갔어요. 다행입니다. 이번에는 어떤 책을 소개하게 될지.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주세요. 

● 만물박사 김민지의 뉴스레터는 구독자 여러분의 긴장성 두통, 과민성 방광 및 대장 증후군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좋은 텍스트로 보답하겠습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만물박사 김민지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2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 놀이기계

    1
    over 2 years 전

    이번에 백신을 맞으며 '이키가미'라는 일본만화가 생각났어요. 사회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일정 비율로 죽음을 초래하는 접종. 물론, 코로나 백신은 살리기 위한 조치지만 뜻밖의 부작용으로 세상을 뜨게 된 이들이 계속 잊히질 않습니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백신을 맞는 게 당연히 이득이라고는 하지만, 부작용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에게도 그럴까 싶은 생각이 떠나질 않네요. 2차까지 맞은 백신이 항체로 잘 자리잡아 이 난리법석을 어서 끝내주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ㄴ 답글 (1)

© 2024 만물박사 김민지

생활 전공자를 위한 내적 대화 콘텐츠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070-8027-2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