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한 이야기

티셔츠가 마르기 전에 마지막화를 보고

2026.09.20 | 조회 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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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자, 이제 우리. 할 만큼 해봤잖아.

말없이 눈물만 흘리던 네가 했던 첫 번째 말은

그 말을, 그 말을 못하겠어서.

응, 우리 노력했잖아. 더 이상 할 수 없을 만큼.

괜찮을 거야, 우리 둘 다.

 

나에게 너의 세계가 왔듯이, 이 문을 열고 나가면 나의 세계 절반이 사라지겠지. 그건 분명 힘들 거야. 너는 내 세상이거든. 너를 너무 사랑해서 너의 눈으로 세상을 봤고 네 목소리로만 세상을 들었어. 공간 어디쯤 힘없이 머물던 그 목소리. 용기 없고 미약한 열망, 무위로 나를 굴복시킨 자두 같은 웃음.

우리 너무 멀리 왔잖아. 웃음을 잃고 그토록 간절한 분노도 소실됐잖아. 욕구도 흥미도 거세됐잖아. 너로 인해 꽉 차 버린 온 세상이 공허하게 껍데기만 남았잖아. 그냥 사랑만 했으면 됐을 텐데, 우리는 왜 무슨 관계로 서로를 묶어 두려 했을까. 그건 너의 욕구가 아니라 나의 불안이었겠지. 이렇게 거대한 존재를 영영 잃고 싶지 않아서 버둥대다가 결국 나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어.

이제 세상으로 돌아가. 네 작은 발로 꼭꼭 밟아 주던 그 바다로 돌아가. 원래의 너처럼 어디에도 머무르지 말고 바람처럼 향기처럼 살아.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 모습으로. 열기 없는 네 체온으로, 살구 맛 향기로.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나 큰 존재였어서 당분간은 쉽지 않을 거야. 뭘 해도 채워지지 않을 거야. 한동안 나는 매일 울 거고 가끔 오늘이 떠오르는 날이면 펑펑 울고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쓰겠지. 그래도 괜찮아.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생을 왜 살고 싶은지를 알았어. 네 눈에 비치는 내 웃음을 보면서. 내가 쏙 들어앉아 있는 그 눈동자.

차가운 손, 부끄러운 걸음걸이, 죽 늘어나는 볼살, 거세고 거친 그 품이 나에게 10초 정도 남았어. 너는 늘 나보다 강했지. 이 길을 떠나고 뒤돌아보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나에게 등을 바라볼 기회를 줘. 수백 번 돌아보며 인사를 하던 나의 노래야. 오늘은 뒤돌아보지 말아 줘. 우리 이제 마지막이니까.

나는 너에게 행복을 배웠어. 그리고 오늘은 제대로 된 이별을 배우겠지. 우리는 혼자로 돌아가서 원래처럼 잘 살게 될 거야. 나보다 훨씬 강한 너는 특히 더.

찰나지만 나에게 불꽃 같은 삶을 선물한 사람, 그렇게 기억할게. 내가 마지막으로 사랑한 인간은 아마 네가 마지막이겠지. 아냐, 이건 못 들은 것으로 하자. 나 행복하게 잘 살게. 너 없이도. 그럴 거야. 그럴게.

자, 이제 가. 바람처럼 날아가 줘. 그리고 가끔 이 거리를 지날 땐, 그냥 그런 사람 한 명 있었지 정도만 생각해 줘. 처음부터 몰랐던 것처럼 생각해 주면 더 좋고.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말은 이제 그만하자. 행복해야 해. 그것만은 내 진심이야.

택시가 빠르게 떠나가자 나는 생전 처음 혼잣말을 해 봤다. 할 말 끝. 안녕, 내 사랑.

 

티셔츠가 마르기 전에 마지막화의 이별 장면이 제 이별 장면과 너무나도 유사해서 혼자 미친 사람처럼 울다가 개못생기게 울다가 아이유의 첫 이별 그날 밤을 들으며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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