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궤도인간과 모자무싸

모자란 자식과의 무식한 싸움

2026.05.06 | 조회 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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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완전한 무료 버전으로 이사 오게 된 돌아온 수요일의 이종철, 수종철입니다. 처음 보신 분들 반갑습니다.

 

아래는 최근 제가 인상 깊게 본 두 작품에 대한 소회입니다. 글 특성상 독백체로 작성하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첨부 이미지

 

제목 때문에 보기가 망설여지는 작품이 지난달 두 개나 있었다. 발견한 지는 한참 되었는데도 섣불리 훑어보기 어려웠다. 네이버 웹툰의 저궤도인간과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였다. 그걸 들추는 순간 나의 얼굴을 봐버릴 게 뻔한 제목들이었다. ‘낮은 상태의 평형이라며, 저기압의 삶을 평형 상태로 우기며 사는 나에게 저런 작품들은 큰 위협이 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된다면 나는 그 작품을 봐야만 한다. 그래야 동시대에게 이런저런 호흡을 들려줄 수 있으니.

 

두 작품의 주제는 다르지만 소재는 유사하다. 데뷔하지 못한 예술가, 가능성만 갖고 있는 지망생. 모자무싸의 황동만과 저궤도인간의 주재열은 모두 학창시절의 훌륭한 성과로 버티다 40세가 되었다. 40세는 가슴 아픈 나이다. 무엇이 되지 못하면 탈락자의 도장이 이마에 찍혀버리고 마니까. 그것이 예술가라면 더더욱.

 

그러나 작품의 양상은 다른데, 저궤도라도 궤도에 오르고 싶었던 재열은 도덕성을 버리고, 동만은 숭고함은 지켜냈지만 인간성을 지키지 못했다. 불쌍하다고 안아주기에 동만은 인간다운 행동을 거의 하지 못한다. 만약 내 주변에 동만과 같은 인간이 있었다면 그 부서진 꼴에 대고 인간의 이름을 갖지 말아 달라고 딱 한 번 부탁할 것이다. 나는 의외(아닌가?)로 냉정한 면이 있다.

 

재열의 상황은 더 서글프다. 재열은 작가로서의 긍지를 지켜내지 못했다. 스포일러 방지 차원에서 내용은 말하지 못하겠지만, 재열은 작가로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의 괴로움을 작가가 지나치게 잘 묘사해, 독자 모두가 도덕을 버리라고 재열을 응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재열이 다음 시즌에 어떻게 될지는 우리 모두 예상할 수 있음에도.

 

이 본 경쟁에 올라가지도 못한 두 주인공들을 보며, 나는 창작자로서 어떤 상태인가를 되돌아봤다. 재열과 동만 같지는 않았다. 순수예술로 데뷔한 적도 없고, 책은 어둠에서 활짝 폈고, 성실함을 최대 무기로 하는 뉴스레터 쓰는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저궤도인간의 마지막 화를 결제해서 보고(마지막 화만 유료인 상태다), 집에 누워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저궤도인간인가.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나. 해답은 무가치함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난 것 같고, 저궤도인간인 건 맞다고. 내가 써온 글들을 무가치하다고 여겨버리면(물론 쓸모는 없습니다) 그 글을 보고 웃고 울고 살아왔다는 독자를 모독하는 셈이 된다. 무가치하다고 여기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고기압에 살고 있나? 하는 물음에는 글쎄. 이제는 그런 열망도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실제로 만나면 나는 그런 사람을 견디지 못하고 최선을 다해서 집으로 도망쳤을 것이지만, 동만처럼 여전히 활활 불타는 사람을 보면 생전 해본 적 없는 질투가 나고 말 것이다. 거기다 동만은 시건방지게 고윤정을 만나고 있지 않나. 이 참을 수 없는 분노. 헬 브레스 파이어.

 

저궤도인간은 야박하게도 이런 고민을 하는 나에게 몇 개의 대사로 장 몇 군데를 쑤셔버렸다. 이 글은 피를 흘리면서 쓰는 글이다.

 

"우리는 욕망이 언제 관성으로 굳어지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까

 

나는 안 그런 척 살면서 관성대로만 살고 욕망이 없는 것처럼 군다. 아니 욕망이 있는지조차 잊어버린 꿈 없는 어른이 되었다.

 

모자무싸는 아직 진행 중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동만과 은아의 러브스토리가 진행되면 짜증 날 것 같아서 계속 볼까 고민 중이고요. 저궤도인간은 정말 추천드립니다. 작가님이 기본적으로 문학적 소양이 미친 사람인데 거기에 웹툰적 연출까지 더해져 엄청난 수작이 나왔습니다. 댓글 다는 사람들도 전부 문학하는 사람 같아요.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라 추천드립니다. 대신 저처럼 장에서 피 흘리면서 볼 가능성 있습니다. 아래는 저궤도인간 등장인물 백상엽의 명대사 우리는 욕망이 언제 관성으로 굳어지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앞으로 당신에게 그 시기를 집요하게 캐물을 것이다에 대한 제가 미리 생각해 놓은 변명이자 대답입니다.

 

부록: 낮은 상태의 평형(2019.03.31)

 

처음 우울한 사람인 걸 깨달았을 때는 자책을 했다. 나는 왜 이럴까. 왜 남들처럼 밝지 못할까. 생각을 거듭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겨내려고 하면 더 나락으로 떨어진다. 술에 취해 실수를 하고, 죄책감을 덜어준 흥분 상태가 지나면 집의 가장 습하고 어두운 곳에 이마를 가져다 대고 머리를 식히고 가슴을 쥐어뜯는다.

 

타인이 하는 행동을 엉겁결에 흉내 냈을 때가 가장 큰 문제다. 결과는 대부분 좋지 못했다. 보여주기 싫은 모습을 보여주는 건 나신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다.

 

우연히 TV를 튼다. 저체온 동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내 삶이 동면 같다고 생각했다. 템포를 늦추고, 호흡을 줄여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내가 찾은 방법은 낮은 상태의 평형, 저점에서의 안정이다. 무리스럽게 기뻐하지 말고 흥분하지 않는 것. 기분에 따라 타인을 공격하지 않고 흥분되지 않으면 흥분하지 않는다. 어두움과 함께 살아야 한다면 이겨내지 말고 낮은 상태로 고저 없이 하루를 보낸다.

 

결과적으로 나는 타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내 피치를 끌어올리지 않게 됐다. 내가 흥분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당신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다섯 번 중 한 번쯤은 연기를 해냈던 것이다. 나를 약간 포기할 만큼 당신이 좋으니까.

 

좋은 일 기쁜 일이 없으면 그냥 내버려둔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어둡지만 안정에 문제가 없도록 숨을 적게 쉬고 식사를 적게 한다.

 

나는 좋아하는 지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한 노력을 아직 다 버리지 못했다. 대부분 큰 무리는 없지만 이것이 나를 갈아멁을 때 나는 캡슐을 열고 저체온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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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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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뿌의 프로필 이미지

    0
    6일 전

    오옷..댓글 기능이 있네요! (물론 인증 받아야해서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요) 작품 추천도 추천이지만 "나를 약간 포기할 만큼 당신이 좋으니까."라는 멘트를 마음에 담았습니다. ㅎ_ㅎ 오늘 비슷한 내용의 웹툰 짤을 봐서 추천드려요. 들개이빨 작가님의 웹툰 '부르다가 내가 죽을 여자뮤지션'입니다. 저도 오늘부터 감상할 예정입니다. 어떤 짤이 비슷했을지는 보시면서 맞춰보세요!ㅎㅎ

    ㄴ 답글 (1)
© 2026 돌아온 수요일의 이종철. 수종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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