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꼬맹이

가난한 사람과 고양이의 동거

2026.05.16 | 조회 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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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있어보여서 사람들이 내가 갑자기 부자가 된 줄 안다. 부자도 아닐 뿐더러 나는 스무살 즈음 매우 가난했었다. 그즈음 부모님 사업이 크게 실패했다. 부모님 입장에서도 처음 겪는 실패였다. 동생은 초등학생이니 성인인 내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우선 1000/50인 월세방을 정리했다. 보증금은 내 것이 아닌 같은 과 형의 것이었고 형은 군대를 가야 했다. 학교 근처에는 고등학생들이 사는 하숙방이 있었는데, 식사 제공을 안 받으면 컨테이너 방이 월 15만원이었다. 컨테이너지만 난방도 되는 나쁘지 않은 시설이다. 이곳으로 방을 옮기고 낮에는 막노동, 밤에는 가끔 빵꾸가 나면 PC방 알바 대타를 뛰었다. 그 다음날 공사현장에 가면 잠을 못 자고 가는 셈이었는데, PC방에서 새벽에 선잠을 자고 가도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PC방은 라면 등을 먹게 해줘서 저녁값도 아낄 수 있는 좋은 선택지였다. PC방 대타가 없는 날에는 딱 하나뿐인 냄비로 냄비밥을 지어 라면 하나에 500원이면 수북하게 주는 콩나물을 넣어 함께 끓여먹고, 그마저도 부족하면 미역국을 한 솥 끓여 먹는다. 냉동고 빈 자리는 없으니 최대한 빨리 먹어야 했다. 냄비가 하나 뿐이었으니 라면이나 미역국은 밥을 해놓고 그릇에 덜어놓은 후 다시 끓여야 했다.

하나에 500원하는 닭다리 튀김 트럭이 오는 날에는 가끔 2000원짜리 특식을 먹기도 했다. 퇴근 후 닭다리를 사서 돌아오는 어느 날, 학사마트(지금도 있다)에 들러 200원, 300원 하는 낱개 초코파이를 사고 컨테이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처음 보는 길고양이 하나가 아는 척을 했다. 주로 동물들이 싫어하는 사람이던 내게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잠깐 멈춰 서 고양이가 다리에 부비는 걸 경험하다, 저녁을 제때 먹기 위해 집으로 들어갔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는데, 고양이가 집까지 따라온 것이다. 이걸 간택이라고 부른다는 걸 몇년 뒤에 알았다. 간택을 하려거든 부잣집에 갈 것이지, 하루 벌어 먹고 사는 나에게 왜 찾아온 것일까.

고양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 닭다리를 나눠 먹고 욱신거리는 등에 파스를 바르고 잠에 들었다. 지친 자에게도 새벽이 오고, 일을 나가야 했다. 컨테이너 집에는 개인 욕실같은 건 없었다. 이곳저곳 상처를 피해 공용 화장실에서 씻고 나와 일터에 나갈 준비를 한다. 그런데 이름도 없었던 고양이가 1층 창문 문턱 위에 서서 문을 열어달라고 운다. 우리의 인연은 단 하루짜리구나 하며 고양이 머리를 부여잡고 이마를 부볐다. 잘 살라며, 어디서든 건강하라고. 문을 열어주니 고양이는 공터로 뛰어나갔다. 슬픔같은 건 사치였다. 나는 일을 해야 했다.

일을 마쳤다. 오늘은 닭다리 트럭이 없다. 대신 떡볶이 트럭이 있었다. 떡볶이는 나에게 저렴한 음식이 아니었다. 오늘은 라면을 먹자며 학사마트에서 가장 싼 스낵면과 쌍란(신기하게도 쌍란을 계속 팔았다)을 600원쯤 주고 사서 돌아왔다. 저녁부터는 비가 왔다. 낮 에 왔으면 일이 줄었을텐데, 하며 밥을 하고 덜어낸 후 라면을 끓인다.

창문에서 무언가 구슬픈 소리가 들린다. 고양이였다. 창문을 열어달라는 것이었다. 비를 피할 곳이 필요한 모양이다. 창문을 열어 고양이를 들이고, 손을 다쳐가며 씻겼지만 헤어 드라이어 같은 건 없어서 두개 뿐인 수건 중 하나로 돌돌 말아 아랫목에 놓았다. 돌돌 말린 김밥같은 고양이는 금방 잠에 들었다.

고양이는 매일 아침 공터로 나갔고, 나는 쇠를 짊어지러 갔다. 고양이는 밤에 늘 돌아왔다. 이렇게 한달 여 간을 지내고 나서는 이름을 지어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덩치가 작으니 꼬맹이라고 불렀고, 얼마 안 되는 소득을 모아 동물병원에서 주사를 맞히고 가장 저렴한 고양이 사료를 샀다. 저렴해서 그런지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지친 자에게도 고양이는 위안이 되었다. 보송한 솜털, 온기, 지쳐 고개를 들 힘도 없는 자에게 다가 이마를 부비며 상처를 핥았다. 우리가 그시절 핥았던 것은 우리의 노고와 상처에 대한 치하였을지 모른다. 고양이는 나의, 나는 고양이의 세포를 먹고 마셨다. 그것이 내 지친 삶에 대한 대가 없는 보상과 같았다.

공사현장이 완공되고 난 후 일을 잠시 쉴 때였다. 저녁에 감자탕 집에서 일을 하고 저녁까지 해결하고 올 때다. 고양이에 대한 지식이 없어 남은 뼈를 얻어오면 꼬맹이는 그렇게 좋아했다. 염분을 먹으면 안 된대서 찬물에 씻은 것인데도 싫어하는 날이 없었다.

내가 아침에 나가지 않아도 꼬맹이는 새벽에 항상 출근을 했는데, 자기가 먹던 걸 항상 가져왔다. 반만 남은 금붕어 조각, 먹다 남은 쥐포, 무엇인지 정체를 모를 생고기 등등. 그걸 내가 먹는 시늉을 하지 않으면 하루종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입에 넣는 척만 하고 꼬맹이가 보지 않을 때 어딘가로 던져버렸다. 나는 가난했지만 정체모를 생고기를 먹을 정도로 존엄성이 낮진 않았다.

군대를 가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야 할 때가 되었다. 꼬맹이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을 했다. 여긴 네 고향이야, 나랑 같이 갈래? 라고 묻고 반나절 동안 1층 창문을 열어뒀다. 꼬맹이는 그날 외출을 하지 않는다. 같이 가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어머니 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가 예삐(개)와 만난 꼬맹이는 예삐를 귀찮아하며 여생을 살다 우리 집에서 죽었다. 의사선생님 말로는, 어려보이지만 나이가 꽤 많은 편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노환으로 죽을 때가 되었다고.

꼬맹이가 죽는 날, 곡기를 끊은 꼬맹이 머리를 잡고 이튿날처럼 말했다. 꼬맹아.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덕분에 정말 행복했어-라고.

휴대폰에 카메라가 있었는데도 꼬맹이 사진을 하나도 안 남긴 것이 후회가 된다. 나는 그 이후로 어떤 동물과도 함께 살지 않는다. 내가 동물과 함께 사는 건 지구의 동일한 주인인 동물이 나에게 와서 함께 살기로 결정할 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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