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맛있는 한글은 'ㅁ'이었습니다.

2025. 10. 9일 (목)

술술 풀리는 이야기 l 한글로 알아보는 우리술 맛 표현법

당신의 미각을 깨울 자음의 비밀

구독자 선비 혹시 이런적 있지 않으신가?

"캬, 이 막걸리 맛 한번 기가 막힌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분명 깔끔하면서도 뭔가 은은하게 착 감기는데... 아이고, 답답허네!"

우리 술선비들, 술상 앞에서 이런 적 꼭 있었을 게야. 좋은 술이 내는 그 오묘한 맛의 결을 '캬, 좋다!'는 한마디에 다 담지 못해 속이 답답했던 순간 말일세.

그런데 말이네, 그 해답이 바로 우리 한글에 숨어있었다면 믿겠는가?

에이, 무슨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냐고? 천만에! 이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닐세.

세종대왕님이 술맛까지 내다보고 글자를 만드셨나 싶을 정도로, 소리를 내는 그 신체 경험과 맛을 느끼는 감각 사이에 아주 기가 막힌 연결고리가 있단 말이야.

오늘 이 술호랑의 재미있는 입담에 한번 귀를 기울여 보시게. 우리 술과 글이 어우러지는 맛의 향연으로 함께 떠나보자고!

자음, 술의 성격을 드러내다

모든 술에는 저마다의 성격이 있네. 칼 같은 녀석, 솜사탕 같은 녀석, 바위 같은 녀석까지. 한글의 자음은 바로 이 술의 핵심적인 성격, 즉 그 '놈'의 됨됨이를 알려주는 글자라네.

ㄱ (기역) - 칼처럼 베어내는 '깔끔함'

'ㄱ'은 단절의 소리라네.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았다가 '툭' 터져 나오며 모든 소리를 끊어내지. 이 맛을 품은 술은 바로 명인 안동소주 같은 맑은 증류주일세. 감압 증류 방식으로 누룩 향을 줄이고 100일 이상 숙성시켜, 쌀의 은은한 단맛만 남기고 칼처럼 딱 떨어지는 뒷맛이 일품이지. 

ㄴ (니은) - 세월을 품은 '느긋함'

'ㄴ'은 울림의 소리일세. 혀끝을 잇몸에 대고 '응~'하고 코로 소리를 보내면, 그 울림이 부드럽게 퍼져나가지. 이 맛은 마치 느린마을 막걸리의 '가을'이나 '겨울' 버전과 같네. 첫맛은 화려하지 않지만, 목을 넘어가고 나서도 그 구수함과 부드러움이 입안에 느긋하게 머물며 긴 여운을 남기지.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맛일세.

ㄷ (디귿) - 혀끝을 간질이는 '달큰함'

'ㄷ'은 경쾌함의 소리일세. 혀끝에서 '톡'하고 가볍게 터지는 이 소리는, 대놓고 '나 달다!' 외치는 단맛이 아닐세. 쌀을 오물오물 씹을 때 배어 나오는 것처럼 은근하고 기분 좋은 달큰함이지. 고려 시대부터 내려온 이화주(梨花酒)를 한 숟갈 떠먹으면 바로 이 맛을 느낄 수 있다네 . 인공적이지 않은, 곡물 본연의 기품 있는 단맛일세.

ㄹ (리을) - 혀 위를 굴러가는 '매끄러움'

'ㄹ'은 유희의 소리일세. 혀가 입천장을 부드럽게 '르르' 굴러가며 내는 소리처럼, 술이 혀 위를 막힘 없이 매끄럽게 굴러가는 감각을 뜻한다네. 특히 서울양조장의 '설화' 시리즈처럼 다섯 번이나 덧술하여 빚은 약주는, 마치 잘 닦은 옥구슬처럼 걸림 하나 없이 혀를 감싸며 굴러가는 'ㄹ'의 미학을 보여주지.

ㅁ (미음) - 입안을 꽉 채우는 '묵직함'

'ㅁ'은 풍만함의 소리일세. 입술을 닫고 '음~'하고 소리를 머금으면 입안이 가득 차오르지. 이 맛의 제왕은 단연 해창 막걸리라네. 물을 아끼고 찹쌀을 듬뿍 넣어 빚어, 한 모금만으로도 입안 전체를 점령하는 듯한 묵직함과 '꾸덕함'을 선사하지. 가벼운 술로는 성에 안 차는 장사들을 위한 술일세.

ㅂ (비읍) - 비단결 같은 '부드러움'

'ㅂ'은 조화의 소리일세. 두 입술이 부드럽게 맞닿았다가 터지며, 거친 마찰이 없지. 잘 빚은 막걸리가 목구멍을 스르륵 넘어갈 때의 그 부드러움이 바로 'ㅂ'의 맛일세. 특히 여러 번 덧술하여 빚은 삼양주(三釀酒) 계열의 막걸리는 크림처럼 부드러워, 술이 아니라 마치 고급스러운 음료를 마시는 듯한 착각을 준다네.

ㅅ (시옷) - 정신을 환기하는 '산뜻함'

'ㅅ'은 바람의 소리일세. 좁은 틈으로 '스~'하고 바람이 지나가며 정신을 환기시키지. 국화주 한 잔이 주는 산뜻함이 바로 'ㅅ'의 맛이라네. 100일 넘는 저온 숙성을 통해 피어난 국화의 우아한 향과 과실 향이 기분 좋은 생기를 불어넣어 주지.

ㅇ (이응) - 숨어있다 피어나는 '은근함'

'ㅇ'은 여백의 소리일세. 스스로는 소리가 없지만 다른 소리를 품어 깊이를 더해주지. 이 맛의 진수는 바로 감홍로(甘紅露) 같은 약재 술에서 느낄 수 있네 . 첫맛에는 계피와 생강 향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술을 삼키고 난 뒤 숨을 내쉬면 그 뒤에 숨어있던 온갖 약재의 향이 은근하게 피어오르며 신비로운 여운을 남긴다네. 한 수 위의 풍류를 아는 자만이 즐길 수 있는 맛이지.

ㅈ (지읒) - 호수처럼 '잔잔함'

'ㅈ'은 고요함의 소리일세. 강한 자극 없이 '즈'하고 낮게 깔리는 소리처럼, 맛의 파고가 높지 않고 미묘한 단맛과 온기가 호수처럼 잔잔하게 입안에 머무는 평온한 감각을 의미하네. 겨울밤, 따뜻하게 데운 저도수 탁주 한 사발이 주는 위로와 닮았구려.

ㅊ (치읓) - 목젖을 탁 치는 '청량함'

'ㅊ'은 폭발의 소리일세. 'ㅈ'보다 거센 바람이 '츠!'하고 터져 나오며 시원함을 선사하지. 이 맛은 맥주 기법으로 빚은 쌀과 잡곡의 술, 바네하임의 '상락향'과 우리 보리로 만든 생극양조의 '싱글몰트'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다네. 강한 탄산감이 주는 짜릿한 청량함은, 마치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듯한 상쾌함을 선사하지. 더운 여름날, 기름진 안주와 함께하면 그야말로 천하일품일세.

ㅋ, ㅌ, ㅍ (키읔, 티읕, 피읖) - 터지고, 튀고, 퍼지는 맛

이 녀석들은 거센 숨을 동반하는 소리라네. 'ㅋ'은 'ㄱ'의 강화판으로, 목구멍을 '콱' 긁는 듯한 칼칼함을, 'ㅌ'은 'ㄷ'의 강화판으로 혀끝에서 톡톡 터지는 탄산의 감각을, 'ㅍ'은 'ㅂ'의 강화판으로 입안 가득 팡팡 퍼지는 과실의 향미를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이지.

ㅎ (히읗) - 속을 데우는 '훈훈함'

'ㅎ'은 온기의 소리일세.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하~'하고 따뜻한 입김이 나오는 소리처럼, 술이 목을 타고 넘어간 뒤 몸 안에서부터 훈훈한 온기가 퍼져 올라오는 감각을 표현한다네. 500년 전통의 솔송주 한 잔을 마시면, 은은한 솔향과 함께 속을 덥혀주는 'ㅎ'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걸세.

술호랑의 맛 표현 비급 요약

혀끝으로 쓰는 마무리

어떤가, 구독자 선비. 이제 우리 술을 마실 때 그저 '달다', '쓰다', '맛있다'라고만 하기엔 아쉽지 않겠는가. 이 술의 끝 맛은 'ㄱ'인가, 'ㄴ'인가. 그 향은 'ㅅ'을 닮았나, 'ㅇ'을 닮았나. 혀끝으로 맛의 글자를 찾아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술과 우리 글을 가장 깊이 즐기는 방법일세.

한글날을 맞아, 이 새로운 맛의 언어로 우리 술과 더 깊이 교감하는 풍류를 즐겨보시게. 자네의 술자리가 더욱 풍성해질 것을 이 술호랑이가 보장하겠네. 그럼 다음 이야기 보따리를 들고 찾아올 때까지, 모두 향기로운 술과 함께하시게. 

오늘 보낸 이 글은 한글날 기념 재미로 봐주시게나! 어흥흥!

이번 주 구독자 선비의 소소한 이야기가 궁금하구려!📬
뉴스레터에서 더 좋았을 부분, 마음에 깊이 남은 점, 아쉬운 점까지
거리낌 없이 들려주면 크나큰 기쁨이 될 것이오.

협업 문의 : soolhorang@soolhorang.com

지나친 음주는 뇌졸증,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