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풀리는 이야기 l 역대 대통령의 만찬주는 무엇이였을까?
우리술 지식 한 잔 l 술맛을 바꾸는 쌀 이야기
대통령의 술잔엔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대통령의 건배 한 잔에는 단순한 술 이상의 뜻이 담겨 있지. 만찬주는 외교의 자리에 오르는 유일한 '술'이자, 그 나라의 철학, 국격, 그리고 시대의 감각을 전하는 조용한 메시지라네.
역대 대통령들이 어떤 술을 건넸는지 살펴보면 그 시대의 표정과 외교의 전략도 슬며시 떠오른다네.
오늘은 남북정상회담, 한미정상회담 같은 역사적인 순간부터 청와대 국빈만찬상의 술까지— 그 술이 왜 선택되었는지, 무슨 이야기를 품고 있었는지 한 잔씩 따라가 보세.
🕊️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 문배주
평양 목란관.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챙겨간 문배주 한 병이 김정일 위원장과의 첫 건배잔에 올랐지. 평양 태생의 술이 남한에서 명맥을 이어와 다시 평양으로 돌아간 순간. “우리는 원래 하나”, 이 잔에는 말 대신 향기로 전한 뜻이 담겼네.
🌸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 천년약속·복분자·백세주
노무현 대통령은 상황버섯 약주 ‘천년약속’으로 “천 년의 평화 약속”을 건배했지. 이어 만찬상에는 복분자주와 백세주가 올랐고, 김정일 위원장은 달콤한 향에 흡족해하며 술잔을 들었다네. 기운·장수·조화, 술의 풍미에 담긴 남북의 바람이었지.
🌸 2018년 3차 남북정상회담 – 두견주와 문배술
판문점 만찬에선 충남의 봄꽃술 ‘면천 두견주’와 다시 등장한 문배술이 건배주로 채택되었네. “남측의 봄과 북측의 향기”가 잔 속에 담긴 셈이지. 두 정상은 술잔을 교환하며 서로를 존중했고, 그 따뜻한 장면은 진달래처럼 한반도에 핀 평화의 봄을 상징했네.
🗽 한미 정상회담 – 문배주에서 오미자 와인까지
- 1993년 김영삼–클린턴: 문배주 칵테일의 향기에 클린턴 대통령이 감탄.
- 2003년 노무현–부시/클린턴: 나파밸리산 ‘끌로 뒤 발’ 와인, 미국과의 정을 와인으로 표현.
- 2017년 문재인–트럼프: ‘풍정사계 춘’, 한국 누룩의 자존심을 보여준 과감한 선택.
- 2022년 윤석열–바이든: 오미자 로제와인 + 나파 와인. 한미동맹 70주년을 담은 이중 메시지.
이상, 대통령의 잔에 담긴 국가의 언어, 시대의 향기를 따라가 본 시간이었네. 앞으로는 어떤 술이 다음 잔을 채우게 될지, 우리의 술은 다음 외교의 무대에서도 빛을 보게 될 것이네.
술맛을 바꾸는 쌀 이야기
구독자 선비, "햇반으로도 막걸리를 빚을 수 있다"라는 이야기 기억나는가? 남은 밥이라도 술은 되긴하나, 그 술이 과연 맛있을지는 또 다른 이야기라네. 좋은 술을 빚고자 하는 이들은 맑고 향긋한 술맛을 내기 위해, 어떤 쌀을 고를지부터 도정의 정도, 발효 방식까지 하나하나 정성스레 고민하곤 하지.
오늘은 그 술맛을 결정짓는 첫째 재료, 바로 ‘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하네.
술 빚는 쌀, 뭐가 다른가?
양조장에서는 밥을 짓는 쌀이 아니라, 술을 빚기 위해 길러진 '양조용 쌀'을 사용하네. 그 이유는 크게 심백, 쌀알의 구조, 그리고 단백질과 지방의 함량 때문이지.
심백
심백이란 쌀 속 하얀 중심부로, 대부분 전분으로 되어 있어 누룩과 효모가 잘 스며들지. 양조용 쌀은 이 심백이 크고 뚜렷해서, 발효가 고르게 일어나고 술맛이 한결 깔끔해지지.
쌀알의 구조
술을 빚는 쌀은 겉은 단단하고 속은 부드러워야 한다네. 그래야 도정할 때 쉽게 부서지지 않고, 물을 잘 머금어 발효가 안정되게 이어지지.
단백질과 지방
밥을 짓는 쌀은 영양이 중요하나, 술에 있어서는 단백질과 지방이 적을수록 좋다네. 이 성분들이 발효 중 잡내를 일으키거나 술이 상하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지.
요약하면 양조용 쌀은 발효가 잘되고, 술맛이 깔끔한 술을 빚기에 최적인 쌀이라 할 수 있겠네.
깎을수록 달라지는 쌀
쌀을 얼마나 깎아내느냐, 곧 '도정률'에 따라서도 술맛이 달라진다네. 겉껍질을 많이 벗겨낼수록 단백질과 지방이 줄어들고, 전분만 남게 되어 발효가 더 깔끔하게 진행된다네. 그만큼 술맛 또한 더욱 정갈하고 섬세해진다지.
일본에서는 이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서, 사케 등급을 도정률에 따라 나누고 있지. 이를테면 '준마이 다이긴조'는, 쌀을 절반 이상 깎아 만든 고급술이라 하더군.
우리나라에는 아직 공식적인 등급 구분은 없으나, 여러 양조장이 각기 다른 도정률을 실험하며 술맛을 조율하고 있다네.
요즘 '토종 쌀'이 뜨는 이유
최근 전통주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토종 쌀'이네. 예전에는 술맛이 전부였다면, 요즘은 그 술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도 중요해졌네.
토종 쌀이란, 예로부터 한반도 곳곳에서 자생하던 벼 품종을 말하네. 단순한 곡식이 아닌, 그 땅의 기후와 풍토가 길러낸 재료로, 지역의 음식과 술 문화를 함께 이뤄온 존재라 할 수 있지.
이를테면 북흑조, 백팔미, 한양조와 같은 품종으로 술을 빚으면, 견과류나 구운 빵, 베리류의 향미가 살아난다고 하네. 이는 마치 포도 품종이 와인의 맛을 좌우하듯, 술 또한 어떤 쌀로 빚느냐에 따라 그 풍미가 확연히 달라지지.
그런데 이 쌀들, 왜 사라졌을까?
불과 100여 년 전만 하여도, 우리나라에는 1,400종이 넘는 토종 쌀이 있었지. 하지만 일제강점기, 식량 증산을 위한 정책, 그리고 현대 농업의 기계화 흐름 속에서 토종 쌀은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된다네. 지금은 일부 품종만이 종자은행이나 소수 농가를 통해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네.
라벨 속 쌀 품종이 안 보이는 이유
허나 정작 '어떤 쌀로 빚었는가'하는 정보는 술병 라벨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네. 이는 몇 가지 현실적인 사정과 맞물려 있지.
첫째, 우리나라는 여러 품종의 쌀이 섞여 유통되는 일이 흔하다네. 양조장도 품종을 따로 지정하지 않으면, 혼합된 쌀을 쓸 수밖에 없는 실정이지.
둘째, 일본은 수백 종에 이르는 사케용 쌀을 개발해 왔으나, 우리나라는 아직 양조용 품종의 개발과 보급이 걸음마 단계에 있네. 재배 면적도 작고, 수급도 불안정한 실정이지.
셋째, 소규모 양조장 입장에서는 특정 품종을 고집하기에 가격과 공급의 부담이 크다 보니,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그런데도, 요즘 양조장들은 잊혔던 토종 쌀 속에서 우리 술의 개성과 지속 가능성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네. 아직은 생산과 유통의 제약이 따르나, 쌀 품종 역시 술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로 점차 주목받고 있으며, 이를 내세운 반가운 시도들도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네.
토종쌀로 만든 우리술
실제로 토종쌀을 활용하여 술의 다양성을 보여준 사례들이 있다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해 보겠네.
🌾 100년만에 되살린 토종쌀 막걸리 "세파 바이씨"
'세파 바이 씨(Cepa by C)'는 양평 우보농장에서 복원·재배한 토종쌀 다섯 품종으로 빚은 C막걸리의 특별판이라네. 귀도, 한양조, 백팔미, 북흑조, 맷돼지찰 이 다섯 품종은 각기 맛도 다르고 향도 다르며, 색과 질감까지 저마다의 개성을 지녔다네. 그러한 차이를 고스란히 살려 막걸리로 빚은 것이 이 술의 묘미지.
🍶 토종쌀 북흑조로 빚은 "임진강 쌀막걸리"
파주 임진강 인근에서 전통을 이어가는 평화마을양조장은 토종쌀 북흑조를 사용해 '임진강쌀막걸리'를 선보였다네. 이 술은 2025년 참발효어워즈 전통주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전통성과 품질을 두루 인정받았지.
쌀이 바뀌면 술맛 또한 달라진다고 하니, 참으로 흥미롭지 않은가? 다음에 전통주 한 병을 들게 된다면, 라벨에서 '어느 쌀로 빚었는지' 찾아보는 즐거움도 함께 누려보시게나.
참고자료
- 김주희,손은심,정철. 발효제 및 쌀의 도정률에 따른 막걸리의 품질특성평가.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2021.
- N/A. 술 쌀 이야기. 삶과술. 2014.
- 심현희. 토종쌀 막걸리는 전통주의 ‘오래된 미래’. BLOTER. 2024.
- 서지민. 전통주 프리미엄 열풍 타고 쌀품종 관심 증가…“연구개발 속도 내야”. 농민신문. 2023.
- 황반장. 우리가 기억해야 할 토종벼. 브런치. 2021.
- 에스프레소 막걸리·감와인…역대 청와대 만찬주는?
- 정상회담서 남한술로 건배
- [미리 보는 남북정상회담] ⑥두 정상 건배할 만찬주는 두견주·문배주
- 트럼프 환영 만찬주 ‘풍정사계-춘’, 제조자 “단맛 신맛 쓴맛 조화…사케와 달라”
- 尹대통령-바이든 건배주·만찬주는 ‘이 와인’
- 바이든 여사 "윤 대통령 국빈 만찬에 양국 상징과 아름다움 반영"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