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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과 멜론은 같은 날씨에서 자란다.
조지 엘리엇은 <미들 마치> 한 장을 이 이탈리아 속담으로 열어요. 이탈리아어로 쾌락piacer과 멜론popone의 어감이 리듬감 있기에 원어로 더 재미있는 표현이지요. 우리에게 더 익숙한 과일로 대체하자면 수박과 쾌락은 한 계절에 온다, 정도로 교체할 수 있을라나요. 그러나 이마저도 알맞은지 모르겠어요. 한국의 요즘 여름은 쾌락이 자라기에는 지나치게 무덥지 않은가요. 한국에서 쾌락의 생육 환경은 차라리 겨울일지 몰라요. 지리와 방어와 생굴의 초겨울. 독일에 살 때 난 유럽인들이 여름만을 기다리며 한 해를 산다는 걸 배웠어요. 여름이 오면 모든 게 느려지고 느슨해졌지요. 사시사철 비슷한 리듬의 삶을 사는 한국과 가장 다른 점이 그것이었어요. 튀르키예에 오니 하나 추가되는 것이 멜론이에요. 며칠 전 나는 단골 청과점에서, 멜론 시작 됐어요? 묻는 아주머니를 봤어요. 아아, 그럼은요. 절정에 이르려면 좀 기다려야겠지만, 시작이야 벌써 했죠. 점원은 답하더군요. 술 얘기를 해준다더니 어째서 쾌락이니 멜론이니 떠드나 싶으시겠어요. 그러나 이 얘기를 누락할 수 없었어요. 멜론으로 시작해 쾌락으로 끝나는 술, 그것이 라크rakı거든요.

라크는 발효 포도를 증류해 만들어요. 그러나 정작 마셔보면 포도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회향이나 팔각향에서 나는 아네톨 향만이 풀풀 풍겨요. 아네톨 성분이 함유된 아니스 씨앗을 넣고 재증류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에요. 그리스의 우조, 이탈리아의 삼부카, 프랑스의 파스티스가 다 아니스 계열의 증류주지요. 성분이 비슷한 이 술들은, 물에 희석하면 투명하던 액체가 뿌옇게 변한다는 특징을 지니지요. 라크는 그리하여 사자의 젖이라고도 불린답니다. 이 아니스 향이라는 것이 한국인들에게 보통 쉽지 않아요. 당신은 이 향을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어요. 나 또한 처음 해외에서 회향을 맛보았을 때, 생약 비스름한 향에 낭패스러웠던 기억이 있어요. 한입 먹고는 전부 버릴 수밖에 없었지요. 회향 씨앗으로 내려 마시는 차도 어찌나 역하던지요. 그러나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채소로 회향을 꼽아요. 회향과 오렌지를 버무린 샐러드를 즐겨 만들고, 회향 씨앗 차는 매일 저녁 마시다시피 하지요. 라크도 내게는 회향 비슷한 술이에요. 처음 마셨을 때는 맛도 낯설고 기분도 묘하던군요. 아마도 그 생소한 술을 어찌 마셔야 할지 몰라, 보드카처럼 훌떡 들이킨 탓이었을 테죠. 지금은 와인 다음으로 가장 즐겨 마시는 술이 되었어요. 입맛이란 것이 도통 변할 것 같지 않은데, 낯선 환경에 가면 제멋대로 변이해요. 안도감이 들면서도 괜히 그 적응력에 심술이 날 때가 있어요. 입이 내 마음보다 더 멀리 훅 나갔음에 배신감마저 밀려오고요.
라크는 아나톨리아를 대표하는 술이지만, 아무데서나 마실 수 있는 술은 아니랍니다. 우리가 국밥에 소주를 손쉽게 곁들이는 것과는 영 다르지요. 가격도 소주에 비하면야 턱없이 비싸고요. 처음부터 라크가 이런 위상을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좌우지간 오늘날에는 이런 형태로 자리 잡은 듯 보여요. 라크는 보통 라크를 취급하는 전문점, 메이하네meyhane에서 마셔요. 라크는 퇴근하고 귀가하다가, 고기를 구워 먹다 허전해서 시켜 먹는 술이라기보다, 누구와 언제, 왜, 어디서 마실 것인지를 미리 정해놓는 술에 가까워요. 생일이나 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도 라크를 마시고요. 그런 이유로는 일단, 라크가 꼭 안주를 곁들이는 술이기 때문이에요. 안주와 함께 라크 마시는 자리를 ‘라크 테이블’이라고 불러요. 우리가 짜장면 가격을 따지듯, 아나톨리아에서는 요즘 라크 테이블 인당 얼마나 해? 라고 물으며 그때그때 물가를 헤아리지요.
라크를 마실 때 곁들여 먹는 안주를 메제meze라고 불러요. 메이하네 주방에는 통상 갖가지 메제가 끝도 없이 준비되어 있는데, 시키지 않아도 자리에 앉으면 나오는 기본 메제가 바로 멜론과 치즈에요. 푹 익어 달콤한 멜론 한 쪽, 짭짤한 베야즈 치즈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면 라크 생각이 간절해지지요. 베야즈 치즈는 그리스의 페타 치즈와 비슷한 식감과 맛의 흰 치즈예요. 산도가 높고 잘 부스러져요. 어떤 이들은 멜론과 베야즈 치즈만 있으면 라크 한 병을 뚝딱 해치울 수 있노라 자신해요. 그 정도로 술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안주가, 바로 멜론과 치즈랍니다. 메이하네에서 메제를 내오는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뉘어요. 결혼식 뒤풀이나 모임처럼 미리 예약을 한 경우라면 코스 요리처럼 음식이 알아서 나오지요. 그런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웨이터가 커다란 쟁반을 들고 테이블로 다가와요. 그 위에는 스무 종류도 훌쩍 넘는 메제가 종지마다 담겨 놓여있지요. 웨이터가 테이블로 오는 대신 냉장 진열대로 손님을 안내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손님은 쟁반이나 진열대에서 원하는 메제를 골라요. 처음 이 메제들을 보면 그 가짓수에 압도되어 제대로 된 선택을 내리기 어려워요. 그러나 웨이터들은 대체로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재료나 조리법 등을 상세히 일러준답니다.


라크와 곁들여 먹는 메제는 가벼우며 산미가 풍부해요. 올리브유가 잔뜩 들어가 있고, 고기보다는 해산물이 더 흔하지요. 메제 설명을 잠시 해드릴까요? 으레 차가운 메제를 먼저 시켜요. 어떤 찬 메제는 언뜻 보아서는 음식이 아니라 소스 같아요. 잘게 으깨진 형태가 많기 때문이지요. 치즈나 요구르트에 살짝 데치거나 굽거나 생으로 다진 야채를 넣고, 거기에 올리브유와 레몬즙과 허브를 섞어요. 이외에도 튀긴 야채나 생선을 올리브유에 절인 것, 호박꽃이나 포도잎을 활용한 쌈밥, 콩 퓌레 등을 모두 차갑게 먹어요. 찬 메제는 라크 테이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데, 천천히 대화하며 조금씩 덜어 먹는 문화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식지 않으니 오랜 시간 집어 먹어도 무방하지요. 뜨거운 메제는 차가운 메제 사이사이에 등장해요. 뜨거운 메제를 내올 적당한 타이밍을 찾느라, 웨이터들은 테이블의 속도를 매의 눈으로 주시하곤 하지요. 오징어 튀김, 새우 감바스, 문어 구이, 소나 양 간 튀김 등이 대표적인 뜨거운 메제 종류예요. 짜장면이나 짬뽕이 어느 중국집에라도 있듯, 메이하네에 이 메뉴들은 항상 있어요. 메제를 충분히 먹고도 배가 고프면, 주요리를 마저 시킬 수 있어요. 한 마리를 통으로 굽거나 튀긴 생선, 완자 등이 준비되어 있지요. 메뉴에는 적혀있지 않은 시그니쳐 메뉴가 있는 경우도 있어요. 이런 음식들은 대체로 단골에게 내오지요. 주요리를 의무적으로 시킬 필요는 없지만, 메제는 시키지 않으면 안돼요. 메이하네는 식당이 아니니까요. 간혹 술을 마시지 않는 무슬림 관광객들이 메이하네에 잘못 들어와 주요리 만을 시켜 먹는 경우를 봤어요. 문화를 모르는 데서 기인한 실수니 그들 잘못은 아니지요. 그러나 몇몇 튀르키예인들은 조용히 혀를 차더군요. 쯧쯧, 술도 안 마시면서 밥집에나 갈 것이지 굳이 메이하네에 들어앉아 물을 흐리기는….
메이하네에서는 지켜야 할 규칙들이 꽤 많아요. 비잔티움 시절부터 세워지고 다듬어진 규칙들이지요. 정형시를 읊듯 형식이라는 양탄자를 깔고 앉아 사자의 젖을 들이켜요. 먼저 음주 시간을 살펴보지요. 라크 테이블은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나요. 자정을 넘기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무슬림들이 하루에 다섯 번 올리는 기도 중, 저녁 기도부터 밤 기도 사이에 술을 마시도록 문화가 정착 되었지요. 무슬림들의 기도 사정에 의해 음주 시간이 정해졌다는 게 웃지 못할 일이지요. 라크는 잔에 따라 반드시 물에 희석하고, 한 번에 한 모금씩 간격을 두고 마셔야 해요. 벌컥벌컥 들이키거나 일찍 취해서는 안 돼요. 만취해 주사를 부리거나 깽판을 치는 이들은 다시는 같은 모임에 초대 받지 못하지요. 오스만 제국 때에도 그런 이들은 마을 주민의 빈축을 샀다고 적혀있어요. 주정뱅이들에게는 길거리 개들도 무자비하게 우짖어댔고, 그 자녀들은 시집 장가 가기도 어려웠다고요. 코에 접시를 박고 먹기만 해서도 안 돼고, 남에게 음식이나 술을 빨리 해치우기를 종용해서도 안 돼요. 라크는 대화를 위한 술로 여겨져요. 일상적 잡담보다는 한층 더 심오한 주제가 오가지요. 그러나 모든 주제를 자신에 관한 것으로 돌리거나, 판을 혼자 장악하거나, 욕설을 던지거나,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 안 돼요. 상대방의 기분과 속도를 헤아리며 천천히 대화를 이끌어가야 하지요. 정치와 사회, 종교에 관한 이야기까지도 라크 테이블에서 오가요. 대화 도중 카타르시스를 느껴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어요. 이토록 대화가 중심에 서도록 주도가 형성된 탓에, 17세기 술탄 무라드 4세는 강력한 음주법을 시행하기도 했어요. 술자리에서 반란이 모의될 것을 염려했던 거지요. 정작 자신은 애주가였다지만, 그는 음주하면 사형에 처할 정도로 고강도 철퇴를 내렸어요. 암행어사마냥 백성으로 위장하고 술 마시는 이들을 검거하러 직접 나서기도 했다지요. 그런데 무라드 4세가 그 시대 재담가, 술꾼 무스타파와 대면했다는 일화가 재미있어요. 실제 인물이지만 여러 일화가 축적되어 전설 속 인물처럼 여겨지는 술꾼 무스타파를, 익살스러운 오스만 제국 버전 김삿갓 쯤으로 비할 수 있겠어요. 무라드 4세는 무스타파가 탄 배에 올라 함께 술을 마시게 됐어요. 몇 모금 후 술탄은 넌지시 물었어요. 자네, 내가 금주령 내린 거 모르나? 그러자 무스타파는 이렇게 답했대요. 얼레, 두어 모금 마셨다고 자기가 술탄이라네. 한 모금 더 마시면 아주 알라라고 하시겠수? 대단한 권력과 법 앞에서도 넉살을 부리고 만 무스타파의 이 일화는 두고두고 아나톨리아 사람들에게 사랑 받았지요. 아직도 시대극에 이 장면이 등장할 정도니 말이에요.
이렇듯 아나톨리아에서는 술의 뿌리가 완전히 뽑힌 적이 없어요. 금기는 오히려 욕망을 부추겼을 뿐이지요. 20세기 중반 역사 작가 레샤드 에크렘 코추는 오스만 제국의 메이하네를 총 세 가지로 구분했어요. 첫 번째는 국가와 길드가 공인한 허가형이에요. 예니체리 군인이나 길드 장인, 예술가, 상인 등이 주요 고객층이었지요. 허가형 메이하네는 보통 가문 대대로 대물림되었어요. 주로 룸인이나 아르메니아인, 유대인에 의해 운영되었기에, 허가형 용어에는 룸어가 많이 쓰였어요. 술집 사장은 바르바, 바텐더는 마스토리 등으로 불렸지요. 유서 깊은 메이하네의 주방은 청결했고 요리사들의 솜씨는 주방장급이었대요. 생선 수프, 오징어 조림, 케밥 등을 만들어 팔았으며 염장 생선은 몰타나 그리스 섬에서 가져왔다지요. 솜씨 좋은 이스탄불의 몇몇 메이하네는 지중해나 흑해는 물론, 유럽의 상인들에게까지 이름을 떨쳤다고 해요. 두 번째는 면허 없이 식료품점이나 청과점 뒤에 소파를 갖다 놓고 마시는 소파형이에요. 허가형에서 파는 것보다 낮은 품질의 술을 팔았지요. 허가형 메이하네에 드나들 여유가 없는 서민들이 소파형을 장악했어요. 마지막으로는 유랑형이에요. 유랑형 메이하네는 1인 체제 이동식 술집이었어요. 말하자면 거리를 떠돌며 라크를 파는 행상이었던 거예요. 주로 아르메니아인들이 이 일을 했는데, 정부 감시를 받았다지만 17세기 중반 이스탄불에만 무려 800여명의 라크 행상이 있었노라 기록되어요. 행상들은 허리에 기나긴 양 창자를 감고 다녔어요. 창자 안은 라크로 채워져 있었고, 창자 끝에는 수도꼭지가 달려 있었지요. 이들은 스스로가 라크 행상임을 표시하기 위해 어깨에 수건을 걸치고 청과점 사이사이를 배회했어요. 행상을 찾는 고객들은 뱃사공, 짐꾼, 이발사 등의 하층민이었지요. 술고픈 잠재 손님이 행상에게 눈빛을 보내면, 이들은 함께 근처 청과점으로 쑥 들어갔어요. 행상은 안주머니에서 잔을 재빨리 꺼내 수도꼭지로 라크를 따라주었어요. 손님은 한두 모금 안에 라크를 전부 입에 털어 넣어야 했지요. 그리고는 포도 한 알이나 양배추 잎 한 장을 안주 삼아 먹었어요. 그러니 어떤가요. 근사한 선술집에서부터 거리에서까지, 마음만 먹으면 술을 마실 방도는 가지각색이었음이 확연하지요.

내 휴대폰에는 라크 테이블이라 제목 붙은 메모장이 하나 있어요. 라크 테이블에 참석할 때마다 거기 기록은 늘어나지요. 귓동냥으로 들은 얘기들, 기억해야 할 제목이나 이름들, 함께했던 이들을 떠올리게 할 단어나 문장들을 남겨두어요. 최근 라크를 마신 날, 내가 거기 휘갈겨 놓은 것을 잠시 볼까요.

이상하게 라크 테이블에서 나눴던 대화는 매우 선명히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요. 메모를 처음 다시 들추어 보면 이게 무슨 말이었나 싶다가도, 이윽고 메모장 위로 그 상황이 하나 둘 재현되지요. 나는 쾌락을 시간에 따라 달리 정의해 왔어요. 한때 그것은 끝나지 않는 음조였거나 멈추지 않는 박동, 멎지 않는 밤과 손아귀에 쥔 애욕이었던가요. 다시금 나는 메모장을 훑어보아요. 테이블 위 얼비치는 달빛과 사람들, 짙게 풍기던 밤 바람 냄새, 누군가 던진 부조리한 농담, 그때 사람들의 웃음 소리와 온도. 사리사리 피어오르는 그것들을, 지금의 나로서는 쾌락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군요. 이번 주 아나톨리아에서는 희생절 명절이 시작됐어요. 이 땅에서 가장 성대한 명절이지요. 나는 양의 머리 대신, 오늘 저녁 멜론 한 덩이를 자르려고 해요.
노래에는 돌은 있는데 개는 없네, 개는 있는데 돌이 없네, 하는 가사가 반복되어요. 그러다 그러나 그 개 왕의 개라네. 배짱 있으면 돌을 던져 보게! 하고 전개되지요. 곡의 후반부에 가서는 터키 아나돌루 록의 전설적 싱어송라이터, 젬 카라자가 갑자기 끼어들어요. 밴드 멤버가 말하지요. 녹음 중이잖아요. 왜 그래요? 그러자 젬 카라자가 묻지요. 이 시 언제 쓰인 건가? 멤버가 답해요. 글쎄, 한 서기 500년대? 그러자 카라자가 말하지요. 천 사백 년 지났으면 말이야, 그리고 그들은 함께 외쳐요. 이제 돌 던질 만하지! 자, 던진다! 최근 라크 테이블에서는, 정말 서기 500년에 쓰인 원작 시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토론이 오갔어요. 지구 저편 술상에서 사람들은 어떤 주제를 안주 삼아 마시는가, 그런 게 가끔 궁금해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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