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질문, N개의 답을 찾는 실험 공동체

2025.12.31 | 조회 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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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spaceT

다른 spaceT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folio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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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볼 때 오지선다 문제에 답이 하나뿐인 게 종종 불만이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나의 오답도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다행히도 삶의 복잡한 문제에는 답이 여러개라, 여러 사람이 함께 풀면 각자의 고유한 답이 상호작용하며 훨씬 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space T는 태생부터 실험 공동체였습니다.'청소년이 자유롭게 탐색하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려면 어떤 공간과 경험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지역마다의 답을 찾는 프로젝트니까요. 2025년에는 지역별 space T가 성숙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질문에 답을 찾는 실험을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한 해간 함께 또 따로 찾아낸 다채로운 답을 소개합니다.



2025년 space T의 마지막 계절 

 

① space T|책 읽는 기쁨을 찾아서  

1년간 진행한 '책 닿게 하기 실험'을 회고하는 모습
1년간 진행한 '책 닿게 하기 실험'을 회고하는 모습

 

올해 space T는 전주, 수원, 세종, 대구, 영등포의 운영자가 다함께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청소년이 책을 보다 즐겁고 편하게 접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이제까지 space T가 책 외의 할거리에 집중했다면, 이번 해에는 책을 space T답게 제안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이죠. 분기별로 다같이 모여 기획하고, 상호 피드백하고, 이용자 반응 데이터를 보며 기획을 수정하다 보니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서가 이름 다시 짓기, 각종 챌린지를 이용해 책 보고 싶게 만들기, 손이 노는 공간 구석구석에 어울리는 책을 놓기, 인기 웹툰 옆에 책을 두기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공통점은 이용자의 필요, 관심사와 무관하게 ‘독서 만능주의’로 접근하지 않고 이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고려했다는 점입니다. 이용자가 책 읽기 편하다고 느끼는 장소를 찾고, 관심을 보이는 장르를 찾고, 좀 더 편안하게 책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서요! space T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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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이용자|조용히 자라나는 나무처럼

늘 같은 자리에서 <하이큐>를 정독하는 트윈웨이브의 이용자
늘 같은 자리에서 <하이큐>를 정독하는 트윈웨이브의 이용자

나무는 조용히 자라다보니 매일 볼 땐 변화가 느껴지지 않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만 같아요. 그러다 무성해진 나무를 몇 달 만에 발견했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자라느라 애썼을 나무의 일을.

올해 space T에서는 마치 나무처럼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변화한 이용자들을 만나볼 수 있었어요. 방학 때 그린대로에 처음 방문한 중학생 남자 이용자는 글쓰기에 관심을 보이고 방학동안 매일 그린대로에 왔습니다. 방학 마칠 쯤엔 짧은 글을 여러 개 엮은 책을 완성했답니다.

한편, 트윈웨이브에서 1년째 같은 자리에서 배구 만화 <하이큐>를 읽던 한 이용자는 만화를 보는데서 그치지 않고 배구를 배워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트윈웨이브에서 아이패드를 빌려 직접 배구학원을 리스트업해 부모님을 설득하기도 했다고요.

이 외에도 space T에서 처음 뜨개질을 접한 후 몇 달만에 혼자서 2시간 동안 뜨개질을 할 수 있게 된 이용자, 계란 깨는 법도 몰랐다가 이제는 베이킹 동아리를 운영하며 간단한 빵을 또래끼리 완성하게 된 이용자 등 다양한 성장이 한해동안 space T에서 일어났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길 바라며 다양한 선택지를 선별해둔 보람 바로 이럴 때 느끼는 것이겠죠? 계속해서 많은 나무들이 자랄 수 있도록 space T든든한 토양이 되어야 하는 이유기도 하고요.


③ 콘텐츠|책으로 노는 색다른 방법

책 제목 끝말잇기를 진행 중인 우주로1216
책 제목 끝말잇기를 진행 중인 우주로1216

때론 오래 고민한 문제의 해답이 아주 단순하고 가벼운 방법일 때가 있죠. 우주로1216는 6년째 수많은 이용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공간이지만, ‘책’이 병풍과 같은 존재가 되곤 해서 고민이 많았어요.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면 ‘우주로1216에서는 우주로1216에서만 할 수 있는 걸 해야죠! 책은 집에서도 볼 수 있으니까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고심 끝에 우주로1216 운영자들은 우주로1216에서만 할 수 있는 책 경험을 고안했습니다. 바로 책 제목 끝말잇기! 우주로1216는 본래 이용자들이 소소한 자체 콘텐츠를 자주 생성해내는 공간이에요. 우주로에 있는 곰돌이 인형에 자신의 옷을 ootd 입혀주는 콘텐츠를 만든다든지, 할로윈을 맞아 ‘귀신 퇴치 포토존’을 직접 만든다든지 하는식이으로요. 이런 문화를 반영하여 노는 듯 책을 탐색할 수 있는 <책 제목 끝말잇기> 콘텐츠를 제안한 거죠! 결과는 대성공. 끝말잇기에 참여하고 싶어 다양한 책을 탐색하다 우주로1216 한 번도 집힌 적 없는 책들이 집히는 장면이 나타나고 있다고!


④ 프로그램|연극의 무대가 된 사이로

연그 <틈, 사이로> 의 몇몇 장면
연그 <틈, 사이로> 의 몇몇 장면

지난 12월 6일 사이로 이용자 10여명이 사이로를 무대로 <틈, 사이로>라는 연극을 올렸어요. 5회차의 프로그램에서 4회 동안 준비하고, 5회에는 연극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준비 기간이 길지 않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강사님도 ‘이게 될까?’라는 마음을 품으셨다고. 그러나 편견을 깨고 생각을 넓혀주는 공간 '사이로'에 쌓인 아이들의 경험 때문에 적은 회차가 무색하게 공연은 착착 준비되었어요. 극본에 진지하게 피드백까지 해준 이용자들의 상상력과 에너지 덕에 오히려 강사님이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연극 당일에는 이용자들의 부모, 형제, 친구 등 수많은 인파가 관객으로 찾아와 사이로를 빼곡히 채웠습니다. 그 모습이 연극이 아니라 흡사 축제에 가까웠다고요.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용자들은 평소보다 몰입하여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다는 후문. space T에서 어디까지 가능할지 그 지평이 한 뼘 넓어졌네요. 


⑤ 이벤트|트윈웨이브 작품전: 자유롭게______하다

첨부 이미지

space T 최초의 작품전이 트윈웨이브에서 열렸어요. 전시에서는 “자유롭게 ______ 하다”라는 제목으로 트윈웨이브 이용자들의 작품 세계를 섬세히 소개합니다. 작업의 시작이 되는 소소하고 작은 작품들을 모아서 전시한 anything & begin 존 트윈웨이브에 꾸준히 방문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쳐온 이용자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creative 존, 직접 드로잉을 해보며 트윈웨이브를 살짝 맛볼 수 있는 dynamic 존까지 다채롭게 준비되었습니다. 이용자가 말하는 트윈웨이브의 의미까지 살펴볼 수 있다고 하니 안 가볼 수 없겠죠? 전시는 26년 2월 28일까지 슬기샘어린이도서관 2층 어울림터에서 진행됩니다. 

 


눈 여겨 볼 이야기 

우리는 왜 청소년에게 책을 권하려 하나? 

ⒸMorgan Ramberg
ⒸMorgan Ramberg

본래 책을 좋아하는 편이긴 했지만, 책의 유용함을 구체적으로 느낀건 대학원 때였습니다.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막막한 질문을 들고 도서관을 찾으면, 어김없이 답으로 가는 경로를 발견할 수 있었거든요. 한 두가지 키워드만을 힌트로 삼고, 책을 검색해 서가에 도달하면 마음에 품고 있던 질문에 답을 던지는 듯한 책이 상하좌우에 가득했습니다. 한바탕 골라 바닥에 쌓아두고 목차부터 살펴보다 보면, 이 문제를 푸는데 핵심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금방 파악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곧잘 대학원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어떤 문제든 필요한 정보를 찾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라 말하곤 했어요. 인터넷에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하필 책이 아니면 정보를 얻을 수 없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고유한 경험이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에서 김지원 기자의 이야기가 제 믿음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기자는 책에서 넘쳐나는 텍스트 중 무엇을 읽을지 결정하는 문제는 비단 21세기 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늘 부딪히는 문제였음을 지적합니다. 기원전 900년경 쓰인 성경 전도서에서 이미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라고 적힌 점을 인용하면서요. 그렇다면 더 중요한 문제는 정보가 넘쳐난다는 점이 아니라 ‘읽을 만한 텍스트란 과연 무엇인가?’를 선별하는 일일 겁니다. 이 질문에 김지원 기자는 세 가지 요소를 반복적으로 언급합니다. 내가 품고 있는 질문과 관계가 있고, 믿을만한 정보로 구성되어 있고,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 텍스트는 높은 확률로 책이라고요. 정보의 원천이 어디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로 복사된 글이 넘쳐나는 시대에, 책은 오래 고민한 주제에 대해 엄선한 정보로 풀어낸 저자의 글을 편집자가 검증하고, 읽기 좋게 교정하는 등 여러 ‘더딘 과정’을 거쳐 완성된 글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갑자기 원치 않는 광고를 볼 필요도 없고, 정성껏 달린 각주와 참고 자료를 통해 다음 갈 방향을 정할 수 있으며, 저자와 소통하듯 책을 읽다보면 원래 알고 싶었던 것 이상의 부수적인 즐거움까지 얻을 수 있다면서요.

 

문제는 이 즐거움까지 닿기에 청소년의 책 읽기 경험이 꽤 많이 오염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즐거움을 느끼기 전에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리거나, 필요에 따라 책을 선택하기 전에 ‘읽어야만 하는 책'이 이미 손에 들려지거나, 때론 제대로 이해했는지 평가까지 받죠. 재밌는 지점은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도 실제로 청소년보다 책을 훨씬 적게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2023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고, 연간 성인의 종합 독서량이 3.9권인 것에 반해 학생의 종합 독서량은 36권으로 10배가량 많았습니다. 한편 성인의 71.9% 학생의 52.0%가 자신의 독서량이 부족하다고 평가하며 '책을 읽어야 한다'는 모종의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김지원 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왜 읽는 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일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읽기에 대해 주눅 들게 만드는 방향으로 문해력 독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탓”일 겁니다.

 

때문에 이전과 같이 ‘책’ 자체를 우상시 할 것이 아니라,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도구 중 하나인 ‘책’을 보다 즐겁게 만나는 경험을 선사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일 겁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힌트는 늘 우리의 이용자에게서 나옵니다. 전국 1000여명의 청소년들의 즐거운 독서를 이끌고 있는 <책톡!900 독서클럽> 2025년 참여자 조사에 따르면 모임에서 선정된 5권의 책을 모두 완독한 비율은 무려 44.8%나 됩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완독의 핵심 동력은 함께 읽고 나누는 즐거움입니다. 책톡 참여자들은 ‘‘책을 읽고 이야기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54.5%)라는 기대감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실제 완독의 이유로도 ‘책수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서’(38.9%), ‘책톡 친구들과 읽기로 약속해서’(37.7%) 등 사회적 관계와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꼽았습니다. 특히, 책을 모두 완독했다고 응답한 참여자가 ‘책수다 참여’ ‘친구와의 약속’ 같은 관계적 요인을 더 많이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한편 익히 알고 있듯이 ‘책의 주제가 흥미로운가?’도 중요한 요인으로 꼽혔습니다. 완독 이유 중 1순위로 ‘책의 주제가 흥미로워서(40.5%)’가 선택된 반면, 책을 완독하지 못한 이유로 ‘책의 내용 혹은 문장이 어렵거나 지루해서 (36.5%)’가 주요한 요인으로 꼽혔습니다. 결국, space T다운 책 경험을 고민할 때도 관계를 중시하는 청소년의 특성, 청소년의 평소 관심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도서관에서 발견한 콘텐츠를 통해 낯선 이와 친구가 되는 경험, 궁금했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문제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것, 이용자의 필요를 살피고 그에 맞는 경험을 설계하는 것. 모두 space T가 가장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자유로운 탐색과 자신의 세계를 넓히기 위한 도구로서 책을 권하고, 책과 만나는 즐거운 첫 경험을 제공하는 일을 space T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요?

 

청소년들이 space T에서 책을 통해 했으면 이런 경험을 하길 바라며, 김지원 기자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칩니다.

책을 펼치고, 직접 읽고, 고민하고, 끼고 뒹굴지 않으면 당도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바로 이 책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언제든 그 안에서 헤맬 수 있다는 감각과 작은 용기가 생겨나면 그 때부터는 제멋대로 조금씩 그 안에서 자신의 영토를 넓혀가면 될 일이다.

김지원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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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이, ✨해란 

사람, 공간, 문화, 그리고 이것들이 만드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사회학을 공부했습니다. 아이디어를 현실화 하고 싶은 욕구를 따라 잠시 IT회사에서 일했습니다. 제3의 어른들의 협력으로, 세상에 없던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에 이제까지의 경험을 잘 활용해 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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