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구독자~! 잘 지냈어?
오늘은 18번째 뉴스레터로 보냈던 첫 번째 회사얘기 이후 1년에 대해 얘기하려고 해.
지난 이야기
나는 영국 워킹홀리데이 시절 우여곡절 끝에 그래픽 디자이너로 첫 커리어를 쌓았어. 그때 일한 곳 사장이 취업비자를 지원해주겠다고 해놓고 내 비자 끝날 때가 되서야 비자 못 해주겠다고 내뺐어. 그렇게 워킹비자 기간이 다 된 2015년 9월 1일 한국으로 급하게 돌아와야 했지. 내가 능동적으로 영국과 마무리 지은 게 아니라 영국에게 차인 느낌이었어. 괜히 너무 억울한 거야. 그렇다고 한국에서 일을 시작하자니 한국의 근무환경은 생각만 해도 답답한 거야. 오기가 생기더라. 그래서 부모님께 딱 1년만 영국 취업에 도전해보겠다고 했어.
(지난 이야기 풀버전이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 클릭!)
https://maily.so/ss.in.london/posts/e6fe29fd
취업 재도전 시작
위 글은 구직활동 1년 동안 내가 공책에 종종 썼던 글이야. 과연 이렇게 묘사한 회사를 찾았을까?
영국은 미국과 함께 비자 받기 가장 어려운 나라로 유명해. 2016년 당시 취업비자 받는 과정은 4단계였어.
1단계, 회사의 스폰서십 자격증 취득: 취업비자를 약속한 회사는 영국 정부로부터 받은 스폰서십 자격증이 있어야 해. 없으면 일단 이것부터 따야 하지. 그 자격증은 EU가 아닌 외국인을 고용할 때 필요해.
2단계, 회사는 한 달간 구인광고를 낸다: 고용하고자 하는 외국인이 국내 수요로 대체할 수 없다고 증명하는 과정이야. 참 피곤하지? 😅
3단계, 회사가 정부에 비자를 신청: 회사는 비자지원서를 낼 때 고용 외국인의 비자지원비, 의료보험료, 국민보험료까지 내야 해.
4단계, 비자 결과 기다리기: 프리미엄 서비스에 따라 1일~7일, 스탠다드 서비스면 몇 달 기다려야 결과가 나와.
어때...? 생각만 해도 졸라 성가시지 않니? 이렇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절차를 해줄 회사가 몇 있겠어? 나같아도 외국인 안 쓰겠더라. 불가능한 이유는 넘쳤어. 유럽연합 자체에도 인재가 넘쳐나고, 내가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었어. 그렇다고 내 디자인 실력이 엄청 뛰어나냐? 그것도 아니었어. 이런 생각으로 하루에도 수십번씩 기가 죽는 거야.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더 싫은 건 한국에서 일하는 거였어. 일 외적으로 신경 쓸 게 많은 수직 구조와 회식문화가 너무 싫었거든... 한국이냐, 영국이냐 고른다면 압도감이 들어도 역시나 영국 근무환경이 나았어. 영국에 미련이 많이 남아있기도 했으니 에라 모르겠다 일단 해보기로 한 거지 뭐. 머릿속에 ‘Just do it’ 모드를 켰어💡
근데 그렇다고 내가 항상 Just do it 모드였냐? 절대 아냐. '난 할 수 있어!'와 '난 안 될 거야'를 하루에도 수십번씩 왔다갔다했어. 거의 자아 분열모드였지. 압도감에 엉엉 울다가 다시 힘을 냈다가 또 기죽었다가~😵💫
감정기복이 정말 심했어도 매일 조금이라도 취업 준비를 했어. 일단 9월 한 달동안은 기존에 있던 포트폴리오로 구인광고에 나온 디자인 job이면 닥치는 대로 지원했어.
영국 스포츠 데이터 회사와의 2개월 원격 근무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 때, 영국에 한 스포츠 데이터 회사와 인연이 닿았어. 그쪽에서 내가 했던 인포그래픽을 좋게 봐줬더라고. 일단 면접 단계에서 과제를 줬어. 영국 프리미어 리그 축구팀 리버풀 vs 에버튼의 경기 골 확률 데이터를 던져주고는 시각화를 해보라고 했지. 근데 엑셀로 이뤄진 데이터 용어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예를 들면 Attempts, Good chance, Great chance 등등... 새벽이 될 때까지 엄청 헤매다가 영국 축구광팬 친구가 용어를 설명해줘서 겨우 이해했어. 막판에 벼락치기로 디자인이 생각보다 잘 나왔고 합격하게 되었지. 그렇게 풀타임 계약직으로 2개월동안 한국에서 원격으로 영국 시차에 맞춰 오후 4시~밤 12시까지 일했어. 12월 말에 내가 마음에 들면 취업비자를 해준다고 하더라고. 친구 덕에 합격은 했지만 그때까지 프리미어 리그 축구팀 이름을 하나도 몰랐어. 교보문고에서 프리미어 축구팀책을 주문해서 공부했지. 다행히 일의 본질은 이전직장에서 했던 인포그래픽 디자인과 비슷하더라고. 받은 정보를 막대그래프나 파이차트로 멋진 스타일로 알기 쉽게 보여주는 것이었어.
하지만 이곳에서도 12월말 취업비자를 지원해주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지 뭐야... 아무래도 코딩도 좀 하는 사람을 원했던 것 같아. 다시 한 번 눈물콧물을 쏟았어.
눈물 다음 또 눈물
다음해(2016년) 1월, 일과 사랑을 위해 영국취업에 계속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어. 잠깐, 사랑...? 영국이 그리운 나머지 데이팅앱 국가 설정을 영국으로 하고 활동한 결과 영국인 남자와 미친 연애를 시작했거든🤣* 아예 영국으로 날아갔어. 그곳에서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계속 발전시키면서 구직을 했어. 인터뷰가 들어오면 바로 회사로 갈 수 있을 테니까. 이와 동시에 영국인 남자친구와는 물리적으로 가까워졌는데 오히려 계속 싸우게 되었어.
(*연애: 이전 편에서 영국에서 연애를 한 번도 못했다고 했지만 2개월 아주 짧고 굵게 '공식적'인 연애를 해본 적이 있어. 근데 너무 짧아서 했다고 하기 민망해서 생략했던 거야, 미안 ㅎㅎ)
결국 해가 짧아 늘 어둑했던 그 겨울, 날씨보다 더 쌀쌀하고 차가운 경험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어. 나중에 알고보니 영국에서 1-2월동안은 사람을 별로 뽑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정말 단 한 곳에서도 연락받지 못하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진 채 한국으로 돌아왔지 뭐야. 지난 2개월간 번 돈은 에어비앤비로 홀랑 나가고, 드디어 시작했다고 기뻐했던 국제연애는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꺼져버렸으니... 내 마음은 엉망진창이었어. 얼굴엔 눈물자국이 마르지 않았지. 어느덧 3월, 따스한 봄이 오고 있었지만 내 앞길은 여전히 흐린 겨울이었어. ‘나 이제 어떡하지?’
‘나는 왜 이렇게 영국에 집착할까? 나는 왜 영국에서 일을 하고 싶은가?’ 런던 물가는 정말 비싼 데 말이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했지만 답이 잘 안 떠오르더라고. 여전히 확실했던 건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는 점이었어. 반드시 영국이어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쌓은 2년의 경험을 제대로 활용하고도 싶었고...그때 문득 런던 쇼디치(Shoreditch)에서 퀵보드를 타고 지나가던 힙스터의 모습이 떠올랐어. 음, 맞아! 나는 그런 런던의 자유로운 여피족이 되고 싶었던 거야! 괜찮은 직장에서 괜찮게 돈을 벌며 퀵보드를 타고 커피 한 잔 마시러 가는 여유. 평일 저녁엔 파티를 가고 주말엔 친구들과 브런치를 먹을 수 있는 그런 삶. 일만으로 뒤덮인 시간이 아닌, 일 말고도 재미있게 즐기는 생활을 하고 싶었던 거야😎
그래, 눈물 흘릴지라도 또또또 도전🔥
다시 한 번 마음을 잡았어. ‘그래. 1년동안 하기로 했으니 계속 도전해보는 거얏!!!'
이제는 비자 받기 유리한 직업군인 모션그래픽(애니메이션)쪽으로 아예 방향을 틀기로 마음 먹었어. 모션그래픽은 정적인 그래픽 디자인보다 더 높은 기술이 필요해서 영국비자지원 목록에서 부족직업군에 속했어. 목록에 있는 직업은 비자 절차가 훨씬 간단했거든. 솔직히 노동 강도가 세고 영상 렌더링하는 것도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 너무너무 피하고 싶었던 일이야. 진짜 눈 질끈 감고 대학시절 하던 모션그래픽으로 돌아갔지. 한 달 동안 매주 1회 고향에서 3시간 걸리는 서울 홍대 학원까지 모션그래픽 수업을 들으러 갔어. 대학교에서 배우기만 했지 실제 모션 경력이 없었기에 매일 습작해서 포트폴리오를 발전시켜야 했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멘토를 찾아다니기도 했지. '영국사랑' 커뮤니티를 통해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봐준다는 영국 현지 디자이너 윤**분께도 연락드렸지. 그 분께서 포트폴리오 피드백도 잘 해주시고 격려도 많이 해주셨어. '커버레터에 취업비자가 필요하다는 말은 쓰지 말고 일단 지원해볼 것', '지금 포트폴리오에 과정이 담긴 점이 좋다.' 등등. 구체적으로 피드백을 주신 점에 너무 감사해☺️
이력서(CV)는 현지 디자이너로 일하는 친구 두 명의 이력서를 받아 참고했어. 그들에 비해 내 이력서는 너무 길고 한눈에 읽히지 않더라고. 그 친구들처럼 간략하게 딱 1페이지로 줄였어. 읽기 쉽고 깔끔하게 디자인하되, 내 이름을 특별한 타이포그래피로 디자인하여 개성도 한 줌 넣었지.
포트폴리오는 훨씬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 했어. 모션그래픽 디자이너는 자신이 만든 영상작업을 1분내외로 편집해서 보여주는 '쇼릴'은 필수고, 그외 자세한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홈페이지'도 있으면 플러스였어. 더욱이 내 작업은 그동안 그래픽 디자인 작업이 많았기에 쇼릴만으로는 승부를 낼 수 없었지. 마침 내가 원하는 일도 모션그래픽 약간 + 그래픽 디자인 약간으로 섞인 일이었거든.
이렇게 취업준비물 세트- 쇼릴, 홈페이지, 이력서, 커버레터 모두 하나의 디자인으로 통일해서 만들었어. 같은 컬러, 폰트, 배경색을 넣었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한다고 생각해봐. 압도감에 숨을 쉴 수가 없겠지? 심호흡하면서 매번 그 과정을 ‘쪼갠다’고 생각했어. 매일 준비물을 완성하기 위해 그날 할 것들을 하나씩 했어. 동시에 예전 준비물 그대로 매일 1~3군데 지원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다행히 영국은 준비물만 잘 갖추면 지원하기는 수월한 편이야. 얼굴사진, 자기소개서나 인적성검사 같은 게 필요 없거든. 회사 이메일로 이력서와 커버레터, 포트폴리오 링크를 보내면 끝이야. 단, 광고에 적혀있는 인재상에 맞게 회사별로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조금씩 수정해서 보냈어. 예를 들어 '에프터 이펙트를 잘 다루는 사람', '멀티태스킹을 잘 하는 사람'이 들어있다고 하면 지원할 때 그 특징을 꼭 넣어서 제출했지.
어느덧 5월이 되었어. 마침내 완료한 새로운 준비물 세트로 지원했더니 드디어 입질이 오기 시작했어🤩 다섯 군데에서 면접제의가 들어온 거야! 하지만 면접을 바로 보러갈 수 있는 영국내 사람들이 우선시되서 한국에 있는 나는 자꾸 면접 기회에서 밀려나더라고... 그래도 면접 제안이 오니까 마음 속에 희망의 꽃이 피기 시작했어.
6월초 어느 날 꿈을 꿨어. 날씨 좋은 하늘, 드넓은 바다에 거대한 용가리 한 마리가 서 있었어. 수면은 얕았고, 정적으로 굳어 있던 용가리는 갑자기 픽 쓰러졌어. 그때 에메랄드빛 찬란한 물이 차오르면서 바닷물이 풍성해지더라고... 대박이 날 것 같은 이 꿈은 뭐지? 가슴이 두근두근. 왠지 모를 설렘과 함께 다시 한 번 인터뷰를 바로 보러 갈 수 있게 영국으로 날아갔어.
런던은 여름이라 해가 쨍쨍했어. 신기하게 마침 팔팔한 기운을 타고 10군데에서 연락이 왔어. 주로 1차 면접은 전화로 인적사항에 대해, 2차는 회사에 직접 가서 디자인 팀장과 면접을 봤어. 그 와중에 7월, 글로벌 화장품 기업 ‘러쉬’에 모션그래픽 정규직을 지원했어. 그 회사에 대해 잘 몰랐지만 대기업이니까 일단 지원했지. 한 달 뒤 한창 다른 회사 면접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어. 러쉬에서 이메일이 왔어. 혹시 프리랜서를 해 볼 생각이 있냐고 묻더라고. 프리랜서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큰 기업에서 풋내기인 내게 제안하다니 그저 황송했지! 그들은 9월에 열 이벤트에 내 쇼릴 타이틀에 있는 스타일을 적용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당연히 흔쾌히 받아들였지! 그렇게 2주간 러쉬일하랴, 다른 회사 면접 준비하랴 매일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했어. 노력을 퍼붓는 한편으로 내 꿈이 이루어질지 자신이 없었어. 러쉬일은 그저 프리랜서일인 거고, 아직 풀타임은 잡히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만의 마감기한을 정했어. ‘9월초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자. 그때까지 취업이 안 되면 이제 영국취업 포기하자.'
러쉬와의 작업은 겁먹었던 것과 달리 환상적이었어. 이벤트 타이틀 애니메이션 1개와 아이콘 작업 40개가 주 미션이었어. 아이콘 작업은 이벤트 부스별로 쓸 귀여운 스타일로 디자인을 하고 거기에 짧은 애니메이션까지 주는 작업이었어. 어쩜 이렇게 내게 딱 맞는 일이 들어온 걸까 ? 아이콘 스타일은 그저 내가 했던 스타일대로 만들면 됐고, 줘야 할 애니메이션은 기술적으로 전혀 어렵지 않았어. 심지어 러쉬 관계자들이 내 디자인을 무척 마음에 들어하더라고. 성공적이었어. 러쉬에서는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 내 작업이 맘에 들면 정규직으로 채용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었어. 작업을 마무리할 때 그들에게 말했어.
“지금 다른 곳과도 면접 중이니까 정규직 채용 여부를 최대한 빨리 알려주세요.”
며칠 뒤 아침에 눈을 뜨고 핸드폰을 봤어. 러쉬측에서 문자가 와있었어.
“수수 축하해. 방금 임원들에게 네 작업 보여줬고 너를 고용하기로 결정했어.”
그날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바로 며칠 전이었어. 1년동안 100군데도 넘게 지원했는데 딱 한 곳에서 그렇게 잡오퍼를 받은 거야😭 심지어 그곳은 공책에 늘 적곤 했던 꿈의 직장보다도 더 좋은 회사였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기업이라니... 꿈인가 생시인가. 풋내기인 내게 일어난 기적에 멍한 상태로 밖으로 산책을 나갔어.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내가 보는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았어. 마침 흔치 않게 도로에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가 지나가더라고. 마차 안에는 관이 놓여 있었어. 귀족의 장례식같더라. 죽음... 이제껏 고생한 시간은 인생 저편으로 넘어간 건가? 인생 2막,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ㅎㅎㅎ 쓰다보니 오늘 이야기도 너무 길어졌네~! 그래도 혹시 구독자(이)가 영국에 일하러 갈 수도 있을 것 같아 최대한 자세히 적어봤어! 내 인생에서 이렇게 매달려본 적은 없었어. 힘들면 바로 포기하는 게 많았거든. 더 싫은 환경을 피하기 위해(🤣) 억지로 꾸역꾸역 문을 두드렸더니 결국엔 열리더라! 심지어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더 좋은 기회가 열린 게 너무 신기했어. 정말 큰 기적이라 여전히 감사해. 구독자도 혹시 올해 두렵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거 있으면 나처럼 마감 정하고 한 번 해보길 바라! 감히 성공할 거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실패해도 분명히 전보다 훨씬 성장해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또 몰라, 내 경우처럼 구독자(이)가 생각했던 기준보다 쉽게 풀릴지도! 이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영감이 되었기를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쓸게.
다음주에 만나 :D
수수로부터
혹시 런던에 살 예정? <런던 생생정보통> 한 번 읽어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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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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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국이 어땠냐면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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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hfkr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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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국이 어땠냐면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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