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과학기술] 금성의 구름을 떠다니는 생명체는 가능할까

2021.07.29 | 조회 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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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여우원숭이

매주 월요일, 따끈따끈한 최신 과학기술을 짧고 쉬운 글로 소개합니다.

<테라포밍 마스>라는 보드게임이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각자 화성을 개척하는 다국적 기업이 되어, 세계 정부의 지원을 받아 화성을 인류가 살아갈 만한 환경으로 탈바꿈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되지요. 게임 시작 시점에서 화성 표면의 평균 온도는 섭씨 영하 30도이고, 대기 중 산소 농도는 0%이며, 지표면에 물은 없습니다. 여러 대기업의 노력 끝에 평균 온도가 섭씨 8도에 이르고, 산소 농도가 14%까지 상승하고, 지표면의 9%가 바다로 덮이게 되면 게임은 종료되고 그때까지 각 기업이 테라포밍에 기여한 정도(그리고 각자 벌어들인 돈)에 따라 승자가 결정되는 게임이지요.

인기가 워낙 많은 보드게임이라 국내에 정식 발매된 확장 게임도 다섯 개나 있는데, 그중에 <비너스 넥스트>라는 확장이 흥미롭습니다. 뜬금없이 금성을 테라포밍하는 보조 프로젝트가 추가되는 확장 게임이지요. 제법 진지하게 흘러가는 본편 게임과 달리 살짝 나사가 빠진 것 같은 카드들이 일품인 확장입니다. <비너스 넥스트>에 등장하는 확장 카드 중 몇 장을 아래 사진에 찍어 두었습니다.

<비너스 넥스트>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금성의 대기 상층부를 개척하는 활동이 많다는 거예요. 구름 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주거 구역을 마련한다거나, 금성의 성층권을 날아다니는 새를 유전적으로 만들어서 구름 위에서 살게 한다거나 하는 식이지요. <테라포밍 마스>의 본편에 등장하는 활동들은 대부분 화성 표면을 지구 표면과 비슷하게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데 왜 금성은 유독 대기 상층부에서 진행되는 활동이 많은 걸까요?

그건 금성의 지표면이 너무나 뜨겁고 압력이 높아서 그곳을 생물이 살 수 있도록 바꾼다는 게 도저히 상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금성의 표면 온도는 450°C에 달하고 표면 대기압은 지구 표면의 90배에 이르지요. 납이 녹아내리는 수준의 고온이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 손을 댄다고 생물이 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거죠. 반면 금성의 두꺼운 대기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물도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차라리 공중에 떠다니는 생물을 상상하기가 더 쉬운 거고요.

하지만 2021년 6월 28일,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연구 논문이 천문학 학술지 <Nature Astronomy>에 발표되었습니다. 물이 존재한다고 알려진 여러 행성 대기에서의 수분활성도(water activity)를 비교 분석해 보았더니, 금성 대기에 생명이 살아갈 수 있을 확률은 아주 낮다는 결과입니다.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물의 농도와 활성을 기준으로 하면 차라리 목성의 대기가 생명 활동에 더 우호적이라고까지 하네요.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논문의 내용을 설명하기 전에 수분활성도 개념을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어떤 물질의 수분활성도란 "순수한 물의 수증기압에 대한 용액 수증기압의 비율"로 정의되는데, 쉽게 말해서 거기에 떠 있는 미생물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을 나타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순수한 물의 수분활성도는 1이고, 반대로 물이 하나도 없는 환경에서는 이용할 수 있는 물이 없으니 수분활성도가 0이 되지요.

당연히 지구상의 생물들은 물을 많이 쓸 수 있는 환경일수록 살아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주 건조한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미생물들이 드물게나마 존재하는데, 이처럼 건조한 환경을 좋아하는 생물을 호건생물(xerophile)이라고 부르지요. 하지만 호건생물이라고 해서 정말로 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건 절대 아니고요, 지금까지 보고된 호건생물 중 가장 생존력이 강한 곰팡이(Aspergillus penicillioides)의 수분활성도 하한선이 0.585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호건성 균류인 Aspergillus penicillioides의 현미경 사진, 그리고 배지에서 기른 모습입니다. 출처: Fungi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CC BY-NC 4.0
호건성 균류인 Aspergillus penicillioides의 현미경 사진, 그리고 배지에서 기른 모습입니다. 출처: Fungi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CC BY-NC 4.0

물론 금성의 생명체가 반드시 지구의 생명체와 같은 원리에 따라 살아가리라는 보장이 없지만, 어쨌든 연구진은 수분활성도 0.585라는 값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자고 제안합니다. 너무 뜨거운 금성 지표면으로부터 멀어져서 고도를 높이면 점점 온도가 내려가는데, 연구진은 대략 영하 40°C에서 영상 130°C 정도의 온도를 갖는 고도 42~68km 영역의 수분활성도를 분석해 봤습니다. 그런데 과거 금성 탐사선에서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분석해 봤더니 수분활성도가 0.004에 불과한 거예요. 지구 생물 중 건조한 환경을 가장 좋아하는 녀석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분보다도 100배나 부족한 값입니다.

난관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금성의 대기에는 황산이 가득한데요, 황산은 단순히 산성 물질인 것을 넘어서 강력한 제습제 기능도 합니다. 설령 연구진의 분석보다 많은 물이 금성 대기 중에 떠다닌다고 하더라도 황산이 엄청나게 많이 떠다닌다는 것까지 생각해 보면 실제로 '생물'이 활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은 더 적을 수밖에요.

금성 대기에 생명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한동안 꽤 흥미를 끌었던 가설입니다. 2020년 9월에는 아타카마 사막 전파망원경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금성 대기에서 포스핀(phosphine)이라는 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논문도 발표되었지요. 포스핀은 자연적으로는 생성되지 않고 일부 생물의 대사 과정에서만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금성 대기에 생물이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제안이 바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산화황의 신호를 헷갈린 것이라는 반박 논문이 2021년 1월에 나왔고, 지금은 포스핀 발견을 보고했던 연구진들이 데이터 분석에 오류가 있었다고 일부 인정한 상황이지요.

이런 상황에 금성 대기의 수분활성도가 0.004밖에 안 된다는 분석까지 나왔으니, 금성 대기 생명체 가설은 지금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입니다.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수분활성도가 0.537인 화성의 구름이나, 심지어는 수분활성도가 0.585에 이르는 목성 대기가 차라리 수분활성 측면에서 생명이 살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요. 물론 수분활성도만으로 생명의 존재 여부가 결정되는 건 아니긴 하지만요.

한 가지 희망을 남겨두자면, 수분활성도 0.585라는 하한선은 사실 지구상에서 인류가 발견한 적 있는 생물로 한정된다는 점이겠지요. 금성은 지구와 전혀 다른 환경이니만큼 만에 하나 그곳에서 생물이 진화했다면 그것이 굳이 지구의 생물과 같은 원리를 따르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지구 생물들이 의존하는 생화학과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을 진화시켰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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