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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모기는 단순히 사람을 가렵게 하는 짜증나는 해충을 넘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생물인데요, 모기의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뎅기열입니다. 뎅기열은 열대 지방이나 아열대 지방에 사는 이집트숲모기가 옮기는 바이러스성 질병이에요. 모기에게 기생하는 뎅기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와서 일으키는 질병인데, 백신도 치료제도 마땅히 없는 위험한 풍토병입니다.
뎅기열은 국내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 질병이긴 합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에 그야말로 창궐하고 있는 질병으로, 연간 약 4억 명이 감염되어 2만 명 이상이 사망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치사율이 대단히 높지는 않지만 상당히 고통스러운 데다가 치료제도 백신도 없기 때문에 모기에 안 물리는 것이 유일한 예방책이지요.
그래도 오늘 전해드릴 소식에 따르면, 뎅기열에 대한 확실한 해결책이 조만간 나올 것 같습니다. 지난 2021년 6월 10일 세계 최고의 의학 학술지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발표된 논문이 주인공입니다. 바로 모기에 기생하는 박테리아를 이용해 뎅기 바이러스의 전파를 획기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이지요. 조금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볼바키아(Wolbachia)라는 박테리아 종류가 있습니다. 절지동물, 특히 곤충에 기생하는 박테리아인데요, 전파되는 속도도 빠르고 숙주 곤충과의 상호작용도 독특해서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기생 박테리아로 손꼽힙니다. 중남미 곤충의 16% 정도가 볼바키아에 이미 감염되어 있고, 전체 곤충 중에 최대 70%가 잠재적인 숙주라고 해요.
볼바키아는 기생생물로는 좀 특이합니다. 대부분의 세포를 감염시킬 수 있긴 한데 생식세포를 가장 좋아하고, 특히 완전히 발달한 난자에 기생하려고 합니다. 볼바키아는 곤충의 정자를 통해서는 전파될 수 없지만 난자를 통해서는 퍼질 수 있기 때문에, 더 잘 퍼져나가기 위해서 곤충 수컷을 죽이고 암컷이 더 많이 태어나게 만들려는 작용을 해요.
그래서 볼바키아에 많이 감염된 곤충들은 그렇지 않은 곤충에 비해 암컷이 수컷에 비해 많이 태어납니다. 생식세포의 분화에 직접 관여하기 때문에 볼바키아는 숙주 곤충이 짝짓기를 할 때마다 널리 퍼져나가지요. 어떤 곤충들은 볼바키아와 공생 관계를 구축해 버려서, 기생 중인 볼바키아를 박멸시키면 후손을 제대로 남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게다가 볼바키아는 숙주 곤충의 면역력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이점을 줍니다. 체내에서 곤충에게 필요한 비타민을 합성해 주기도 하고, 살충제를 맞아도 잘 죽지 않도록 저항성을 늘려 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모기 체내에 다른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잘 기생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기능을 해요. 바로 이 부분에 연구진들이 주목해서 뎅기열을 잡아 보려고 한 겁니다.
이번 연구의 주인공은 세계모기계획(WMP)의 선임 과학자이자 인도네시아의 가자마다 대학(Gadjah Mada University)의 교수인 아디 우타리니(Adi Utarini) 박사입니다. 우타리니 박사는 인도네시아의 족자카르타(Yogyakarta) 지방 출신인데요, 족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서 뎅기열 발병률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입니다. 우타리니 박사 본인도 젊었을 때 뎅기열에 걸려서 크게 고생한 적이 있었다고 해요.
볼바키아를 이용해 뎅기열을 퇴치하자는 발상 자체는 꽤 오래되었는데, 현실적인 기반 기술이 발견된 것은 2006년입니다. 뎅기열을 옮기는 이집트모기는 원래 볼바키아에 감염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2006년, 호주 퀸즐랜드 대학의 스콧 오닐(Scott O'Neil) 교수가 이집트모기를 감염시키는 볼바키아 균주를 발견해서 학계에 보고했고, 결국 이 기술을 활용해서 모기를 퇴치하자는 세계모기계획(WMP)의 설립으로 이어졌지요.
실험은 이렇게 진행됐습니다. 우선 족자카르타 지역을 여러 개의 구역으로 나눈 다음, 볼바키아 모기를 살포할 지역을 정합니다. 바로 위의 그림에서처럼, 전체 구역 중 일부에만 볼바키아에 감염된 모기를 뿌리는 거에요. 약 1년의 살포 기간이 끝나자, 해당 구역에서 채집된 모기의 95%가 볼바키아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 이후 연구진은 각 구역의 병원에 발열 증세로 방문한 환자들 중 뎅기열에 감염된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했어요. 만약 어떤 구역의 뎅기열 발생 확률이 정말로 낮아졌다면, 그 구역에서 발열 증세를 보인 사람들 중 뎅기열에 걸린 사람의 비율이 그만큼 낮아지겠지요? 반면 볼바키아 모기가 아무 효과도 없었다면 볼바키아 모기를 뿌린 구역이든 뿌리지 않은 구역이든 상관없이 뎅기열의 발병률은 비슷했을 겁니다.
연구진들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추적 조사를 벌인 결과, 놀랍게도 뎅기열의 발병률이 77% 감소했고 입원율은 86%나 감소했습니다. 볼바키아 모기를 뿌리지 않은 구역에서 발열 환자 중 무려 9.4%가 뎅기열 환자였던 데 비해, 볼바키아 모기를 살포한 구역에서는 고작 발열 환자의 2.3%만이 뎅기열에 걸린 것으로 판명됐어요.
게다가 실제 예방 효과는 이보다 뛰어날 것 같습니다. 모기가 비록 아주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는 생물은 아니라지만 연구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볼바키아에 감염된 모기가 자기 구역 바깥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볼바키아 모기를 살포하지 않은 구역에도 볼바키아 모기가 일부분 넘어왔을 거고 따라서 비살포 구역에서의 뎅기열 발병률도 약간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아래 그림처럼요.
마지막으로, 이번 연구의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연구진들이 지역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부분입니다. 플로리다의 유전자 조작 모기 실험을 다룬 글에서도 설명했듯이, 이런 식으로 생명공학적인 조작을 한 생물을, 그것도 해충을 살포하겠다는 계획은 해당 지역 거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가 쉬워요. 아무리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설명을 해도, 이상한 기생충에 감염된 모기를 잔뜩 풀어놓겠다는 계획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갖게 되니까요.
세계모기계획 팀에서는 본격적인 실험에 착수하기 전에 해당 지역 거주자의 협조를 얻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우타리니 박사는 다른 일을 벌이기 전에 먼저 WMP의 곤충학 실험실을 현지인들에게 공개했습니다. 실제로 연구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하고 연구실도 보여주는 거죠. 거주자들을 초대하는 공청회도 열고, 실시한 채팅 채널도 열어서 현지인들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응했습니다.
그 결과, 2017년에 실험을 시작할 무렵에는 실험 계획에 찬성하는 비율이 무려 88%에 달했고, 자기 집 뒷마당에서 모기를 살포해도 된다고 장소를 빌려주겠다며 자원한 현지인들이 만 명에 달했다고 해요. 플로리다 모기 살포 실험이 현지인들의 반대에 휘말려서 여러 번 취소되고, 나중에는 모기 살포 상자에 불을 지르는 등의 산발적인 사보타주까지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주 모범적인 사례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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