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여행, 다들 한 번쯤은 가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굳이 화성을 테라포밍하는 1세대 개척자가 되지는 않더라도 지구를 떠나 국제우주정거장에 잠깐 머물러 본다거나, 우주복을 입고 유영하거나, 달 표면을 산책해 보는 정도는 꽤 많은 사람들이 꿈꿀 것 같습니다. 블루 오리진이나 버진 갤럭틱 같은 기업들이 민간 우주여행 상품을 슬슬 개발하는 걸 보면 과연 우주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꽤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초기에는 어마어마하게 비싼 값을 받겠지만요.
그런데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선 치열한 경쟁을 뚫고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당장 2019년에 유튜브에 올라온 아래 영상을 보실까요? 제목이 무려 "당신이 우주비행사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자, 일단 기본 자격요건부터 대단합니다. 공학 분야의 4년제 대학 학위를 갖고 있어야 하고, 3년 이상의 제트기 조종 경험이 있거나 1,000시간 이상의 비행 경력이 있어야 합니다. 몇 벌 안 되는 우주선 장비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체격도 적당해야 하고(아폴로 미션 당시에는 180cm 이상), 시력도 좋아야 하지요. 이 조건 중 하나라도 못 맞추면 그냥 서류 탈락입니다.
우주비행사들이 통과해야 하는 훈련 과정도 상당히 복잡한데요, 우주로 사람을 쏘아 올리는 일이 워낙 비싼 프로젝트기 때문에 몇 명 안 되는 우주비행사들은 그야말로 완전체 공학자 팀을 짜야 했습니다. 언제 어떤 비상사태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로켓과 우주선 공학에 통달해야 하고, 혹시 모를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응급의료 훈련도 받습니다.
우주로 나가게 되면 아주 좁은 공간에서 몇 안 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고립감이나 불안감에 일부러 노출시키는 훈련도 받습니다. 게다가 냉전기에는 우주비행사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적인 홍보수단이었기 때문에 대중강연과 미디어 노출 상황에 대비한 교육까지 받았다고 해요. 이런 과정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2016년의 NASA 파일럿 선발에 지원한 18,000명 중 최종 선발된 인원은 12명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빡빡한 조건을 내걸어서야, 민간 우주여행이 어떻게 상품이 될 수 있겠어요? 다행히 저만큼이나 압도적인 자격조건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되고 있다고 해요. 2021년 3월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더이상 초인적인 신체능력을 갖추지 않아도 우주로 나갈 수 있다고 합니다. 같이 살펴보실까요?
이번 기사의 주인공은 액시옴 스페이스(Axiom Space)입니다. 액시옴은 2016년 설립된 미국의 기업인데요, 사상 최초로 민간 상업용 우주정거장을 운영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리고 액시옴의 첫 번째 상업용 프로그램이 바로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민간인 우주비행사를 실어 보내는 Ax-1 미션으로, 2022년에 4명의 민간인을 10일 동안 ISS에 파견할 예정입니다.
Ax-1 미션의 '캡틴'인 마이클 로페즈-알레그리아(Michael López-Alegría)는 전직 NASA 우주비행사입니다. 한편 다른 세 명의 승무원들은 우주에 나가 본 경험이 전혀 없는 민간인들이에요. 전문가 한 사람이 기초적인 훈련을 받은 비전문가를 관리하여 우주 여행하는 프로그램, 어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별 생각 없이 타는 민간 항공기나 마찬가지지요?
민간인 승무원 세 사람은 출발 6~7개월 전부터 기초 훈련에 들어갑니다. 예전의 NASA 파일럿들처럼 초인적인 고강도 훈련을 받는 건 아니고, 기본적으로 우주 공간에서 밥을 먹고 양치를 하는 등 일상생활을 하는 방법을 배우는 내용이 많아요. NASA 우주비행사들과는 달리 10일만 우주에서 보내고 귀환하는 일인 만큼 초고강도 훈련은 필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액시옴의 훈련은 크게 세 단계로 진행됩니다. 첫 단계는 우주 공간 생활에 필수적인 적응 훈련입니다. 무중력 환경을 체험해 보는 비행기 자유낙하 훈련, 그리고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를 때의 고중력에 대비한 '인간 원심분리기' 훈련이지요. 바로 아래 영상처럼요.
두 번째 단계는, Ax-1 미션에 사용될 스페이스X의 크루 드래건 우주선의 조작 훈련입니다. 물론 우주선 자체는 거의 100% 자동화된 프로그램의 제어를 받지만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면 수동 조종 모드에 들어가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당연히, 이런 일은 민간인 승무원들이 담당하는 건 아니고 NASA 우주비행사 출신인 로페즈-알레그리아 기장이 담당하게 될 거고요.
마지막 단계는 ISS의 설비를 본떠 만들어진 세트장에서 받는 훈련입니다. 훈련이라기엔 좀 미묘한데요, ISS에서 머무르는 열흘 동안 어떤 실험을 할지, SNS 이벤트는 어떻게 진행할지 같은 '콘텐츠' 연습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엄청난 돈을 내고 열흘 동안 우주에 나갔는데 시간만 죽이다 오면 너무 아깝잖아요? 액시옴 측에서는 ISS에서 즐길 관광 프로그램까지 준비하는 셈입니다. 우주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승객들에게 우주 버킷 리스트 같은 게 있을 리 없으니까요.
이처럼 초인적인 육체와 정신을 갖지 못한 사람들도 우주에 나갈 수 있게 된 건 역시 수십 년 동안의 데이터 덕분이겠지요. 냉전기에 우주 개척 사업을 처음 진행할 때는 성공적인 미션 하나하나가 체제 선전이 되었을 테고, 알려진 게 너무 없다 보니 아주 작은 위험요소라도 없애기 위해 강박적으로 건강하고 뛰어난 사람만을 선발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필수적인 안전 요소를 골라낼 수 있게 된 거죠.
아직 비행이 현실화하지는 않았지만, 유럽우주국(ESA)에서는 일정 정도의 신체적 장애인도 우주비행사 후보로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9월 발사 예정인 스페이스X의 인스피레이션 4(Inspiration 4) 미션의 승무원 중에는 소아암에 걸려서 항암치료를 받았던 사람도 있어요. 지금은 심각한 부정맥이나 고혈압처럼 로켓 발사 과정에서 즉사할 위험이 있는 정도의 사람이 아니면 괜찮다고 합니다.
뭐, 당분간은 우주여행 티켓이 엄청나게 비쌀 테니 자격요건이 완화됐다고는 해도 그림의 떡일 겁니다. 열흘짜리 미션에 몇백억 원은 들 거라고 하니까요. 하지만 모든 상품이 그렇듯, 10년이나 20년쯤 뒤에는 좀 비싼 해외여행 정도 가격으로 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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