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과학기술] 모더나와 화이자, mRNA 백신의 원리를 알아보자

세포의 단백질 공장을 해킹하다

2021.05.19 | 조회 4.35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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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여우원숭이

매주 월요일, 따끈따끈한 최신 과학기술을 짧고 쉬운 글로 소개합니다.

전례 없는 속도로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은 이제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곳곳에 배포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mRNA 백신이라는 용어에 제법 친숙해지셨지요? mRNA 백신은 코로나19 이전에는 단 한 건도 승인받은 적이 없는 아주 새로운 형태의 기술입니다. 한편 mRNA 백신 기술은 이번 코로나19 대유행을 넘어서 의학기술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 놓을 혁신적 기술로 꼽히기도 하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mRNA 백신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대체 어떤 점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백신의 원리

백신은 우리 몸이 어떤 질병에 대한 면역을 안전하게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의약품입니다. 독성을 줄인 바이러스나 죽은 박테리아 따위를 몸에 집어넣는 건데요, 이처럼 우리 몸에 적을 집어넣으면 인체는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면역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때 면역 세포 중 일부는 나중에 똑같은 적이 침입했을 때를 대비해서 이물질의 특성을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 번에는 좀 더 빠르고 확실하게 면역반응을 일으켜서 질병을 제압합니다. 바이러스 허수아비를 세워 놓고 퇴치 연습을 해 보는 셈이지요.

그런데 이때 백신으로 넣어 주는 물질이 해당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100% 똑같을 필요는 없어요. 최초의 백신은 18세기 말에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 개발된 우두법인데요, 우두에 걸린 젖소의 고름을 사람에게 접종해서 천연두 면역을 얻게 하는 방법입니다. 우두 바이러스는 우리 몸에서 천연두 바이러스와 한통속으로 취급할 만큼은 비슷하지만 사람에게 훨씬 덜 위험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백신으로 쓸 수 있었던 겁니다.

코로나19는 전염성과 치사율이 모두 상당히 높은 편인 꽤 위험한 병입니다. 소량이라도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인체에 집어넣었다가 이 녀석들이 몸 안에서 걷잡을 수 없이 증식해버리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되겠지요. 그래서 코로나19 백신의 핵심은 바이러스가 몸 안에서 증식할 수는 없지만 우리 몸이 면역 훈련을 할 수는 있도록 바이러스의 '신분증'이라고 할 수 있는 단백질 부품만 따로 모아서 집어넣어 주는 데 있습니다. 다음에 진짜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 그 '신분증'을 보고 검거해 버릴 수 있게요.

(좌) 코로나바이러스의 모습입니다. 표면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것들이 스파이크 단백질입니다. 출처: CDC/ Alissa Eckert, MSMI; Dan Higgins, MAMS2 (우) 코로나바이러스의 구조입니다.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RNA 유전체가 외피 속에 숨겨져 있고, 외피 표면에는 스파이크 단백질이 붙어 있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oronavirus virion structure.svg, CC BY-SA 4.0
(좌) 코로나바이러스의 모습입니다. 표면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것들이 스파이크 단백질입니다. 출처: CDC/ Alissa Eckert, MSMI; Dan Higgins, MAMS2 (우) 코로나바이러스의 구조입니다.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RNA 유전체가 외피 속에 숨겨져 있고, 외피 표면에는 스파이크 단백질이 붙어 있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oronavirus virion structure.svg, CC BY-SA 4.0

 

위쪽 그림에서 보시다시피 코로나바이러스의 가장 큰 특징은 표면에 돋아나 있는 돌기입니다. 애초에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이름부터가 현미경으로 관찰할 때 표면의 돌기들이 왕관(corona) 모양으로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니까요. 이 돌기를 '스파이크 단백질'이라고 부르지요. 지금까지 출시된 모든 코로나19 백신은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이 스파이크 단백질을 미리 만나볼 수 있도록 하는 의약품입니다. 그럼 mRNA 백신은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걸까요?

2. mRNA와 분자생물학의 중심 원리(Central Dogma)

mRNA 백신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mRNA가 뭔지를 알아봐야겠지요? mRNA는 말하자면 특정 단백질의 레시피를 담고 있는 설계도인데요, m은 전령(messenger)이라는 뜻입니다. 우선 생물의 세포에서 단백질을 어떻게 생산하는지를 알아봅시다.

센트럴 도그마를 설명하는 그림입니다. DNA/mRNA 이미지는 Wikimedia Commons, Extended Central Dogma with Enzymes.jpg (CC BY-SA 3.0)에서, 리보솜 이미지는 https://openclipart.org/detail/301855/ribosome (public domain)에서 가져왔습니다.
센트럴 도그마를 설명하는 그림입니다. DNA/mRNA 이미지는 Wikimedia Commons, Extended Central Dogma with Enzymes.jpg (CC BY-SA 3.0)에서, 리보솜 이미지는 https://openclipart.org/detail/301855/ribosome (public domain)에서 가져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마 알고 계시겠지만, DNA는 우리 몸의 설계도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DNA는 수많은 단백질의 레시피를 담고 있는 커다란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생명 현상은 단백질을 거쳐서 진행되기 때문에 DNA는 사실상 우리 몸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모두 기록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설명서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문서가 훼손되면 큰일 나겠지요? 그래서 세포는 소중한 DNA를 꽁꽁 감싸서 한 군데 모아 보호하려고 합니다. 이곳을 핵(nucleus)이라고 부르는데요, 말하자면 설계도를 숨겨둔 비밀 서고입니다. 이 서고에는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없고, 설계도를 반출하려면 복잡한 보안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아무 데나 설계도를 방치해두는 것보다 훨씬 안전한 셈이지요.

하지만 DNA 한 가닥에는 수없이 많은 단백질의 레시피가 함께 적혀 있어서, DNA를 통째로 꺼내는 건 불편하고 위험합니다. 레시피 100개가 적혀 있는 요리책에서 5번 레시피만 확인하고 싶은데, 이걸 보려면 레시피 100개짜리 무거운 책을 금고에서 꺼내서 밖으로 들고나와야 하는 거지요.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서 꺼냈다 넣었다 하는 과정이 불편한 건 둘째치고, 행여나 5번 요리를 하다가 10번 레시피에 국물이라도 떨어트리면 안 되겠지요? 그런데 레시피가 100개나 되니까, 요리 한 번 하겠다고 100개의 레시피가 손상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세포들은 단백질을 만들 때 DNA를 통째로 가져나가는 대신, 필요한 부분만 사본을 만듭니다. 5번 요리를 할 때는 5번 레시피에 해당하는 페이지만 사본을 만들어서 주방에 가져가는 거예요. 이러면 매번 번거롭게 보안검색을 통과할 필요도 없고, 행여나 주방에 들고 간 레시피 사본에 불이 붙어서 홀랑 태워 먹는다고 해도 그냥 서고로 돌아가서 복사를 한 번 더 하면 됩니다. 이처럼 DNA의 사본을 만드는 행위를 '전사(transcription)'라고 합니다.

이 사본이 바로 mRNA, 즉 전령 RNA입니다. 세포의 단백질 주방인 리보솜(ribosome)은 mRNA 분자를 만나면 거기 적혀 있는 레시피대로 단백질을 생산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리보솜이 mRNA를 해독해서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은 '번역(translation)'이라고 하지요. 이처럼 DNA → mRNA → 단백질 순서대로 DNA에 적혀 있는 정보가 mRNA를 거쳐 리보솜에 전달되어 단백질로 합성되는 '정보의 흐름'을 분자생물학의 중심 원리, "센트럴 도그마(central dogma)"라고 합니다.

3. 세포의 단백질 공장을 해킹하다, mRNA 백신

mRNA 백신 기술의 핵심은, 바로 이 '설계도 사본'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세포에 넣어주는 겁니다. 전통적인 백신 개발 기법으로 코로나19 백신을 만든다면 죽은 바이러스를 인체에 주사하거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분리해서 주입하는 식으로 할 거예요. 반면 mRNA 백신은 단백질을 직접 만드는 대신, 그 설계도만 몸에 넣어주고 우리 세포가 알아서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기술입니다.

mRNA 백신의 최대 장점은 개발 기간이 말도 안 되게 단축된다는 점입니다. 당장 코로나19의 사례를 볼게요. 2020년 1월 10일에 상하이 푸단 대학의 장용전 교수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을 모두 읽어내서 파일로 만들어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mRNA 전문 기업인 모더나(Moderna)에서 그 정보를 바탕으로 백신을 설계하는 데는 불과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고 동물실험용 시제품의 생산도 6주 만에 끝났습니다. 지금 미국인들이 맞고 있는 모더나 백신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런 속도가 가능한 것은 DNA → mRNA → 단백질로 이어지는 센트럴 도그마 덕분입니다. 우리 몸이 코로나19를 제압하는 '면역 훈련'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결국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나보는 일입니다. 그런데 단백질을 대량으로 정제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단백질 생산 부분은 그냥 인체 세포에 '외주'를 맡겨버리고 설계도인 mRNA만 전달하는 거지요. 게다가 mRNA는 DNA의 사본에 불과한 만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DNA 서열을 알고 있다면 거기서 mRNA 백신을 설계하는 건 이틀이면 충분한 거고요.

mRNA 백신의 엄청난 개발 속도는 끊임없이 변이하는 바이러스를 상대할 때 굉장히 강력한 이점이 됩니다. 당장 코로나19만 해도 벌써 남아공, 영국, 브라질 등 여러 건의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해서 백신 프로그램을 위협하고 있는데요, 모더나는 이미 미국 정부의 후원을 받아 남아공 변이 바이러스(B.1.351)를 잡는 mRNA 백신의 임상시험을 진행 중입니다.

전통적인 백신에 비해 mRNA 백신은 더 안전하기도 합니다. 기존의 백신은, 죽은 바이러스를 쓰든 독성을 줄인 바이러스를 쓰든, 어떤 식으로든 바이러스를 다루어야 합니다. 만에 하나 뭔가 처리가 잘못되어 몸 안에 들어간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시작할 수도 있고, 공장에서 배양하던 바이러스가 유출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지요. 그런데 mRNA 백신의 생산 과정에는 살아 있는 바이러스가 단 한 번도 개입하지 않고, 다만 그 유전정보만을 설계도처럼 활용할 뿐이에요. 철저하게 스파이크 단백질만을 만들 뿐 바이러스의 전체 유전정보는 절대 사용하지 않으니 바이러스가 증식할 염려가 없습니다.

현재로서 mRNA 백신의 단점을 굳이 꼽자면, mRNA 분자가 너무 쉽게 망가지기 때문에 영하 70도 수준의 극저온에서만 보관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아직 상용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실제 mRNA 백신을 사람에게 접종했을 때 생길지도 모르는 뜻밖의 부작용을 잘 모른다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때문에, 본의 아니게 전 세계에서 mRNA 백신의 보관 및 접종을 대규모로 실험하고 있는 셈이니까 이 문제들은 곧 해결될 것도 같네요.

사실 mRNA 백신 기술은 원래 단순한 바이러스 백신을 넘어 훨씬 혁신적인 유전자 치료 기법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던 기술입니다. 여러 가지 실패와 우연이 겹쳐서 지금은 인류가 코로나19에 맞서 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지만요. 코로나19 백신을 넘어서 mRNA 기술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그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른 글에서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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