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 변이 때문에 코로나19에 맞서는 전쟁이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감염력과 전파력이 매우 높아서 미국이나 영국처럼 비교적 백신 접종률이 높은 국가에서도 다시 유행이 번지고 있고, 우리나라도 4차 유행을 정면으로 얻어맞는 중이지요. 와중에 얼마 전에는 "델타 플러스"라는 변이가 국내에 들어왔고, 백신을 접종받은 사람마저도 감염시키는 소위 돌파감염이 일어났다고 해서 걱정하시는 분이 많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델타 플러스 변이가 델타에 비해 유별나게 더 위험하다거나 전파력이 좋다거나 하는 증거가 관찰되지는 않았습니다. (델타가 이미 충분히 강력한 것도 맞습니다만) 쉽게 말해서, 델타 플러스가 델타보다 눈에 띄게 위험해진 특성이 있다면 "델타 플러스"가 아니라 엡실론이든 제타든 다른 이름을 지정받았을 거예요. 현재 많은 전문가들은 델타 플러스라는 이름을 아예 지을 필요도 없었다고, 괜히 사람들을 겁먹게 하기만 한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변이는 당연한 현상입니다. 바이러스를 포함한 모든 생물은 자손을 남기는 과정에서 자신의 유전정보를 복제하는데, 복사 과정에서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지요. 대개의 경우 이 '옮겨쓰기 실수'는 바이러스가 기능하는 데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변이"라고 쓰여 있는 글을 옮겨 적다가 "벼니"라고 적는다 한들 소리 내 읽을 때 발음이 변하지는 않는 것처럼요.
설령 유전정보를 복사하는 과정에서 기능을 바꿀 만한 실수가 생긴다 하더라도 대부분 그런 변이는 바이러스의 기능에 방해가 되는 나쁜 돌연변이인 경우가 많습니다. 운 나쁘게 이런 돌연변이를 뽑은 바이러스는 숙주를 감염시키지도 못한 채 시들시들 사라지게 되고요. 우연히 얻어걸린 돌연변이 중에 정말 드문 확률로 바이러스의 기능에 도움이 되는 돌연변이가 생겨난다면, 그 돌연변이는 세대를 거듭하며 기존의 바이러스를 대체하게 되고, 점점 많은 사람을 감염시키는 우세종이 되는 거죠.
코로나19의 변이 역사가 대체로 비슷합니다. 2019년 중국에서 최초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이제 대부분의 국가에서 별로 우세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2020년 10월 영국에서 발견된 알파 변이(B.1.1.7)가 한동안 유행하다가, 지금은 2020년 연말에 인도에서 발견된 델타 변이(B.1.617)가 전 세계를 휩쓰는 중이지요. 이처럼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을 거치며 우세종이 계속 변화하는 겁니다.
아래 그림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진화를 거치며 여러 변이주로 갈라져 나가는 과정을 표현한 일종의 족보인 계통수(phylogenetic tree)입니다. 처음에는 두 갈래뿐이었던 바이러스 족보가 점점 자손을 낳으며 가지치기를 해서 이제는 수많은 변이 바이러스를 낳은 것이 보이지요. 현재 이런 바이러스 변이주는 대략 1,300개 정도 알려져 있습니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를 이름 짓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현재 가장 선호하는 방식은 '팡고(PANGO)'라는 분류법으로, B.1.1.7이나 B.1.617, AY.1 같은 알파벳-숫자 조합의 명명법이지요. 비전문가 입장에서는 완전히 외계어처럼 읽히겠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진화의 가지치기를 어떻게 거듭하고 있는지 그 족보를 추적하기에 아주 좋은 방식입니다. 꽤 복잡한 분류체계지만 간단하게나마 살펴보겠습니다.
위쪽의 코로나바이러스 계통수를 보면, 붉은색과 보라색으로 표현된 A와 B 그룹이 보입니다. A그룹은 2020년 1월, B그룹은 2019년 12월에 중국 우한에서 처음 확인되었는데, B그룹이 먼저 확인되긴 했지만 A그룹이 모든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뿌리인 것으로 생각되어서 더 빠른 알파벳을 부여받았습니다. 지금 전 세계를 감염시키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모두 A 아니면 B의 후손이고요.
돌연변이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자손 변이주가 원래 바이러스에 비해 충분히 많은 차이를 얻었다면, 그 바이러스는 알파벳 A/B에 뒤따르는 숫자를 붙여서 새로운 변이가 갈라져 나왔음을 표시합니다. B.1.617, B.1.1.7처럼요. 너무 이름이 길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뒤따르는 숫자는 세 개까지로 제한하고, 거기서 추가적인 변이가 일어나서 네 번째 숫자를 붙여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냥 새 알파벳을 부여하기로 약속되어 있습니다. B.1.617.2.1이 아니라, AY.1처럼요.
팡고 분류법은 사실 전문가들이 좀 더 편하게 쓰기 위해 만든 이름이고, 비전문가들이 사용하기에 편한 이름은 아닙니다. "B.1.617.2"라는 알파벳과 숫자를 다 외우기는 어렵잖아요? 그래서 WHO에서는 대중 발표용으로, 그리고 각국 정부의 정책 결정권자들과 의사소통하기 위해서 알파, 베타, 델타처럼 그리스 문자를 따서 이름을 붙입니다. 유전적인 정보를 그렇게 많이 담을 수는 없어서, 흔히 '델타 변이주'라고 말하는 바이러스는 사실 팡고 분류법 기준으로 13가지의 서로 다른 바이러스를 뭉뚱그려서 부르는 이름이지요. 행동 양상이 비슷한 바이러스 여러 종류를 느슨하게 묶은 것이 델타 변이인 거예요.
'델타 플러스'라는 이름은 그래서 대중 커뮤니케이션의 실수에 가깝습니다. 델타 변이(B.1.617)에서 약간의 추가 변이가 일어나서 생긴 변이주(B.1.617.2.1 → AY.1)를 델타 플러스라고 적당히 부르게 된 건데, 문제는 플러스라는 이름이 마치 '델타보다 조금 더 강한 무언가'라는 인상을 준다는 겁니다. 하지만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미국이나 인도에서도 델타 플러스가 델타에 비해 유별나게 위험하다는 증거는 없다고 발표하기도 했어요.
그 동안 우리가 만난 변이 바이러스인 알파, 베타, 감마, 델타, 람다는 모두 기존의 바이러스에 비해 위협적인 특성을 한 가지씩 새로 얻은 상태였고 그래서 '원조'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 변이주들이 새로운 이름을 얻은 건 말하자면 바이러스의 행동 양상이 달라져서이기 때문이지요. 반면 델타 플러스 변이주는 행동 양상이 달라졌다기보다는 유전정보가 바뀐 것에 가깝고, 아직 델타에 비해 그 행동 양상이 특별히 위협적이라는 증거는 없는 셈이고요. 다행히 백신 접종 등으로 얻은 기존의 면역반응도 델타 플러스에 대해 정상작동한다는 보고도 있으니, 아직은 패닉 없이 지켜봐야 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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