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현재, 한국인 약 400만 명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았습니다. 인구의 10%에 조금 못 미치는 셈인데요, 일선 의료진들이 과로에 시달리며 엄청난 페이스로 백신을 놓고 있다고는 하지만 질병관리청에서 목표하는 70% 예방접종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좀 멀어 보이긴 하지만 백신만 맞고 나면 예전의 일상생활로 완전히 돌아갈 수 있는 건지 궁금한 분들이 많으실 것 같네요. 우리보다 백신 접종률이 빠른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볼까요?
지난 3월 9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는 백신 접종이 완료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임시 행동지침을 발표했습니다. 아쉽게도 백신을 맞았다고 해서 마스크를 함부로 벗거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그만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인데요, 백신의 예방 효과를 100% 단언하기에는 너무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최대한 보수적으로 행동하라는 권고입니다. 지침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백신 접종이 완료된(fully vaccinated)" 사람이란, 화이자/모더나 등 2회 접종이 필요한 백신을 2회 모두 맞은 뒤 적어도 2주 동안 감염되지 않은 사람, 혹은 얀센처럼 한 번만 맞으면 되는 백신을 맞고 적어도 2주 동안 감염되지 않은 사람을 말합니다. 화이자/모더나 백신의 2차 접종을 아직 받지 않았거나, 혹은 2차 접종까지 받았더라도 그로부터 2주가 지나지 않았다면 코로나19에 대항하는 면역력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개인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합니다. 백신 접종 후 2주를 무사히 버티면 비로소 백신 접종이 완료된 사람으로 분류됩니다.
백신 접종이 완료되고 나면 일상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CDC의 기준에 따르자면 이제 세 가지 허용되는 행동이 추가됩니다.
1. 실내에서 백신 접종이 완료된 사람끼리만 있을 때는 마스크를 벗어도 됩니다.
2. 코로나19 고위험군이 아닌 사람들만 있는 단일 가족을 방문할 때는 마스크를 벗어도 됩니다.
3.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더라도 증상이 없다면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백신 접종을 완료했더라도 하면 안 되는 행동으로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1. 공공장소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두기를 하는 등 기존의 방역지침을 준수해야 합니다.
2.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는 가지 않습니다.
3. 백신 접종을 받지 않은 코로나19 고위험군을 방문할 때에도 기존 지침을 철저히 준수해야 합니다.
4. 여러 가족이 모여있는 곳에 방문할 때에도 기존 지침을 지켜야 합니다.
5.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으며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다면, 백신을 접종했더라도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6. 장거리 여행을 할 때는 기존의 CDC 권고사항을 완전히 준수해야 합니다.
조금 실망스러운가요? 백신을 맞았다고 해도 사실상 기존의 방역지침 중 면제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CDC에서 이만큼이나 보수적인 지침을 내놓은 것은 첫째로 코로나19 백신의 구체적인 효과가 어떤지 아직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둘째로 기존 백신의 효과를 떨어트리는 코로나19 변종이 계속해서 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CDC에서 함께 발표한 과학적 근거 브리핑을 살펴보면 CDC가 어떤 점을 우려하고 있는지 조금 더 알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승인된 코로나19 백신(화이자, 모더나, 얀센)들은 모두 유증상/무증상을 막론하고 코로나19 감염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으며, 특히 중증 감염과 사망을 막는 효과가 탁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백신을 접종받은 사람이 스스로는 병에 걸리거나 죽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매개체가 되지는 않느냐, 하는 질문에 아직 대답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증거를 보면 백신 접종자의 전파력이 낮아지는 것 같기는 한데 확실치 않습니다. 최악의 경우 마스크를 벗은 백신 접종자가 활발하게 돌아다니면서 아직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을 대량으로 감염시킬 수도 있는데, 아직 이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에는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또 다른 문제는 백신을 맞고 형성된 면역력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지 아직 모른다는 겁니다. 코로나19 백신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개발되었고, 임상시험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면역력의 지속 시간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서, 만약 백신 접종으로 형성된 면역력이 고작 3개월 만에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국 질병관리청에서는 인구 70% 접종 시기를 11월로 잡고 있는데, 그러면 2월 말경 백신 접종을 맞은 사람들이 거리두기 없이 함부로 돌아다니면 6월쯤부터 다시 감염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물론 이만큼이나 면역력이 빨리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아직 확신할 만한 자료가 없으니 조심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애초에 백신 접종자들한테도 방역 규칙을 똑같이 적용할 것이지 왜 헷갈리게 몇 개만 풀어주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문제제기에 대한 CDC의 입장은, 백신 접종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인센티브를 줄 때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더 설득해낼 수 있기 때문에 방역상의 일부 혼란을 감수하겠다는 겁니다. 2021년 1월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자면 응답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백신 접종을 받더라도 마스크를 계속 써야 한다면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대답했다고 하네요. 코로나19에 대항하는 집단 면역은 결국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받아야만 달성할 수 있습니다.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은 백신 접종과 무관하게 방역지침을 유지하는 것이겠지만, 백신 접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방역조치를 완화해 주어서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백신을 접종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거예요.
광범위한 백신 접종은 아마도 코로나19를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일 겁니다. 이스라엘이나 영국처럼 접종률이 높은 국가에서 발표된 초기 자료를 보면, 다행히 백신은 기대한 만큼 잘 작용하면서 감염률과 사망률을 많이 낮춰주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백신의 구체적인 효과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도 많이 알지 못하고,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백신을 우회하는 변종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백신을 접종받고서도 완전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터널의 끝으로 가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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