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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는 아주 똑똑한 생물입니다. 인간과 문어의 공통 조상은 5억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수 있으니까 인간과는 아주 거리가 먼 생물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높은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어서 학자들이 신기하게 여기고 있지요. 인간과 공유하는 부분이 너무 적기 때문에 아마 지능을 갖추고 행동하는 원리도 우리와 크게 다를 것이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문어야말로 지구상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외계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문어가 똑똑한 것과 별개로, 문어와 인간은 당연히 여러모로 다릅니다. 꽤 중요하게 다른 지점 중 하나가 바로 사회성이지요. 인간이 다른 유인원과 비교해 유독 두뇌가 크고 지능이 높게 진화한 이유 중 하나가 사회적인 협력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힘이 센 것도 아니고 단단한 갑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날카로운 발톱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집단을 이루어 효율적으로 협력하면서 살아남다 보니 점점 지능이 높아지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이론이지요.
반면에, 문어는 아주 극단적으로 반사회적인 동물입니다. 문어는 삶의 거의 모든 시간을 혼자 생활하고, 짝짓기할 때를 제외하면 다른 문어와 거의 교류하지 않습니다. 먹을 게 없는 상황에서는 큰 문어가 작은 문어를 잡아먹기도 하고요. 갑오징어 같은 다른 두족류들은 몸 색깔을 바꾸면서 의사소통하기도 하지만 문어의 몸 색 변화는 순전히 배경에 숨어들기 위한 의태라고 여겨집니다. 과학자들은 문어의 반사회적인 특성이 이 녀석들의 두뇌 구조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사람과는 얼마나 다른 건지 관심이 많지요.
2018년에 이 주제와 관련하여 아주 특이한 연구 한 편이 발표되었습니다. 무려 문어에게 마약을 먹인 다음 문어의 사회적 행동이 어떻게 바뀌는지 관찰한 연구였지요. 재미있게도 사회적 행동을 다루는 뇌의 회로는 문어와 인간이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자세히 살펴볼게요.
이번 실험에 사용된 마약은 흔히 '엑스터시'로 알려진 3,4-메틸렌디옥시메스암페타민(MDMA)입니다. 1912년 독일의 제약회사 머크(Merck)에서 처음 개발했고, 한동안 잊힌 약물이었지만 1970년대에 심리치료 목적으로 쓰이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 미국에서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파티용 마약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의료 목적으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처방되지 않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엄격히 단속하는 대표적인 마약이지요.
엑스터시는 마약 중에서도 환각제의 일종입니다. 엑스터시의 효과는 마약 중에서도 좀 특이한 편인데, 대체로 사용자들은 '행복한 기분'을 보고하기도 하고, 앞에 있는 사람을 끌어안고 싶어지는 등 사교성이 높아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이나 감정이입 능력이 높아진다는 보고도 조금 있어서 공감원성(empathogenic) 약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사교성 증가와 달리 공감 능력 증가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조금 있습니다.
엑스터시가 이런 효과를 보이는 까닭은 우리 뇌의 신경전달물질 중 세로토닌(serotonin)의 활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입니다. 신경전달물질이 으레 그렇듯이 세로토닌도 아주 많은 기능에 관여합니다만, 대체로 행복감을 느끼고 사회적으로 교류하는 데 중요한 물질이지요. 우울증 치료제로 흔히 쓰이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가 바로 환자의 뇌에서 세로토닌이 사라지지 않도록 해서 행복감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약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설명해서, 엑스터시를 먹으면 세로토닌이 활성화되기 때문에 행복한 기분이 들고 앞 사람과 더 어울리고 싶고 스킨십을 하고 싶은 욕구가 커지는 거죠.
그런데 문어의 '사회성'은 도대체 어떻게 측정하는 걸까요? 동물행동학에서는 실험동물의 사회성을 측정하기 위해 나름대로 표준적인 절차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래 그림처럼, 문어를 세 칸짜리 방에 넣어 두고 장난감과 다른 문어 중 누구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측정하는 거예요.
위의 그래프는 엑스터시를 맞기 전의 문어입니다. 실험 대상이 암컷이든 수컷이든 상관없이, 실험 대상 문어는 수컷 문어와 시간을 보내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오른쪽 방에 수컷 문어가 갇혀 있으면 실험 대상 문어는 그 방에 들어가지 않고 장난감이 있는 방에 가서 장난감이나 구경하면서 노는 걸 좋아하네요. 이번 실험의 목적은 "엑스터시를 맞은 문어는 사회성이 높아질까?"를 규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수컷 문어를 비교 대상으로 잡고 실험하는 편이 더 좋겠지요? 그래서 본격적인 실험은 아래처럼 진행됩니다.
재미있게도, 엑스터시를 맞은 문어는 철망에 갇혀 있는 동료 수컷 문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네요. 장난감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것 외에도 또 특이한 점이 관찰되었는데요, 철망에 갇힌 동료와 더 많은 '스킨십'을 하는 게 관찰이 됐어요. 아래 사진처럼요.
위 그림의 L은 엑스터시를 맞지 않은 문어입니다. 철망 안에 있는 동료와 별로 접촉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다리 하나만 삐죽 내밀어서 철망을 탐색하고 있지요. 반면 M에서 찍힌 엑스터시 맞은 문어는 동료를 꼭 끌어안고 싶은 것처럼, 철망에 아예 확 다가가서 감싸고 있네요.
연구자들은 왜 문어한테 마약을 먹이는 괴상한 실험을 하고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의 두뇌가 가진 신경계의 큰 틀이 언제 잡혔는지를 짐작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과 문어의 공통 조상은 5억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문어가 똑같은 약물에 똑같은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건, 인간 두뇌의 세로토닌 회로가 적어도 5억 년 전에 진화했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되는 거죠.
두 번째로 연구자들이 알아내고 싶은 사실은 인간의 사회성이 두뇌의 복잡성에 얼마나 의존하는지일 거예요. 우리는 인간이 대단히 복잡하고 정교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은 거의 문화적으로만 결정된다거나, 행여나 뇌의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 하더라도 엄청나게 많은 화학 물질과 대단히 복잡한 신경 회로가 관여하는 엄청나게 정밀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MDMA 같은 단순한 화학 물질 하나만으로 인간의 사회성을 제어할 수 있고, 심지어 그 제어 기작이 문어한테서도 똑같이 작동한다고 생각하면 이런 전제에 금이 가는 겁니다. 즉 인간의 사회성을 좀 더 적나라하게 이해하는 수단이 바로 문어 연구에서 나올 수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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