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과 스타트업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유튜브를 통해 매주 3회 1) 실밸 인터뷰(수요일 9pm), 2) 실밸 라이브(금요일 9pm), 3) 실밸 티키타카(일요일 9pm) 콘텐츠를 발행합니다.
벤처캐피탈 시장이 얼어붙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 탑티어 벤처운용사인 앤드리센 호로위츠("a16z")는 $7B이 넘는 초대형 벤처펀드를 눈 깜짝할 만큼 짧은 기간에 성공적으로 모집하는 분위기이다.
벤처캐피탈 시장에서 $5B이 넘는 펀드는 초대형 펀드로 분류된다. 투자자 입장에서 이런 대형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어떤 장점이 있을까?
벤처펀드 출자 업무를 8년 동안 해오면서 관찰한 질문과 정답은 다음과 같다.
(질문1) 브랜드가 있는 대형펀드가 수익률이 더 높지 않을까? -> No
규모는 성과의 적이다. 브랜드와 관계없이 펀드규모가 커지면, 펀드운용 수익률은 중간값에 수렴한다.
(질문2) 대형 펀드가 규모가 작은 소형펀드보다는 수익률이 안정적이지 않을까? -> No
규모가 커지면 수익률은 어중간한 수치로 수렴한다. 뿐만 아니라, 대형펀드를 잘못 고르면 오히려 수익률이 바닥을 뚫고 내려갈 가능성이 더 크다. (예: 타이거 글로벌)
(질문3) 그렇다면, 대형 펀드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벤처캐피탈 자산군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게 한다. 다만, 대형 펀드에 출자하는 것으로는 초과수익을 내기가 매우 어렵고, 시장 중간값 수준의 성과를 기대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상장주식시장에 비유하면 대형벤처펀드는 NASDAQ의 개별 종목이라기 보다는, 주가지수 인덱스인 QQQ와 같은 역할을 한다.
1 . 대형 벤처펀드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자산운용 시장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상식 중 하나는 '규모는 성과의 적이다'라는 격언이다.
"Size is the enemy of performance"
(워런 버핏, 데이비드 스웬슨)
이례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기록했던 운용사들의 투자 성과도, 펀드 규모가 커질수록 어김없이 평균회귀법칙이 작용한다.
2001년부터 2020년까지 20년간 벤처펀드의 성과를 4분위별로 살펴보면,
- 펀드 규모 $1B이 넘는 벤처 펀드는 운용성과 상위 25%에 해당하는 펀드를 선택해야 투자성과배수* 2.0x를 넘길 수 있다.
- 반면, $1B이하 펀드는 상위 50% 펀드만 골라도 투자 성과배수 2.0x를 넘긴다.
- $500M 이하 펀드는 상위 펀드 투자성과가 6.0x 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즉, 작은 펀드일수록 성과가 좋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경험적으로도 증명된 것이다.
여러개의 서로다른 벤처펀드에 투자하는 펀드("fund of funds")를 운용하는 글로벌 펀드오브펀드 운용사인 스텝스톤이 조사한 자료 역시 동일한 결과를 보여준다.
2 . 대형 벤처펀드의 존재 이유
펀드크기가 커질수록 투자성과가 어중간해진다는 사실이 자명하다면, $1B가 넘는 대형 펀드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상장주식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질문) 개인투자자의 입장에서, AI 수퍼사이클을 예상한다면 S&P 500 인덱스(예: SPY)를 사야 할까 NASDAQ 인덱스(예: QQQ)을 사야 할까?
(답변) 당연히 나스닥 인덱스를 산다.
2023년말 기준 S&P 500과 나스닥 수익률을 비교해보면, 과거 10년, 20년, 30년 누적 수익률 모두 S&P 500 인덱스(SPY)보다 NASDAQ(QQQ)의 성과가 좋았다.
특히 지난 10년은 테크 섹터가 주도하는 시장이었다.
(질문) 기관투자자의 입장에서, AI 수퍼사이클을 예상한다면, 여러 섹터에 두루 투자하는 바이아웃 펀드(예: 블랙스톤)에 투자해야 할까, 미국 내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펀드(예:Sequoia Capital)에 투자해야할까?
(답변) 당연히 세쿼이아 캐피탈이 운용하는 벤처펀드에 투자한다.
"NASDAQ 수익률 > S&P 수익률"이 성립했던 것처럼,
"바이아웃 수익률 중간값 > 벤처펀드 수익률 중간값"이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위 공식이 성립하려면, '앞으로 수 년간 테크 사이클이 지속될 것'이라는 가정이 참이어야 한다.
3 . 숨겨진 함정은 있다
실리콘밸리 벤처펀드 가운데 펀드규모가 $5B 넘는 초대형 벤처펀드를 운용하는 운용사는 다음 5개이다.
- 세쿼이아 캐피탈
- 앤드리센 호로위츠
- 라이트스피드
- 제너럴 캐털리스트
- NEA
그렇다면, 이 5개 펀드 중에 아무곳에나 넣으면 벤처캐피탈 중간값 수익률을 거둘 수 있을까?여기에는 2가지 함정이 있다.
1) 벤처펀드 수익률이 높아지면, 운용수수료가 높아진다
벤처펀드 운용사는 일반적으로 벌어들인 이익의 20%를 성과수수료로 가져간다.
그런데, 상위 벤처펀드들이 높은 운용성과를 창출하자, 성과수수료로 20%가 아닌 30%를 요구하는 곳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COVID 기간 중 테크 주가가 끝없이 올라가자, 벤처펀드들이 너도 나도 성과수수료 30%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결국, 벤처펀드 수익률 중간값은 그만큼 낮아졌고, 이에 더해 테크 주가가 조정받으면서 당초에 예상했던 "벤처 수익률 중간값 > 바이아웃 수익률 중간값" 공식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되었다.
2) 대형펀드는 소형펀드보다 무모하게 운용될 가능성이 높다
1년에 4건을 투자하던 투자 심사역이, 그 두 배인 8건을 투자해야 한다. 혹은 한 건당 $10M을 투자하던 심사역이, 한 건당 $20M을 투자해야 한다. 혹은 위 2가지 행동이 동시에 발생한다. 즉, 투자금 소진 압박으로 인해 투자 건을 검토하는 기준이 낮아지고, 예전이라면 부결되었을 투자 건이 통과된다.
여기에 덧붙여, 과거 투자가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사실 그 자체 만으로, 과도한 자아(ego)가 안일한 투자를 손쉽게 승인할 심리적 유인을 제공한다.
4 . 벤처캐피탈 패러독스
국민연금(800조)이나 KIC(200조)와 같은 대형 기관투자자는 운용자금 규모가 수백조원 단위로 매우 크다. 이런 큰 기관들은 벤처 펀드에 투자할 때 한 번에 최소 1,000억원 이상을 투자해야 전체 자산군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뛰어난 성과를 기록한 벤처펀드에 큰 자금을 맡길수 있어야 한다.
펀드규모를 늘리지 않으면서 뛰어난 성과를 기록하는 것으로 유명한 Benchmark Capital의 펀드 규모는 $400M을 조금 넘는다. Founder Collective의 펀드는 $100이 채 되지 않는다.
기관투자자들은 본인들이 운용하는 큰 규모의 자금을 맡기기 위해서 성과가 뛰어난 운용사에게 펀드 규모를 키워줄 것을 요구한다.
100개의 기관투자자들이 기존에 $100M씩 맡겨서 $10B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던 운용사가, 새로운 펀드를 모집하면서 한 기관당 $100M씩만 추가로 받더라도 펀드 규모는 $20B이 된다.
앞서 말한 요인들(투자금 소진 압박, 과도한 자아, 테크 주가조정)이 동시에 발생하게 되면, 2년 후에는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다.
5 . AI 수퍼사이클 ?
"AI 수퍼사이클"이라는 단어가 시장에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고 있다.
1994년, 개인들이 인터넷을 쓸 수 있게 한 최초의 소프트웨어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가 출시되었다.
2022년, 개인들이 인공지능을 손쉽게 쓸 수 있게 한 최초의 애플리케이션인 ChatGPT가 출시되었다.
ChatGPT 이후 1년 반이 지난 2024년 현재 우리는, 인터넷이 보급되던 1990년대의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일까? 앞으로 5년간 더 성장할 기회가 남아 있는 1996년일까? 혹은 버블이 터지기 직전인 1999년으로 기억될까?
최악의 의사결정은, 시장이 미친듯이 과열된 후 시장의 꼭지점에서 마침내 굴복하고 매수하는 마지막 투자자가 되는 것이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