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령을 궁금해하는 분이 있어, 연합뉴스 김진방 베이징 특파원과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맨 아래에 설문이 있는데요. 귀찮더라도 응답 부탁드려요.
이승환: 한한령은 무엇입니까?
김진방(연합뉴스 베이징 특파원): 한중간 사드 갈등 이후, 중국 정부가 한국산 콘텐츠의 유통과 판매를 전면 금지한 조치입니다. 이후 한국산 콘텐츠는 중국의 모든 TV 채널과 영화관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식 방영된 드라마는 2016년 상반기 방영된 ‘태양의 후예’로, 4년 넘어 공식 방송은 없습니다.
이승환: 인터넷에서도 못 봅니까?
김진방: 못 봅니다. 물론, 불법으로는 아직 좀 인기가 있습니다. JTBC ‘스카이 캐슬’이 흥행할 때, 중국에서 학원 열풍이 불기도 했죠. ‘배틀그라운드’도 가상사설망(VPN)으로 우회해서 즐기고는 합니다.
이승환: 중국은 한한령 왜 합니까?
김진방: 중국의 안보이익을 위협하는 사드에 대한 보복행위입니다.
이승환: 정말 사드 때문일까요, 아니면 핑계일까요?
김진방: 반쯤은 핑계입니다. 한국 콘텐츠가 중국에서 너무 잘나갔어요. 업계 내부에서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인기였습니다. 언젠가 조지려 했는데, 사드가 구실이 된 거죠. 물론, 반도체나 배터리 같은 한국의 주력 산업을 겨냥할 수도 있었는데… 이러면 중국 산업에도 충격을 줍니다(…) 그러니, 눈에 잘 띄면서도 중국에 피해가 없는 문화 산업을 공격하는 것이죠.
이승환: 한국도 한때 홍콩 영화가 쓸었잖아요?
김진방: 중국 공산당은 한류에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1당 독재로 14억이 넘는 국민을 통제하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불순한' 외래문화에 물드는 국민이 늘어난다면, 사회 통제는 점차 어렵게 됩니다. 대통령마저 탄핵하는 한국의 문화적 DNA는 중국공산당에게는 공포의 대상입니다.
이승환: 한국 말고 다른 나라 콘텐츠도 규제하나요?
김진방: 아닙니다. 티베트나 대만 같은 지역의 반중 콘텐츠를 차단할 뿐, 중국에서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의 문화 콘텐츠를 규제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일본 드라마나 미국 헐리우드 영화는 규제가 필요할 정도의 인기가 없습니다. 반면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중국 로컬 콘텐츠를 완전히 뒷전으로 여기게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승환: 런닝맨 등 판권 사간 프로그램은 어떤가요?
김진방: 한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티를 전혀 내지 않는 형태로 방영합니다. 한한령 이전에는 한국 프로그램임을 강조했죠. 한국 제작사에서 아웃소싱으로 제작하는 프로그램들도 전혀 티를 안 냅니다. 예전 같았으면 ‘한국 제작진 직접 제작’같은 문구로 도배됐겠죠.
이승환: 그렇다면 카테고리별로 어느 정도의 영향이 있나요?
김진방: 그나마 드라마는 1) 한국산이란 것을 숨긴 채 제작된 리메이크, 2) 한국 배우가 나오지 않는 한중 합작 드라마 상영 정도까진 가능합니다. 영화는 그냥 제로입니다. 중국은 ‘분장제’라는 스크린쿼터 같은 제도가 있어서, 1년에 총 34편의 외래영화가 상영 가능합니다. 대부분 미국 할리우드 영화입니다. 국산 영화는 2015년 ‘암살’ 이후 개봉이 전혀 없습니다.
이승환: 중국 대부분의 산업이 세계 수준으로 올라갔는데, 콘텐츠는 왜 별로인가요?
김진방: 간단합니다. 중국 당국의 엄격한 검열을 거쳐서 콘텐츠가 제작되니, 재미있을 리가 없지요.
이승환: 최근 컴투스의 ‘서머너즈워’가 판호를 받았다는데, 판호가 뭔가요?
김진방: 정식 판매 허가입니다. 판호에는 성급 판호와 (지자체 판호), 전국급 판호가 있습니다. ‘서머너즈워’는 베이징시의 판호는 진작 받았고, 최근에 전국급 판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급 판호만으로는 게임 유통 및 판매만 가능할 뿐, 대대적인 홍보 마케팅이나 오프라인 행사 등은 불가능합니다. TV 광고나 플랫폼 광고도 쉽사리 하지 못하죠.
이승환: 그러면 사실상 중국 국가 판호 없이는 대대적 마케팅이 불가능한 거네요?
김진방: 네. 세계적인 히트 게임 ‘배틀그라운드’ 역시 판호를 받지 못해, PC판은 공식 런칭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바일 버전은 텐센트와의 공동 개발 형태로 우회해서 발매했죠. 서머너즈워가 4년 만에 판호를 받아 화제이지만, 어차피 4년 지난 게임인지라, 판호를 준다고 장사가 막 잘 될 것 같진 않습니다.
이승환: 크로스파이어나 던파는 여전히 인기인데, 한한령 이전 게임들은 그냥 유지하는 건가요?
김진방: 이미 판호를 받은 게임은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존 인기 게임을 제재하면, 이를 서비스하던 텐센트 같은 중국 기업이 피해를 보겠죠. 한국 게임 제재하려다, 중국 기업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에 냅두는 거죠.
이승환: 게임까지 규제하는 건 좀 오버 아닌가 싶은데요.
김진방: 중국공산당은 게임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올해 최고 인기를 끌었던 닌텐도의 '동물의 숲'은 홍콩보안법 시위에 활용되면서 중국에서 전면 판매 금지를 당했습니다. 온라인 게임은 유저 간 끈끈한 연대를 기반으로 하기에, 중국공산당에게는 상당히 예민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나 유선 전화를 철저하게 감시하는 중국 입장에서는 뜻밖의 구멍이 될 수 있죠.
이승환: 홍콩에도 이런 영향력이 행사되나요?
김진방: 아직은 아닙니다. 허나 홍콩보안법으로 민주당파가 완전 밀려났기 때문에 조만간 그렇게 될 겁니다.
이승환: 한한령의 명확한 기준은 뭔가요?
김진방: 한한령은 누가 지시를 내리거나 공문서화한 명령이 아닙니다. 그저 '윗분의 심기'를 살펴 알아서 기는 형태로 유지되고 있지요. 중국 공직자들은 책임지지 못할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괜히 나섰다가, 본보기로 강한 징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즉, 한한령은 실체가 없고, 실체가 없는 만큼 해제도 어렵습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아무도 질책하지 못하는 절대자, 시진핑이 나서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승환: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서 기어요?
김진방: 쉽죠. 그냥 허가 안 내주면 됩니다. 당시 심사 중이던 한국 관련 드라마 50여 편 중 방영 허가난 작품이 없어요. 한국 배우 1명 끼어만 있어도 말이죠. 심지어 이 과정에서 한국 콘텐츠에 투자한 중국 제작사들이 연쇄 부도가 났는데도 생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한국 관련 콘텐츠에 투자하려 하겠어요?
이승환: 개개인으로 배우나 모델로 잘 나가거나 하는 경우는 있지 않나요. 김수현이라거나…
김진방: 그런 배우들 모두 중국 활동이 거의 제한됐습니다. 그나마 가능한 활동도 CF 모델 정도지, 드라마라든지 영화는 불가능합니다.
이승환: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 같나요?
김진방: 아직 한한령 해제는 먼 이야기입니다. 물론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방한으로, 어느 정도 긍정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긴 했습니다. 그럼에도, 시진핑 주석이 직접 한국에 와서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한중간 문화 교류를 강화하겠다는 한마디를 내뱉지 않는 한, 지금 상황은 유지될 겁니다.
이승환: 시진핑 힘이 그리 센가요.
김진방: 시진핑 주석 이전의 중국은 집단 지도 체제였습니다. 하지만 미중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지도층에서 1인 절대권력 체제에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죠. 어차피 시진핑 말 안 듣는 사람은, 치열한 권력 투쟁으로 이미 다 모가지이기도 했습니다(…) 중국은 지금 시진핑 주석의 절대 권력 아래 움직이고, 국가의 최후 결정권은 모두 시 주석의 손 안에 있습니다.
이승환: 중국 콘텐츠 업계는 재미 많이 보고 있는데, 굳이 시진핑이 나서 한한령을 풀 필요가 있나요…
김진방: 한국이 더 큰 손해이지만, 중국에도 이익은 아닙니다. 한한령은 한중관계가 여전히 갈등 중이라는 신호입니다. 한국 제조업 기업들이 중국에 투자하기 힘들죠. 한한령을 푼다는 것은, 한국 기업들에게 중국에 마음껏 투자하라는 신호이고요. 반면 한한령 해제는 한국 정부에게는 엄청난 성과입니다. 일종의 한국 정부 길들이기인 면도 있죠. ‘서머너즈 워’의 판호 부여도, 일종의 밀땅일 수 있습니다.ㅎ
이승환: 한한령이 콘텐츠 외의 다른 산업에도 영향이 있나요?
김진방: 관광 산업에 주는 타격이 어마어마합니다. 사드 이후 한한령으로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사라지다시피 했습니다. 애초에 한국 콘텐츠가 한국 관광을 이끌었으니까요.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히트한 뒤로 치맥이 중국에서 유행했던 것을 기억해보면 이해가 편할 겁니다. 콘텐츠와 마찬가지로, 중국 여행사들도 한국 관광 상품을 중단하다시피 했어요.
이승환: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뭘 할 수 있을까요?
김진방: 시진핑 주석의 답방을 최대한 앞당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문 대통령 입장에서, 중국 지도부를 자극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 분야를 협상 카드로 이용할지도 미지수입니다.
이승환: ???
김진방: 중국은 항시 한국에 대한 묘한 감정이 있습니다. 고대에는 조공국가로 생각했던 한국이, 이제는 문화적으로 중국을 압도한다는 사실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일으키기 때문이죠. 산술적으로 규모가 작은 문화 산업을 보호하느니 반도체 등 규모가 큰 제조업에 좀 더 집중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건 문재인 대통령의 개인적 결단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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