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뉴스레터

이곳에서의 단 한 순간이, 더 좋습니다.

2차 로고스호프 사역을 마치고 적어보는 뒷 이야기.

2024.11.05 | 조회 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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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의 항해일지 Tae Sails의 프로필 이미지

반드의 항해일지 Tae Sails

선교사 반드의 두번째 로고스호프 이야기 Tae's sailing journey 2.0.

위 링크를 누르면 나오는 노래는 저에게 꽤 특별합니다. 2022년 1월, 어언 3년 전, 3년간의 로고스호프 사역을 마친 저는 완전한 번아웃을 느끼며 '이대로는 한국의 바쁜 일상 속으로 못 돌아갈 것 같다'는 생각 하나로 스위스행을 택했었습니다. 아프리카 가나의 뜨거운 태양빛을 뒤로 하고 비행기에 오른 지 몇 시간만에 도착한 스위스의 서늘한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마치 C.S. 루이스의 나니아에 도착한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3년간 배에서만 살다가 육지에 발을 내딛은 선원의 피곤한 몸을 끌고 알프스 산맥으로 향하는 기차에 오른 저는, 이 노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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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will you run my soul? Where will you go when wells run dry?" 
"나의 영혼아, 너는 어디로 도망칠 것인가? 너의 우물이 메마를 때, 어디로 갈 것인가?" 

"I'm running to the Secret Place, where you are, where you are..." 
"나는 주님이 계신 비밀의 장소로 가렵니다." 

노랫말에 의지해 도착한 곳은 라브리(L'Abri)라고 불리는 스위스 전통 오두막집이었습니다. 이곳은 크리스천 공동체이지만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곳으로, 삶의 여러가지 질문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살며 사색과 토론을 통해 방향을 찾아 나가는 안식처와도 같은 곳입니다. 2022년 1월부터 2월까지 이 곳에서 2개월 정도를 보낸 저는, 매일 알프스 산맥을 걷고 저녁에는 사람들과 모닥불 주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3년 동안의 파란만장했던 선교의 순간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갔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시간은 어디에서든 보낼 수 있지만, 이 때의 저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이 비밀의 오두막에서 적었던 많은 글귀들과 흘렸던 많은 눈물들 덕분에, 저는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고 한국으로 귀국해 군생활을 시작했었으며, 전역을 한 후에는 다시 한 번 힘을 얻고 탄자니아에 단기선교를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첫 번째 뉴스레터를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바로 이 탄자니아에서 저는 로고스호프에 두 번째로 저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두 달이 흘렀습니다. 바로 지난 목요일 (10월 31일), 저는 로고스호프에서의 두 번째 사역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원래는 3개월을 계획하고 갔으나, 배가 대서양을 건너 카리브해로 가기 전 아프리카에서 집으로 갈 사역자들을 배려해 주었기에 저 또한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집에 온 것입니다. 

로고스호프에서 바라본 시에라리온의 석양
로고스호프에서 바라본 시에라리온의 석양
양양 라브리공동체의 마스코트, 나무 위의 집
양양 라브리공동체의 마스코트, 나무 위의 집

시에라리온의 뜨거운 태양을 뒤로 하고 날아온 한국의 가을은, 지난 번 스위스에 내렸을 때 처럼 서늘했습니다. 첫 번째 배를 내렸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번아웃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조용히 함께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장소를 향한 갈증은 변함이 없더군요. 그래서 양양에 있는 한국 라브리 공동체에 방문해 며칠을 보냈습니다. 

라브리에 방문하는 학생들은 스스로의 고민과 생각할 거리들을 가지고 와 핸드폰을 꺼두고 찬찬히 사색에 잠깁니다. 저 또한 나름 파란만장했던 지난 두 달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누렸습니다. 로고스호프 선상서점 (Book Fair)에서 친구가 사 준 샛노란 공책 위에 배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마인드맵처럼 그려 보았습니다. 

부푼 마음과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 
그리고 배에서 부탁 받았던 프로젝트의 초안을 가지고

가나에 있는 배에 두 번째로 합류했던 첫 주.
저를 초대했던 사람의 실수로 인해 저의 업무와 역할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발견했던 날.
이 소통의 부재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저의 태도는 문제 삼았지만
스스로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았던 리더들에게 화가 났던 순간.
결국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것이 맞겠다는 무거운 결정을 내렸던 그 날.
얼른 이곳을 떠나겠다며 씩씩대며 한국행 항공권을 찾던 도중 걸려온 부모님의 전화.
딱 한 번만 기도해보고 결정하라시던 엄마의 도전.
기도하는 순간 제 마음을 바꾸어 놓으셨던 하나님의 목소리.
지난 두 달이라는 시간에 마치 2년의 시간이 흐른 것 처럼 많은 굴곡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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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상황을 받아들이고 옮겨 가기로 했던 갤리(배의 키친 팀) 부서에서의 기억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매일 다섯시 반에 일어나 서른 명의 동료들과 으쌰으쌰하며 1000인분의 음식을 준비하고, 1000개의 그릇과 냄비를 닦던 지난 두 달의 하루하루가 기억났습니다.

떠나던 날인 지난 주 목요일, 배의 갱웨이(육지를 잇는 철 계단)을 따라 내려오며 엉엉 울던 동료들과 부둥켜 안으며, 첫 번째 배 사역때는 너무 바빠 경험하지 못했던 공동체 안에서의 뜨거운 동료애를 경험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섬세하심에 감탄했던 순간도 스쳐지나갔습니다. 

사랑하는 동료 선교사들
사랑하는 동료 선교사들

사실, 배에서 돌아온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대체 왜 지난 두 달의 로고스호프 사역의 시간을 허락하셨는지 전부 발견하진 못했습니다. 방금 적어본 것 처럼, 가만히 앉아 기억을 떠올려 보거나 동료들이 꼭꼭 눌러 쓴 편지를 읽다가 문득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껏 함께 이 여정에 동참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번 사역을 통해 깨닫게 된 저를 향한, 또 로고스호프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몇 가지 적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두 달동안 저를 왜 로고스호프 사역에 동참하게 하셨을까요? 

  •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현재 로고스호프에 부흥의 계절을 불러 오고 계십니다. 단순히 성령님이 뜨겁게 임재하시는 한 번의 예배가 아니라, 65개국 300명 선교사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회개를 통해 역사하시는, 조용하지만 지속적인 그런 부흥 말입니다. 이 부흥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매일의 사역에 지친 사역자들의 마음에 새로운 열정과 사랑을 부어 주시며, 이는 배가 나아가게 될 다음 사역지를 위한 좋은 자양분이 되곤 합니다. 2019년부터 배를 타며 이러한 부흥을 여러 번 지켜본 저는, 어느 순간부터 제가 가진 달란트와 도구를 사용해 이 부흥의 움직임에 참여하는 방법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2024년 10월의 로고스호프는, 저와 같이 투박하지만 진심으로 성령님의 움직임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모르는 사이에 그분을 향한 저의 열정이 다른 지체들을 격려하고 세우는데 사용될 수 있도록 허락하셨던 것 같습니다. 매일 저녁 친구들을 모아 함께 찬양을 부르며 모이기에 힘썼고, 찬양인도자의 자질을 가진 친구들을 격려해 그들이 예배를 인도하는 기회를 주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이것은 너도나도 기쁨으로 참여하는 로고스호프 매일의 문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현재 로고스호프 선교사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아십니다. 판데믹 시즌을 지나며 사역적으로 많이 준비되지 않은 선교사들이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뿐만 아니라, 판데믹 이전 로고스호프 사역의 '전성기'에 참여했던 여러 명의 선교사들을 배로 다시 부르시고, 이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역 방법이나 마음의 자세에 대해 현 사역자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저 또한 4주간 강의한 '창의적인 복음전도'라는 주제를 통해, 현 사역자들이 두려움 없이 복음을 스토리텔링할 수 있도록 격려하려고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몇몇 사역자들이 실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얻었다고 전해주어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반대로, 저 또한 제가 가르친 내용을 스스로 다시 배우며, 가나와 시에라리온 각각 한 명씩의 무슬림에게 전도할 수 있는 꿈만 같은 기회를 누렸습니다. 그 중 한명에게는 성경을 사 주고, 코란과 비교하며 읽어볼 수 있도록 연락하며 격려하는 중인데, 그사람의 앞으로의 여정이 너무나도 기대가 됩니다.  
  •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현재 저에게 필요한 것들을 저보다 더 잘 아십니다. 저는 처음에 제가 로고스호프에 다시 돌아가는 이유가 제가 가진 것들을 나누어 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저의 주도권을 일찌감치 포기하게 하셨고, 저는 그 포기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서 만져 주시고자 하셨던 것들을 발견할 공간을 얻었습니다. 잠깐 언급했지만, 5년 전 처음 로고스호프 사역을 시작했을 때는 중간급 리더직을 맡아 (훈련팀) 꽤나 외로웠던 하루하루를 보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갤리를 선택하고 팀원 중 하나로서 섬기며 저는 저에게 필요한지도 몰랐던, 아니 잊어버리고 있었던 '공동체의 기쁨'을 만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제가 가진 배 사역의 경험을 나누며 새로 합류한 동료 사역자들에게 든든한 친구이자 지원군이 되어줄 수 있었던 것 또한, 제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큰 축복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이를 통해, 3년 전 배를 처음으로 떠나며 풀리지 않았던 마음의 앙금들이 섬세하신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에 하나 둘 녹아 없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매일 함께 모여 예배하기를 힘썼던 공동체
매일 함께 모여 예배하기를 힘썼던 공동체
시에라리온의 한 지역 교회에서 설교했던 날
시에라리온의 한 지역 교회에서 설교했던 날

이쯤에서 제가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보냈던 뉴스레터를 한번 보시면 재미있으실 것 같습니다 (https://maily.so/taeheeum/posts/92ze9jypoep).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저는 이번 사역지 방문 기간을 3개월 이상으로 잡아 놓고 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배에서 요청한 업무가 결렬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 기도제목에 올려 놓기도 했네요. 

사역이 마무리된 후 다시 읽어보니, 일도, 상황도, 배에 머무른 기간도... 그 어느 하나도 제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편지에서 발견한 문구 하나 만큼은 살아남아, 지금 시점에서 제 가슴을 더욱 울리고 있습니다. 

몇년 전 배에 올랐던 반드와 오늘의 반드는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요. 그러니 비록 배 자체는 같은 곳이지만, 저는 완전히 새로운 성장과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 기대 하나만큼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저는 5년 전과 똑같이 생긴 거대한 배 위에서, 2024년 9월부터 10월에 제게 반드시 필요했던 격려와 회복, 성장을 경험하였습니다. 

제가 적은 것 이외에도 하나님께서 저를 이 계절에 로고스호프에 다시 불러주셨던 이유는 넘쳐날 것입니다. 매일 이 공책에 끄적여 보며, 기억 속에서 발견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더 정리하고 싶습니다.

"Better is a moment that I spend with You Than a million other days away.""다른 곳에서 보내는 백만 날들보다 주님과 이곳에서 보내는 한 순간이 더 좋습니다."

"두 달동안 고생만 하다 왔네. 시간 아깝게." 

만일 어둠이 이렇게 말을 건네온다면, 저는 그 문장을 조금만 고쳐서 대답하고 싶습니다.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주님께서 부르신 곳에서 고생할 수 있었기에 감사합니다.
그 한 순간이, 백만 날들보다 더 좋았습니다."


지난 두 달의 로고스호프 사역에 기도로 동참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뉴스레터를 읽고 연락해 주시거나 격려의 말씀 나누어 주셨던 모든 분들 덕분에 초반 흔들렸던 순간에도 아주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또 새로운 소식 있으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기도제목

1. 두달간 매일 8시간씩 설거지를 했더니 허리와 등에 조금 무리가 온 것 같습니다. 재충전 하는 이 시간에 몸 관리 소홀히 하지 않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2. 계속해서 로고스호프에서의 두 달을 감사함으로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기를, 그 정리의 과정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3. 다음 스탭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세요. 현재 영국, 프랑스, 미국 중 한 곳에서 사역을 병행한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에서 그랬던 것 처럼, 결정을 내리기 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나아가는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겸손과 지혜를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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