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이번엔 늦은 시간에 인사드리네요. 오늘 하루 잘 보내셨나요?
오늘부터는 지난번에 말씀드린 6대 다류를 하나씩 살펴보고, 좀 더 맛있게 마실 수 있는 팁도 알려드리려고 해요. 그럼, 가공과정이 가장 간단한 백차부터 함께 알아볼까요?
< 백차의 시작 >
백차의 기원은 무려, 기원전 10세기 송나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당시의 백차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죠. 신선한 찻잎을 따서 잘 쪄낸 뒤, 으깨고 압축해서 열기를 가해 떡 모양의 병차(餠茶)로 만들었어요. 보이차의 모습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병차는 칼로 조금 잘라내어 바글바글 끓인 뒤, 소금이나 다른 향신료 따위를 넣어 마셨답니다. 꼭 짜이가 생각나죠? 🧂
이 차는 북송의 8대 황제였던 휘종(徽宗)의 사랑을 받으며 이름을 더욱 알리게 되었습니다. 다만, 몹시 귀하다는 게 문제였죠. 첫째로, 재료가 귀했습니다. 당시의 백차를 생산하는 찻잎은 낭떠러지에서 자라는 희귀한 야생 차나무에서 얻은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수확할 수 있는 찻잎이 매년 2~3자루에 불과했습니다.
둘째, 가공이 어려웠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수확한 찻잎이지만, 적정한 온도로 쪄내지 않으면 고유의 맛이 아닌, 평범한 차가 되어버렸다고 해요. 온도계도 없던 시절에 이 온도를 맞추는 것부터가 아마 너무나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더군다나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는 찻잎을 병차로 압축하는 과정도 고도의 기술을 요했다고 해요.
이런 탓에, 시간이 지나며 백차의 모습은 살짝 달라집니다. 우선 섬세한 찻잎을 쪄내어 말린 뒤 보관해두었다가, 차를 마실 때 이 찻잎을 갈아서 가루를 내어 먹기 시작한 겁니다. 이 가루차는 사발에 담아 끓인 물을 붓고, 하얗게 거품이 나도록 격불해서 부드럽게 마셨어요. 송나라 사람들은 이 차를 그냥 마시는데 그치지 않고, 누가 거품을 잘 내는지 대회를 열거나, 거품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어딘가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바로 일본 말차 격불의 기원이자, 최초의 라떼아트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
이후 새로운 모습의 백차가 청대 1796년, 푸젠성 북부에서 등장합니다. 초봄에 수확한 찻잎을 며칠간 햇빛에서 말린 뒤, 섬세하게 가열하여 수분을 제거해서 찻잎이 상하지 않도록 저장하는 방법이 개발되었죠. 비록 이 때 만들어진 백차에는 흰 솜털인 백호가 없었지만요.
그렇다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새하얀 백호로 뒤덮인 백차는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바로 1885년, 마찬가지로 푸젠성에서입니다. 당시 푸젠성에서는 녹차를 생산할 용도로 대백종(大白種)이라는 품종의 차나무를 많이 재배하고 있었습니다. 대백종은 백호가 많고 신선한 새싹을 틔워, 사람들은 이 대백종의 싹을 엄선해 지금의 백차를 생산하기 시작했어요. 푸젠성은 지금까지도 전통 백차의 본고장으로서, 백차의 대명사인 백호은침을 비롯해 훌륭한 백차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 백차의 종류 >
백차는 찻잎을 따는 채엽(採葉), 찻잎을 시들려서 작업을 원활하게 해주는 위조(萎凋), 수분을 제거하는 건조(乾燥) 과정을 거치면 완성입니다. 간단한 제조과정만큼, 백차는 어떤 찻잎을 재료로 사용하는지가 정말 중요해요. 마치 맛있는 나물 반찬은 좋은 재료에 간만 맞춘 것처럼요!
따오늘날의 백차는 품종과 찻잎을 따는 기준에 따라 백아차(白芽茶)와 백엽차(白葉茶)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싹을 사용했는지, 잎을 사용했는지에 따라 구별되죠.
대표적인 백아차인 백호은침(白毫銀針)은 바늘같이 뾰족한 새싹, 백호로 하얗게 뒤덮인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가장 고급스러운 백차인 만큼 원료가 되는 싹이 너무너무 중요해서, 찻잎을 따지 않는 10가지 기준이 전해져 내려올 정도입니다.
듣기만 해도 엄격하죠? 덕분에 푸젠성에서 대백종의 초봄 첫 싹으로만 만들어진 진품 백차는 지금도 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 가격을 자랑합니다.
이를 해결하고 백차의 대중화에 기여한 차가 있으니, 바로 백모단(白牡丹)입니다. 녹색 찻잎에 둘러싸인 하얀 싹을 모란꽃에 비유하여 이름붙었어요. 오동통한 흰 싹만 사용했던 백호은침과 달리, 두 장의 찻잎까지 함께 따서 가공했기 때문에 생산 단가가 저렴해졌죠. 덕분에 백모단을 통해 백차는 중국 내에서 대중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하얀 홍차'로 불리며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보다 저렴한 백엽차인 수미와 공미도 있습니다. 생산량으로는 백차 총 생산량의 절반이 넘는 어마어마한 양에 드는, 대중적인 백차의 끝판왕입니다. 채엽 기준도 일아이엽이나 일아삼엽이에요. 백호은침이나 백모단이 신선한 향미로 사랑받는다면, 수미나 공미는 좀 더 진하고 묵직한 향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답니다.
< 백차, 맛있게 마시자! >
백차는 찻잎을 가능한 그대로 보존해낸 차이고, 찻잎 고유의 향미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차이기도 합니다. 찻잎을 우려낼 때 조금만 신경을 써준다면, 백차 고유의 맛과 향을 배로 느낄 수도 있어요.
백차를 우릴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낮은 온도로 섬세하게 우려내는 것입니다. 다른 차에 비해 찻잎이 연하고 가늘면서 얇고, 부드러운 백호가 잔뜩 붙어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백차를 우릴 때는 80℃ 정도의 물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을 부을 때에도 찻잎에 직접 붓기보다, 다기의 벽면에 타고 흐르도록 살살 부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또, 백차의 찻잎은 비교적 상처없이 온전하기 때문에 차의 성분이 침출되는 데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좋은 백차는 맛이 쉽게 쓰고 떫어지지 않기 때문에, 안심하고 여유롭게 우려내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 3~5분 정도 우리는 걸 추천해요.
뭐 이렇게 까다로워! 싶다면, 냉침도 좋습니다. 중의학에서 백차는 해열제로 처방되기도 하거든요. 차에 따라 가감이 필요하지만, 백모단을 기준으로 물 1L에 찻잎 5g 정도를 넣고 냉장고에서 하룻밤 우려냅니다. 다음날이면 속까지 시원하고 상쾌한 냉침차가 완성돼요. 꼭 새 찻잎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따뜻하게 우려내고 남은 백차를 냉침하면 오히려 금방 우러나기도 해요.
오늘의 백차 이야기, 즐거우셨나요?
6대 다류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오늘의 차> 코너는 잠시 쉬어갑니다. 대신 이야기를 마치면 맛있는 한국의 햇차들을 안고 돌아올게요!
그럼, 언제나 즐거운 차 생활 되세요 👏👏
*참고문헌
- 정승호_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 <티소믈리에 이해 3>
- 왕젠룽, <기초부터 배우는 중국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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