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아침에 보게 되실 이 글에서 목요일 밤의 술냄새가 조금 남아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거하게 마셨다면 키보드 앞에 앉지도 못했을 겁니다.
함께 한솥밥 먹다가 먼저 퇴사한 선배가 저의 퇴사 소식을 들었다며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밥이라도 사주겠다며 거나하게 한턱 쏴주었거든요. 오후에 있던 화상 면접을 보고 부랴부랴 달려갔습니다. 식당에 앉자마자 하시는 이야기가,
"너 퇴사한다고 할 때, 아무도 밥 안 사줬을 것 같아서.
고생했을 게 뻔히 보여서, 그래서 내가 너 밥 사주려고 불렀어. 고생했다고, 잘했다고 말해주려고."
응원을 잔뜩 먹고 와서 되려 먹먹한 마음으로 글쓰는 마음의 포문을 엽니다. 제 이야기는 길어질 듯 하여 알레 작가님의 글을 소개하고 이어 가볼게요. 작가님 글에 제게 아주 필요한 말들이 녹아있거든요.
언젠가 한 번쯤 누구나, 본인의 쓸모에 대해 고민해봅니다. 시기와 상황이 조금씩 다를 뿐,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요? 먼저 그런 생각을 해보고, 나름 결론을 내본 선배들의 말은 후배의 입장에서 꽤 좋은 양분이 됩니다. 살아가다 문득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죠. 저에게 알레 작가님의 글이 그렇게 다가오는 듯 합니다.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 writing한 글쓰기
나의 존재가 곧 나의 쓸모였다.
글: 알레 작가
'쓸모.'
‘이 한 단어가 만들어내는 중압감이 이렇게 컸던가. 어쩌다 나는 이 한 마디에 이렇게 갇혀버렸을까.’
퇴사 후 꾀나 오랫동안 나의 내면은 ‘쓸모없음‘의 늪에 빠져있었다. 회사를 나와 보니 한 가지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 '일'은 세상이 나의 쓸모를 인정해 준 하나의 기준이었다는 것을. 아니 정확히는 내가 그렇게 정의하고 있었다.
퇴사까진 좋았는데, 여전히 나의 쓸모에 대한 정의가 바뀌지 않으니 참 오랜 시간 '쓸모'라는 단어가 '무쓸모', '무가치함'으로 변해 나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내가 만들어낸 마음의 진을 깨고 나올 수 있었다. 바로 '아빠'라는 쓸모와 '나'라는 쓸모를 인정하고 난 뒤에야.
‘쓸모없음’의 늪은 농도가 진해 잘못 발을 디딘다 해도 갯벌에 발이 빠지는 것 보다도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래서 처음엔 언제든 돌아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 그랬는지 모르게, 어느새 허리춤까지 잠겨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되어서야 큰일이 났음을 깨닫게 된다.
이쯤 되면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든다. 그래서 뭐라도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다. 덕분에 삶은 분주하다. 그러나 뚜렷한 목적도 방향도 없다. 한마디로 억지스러운 분주함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것을 반복한다. 시간은 흐르고 에너지를 쏟아붓는 양은 많은데 결과물은 없거나 미약하다. 결국 다시 제자리다. 아니 제자리면 차라리 다행이지. 오히려 늪에 더 깊이 빠져들어간다.
‘쓸모없음’에 ‘실패와 실망‘이 더해지니 그때부터 나의 삶은 온통 남에 대한 부러움과 나에 대한 실의뿐이었다.
어디가 바닥인지 모를 인생 하락기에 눈을 띄워준 존재가 있었다. 아들. 아내. 부모님. 그리고 나를 깊이 이해해 주고 기다려주고 응원해 준 친구들.
어쩌면 그동안의 시간은 그야말로 물갈이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오랜 습성을 바꾼다는 게 이만큼 어려운 일인 걸까. 사는 모양새는 바뀌어도 생각의 전환을 넘어 무의식의 틀이 깨지는 데까지 도달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빚어져 세상에 나오게 된 것들은 모두 다 제 쓸모가 있는 법이다.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게 이치다. 사람도 그렇다. 난 신을 믿기에, 창조의 섭리에 따라 빚어진 인생이라면 나의 쓸모는 내가 정의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내가 나의 생각 속에 갇혀버린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내가 나의 쓸모를 정의하려 했다는 것.
그 마음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지금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선명해진다. 아들에게, 아내에게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옆에 있어주는 것.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재능을 나누는 것. 무엇보다 삶을 글로 써 내려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쓸 수 있는 다정한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 그것이 지금 나의 쓸모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제는 다시 무쓸모의 늪에 빠져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 믿는다. 실수로 발을 담그게 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전과 같이 허리춤까지 잠기는 일은 없을 거라 기대한다.
누군가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면 꼭 이야기해 주고 싶다. 당신의 쓸모는 당신이 속한 세상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내가 나의 쓸모를 정의하면 그만이라고.
심지어 지금 마음이 가라앉고 침체기를 보내고 있을지라도 같은 마음고생 중인 사람들을 공감해 줄 수 있는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준희의 시선 #2
준희 작가의 시선이 담긴 필름 사진과 별거 없는 짤막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아시다시피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에는 선배라는 존재가 많지 않거든요. 배울 수 있는 것보다, 홀로 체득한 것을 쏟아내는 것에 바쁜 곳일 때가 더 많죠. 그 찰나에 잠깐 함께 했던 선배인데, 제 소식을 듣고는 격려해주려고, 밥이라도 먹이겠다고 소식을 듣자마자 무작정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여러 이야기들이 오가던 저녁 자리에서, 저는 여러 조언과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여러번 삼켜야 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고생해서, 그걸 알아주셔서-가 아니라, 제 눈을 보시며 정말 단호하게, 여러번 말해주셨거든요.
"너는 정말 잘하고 있어. 네가 한 일들 다 들었어. 얼마나 혼자서 고생했을거야. 안 봐도 훤해.(이때 정말 제가 했던 일들을 줄줄이 읊으시는데, 안보고 어떻게 아셨지?! 무릎팍 도사를 보는 줄 알았습니다. 업계 선배란 이렇게 무서운거구나. 실감했습니다.) 네가 지금 고민하는 거, 네가 일하는 방식, 태도. 다 너에게 도움이 될거야. 너 자신을 의심하지 마. 너를 믿어. 너는 될거야. 너는 된다. 그렇게 될거야."
필사를 함께 했던 친구의 귀엽고 당당한 걸음걸이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쓸모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력서를 정리하고, 자기소개서를 새로 작성하면서 나 자신을 다시 한번씩 들여다보게 되죠. 스스로의 쓸모에 대해 생각해보면, 냉철해지기도, 구질구질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서울에 사는데요. 이 넓고 좁은, 수 많은 건물들 사이에 내 책상 하나 없는걸까 하는 생각에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도 있죠.
하루는 정말 괜찮다가, 하루는 정말 구렸다가. 그러는 와중에 오늘 선배의 말이 제게 꽤 큰 울림을 줬습니다. 넌 된다. 그렇게 될거야. 고민 한 점 없는 그 말이요. 제가 쑥스러워 하하, 하면서 찡긋 웃었는데, 정색하고 혼났어요. 그렇게 하는 것도 없어질거라고. 너는 될거라고. 웃음기 싹 빼고 넵, 되겠습니다. 하고 왔죠.(물론 약간 무섭기도 했고요.)
이제는 너무 집값이 올라버린 그 동네
저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선배의 믿음 가득한 응원처럼, 알레 작가님의 말 처럼, 저 스스로 저의 쓸모를 정의내려보기로요. 어느 드라마에 나온 명대사처럼, 내 인생에 물음표를 던지기보다 느낌표를 던져보기로 했어요. 나는 된다. 된다. 그게 무엇이든!
벽에 붙은 휴지케이스에 붙은 LIFE가 너무 인생스럽다.
청명한 가을 아침, 어떻게 시작하고 계신가요? 제가 나고 자란, 가장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고민을 담은 장소인 서울의 사진들을 보내드렸습니다. 사진을 올리고 보니 풍경에서 조금 더 줌인(Zoom-in)해서 유쾌한 사진들을 찍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드네요. 바로 위의 휴지케이스 같은 사진처럼요.
그리고 최근에 빠져버린 영화의 음악을 보내드립니다. 한국에서는 18일에 개봉하는 <블루 자이언트>라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세 소년이 재즈에 미치고, 열광하는,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에요. 재즈가 생소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음악은 느끼는거니까요.
저와 함께 오늘의 느낌표를 던져보시면 어떨지. 그리고 색소폰의 힘있는 소리와 함께 열정 가득한 하루 되시길요! 아, 감기 조심하세요!
어느 가을밤, 준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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