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의 사회생활을 돌이켜 보다 문득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어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쓸모'를 운운하며 평가하는 모습. 요즘 직장의 풍경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아마 여전히 공공연하게 서로는 서로를 쓸모에 따라 가치를 매기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쓸모를 평가하는 게 과연 합당한 행동일까요? 왜 우리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쓸모를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걸까요?
오늘 저는 아래 소개해 드릴 스티브 작가님의 글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어요. 결과가 중요시되는 사회에서 너무 자연스레 사람을 도구로 취급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직장인들을 습관적으로 톱니바퀴, 부품에 비유하곤 하잖아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불현듯 소름이 돋았어요. 어쩌면 우리에게는 자신의 위치와 상관없이 사람을 도구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만연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던 건 아닐까요?
사실은 존재만으로 의미가 되어 마땅한데 말이죠.
구독자님은 자기 자신을 존재만으로 사랑하고 계시는가요?
오늘 하루만이라도 시작할 때 나에게 "잘해보자"라고, 그리고 끝마칠 때는 "수고 많았어"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따뜻한 커피 한 잔 건네줘 보는 건 어떨까요?
✍🏻 writing한 글쓰기
쓸모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스페인 한량 스티브 작가
"야 이벤딩머신(자판기)만도못 한 놈아, 넌 뭐 하는 놈이야? 벤딩머신은 1유로를 넣으면 1유로 치 물건이라도 나오지, 넌 그 돈 받아 가면서 뭐 하는 거야?"
이미 십 년이나 지난 일임에도 그때 당시 상사의 분노와 고함은 생생합니다. 그 상사의 말에 충격과 공포를 느끼고 더는 살고 싶지 않다는 절망감, 자괴감, 여기에 대인기피증까지 1년 남짓의 시간을 제정신이 아닌 채 살았습니다. 지금도 쓰면서 살짝 떨립니다. 오늘 글은 길게는 못 쓸 거 같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분노하게 했을까요. 네, 맞습니다. 제가 일을 잘 못했어요.
머리가 브런치 스토리의 글쓰기 버튼을 눌렀을 때처럼 아무것도 없이 완벽하게 하얘졌거든요. 벼락치기 시험공부 하듯 아무리 자료를 보고 쓰고 만들어도 숫자가 머릿속에 안 들어왔습니다. 예상 질문과 적절한 답변을 생각해도 그분 앞에만 가면 다 사라져 버렸고요. 추위에 매장 밖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반려견이 후들후들 떨듯 손이고 발이고 덜덜 떨었습니다. 상사 혼잣말이긴 했지만 "어휴 저 병신"이라는 푸념 섞인 소리도 들었죠.
모든 건 회사원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팀원은 저에게 왜 맨날 당하느냐고, 들이받거나 인사과에 고발하라고 했지만, 그때마다 저는 다 제가 일을 못 해서 생긴 일이니 저만 잘하면 된다고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었어요.
하지만 점심의 상사를 피해서 먹고, 먹을 때는 허겁지겁 음식을 쓸어 담듯 우걱우걱 씹어대고, 먹고 나면 응달진 곳에 아니면 화장실에 문을 닫고 들어가 잠시 웅크리고 있다 나오는 저는 전혀 괜찮은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손 봐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는 블랙홀 그 자체였어요. 유일한 치료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빨아들이는 그곳에서 나오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왔습니다. 탈출이었어요. 그러나 나오고 나서도 후유증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쉴 수도 없었습니다. 가정을 꾸려가야 했으니까요.
주위 분들 덕에 구사일생으로 일을 구해 유사 업계, 업종에서 일은 했지만, 워낙 크게 충격을 받아서였는지 여전히 제 기능을 하진 못했습니다. 그 점은 결국 그곳에서도 상사와 갈등을 겪게 했지요.
이후 조직을 갖춘 직장에서 떠나 프리랜서가 되어 영어 강사가 되었을 때, 저는 제 쓸모를 찾았습니다. 다만 싱글이 아닌 가족이 있는 상태에서 스페인에서 영어 강사로 살아간다는 건 금전적으로 쉽지 않았어요. 감사하게도 다시 주위 분들의 추천과 도움으로 가이드업에 발을 들였고, 이후 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판기만도 못한, 돈만 축내는, 쓸모없는 폐급 인간으로 분류되던 저였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에 '그래, 이거라도 한번 해 볼까?' 해서 시작한 그 일은 시커멓던 석탄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재탄생시켜 주었습니다.
제 평소의 관심사와 취미가 여행 온 분들에게는 여행의 격을 높여주고, 재미난 강연의 시간이 되며,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가득 찬 샘의 원천이 될 줄은 전혀 몰랐어요.
'나라는 존재는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 걸까?'
여전히 명쾌한 답을 찾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답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게 있다는 건 알았어요.
제가 저 자신으로 자신 있게 살아갈 때, 그런 저를 응원해 주고 아낌없이 격려해 주는 분들이 생긴다는 것을요. 쓸모없는 인간은 없었어요. 저를 보니 그래요. 살아보니 그렇더라고요.
장자는 쓸모없는 나무도 쓸모가 있다고 했지요. 남들 보기에는 볼품도 없고 쓸모도 없어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다 하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제 천수를 누리며 그 자리에 남아 사람들에게 더운 여름날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주는 존재가 되었으니까요.
그러니 쓸모라는 건 상황에 따라 바뀐다고 봐야 할 겁니다.
실은 쓸모라는 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를 기준으로 합니다. 도구적 관점이라 하겠어요. 하지만 도구적 관점을 넘어 존재 자체를 귀하게 바라보는 시선으로 사람을 보니 다시 보입니다. 저라는 쓸모없었던 존재도 새롭게 보이고요. 제 주위의 사람들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해요.
존재 자체로 의미가 되는 나를, 그리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일상에서 나 자신을 보듬어 주기 위한 기록, 알레뷰 마이셆의 여섯 번째 이야기로 다시 찾아왔어요. 구독자님은 그동안 어떤 기록을 남기며 살아오셨나요? 오늘은 기록에 대한 방법에 대해서가 아닌, 그냥제 생각을남겨볼까 해요. 먼저 솔직히 고백할게요. 요즘 저는 불렛저널 기록을 이전만큼 꾸준히 하고 있지 못해요. 가장 큰 이유는 게으름이라는 게 부끄럽기만 하네요. 그런데 그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어요.
불렛저널은 일반 플래너나 다이어리와는 다르게 백지 위에 내가 모든 것을 하나씩 세팅한 뒤 기록하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사용자에게 가장 최적화된 기록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포맷을 고민하고 그리는 데에도 제법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단점도 있죠.
어느 순간부터 나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어요. 어떤 포맷을 그려야 하지? 어떤 것들을 기록해 보지? 그냥 먼슬리 로그 기록에 다 포함해서 적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보다는 데일리 로그를 좀 더 상세하게 세팅해 볼까? 고민만 많아지더군요. 점점 기록할 타이밍을 놓치다 보니 어떤 달은 일주일이 지나서야 먼슬리 로그 셋업을 마치기도 했어요.
점점 마음이 뜸해지더니 결국 소위 말하는 불태기가 찾아왔어요. 그 탓에 가장 최소한의 기록만 하고 있었어요.
12월 한 달간은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해요.
'나는 왜 기록하려 하는가?'
'그게 꼭 불렛저널이어야만 하는가?'
'나에게 최적화된 포맷은 어떤 게 있을까?'
이 세 가지 질문을 고민하면서 앞으로 지속 가능한 나만의 기록 방식을 찾아볼 계획이에요. 다음번 레터에는 부디 답을 들고 돌아올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볼게요. 혹 구독자님들 중에 꾸준히 기록 생활을 하고 계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아이디어를 나눠 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잘 적용해 보도록 할게요.
그럼 구독자님, 우린 또 다음 레터에서 만나요.
구독자님의 기록을 응원할게요!
알레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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