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모두가 그렇게 기다리던 가을이 온 것 같아요. 입추가 지난 지 한참이었는데 계속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양산을 서랍 속에 넣기가 어렵더라고요. 출퇴근길은 또 왜 이리 답답하고 더운지. 출근이 싫은건지 끈질긴 여름이 싫은건지 도통 알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다 엊그제부턴 정말 해가 지고 나면 선선한 바람이 부는 거 같아요. 자전거 타기 좋은 날씨, 새우 먹기 좋은 날씨,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어 귀뚜라미 소리를 듣기 좋은 날씨가 성큼 다가왔어요. 이번 여름, 유난히 더웠잖아요. 더위가 길어질 수록 가을은 더 소중해지는 것 같습니다.
잔뜩 사 놨던 책들에게 다시 기웃거리고, 가을이 제철인 맛있는 음식들은 계속 생각나고. 가끔씩 부는 서늘한 바람과 시리게 푸른 하늘, 내 속도 모르고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들 사이에서 괜히 싱숭생숭하기도 합니다. 맞아요. 가을은 딱 탓하기 좋은 계절이죠. 한 해가 저물어가는 기분도 들고, 한해가 저물면 나이도 하나 더 들고, 가을이니 추석이니 하면서 이것저것 주워 먹다 보면, 내년의 다짐도 다이어트가 되고 말 거에요. 언제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요맘때쯤이면 죽이 잘 맞는 친구와 새우를 먹으러 가는 게 연례행사였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생새우회를 파는 맛집을 열심히 찾고 있답니다. 양심은 집에 꽁꽁 묶어두고, 호들갑 잔뜩 떨면서 생새우회를 직접 까서 청하랑 한잔 하면 그만한 가을맞이도 없거든요. 이유는 별거 없어요. 가을이니까, 우리 둘이 죽고 못사는 새우 쯤은 먹으러 가 줘야지- 하는거죠. 몇 년 내내 그러고 있으니 가끔은 이런 행사가 '벌써 그렇게 됐나.' 하면서 세월을 실감하게도 해주는 것 같습니다.
잔뜩 가을 탓하려고 시동 걸고 있다가 문득 알고리즘에 뜬 유튜브 영상을 하나 들고 왔습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유명하신 궤도님의 영상인데요. 가을은 잘못이 없다며 1절, 2절, 뇌절까지 가는 걸 보니 공학도인 저도 혀를 내두르게 되는데요. 우리에게 익숙한 현상을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면에서 흥미로운 것 같아요. 구독자님도 특히나 탓하게 되는 계절이 있나요? 올해는 유독 짧아진 가을을 좀 다른 각도로 바라봐주는 건 어떨까요?
✍🏻 writing한 글쓰기
행복하자니 웃어야죠~
마마뮤 작가
"아유~ 무슨 여자아이 웃음소리가 그렇게 요란해~"
내가 어린 시절에는 '여자 아이가~'라고 시작하는 말을 아쉽잖게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사고방식이 고루했던 그 시절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이 말 자체를 딱히 큰 문제로 생각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저 그러려니..
나는 어려서부터 웃음소리 하나는 호탕했다. 뭔가 재미난 것을 보면 서슴지 않고 시끄럽게 웃어젖히며 나의 감정 상태를 한껏 드러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엄마는 쟤가 누굴 닮아서 저리 어허~거리며 웃는지 모르겠단 혼잣말을 하시곤 했는데, 딱히 야단을 하시는 건 아니었기에 나는 어떤 말에도 위축되지 않고 나만의 호탕한 웃음을 살아오는 내내 쭉 지켜왔다. 아마도 내가 비교적 건강한 체질로 잘 살아올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호탕한 웃음이 뒷받침된 건 아닐까? 최근 우리는 '웃음'이 신체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익히 들어 잘 알지 않나.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가족과 함께 호주에서 살기 시작했다. 아무리 한국에서 영어 교육을 받았다한들 현지에서 맞닥뜨린 생활 영어를 능숙히 구사해 내기까지는 물론 시간이 상당히 소요됐다. 처음엔 당연히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듯 상대의 말에 최대한 촉을 세워 열심히 들어야 했는데, 그렇게 들어도 100% 알아듣지 못하는 건 당연지사. 그럴 때 가장 유용했던 게 바로 '웃음'이었다. 흔히 입장이 곤란하거나 당신 말을 내가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알아들은 걸로 치자는 제스처를 보내기에 '미소' 또는 '웃음'처럼 쓸모 있는 방법은 또 없었지 싶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시드니에서의 어느 날이 있는데, 모처럼 극장에 갔을 때이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시리즈인데 아마도 슈렉 2편을 보러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즈음엔 이미 못 알아듣는 수준에서는 벗어난 지 한참 지난 때였지만,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 해도 '유머'를 너끈히 소화하는 건 외국어 능력에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야 가능한 일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어쨌든 나에게는 늘 '제2 외국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었던 게 영어이다 보니, 웃음이 많이 터져 나와야 하는 콘텐츠를 보면서 나만 웃지 않는 포인트가 발생한다는 건 정말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일이었다.
이런 어쭙잖은 자존심을 마음 한구석에 움켜쥔 채,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듣고 열심히 웃어젖혔다. 그야말로 영혼을 빼내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본다면, 저 혼자만 세상 그렇게 웃긴 게 또 있을 수 있나 하는 모양새였다. 지금 떠올려보면 너무 부끄럽지만, 앞에 앉았던 호주 아주머니는 내가 너무 시끄럽다고 생각했는지 살짝 눈치를 주셨다. 무척 sorry 하지만 이 말을 이제야 전해드릴 길은 없으니 그저 죄송할 따름. 난 누구보다 열심히 웃음으로써 그 유머를 모조리 이해하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입증하고 싶었다.(지금 보니 이게 젤 우습다)
이제 기력이 다해간다는 무엄한 발언을 던지기엔 아직 그래도 한창인 중년이지만, 어쨌거나 기운이 전만 못한 지 이제는 그렇게까지 호탕하게 웃는 일이 많지는 않다. 어쩌면 웃을 일 자체가 많이 사라진 건 아닌가 하는 씁쓸함도 좀 느껴진다. 그렇지만 나의 웃음 DNA를 고스란히 전수받은 자가 있으니, 바로 우리 딸내미이다.
아이는 재미난 것, 웃긴 것을 보면 집이 떠나가라 웃는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면 옛날 그 시절 우리 엄마가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겠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곤 한다.
살면서 그나마 아이 덕분에 웃는다는 말을 참 많이 하게 된다. 아이는 종종 내가 무심코 하는 말이나 표정에도 너무 즐거워하며 웃음을 터트리곤 하는데, 뭐가 그렇게 웃기냐고 물어보면 엄마가 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굴러가는 나뭇잎에도 웃음이 터진다고 하던가. 아이가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그렇게 웃을 일이 아주 많으면 좋겠다. 사실 웃을 일이란 많이 생기고 안 생기고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오늘 이른 아침 들었던 라디오 방송에서 웃음 강사의 비법을 공유해 줬는데 정말 간단하다. 크게 웃고, 길게 웃고, 온몸으로 웃으면 된단다. 얼마나 들 안 웃고 살면 웃음을 전수하는 강사가 다 존재할까.
그러게 살면서 조금 더 마음을 유연하게 갖고 의식적으로 많이 웃어봐야겠다. 아이가 웃을 때 누가 더 시끄럽게 웃나 내기해 볼까. 그럼 하늘에서 우리 엄마가 어이없어 웃으시려나...
📸이준희의 시선 #1
준희 작가의 시선이 담긴 필름 사진과 별거 없는 짤막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사회 초년생 무렵, 어김없이 프로젝트가 하나 끝나고, 다음 스텝을 밟기 전 독일에서 거주하고 계신 고모네 집에 염치도 없이 놀러 간 적이 있다.
정말 쉬러 간 거였다. 3개월 빡세게 준비하던 페스티벌을 끝냈고, 당시 회사와 추가 계약을 앞두고 있었다. 아무 일 없이 쉬고 싶었다. 그래서였는지 독일에 가서도 나는 집 밖에 잘 나가지 않았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 고모네 가족들과 밥을 먹고, 가끔 동생들과 시내에 나갔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일 없이 쉬고 싶다면 그냥 집에 있으면 되는데 왜 굳이 고모네 집까지 가서 쉬겠다고 난리였는지는 모르겠다. 이 날도 어김없이 집에 있는데, 고모가 도대체 왜 집에만 있냐고 하길래 필름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나갔다.
사실 프랑크프루트는 좀 지루한 동네다. 내가 머물렀던 곳은 특히나 주거지역이었고, 걸어서 둘러 볼만한 곳은 낮은 산, 마트, 이것저것 파는 서점 정도가 전부였다. 이 사진을 찍을 때는 정말 나도 살짝 후회가 됐던 것 같다. 나...왜 비행기 표까지 사가면서 여기에 있지...? 독일에 왜 왔을까. 여행도 아니고, 요양도 아니고. 그냥 비행기가 타고 싶었나.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에 대해 잘 몰라서 무작정 결정했던 것 같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고, 내가 어떨 때 쉰다고 느끼는지 모르고. 잘 모르는데 쉬고는 싶으니까 본능적으로 한국에서 나를 떼어 놨을 수도 있겠다. 한국은 자극적인 것으로 가득하고 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청년이니까. 실제로 난 이때 쉬는 걸 어려워했다. 스물 한 살 때부터 한 달에 집에 붙어있는 날이 하루 이틀 될까 말까 했었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바로 투입될 사이드프로젝트도 있었다. 바로 다음 주부터 출근이기도 했다. 나는 또 다시 바빠지기 전에 숨 고르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시간이 꽤나 흐른 지금은 쉬는 날 집에 박혀서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는 게 낙이다. 내가 뭘 할 때 행복하고 평온을 느끼는지 너무 잘 알아서 탈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사진들을 찍었을 때만 해도 혼란이 가득했는데, 인생이 늘 그렇듯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되는 것들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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